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주간 진행된 국제장애인권리조약 제7차 특별위원회에서는 장애인의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구체적인 사항이 다뤄졌다. 이를 기초로 마지막 3주째는 그러한 세부적인 권리들의 기초가 되는 총론적인 부분을 다뤄지게 된다.
1조 목적, 2조 정의, 3조 일반원리, 4조 일반의무 등은 장애인권리조약의 이념과 원리, 원칙, 국가의무사항 등을 담아내는 조항들로 조약의 근간을 이루게 되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회의 11일차가 되는 1월 30일, 이중에서 1조 목적과 3조 일반원리, 4조 일반의무가 다뤄졌다. 2조 정의는 다른 조항의 논의 결과를 반영해야 하므로 나중으로 미뤄졌다.
제1조 목적…조약명 축소와 함께 논의
1조 목적에 대해서는 각국 대표들이 조약명과 함께 연동시켜 의견을 냈다. 이미 IDC는 의장안에 대한 수정안을 통해, 조약명과 목적이 중첩되는 부분이 많으니, 긴 조약명을 간략하게 하고 의장안의 목적을 원안대로 유지하는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각국의 대표들도 대체적으로 제목을 줄이는 방안을 선호했다. 다만, 조약명에 ’존엄(dignity)'을 추가하는 제안이 있어 이에 대한 토론이 있었다. 한국과 이스라엘, EU, 미국 등은 장애인의 권리와 함께 이 조약이 장애인의 존엄성을 유지, 보장하는 목적이 있으므로 ‘존엄’이 조약명이 들어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리히텐슈타인, 세루비아 몬테네그로, 호주, 인도, 요르단 등은 이 조약에서 정부는 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해 줄 수는 있지만 ‘존엄’을 부여하는 것은 아니므로 조약명에 ‘존엄’을 넣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나 ‘존엄’이 ‘제1조 목적’에 반영되는 것은 대체적으로 지지를 얻었다. 이에 대해 의장은 ‘존엄’이 포함된 조약명을 사용하는 데 신중하자는 의견을 받아들여 최종적으로 ‘국제장애인권리조약(International Convention on the Rights of Persons with Disabilities)'라고 조약명을 결론지었다.
조약명이 간략화됨에 따라, 1조 목적은 당초 의장안이 대체적으로 유지되었다. 다만, 조약명에 포함시킬 것으로 제안된 ‘존엄’부분이 목적에 추가로 포함되었다. 또한 코스타리카의 제안으로 ‘장애인의(of persons with disabilities)'라는 표현이 ’장애에 의한(by persons with disabilities)'로 바뀌어 장애인의 능동성이 강조되었다. 그에 따라 최종적으로 의장이 수정 제시한 목적은 다음과 같다.
“제1조(목적) 이 조약의 목적은, 장애인에 의해 모든 인권과 기본적인 자유가 완전하고 동등하게 향유되도록 증진, 보호, 보장하고, 장애인의 고유한 존엄성에 대한 존중을 증진하는 것이다.(The purpose of the present Convention is to promote, protect and ensure the full and equal enjoyment of all human rights and fundamental freedoms by persons with disabilities, and to promote respect for their inherent dignity.)”
제3조 일반원리…자기결정권 용어 논란
3조는 이 조약의 근간이 되어 전체 조항을 규율하는 기본철학과 원칙을 명시한 것이다. 3조에서 논란이 되었던 사항은, ‘자기결정권(self-determination)'의 사용여부, (b), (c), (e)호를 단일조문으로 만드는 것, 아동에 관한 사항을 (h)에 추가하는 것, 장애인문화의 다양성을 반영하자는 것 등이었다.
