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조 법 앞에서의 평등권 인정, 13조 사법접근권
국제장애인권리조약을 위한 유엔특별위원회는 3일차를 맞아 12조 ‘법 앞에서의 평등권 인정’과 13조 ‘사법접근권’을 다루었다.
12조는 장애인의 '법적 권한(legal capacity)'의 의미와 법적 권한의 행사를 어떤 범위에서 인정할 것인가, 그리고 대리인의 지정문제를 놓고 항상 격론이 벌어지는 조항이다. 장애인에게도 법적 권한이 부여되어 있다는 원칙적인 부분에서는 대부분의 국가들이 동의하고 있다.
정신·지적장애인, 법적 권한 행사권은 어디까지?
그러나 ‘법적 권한’이라는 용어의 사용이 어떤 나라에게는 자국의 법적 제도적 환경과 배치될 수 있다는 점이 지적되면서, 지난 실무그룹안에 대한 검토 때부터 논란이 많았다. 장애인의 ‘법적 권한’이 보다 확고하게 행사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 즉 ‘법적 권한의 행사(legal capacity to act)'를 명시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어 왔다.
NGO는 법적 권한의 행사가 이 조약에서 보장되어야 한다는 입장이고, 대체로 각국 정부는 권한행사능력에 어려움이 있는 장애인, 즉 정신장애인이나 지적장애인의 경우 법적 권한의 행사권을 무조건 보장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그에 따라 각국 정부는 대리인이나 후견인제도의 엄정한 운영을 통해 장애인의 법적 권한행사의 제한을 보완하자는 대안을 취하려고 한다. 이에 대해 NGO는 일정 부분의 제한을 전제로 한 ‘법적 권한 행사’의 설정은 장애인이 법적 권한을 갖는다는 대원칙이 훼손될 수 있고, 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임의대로 제한하는데 악용될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해 왔다.
IDC등 NGO가 줄기차게 주장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장애인의 ‘법적 권한’이 장애인을 보호한다는 미명하에 부당하게 침해되어 왔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나 각국 정부는 ‘법적 권한’의 무한한 보장은 오히려 장애인에게 불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이에 대한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역설해 왔다.
‘법적 권한’의 문제는 그 의미와 범위, 실질적 적용에 있어 각국의 법적, 제도적 환경과 상충하는 문제가 있다는 점, 대리인 제도가 그 유용성이 인정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오히려 장애인의 권한을 침해할 수 있다는 점 등으로 인해 매우 복잡하고 선택하기 어려운 지점들을 드러내고 있다.
18일 회의에서도 합의되기 어려운 여러 주장들이 제기되었다. 중국은 장애인의 행위에 대한 법적 권한의 제한을 통해 장애인을 보호하고 있는 자국의 현실을 예로 들며 특별위원회가 ‘법적 권한’의 의미를 좀 더 분명히 해 줄 것을 요구했다.
맥케이 의장은 지금까지의 논의를 바탕으로 의장안이 제시된 것이라고 하며, 여기서의 법적 권한은 협의의 의미에서가 아니라 광의의 의미, 포괄적이고 원칙적인 의미로 사용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한국은 법적 권한의 행사가 정의되기 어려우므로 ‘법적 권한’이라는 용어만을 사용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멕시코, 호주, 리히텐슈타인 등이 같은 의견을 표명했다.
IDC는, 장애인이 법적 권한을 이해할 때 필요한 지원을 보장하도록 한 12조 2항에서 ‘가능한 한 최대로(to the extent possible)'라는 문구가 당사국 정부의 책임회피의 근거로 활용될 수 있다는 이유로 이의 삭제를 요구했다. 뉴질랜드, 캐나다, 케냐, 러시아 등이 IDC와 의견을 같이 했다.
IDC는 2-(a)항과 2-(b)항이 장애인의 의사에 반한 통제를 가능케 하고 대리인의 존재를 정당화하여 남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삭제를 요구했다. 대신 IDC는 장애인인 법적 권한을 행사하는 데 있어 장애인의 의지와 선택에 따라 필요한 지원을 활용할 수 있는 내용의 조항으로 수정하자고 제안하였다.
