
사회복지시설 비리척결과 탈시설 권리 쟁취를 위한 공동투쟁단은 지난 10일 서울시청 앞에서 탈시설을 위한 시설생활인 증언대회를 개최했다. 석암베데스다요양원에서 살고 있는 생활인들이 구성한 석암재단 생활인 인권쟁취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소속 장애인 10명이 "내가 시설에 있을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다"면서 시설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강한 의지를 전했다. 이들은 지난 3월 25일부터 서울시청 앞에서 사회복지시설 비리척결과 탈시설권리쟁취를 위한 노숙농성을 벌이고 있다. 에이블뉴스는 제28회 장애인의 날을 맞아 진행하고 있는 장애인 주거권 특집의 일환으로 공동투쟁단측의 협조로 이날 발표된 10명의 수기를 연재한다. 공동투쟁단의 요청에 따라 생활인들의 이름은 가명 처리하고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했다.
매일 나가고는 싶지만 나갈 수가 없었어요
태어날 때는 정상이었데요. 근데 자다가 경기를 했데요. 그걸 그냥 놔둬야하는데, 엄마가 애가 경기를 하니까 병원에 데리고 갔데요. 그때 내가 놀래가지고 이렇게 됐데요. 이후에 병원에 갔더니 앞으로 내가 걷지도 못하고 누워서만 생활한데요. 정말 집에서 매일 텔레비전만 보고, 음악만 듣고 그랬어요. 형제들은 다 학교 다니고 사회활동을 해서 같이 못 놀았어요. 매일 나가고는 싶었지만 나갈 수가 없었어요. 그러다 삼육재활원에 갔더니 엄마한테 나 운동시키라고, 물리치료도 받으면 좋아진다고 하더라고요. 그때부터 출퇴근 했어요. 매일 엄마가 업고 재활원까지 갔는데, 버스가 안 태워주는 거예요. 그것 때문에 차도 잘 잡지 못했고, 엄마도 고생을 많이 했어요. 그래도 나는 좋았어요. 집에만 있다가 나가니까, 세상 구경하는 게 아주 좋았죠. 내가 할 수 있는 게 거기 다 있잖아요.
삼육재활원에서 6개월 있었는데, 근데 나이가 차니까 딴 데 가라고 통보가 왔어요. 거기는 18살 먹으면 나가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해서 병원에 들어가려고 했더니 돈이 두 배 더라고요. 해서 나는 못 간다고 했더니 돈을 더 내고 기숙사에 가라고 하더라고요. 기숙사에 갔더니 이 돈을 가지고 못산데. 해서 집에서 돈이 없으니까 나와서 딴 데 가자고 했어요. 결국 돈이 없어서 더 있을 수가 없었지요. 재활원에서는 휠체어 타고 내 마음대로 왔다 갔다 했는데, 집에 오니 다시 갇혀 지내야 했죠. 친구도 없고. 그때는 화장실도 집 밖에 있어서 그것도 힘들고. 엄마가 매일 대변처리를 해주셔야했고. 기분이 착잡했죠, 많이 우울했고. 그래서 다시 보내달라고 많이 울었어요.
니 네가 뭐 그렇게 불만이 많냐
집에서 3년 있다가 석암으로 왔어요. 석암이 좀 더 싸더라고. 그때부터 18년 동안 석암에 있었어요. 작년부터 우리가 석암의 비리를 캐자 그랬어요. 오랫동안 비리가 있다는 눈치는 채고 있었는데, 아무도 말을 못하고 지낸 거였어요. 예를 들면 정부에서 피복비를 지원해주는데 우리 피복을 매번 나일론으로 된 싼 것만 사는 거예요, 그것도 체육복으로. 봄, 여름, 가을, 겨울 다 마찬가지였죠. 또 간식비를 챙긴다고 생각했죠. 예전엔 우유가 매일 나왔는데, 나오다가 안 나오고, 빵도 안 나오고 그러더니 감자랑 고구마만 간식이라고 주는 거예요. 또 야유회도 반도 안 데리고 가는 거예요. 야유회 비용으로 나온 돈도 챙겨야하니까. 그렇게 계속 돈을 챙겨서 땅만 사고, 건물만 짓는 거예요. 그래야 새로운 사람 데리고 와서 수용시킬 수 있으니까. 선생님들 월급도 두 달 동안 밀렸다는 얘기도 있었고요.
개인적으로 나는 5년 전에 생활비라고 3천만 원을 냈어요. 죽을 때까지 석암에 있는 비용이죠. 근데 구청에서는 감사를 나와도 자기들끼리 막 하고 가는 거예요. 우리한테 뭘 물어봐야하는데, 비리가 있는데도 안 살피고 그냥 얼렁뚱땅하고 가는 거예요. 결국 작년에 비리문제로 걸려서 이사장은 구속이 됐는데, 원장은 안 잡혀가고 있어요. 그러면서 우리가 시설을 죽인다고 말하고 다니죠.