먼저, 3조의 제목에서 ‘일반적인(general)'을 ’근본적인(fundamental)'로 바꾸자는 제안이 있었으나, 다른 조약에서 사용된 예가 없다는 이유로 반대가 많았다. 이에 따라 조항서문(chapeau)에 있는 ‘fundamental'도 삭제하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a)호의 'individual autonomy(개인의 자율성)‘을 ’개인의 자기결정권(individual self determination)'으로 대체하자는 IDC의 제안이 있었다. 이에 대해 캐나다, 호주, 미국, 일본, 이스라엘 등 대부분의 나라들은 ‘self determination'은 외교용어로 ‘민족의 자기결정’으로 사용되는 예가 있어 상충되고 ’autonomy'가 보다 포괄적인 의미를 가지므로 대체는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이 문제는 사실 지난 2004년 실무그룹회의에서부터 제기된 문제로 이번에도 IDC는 ‘autonomy'가 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명확히 하는 데에 부족함이 있다는 취지에서 다시금 거론한 것이다. IDC는 자기결정권 앞에 '개인의(individual)'을 둠으로써 ‘민족의 자기결정’과 다르게 사용될 수 있다는 의견이었으나, 역시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분위기였다.
캐나다가 제안한 (b), (c), (e)호의 통합은 호주, 중국, 노르웨이 등 지지하는 나라들이 많은 편이었으나, 그렇게 할 경우 핵심내용이 빠질 수 있다는 IDC와 멕시코, 나이지리아 등 몇몇 나라들의 우려가 있었다.
IDC, EU, 미국, 호주, 우루과이 등은 장애아동의 능력개발과 최대한의 이익추구라는 내용으로 (h)호를 추가하자는 의견이 냈다. 그러나 그 취지에는 공감하나 아직 장애여성 조항과 함께 장애아동조항에 대한 논의를 하지 못했으므로 추후에 결론을 내자는 한국 등의 의견으로 더 이상 논의가 진전되지는 못했다. 한국은 자칫 각 조항을 검토할 때 여성과 아동 관련 조문을 삽입하는 것이 확정이 되면 단독조항에 대한 논의가 무의미해 질 수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 코스타리카는 (a)호에 ‘인생의 각 단계에서(in the life stage)'를 추가하면 아동에 대한 조문 추가를 대체할 수 있다는 의견을 내서 몇몇 나라들로부터 지지를 받았다.
문화의 다양성을 일반원리에 반영하자는 의견은 주로 예멘, 모로코 등 이슬람국가들이 제기하고 EU도 이에 동조했다. 이 문제는 이미 법률, 성, 가족 등과 관련한 다른 조항에서 이슬람국가들이 심심치 않게 제기했던 문제이다. 그러나 중국 등 그 밖의 나라들은 문화의 다양성을 특별하게 다룬 것이 다른 조약에 보이지 않고, 더군다나 다른 조항의 관련된 부분에서 이를 반영하는 논의가 이미 있었으므로 별도로 일반원리에 반영하는 것은 무리라는 입장을 표시했다.
이 밖에 칠레는 (e)호의 ’기회의 평등(Equality of opportunity)'이 결과를 보장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했으나, 의장은 이 조약이 결과의 평등을 보장하기는 어려우므로 기회의 평등이 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제4조 일반의무…차별 구제책 명문화가 쟁점
‘4조 일반의무’ 조항은 장애인권리조약에 대한 조약 당사국의 의무를 명시한 것으로, 조약의 이행의 측면에서는 가장 주목해야 할 조항이다. 의장도 논의 서두에, 이 조항은 보편적 기술, 국가정책의 시행을 위한 장애인 및 장애인조직과의 협의를 포함한 의사결정과정, 또한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의무의 점진적인 시행과 즉각적 시행 등 모든 내용을 담고 있는 매우 포괄적인 조항임을 강조했다.
