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복지시설 비리척결과 탈시설 권리 쟁취를 위한 공동투쟁단은 지난 10일 서울시청 앞에서 탈시설을 위한 시설생활인 증언대회를 개최했다. 석암베데스다요양원에서 살고 있는 생활인들이 구성한 석암재단 생활인 인권쟁취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소속 장애인 10명이 "내가 시설에 있을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다"면서 시설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강한 의지를 전했다. 이들은 지난 3월 25일부터 서울시청 앞에서 사회복지시설 비리척결과 탈시설권리쟁취를 위한 노숙농성을 벌이고 있다. 에이블뉴스는 제28회 장애인의 날을 맞아 진행하고 있는 장애인 주거권 특집의 일환으로 공동투쟁단측의 협조로 이날 발표된 10명의 수기를 연재한다. 공동투쟁단의 요청에 따라 생활인들의 이름은 가명 처리하고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했다.
입소
올해 50세인 김정민(가명)입니다. 저는 89년 7월 19일 오후에 용산에서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당시 저는 을지로 2가에 있는 한식집에서 요리사로 일했는데, 근무 끝나고 용산에 놀러 갔습니다. 마침 장대비가 내렸었는데, 놀다가 집에 가려고 택시를 잡던 길에 차에 치였습니다. 아마 주차하려던 차였던 것 같습니다. 이후에 들었는데 당시 운전기사가 제가 무단횡단을 했다고 경찰에 모함을 했다고 합니다. 어쨌든 저는 병원으로 옮겨졌는데, 의사가 없어서 다음날에 수술을 했습니다.
그리곤 중환자 실로 옮겨졌다가 병실로 옮겨졌는데, 그 병실이 석암재단에서 운영하는 병실이었습니다. 병원에서 4개월 정도 있었는데, 어느 날 병원 업무과장인가 하는 사람이 나이가 몇 살이냐고 물었습니다. 해서 59년 생이라고 했더니 걱정하지 말고 치료만 잘 받으시라고 하더라고요. 두달 후엔가, 다시 업무과장이 와서 병원에 있으면 돈이 더 든다고 달라고 하더군요. 아니면 석암요양원에 가면 한달에 한번씩 병원에서 나가니까 치료도 공짜로 받을 수 있으니 그리 가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인천 계신 형수도 교통사고를 당했고, 대전 살던 우리 작은형도 교통사고를 당해서 병원에서 절 돌봐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해서 서른 두 살 때 석암으로 넘어왔습니다. 내가 일해서 모은 전 재산, 600만원을 다 주고 시설에 왔습니다. 나중에 들었는데, 보험회사에서 500만원을 병원비로 주고 갔다고 합니다.
석암에 와서 이래저래 고향이나 언론사에 편지를 보냈습니다. 교통사고와 시설에 대한 불만 편지였는데 한통도 답장을 받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보니까 병원의 한 선생님이 편지 한 무더기를 다 버리더라고요. 아마 거기에 제 편지도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최근에는 우리 요양원이 이사를 가려고 했다가 취소했습니다. 말로는 요양원 일대에 도로공사 때문에 시끄럽다고 한 건데, 생각은 딴 데 가있었을 겁니다, ‘어떻게 하면 더 빼먹을 수 있을까’. 이사 가려고 한 곳엔 노인시설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한 군데 다 모아놓으면 더 많은 걸 지원받을 수 있으니까 그쪽으로 모아놓으려던 속셈 같습니다. 게다가 지금 있는 곳은 땅값이 올라서 이건 팔아먹으려고 했던 거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원장이 있었을 때는 생활인들을 감금하다시피 했고, 제복만 원장은 밖으로 나가면 사고가 날 수 있으니까 시설 밖으로 나갈 때마다 싸인하고 나가라고 했습니다. 최근에 와서는 외출은 많이 하는 편입니다. 볼 건 없어도 동네 한 바퀴 도는 거지요. 이것도 사고 저것도 사고 하다보면 한 시간 정도 걸립니다.
공동체
나는 우리 사회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같이 살 수 있는 공동체 마을을 조성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전국에 장애인 없는 마을이 어디가 있습니까? 우리 사촌형도 그렇고, 내 친구도 그렇고 장애인입니다. 그래서 장애인도 그 지역사회에서 똑같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이게 뭡니까? 시설에 넣어서 인간 사육하는 거지. 개 사육은 해도 인간 사육은 해선 안 됩니다. 지금 시설은 우리들을 팔아가지고 자기들의 이익만 챙길려고 합니다. 우리는 사육당한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리 가라고 하면 가야하고, 저리가라 하면 저리 가야하고. 시청에서 서명을 받는데 어느 한분이 문제 있는 재단은 허가를 취소해야 한다고 적어주셨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꿈
석암에 온 이후로 여기서 20년을 살았습니다. 어머님, 아버님 제사도 한번 못 지냈고, 묘지에도 한번 가보지 못했습니다. 이젠 형제들 전화번호도 모릅니다. 가족들이랑 연락도 전혀 안됩니다. 가족들이 보고 싶지만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제 꿈은 장애인들이랑 제주도에 한번 같이 가는 겁니다. 지금은 장애인들도 많이 제주도에 가는데 우리 원생들이랑 같이 가고 싶습니다. 혼자 가는 건 재미없습니다. 같이 가야 흥도 나고, 재미도 나고, 웃을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이 글은 석암재단 생활인 인권쟁취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소속 김정민(50·가명)씨가 지난 10일 서울시청 앞에서 열린 탈시설을 위한 시설생활인 증언대회에서 발표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