지난해 8월에는 사고 난다고 밖에 못나가게 했어요. 그전에는 나가서 영화도 보고, 시장도 가고 그랬는데 외부에서 오는 사람이 있어야지만 나가지 나머지는 전혀 못 나가게 했어요. 그래서 우리가 왜 못 나가냐고 항의했죠. 그러니까 원장이 바깥에서 사고 나면 자기가 책임져야한데. 자기가 다 책임져야하니까 나가지 마라. 나가고 싶으면 선생이랑 같이 나가라 하는 거예요. 하지만 선생님이랑 같이 가면 그만큼 돈을 더 써야 해요. 선생님 차비랑, 밥값도 내야하고. 그래서 여기가 무슨 감옥이냐, 이렇게 나가는 건 감시다라고 항의했죠. 그렇게 석 달 지나고 나니까 원장이 우리보고 나가라 그러더라고요. 그때가 10월이었는데 막 추워지기 시작했어요. 그래도 우리는 계속 나왔지요. 근데 나가고 들어온 기억을 남긴다고, 사인하고 가야한다고 하더라고요. 그게 법이래요. 그런데 우리는 싸인 안하고 나갔어요. 나도 몇 번 싸인 안하고 돌아다녔고요. 그랬더니 싸인 안하고 나가면 무조건 퇴소시킨다고 윽박을 지르더라고요. 거기는 우리가 무슨 말만하면 퇴소 시킨데요. 이건 쉽게 말하면 우리보고 아무 말대꾸 하지 말고, 주는 거 먹고 조용히 있어라 이거지요, 니 네가 뭐 그렇게 불만이 많냐는.
지난 4월 초에는 선생들이 담당하는 방을 바꿨어요. 본래 6개월마다 바뀌는데, 지금은 농성도 하고 그러니까 석 달 만에 바꾼 거예요. 노조 선생님들하고 비노조 선생님들을 분리하려는 건데, 우리가 왜 우리 얘기도 안 들어보고 바꾸냐고 항의를 했죠. 그랬더니 또 원위치 해놨어요. 그리곤 요즘엔 자기 죄 없다고 우리보고 탄원서를 써 달래요. 인지가 없는 원생들 같은 경우에도 손도장 찍게 하게 하고 자기가 쓰고 있어요. 그리고 지난 주에는 우리 농성 못하게 하려고 집에 전화도 했나보더라고요. 물론 우리 형은 여기 문제 다 알아요. 그래서 너 하고 싶은 데로 하라고, 끝까지 하라고 응원해주긴 했지만, 전화 때문에 가족들이 다들 걱정은 많이 하세요.
나와서 자유롭게 살 거예요
우리 생각엔 지금의 석암을 폐쇄하고 다른 사람이 와서 비리 없는 시설로 새롭게 운영을 해야 해요. 그리고 전국에 비리 있는 시설이 많아요. 해서 관련법을 바꿔서 비리 있는 시설을 다 바꿔야 해요. 석암에도 프로그램이 있는데, 다 시간만 때우는 거예요. 정부에서 돈 타먹으려고요. 그것보다는 사람들은 다 바깥으로 데리고 나와서 돌아다니는 게 필요해요. 우리가 들어가서 (바깥에 나온) 얘기를 하면 자기들도 나오고 싶데, 알고 싶고요. 자기가 먹을 수 있는 거 먹고, 보고 싶은 거 보고, 하고 싶은 거 하고 싶다고 하는 거예요. 지금 석암에서는 그렇게 하는 게 불가능해요. 선생들이 바깥에 나가는 거 잘 안 해주고, 나가서도 잘 안 따라줘요. 저는 석암일 잘 되면 자립하기 위해 나올 거예요. 나와서 자유롭게 살 거예요. 돈도 벌어보고. 내 꿈이 어렸을 때부터 전파상 하는 거였어요. 집에 있으면서 하도 심심해서 누워서 라디오를 세 개나 조립했어요. 뜯었다가 원위치 하고 다시 반복 그런 거죠. 처음에는 안됐는데, 몇 번 하니까 되더라고요. 그땐 완전히 날아가는 기분이었죠. 누구한테도 배운 적이 없는데 내가 그걸 해낸 거잖아요. 나도 뭔가 할 수 있어요. 근데 시설에서는 그렇게 살지 못해요. 여건이 안돼요. 간단한 거지만 자기 맘대로, 하고 싶은 거 하며 자유롭게 사는 거 시설에서는 못해요.
*이 글은 석암재단 생활인 인권쟁취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소속 정수열(가명)씨가 지난 4월 10일 서울시청 앞에서 열린 탈시설을 위한 시설생활인 증언대회에서 발표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