제4조의 논의에 있어 가장 핵심이 된 사항은 두 가지로, 첫째가 차별에 대한 적절한 '구제책’(remedy)의 명문화였다. 여기에 대하여 많은 국가들의 발언이 있었는데, 우선 구제책의 명문화를 찬성한 국가들, 아프리카를 대표하여 발언한 세네갈, 브라질,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몬테네그로 등은 조약의 이행과 관련하여 차별에 대한 구제책을 명시하지 않는다면 장애인의 인권보장과 당사국의 실질적인 조약의 이행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한편, 코스타리카는 특별히 사법적 구제를 언급하였고 세르비아 몬테네그로는 그것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멕시코, 캐나다, 이스라엘, EU 등은 매우 민감하고 중요한 문제이므로 향후 추가적인 논의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여기에 대해 원래 구제책의 포함에 반대 입장을 밝혔던 일본이 찬성으로 입장을 수정했고, 중국과 뉴질랜드는 구제에 관한 언급에 대해 융통성을 가지고 있음을 전제하고 만약 포함되어야 한다면 각 당사국들의 국내법을 고려하여 가장 분명한 언어로 명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논의에 대해 IDC와 국가인권위원회 등 비정부기구들은 구제책의 마련이야 말로 본 조약의 구체적 이행을 담보할 수 있는 중요한 사안임을 강조하며 각 국가들이 이점을 깊이 고려해 줄 것을 당부했다. 특히 IDC는 권리가 보장된 인간에게 권리침해를 구제받을 수 있는 대책이 없다면 여성차별철폐조약 등 이전의 인권조약과의 형평성도 잃게 되고 본 조약의 시행에도 많은 어려움이 발생할 것이라고 했다. 또 세계정신장애인협회는 여러 조약들이 구체적인 구제책을 언급하지 않는 경우가 일부 있으나 대부분의 조약은 세부적인 내용을 명시하는 부분에서 각각의 구제책을 언급하고 있으며 이러한 구조는 비엔나협약이 좋은 예가 된다고 하였다.
장애인의 정책 참여, 누가 당사자인가?
제4조와 관련하여 또 하나의 논란은 장애인의 정책 참여를 언급한 제4조 제3항에 있었다. 쟁점은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되는데, 하나는 ‘누구와 협의해야 하는가’, 또 하나는 ‘무엇을 협의해야 하는가’ 였다. 누구와 협의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예멘이 현재 의장안에는 단순히 ‘장애인과 장애인을 대표하는 단체’(persons with disabilities and their representative organizations)로만 표현되어 있는데 이러한 표현보다 직접적인 표현으로 수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즉, ‘장애인당사자단체 혹은 직접 장애인과 관련한 단체’ 등의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무엇을 협의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러시아와 한국이 구체적인 항목을 나열하는 것이 협의내용을 축소시킬 우려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하며 3항의 후반부 문단을 삭제할 것을 요구했다. IDC는 반드시 장애인과 직접 관련된 내용만을 협의하는 것으로 축소하기 보다는 전반적인 국가의 정책을 논의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하고, 누락의 여지를 없애고 포괄적인 의미를 갖도록 하기 위해 3항의 후반부 문단의 삭제에 동의했다.
브라질은 논의대상의 목록화는 반대하고 정기적이고 일정한 수준의 논의구조만 만들면 될 것이며 법제화는 불필요한 것이라고 발언했다. 이에 대해 세르비아 몬테네그로는 전반적인 논의구조 즉, 국가의 정책 수립에 필요한 국민 각계의 논의구조 속에 장애인을 포함시키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제안했다. 한편, 빈곤장애인협회는 제3항에 장애인단체의 경제적 지원을 명시하여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들은 장애인이 전 세계적으로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있으며 이들이 원만히 정부와 협의하고 모니터링과정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안정과 자립이 이루어져 있어야 함으로 다른 조약에 관련 내용이 명시된 경우가 없기는 하지만 본 조약의 특이성을 고려하여 장애인당사자단체에 대한 각 당사국의 지원을 명시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또 아랍의 장애인단체대표는 제3항의 의미를 장애인과 장애인을 대표하는 단체가 정부의 조언자 정도로 인식될 우려가 있다고 제3항의 내용은 국가정책에 대한 장애인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구조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제 1조 목적
본 협약의 목적은 장애인이 모든 인권과 기본적인 자유를 완전하고 동등하게 향유하도록 촉진, 보호, 완성시키는 것이다.
제 3조 일반 원칙
본 협약의 기본 원칙들은 다음의 내용과 같다.
(a) 개인의 자립과 선택의 자유를 포함한 존엄, 개인의 자율
(b) 차별 금지
(c)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동등함을 전제로 완전하고 효과적인 사회 참여 및 통합(inclusion)
(d) 인간의 다양성과 인간성의 일부분으로서의 차이에 대한 존중과 장애의 수용
(e) 기회의 균등
(f) 접근성
(g) 남성과 여성의 평등
제 4조 일반 의무
1. 당사국들은 장애로 인한 어떠한 형태의 차별 없이 장애인의 인권 전반 및 기본적인 자유의 완전한 실현을 보장하도록 책임진다. 이를 위해 당사국은 다음의 사항을 이행한다.
(a) 본 협약의 실효성을 담보할 수 있는 법률적, 행정적 및 기타 조치들을 채택하고, 법 및 규정을 개정, 폐지 또는 무효화하며, 본 협약과 불일치하는 관습 또는 관례는 시행되지 않도록 한다.
(b) 헌법이나 기타 적합한 입법체계 내에서 장애를 근거로 한 평등과 차별금지에 대한 권리를 구체화한다. 만약 아직도 헌법이나 다른 입법 내에 이러한 권리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면 법이나 기타 적절한 수단을 통해 이러한 권리의 실질적인 실현을 보장하도록 한다.
(c) 모든 경제·사회적 개발 정책 및 프로그램에 장애 이슈를 주되게 포함 시킨다.
(d) 본 협약과 일치되지 않는 행위는 제한하고 공공 당국 및 기관들이 본 협약과 일치하여 행동하도록 보장한다.
(e) 어느 개인, 기관 또는 민간기업이 장애를 근거로 하여 차별하는 것을 금지하기 위해 모든 적절한 대책을 마련한다.
(f) 다음 사항을 개발하고, 사용가능하게 하며, 이용하거나 촉진한다.
(i) 장애인의 특수한 욕구에 부합하고 표준 및 지침 개발에 있어 보편적인 디자인을 추진하기 위해 구조변경과 가격을 최소화한 보편적으로 디자인된 제품, 서비스, 장비와 시설
(ii) 감당할 수 있는 적정 가격의 기술에 우선권을 부여하면서 장애인에게 맞춰진 새로운 기술(정보와 의사소통 기술, 이동보조수단, 보장구, 보조 기술을 포함)
(g) 보조, 지원 서비스 및 시설뿐만 아니라 이동보조수단, 보장구 및 보조 기술(새로운 기술 포함)에 대해 장애인들에게 접근 가능한 정보를 제공한다.
2. 경제, 사회, 문화적 권리와 관련하여, 이러한 권리의 완전한 실현을 점진적으로 달성하겠다는 입장 때문에 장애에 따른 차별이 야기되는 곳을 제외하고는, 각 당사국들은 필요한 곳이라면 국제협력의 틀 안에서 이러한 권리의 완전한 실현을 점진적으로 성취하려는 관점을 가지고 최대한 이용 가능한 자원을 찾아야 한다.
3. 본 협약을 이행하기 위한 입법과 정책의 개발 및 시행, 그리고 장애인과 관련된 이슈에 관한 기타 의사결정 과정에 있어서 당사국들은 장애인 및 장애인 대표 단체와 밀접하게 논의하고 적극적으로 참여시켜야 한다. 이러한 이슈에는 접근성에 대한 기술과 지침, 과 의료, 선천적 및 후천적 장애에 대한 재활(habilitation and rehabilitation) 법률의 설치, 그리고 의료, 선천적 및 후천적 장애에 대한 재활 서비스의 계획, 수행, 평가와 자료수집의 디자인과 시행이 포함되어야만 한다.
4. 본 협약의 어떠한 부분도, 각 당사국의 법 또는 당사국에 효력이 미치는 국제법에 포함되어 장애인의 권리 실현에 더 도움이 되는 조항에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된다. |
*이 글은 지난 1월 16일부터 시작된 국제장애인권리조약 제7차 특별위원회에 정부대표단으로 참석하고 있는 국제장애인권리조약한국추진연대 김동호(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사무총장) 초안위원과 엔지오대표단으로 참석하고 있는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고용지원센터 하성준 소장이 보내온 글입니다. 오는 2월 3일 회의가 끝날 때까지 우리나라 대표단의 생생한 현장 소식 브리핑은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