IDC와 같은 맥락으로 캐나다가 수정안을 제시했다. 캐나다는 2-(a), 2-(b)를 삭제하고 '국가는 적절한 조치를 취해서 장애인이 자신들의 법적권한을 행사할 수 있게 하고 지원을 받는데 있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를 추가할 것을 제안했다. 캐나다의 제안은 EU, 코스타리카, 뉴질랜드 등 많은 나라들로부터 지지를 받았다.
IDC는 법적 권한에 대한 자신들의 주장과 요구가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 조약에 실현하고자 하는 데에서 비롯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장애인은 결정할 수 없고, 장애인에게 권한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전통적 고정관념을 뛰어 넘자는 것이 IDC의 입장이고 그 입장에서 얘기되는 것이 법적 권한의 행사라고 주장하였다. 여성차별철폐조약(CEDAW)에서도 행위권한의 제한은 차별로 간주하고 있음을 상기시켰다. 법적 권한을 대리인이 행사하고 결정하는 것에 분명한 반대의 입장을 표명했다. 이것은 장애인의 무능력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 그 이유라고 했다. 국가의 다양성을 감안하기 시작하면 이 조약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법적 권한’과 관련하여 의장은 용어상의 문제가 국가별로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고, 최종결정 전에 다시 한 번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NGO에서 더 강한 표현을 원하지만 현재의 의장안도 패러다임의 전환이 많이 반영된 것이라고 하며, 대리인제도를 없애기보다 지원받는 결정을 장애인이 할 수 있게 하면 절충안이 되지 않겠는가 하였다.
사법 접근권, 합리적인 편의제공 필요성 논의
18일 오후에는 13조 사법 접근권이 다루어졌다. IDC는 장애인에게 편의시설이 제공되지 못해 증언이 제대로 되지 못한 경우가 많고, 의사소통이 어려운 장애인들에게 그림이나 수화를 통한 의사소통이 필요하듯이 합리적인 편의제공은 사법 접근권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또한 판사, 경찰에 대한 교육과 훈련이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줄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이에 대해 미국, 칠레, 캐나다 등 많은 나라들은 IDC 의견에 대체적으로 동의하고 적절한 편의제공이 물리적인 것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닌 모든 것을 포괄하도록 법률적으로 보장되도록 해야 한다는 점에 뜻을 같이 했다. 관련자들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에도 거의 모든 국가들이 같은 의사를 표했다.
맥케이 의장은 합리적인 편의제공은 법집행기관이 해야 할 의무사항으로 보며, 수화통역사, 여러 보조 장비들을 통해 장애인들의 의사소통의 접근성을 보장하자라는 것으로, 조항에 그러한 내용을 추가해야할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제안된 구체적인 내용들을 모두 수용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EU는 내용의 보완은 필요하지만 세부적인 내용의 추가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하여 간결한 조약을 만들자는 기존입장을 재확인 했다.
일본은 단독조항을 찬성하고 구체적인 내용 보완을 지지하지만, IDC의 안이 너무 구체적인 것에 대해 우려하며, 사법절차의 내용은 각국마다 다름을 상기시켰다.
장애여성조항 IDC 주최 별도회의 가져

이날 오후에는 초미의 관심사인 장애여성조항 관련 IDC 주최의 별도회의가 열렸다. IDC는 ‘이중구조방식’을 유지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관련 엔지오와 정부대표 함께 자유로운 토론을 벌이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여성 IDC의 코디네이터인 한국의 김미주 대표(장애여성문화공동체)가 그간 경과를 보고하였고, 초정인사인 ‘여성차별철폐조약(CEDAW)'의 한국의 신혜수 대표(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여성차별철폐조약의 사례로 비추어 볼 때 장애인권리조약에서 장애여성을 특별하게 다루지 않는다면 각국 정부가 장애여성의 특별한 불이익과 차별에 대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거나 회피할 수 있으므로, 별도의 단독조항이든 '이중구조방식'에서의 별도조항이든 장애여성의 문제를 강조해 주는 조항이 필요하다고 역설하였다.
IDC 별도회의는 장애여성의 문제가 이 조약에서 분명하게 다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재강조하고 각국 관계자들에게 이해시키는 자리였다. 내일(19일)에는 장애여성과 장애아동의 퍼실리테이터(조정촉진자)가 주최하는 미팅이 있다. 이 자리는 여성과 아동이슈를 같은 형태로 구축하는 것을 모색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제12조 법 앞에서의 평등권 인정
1. 당사국들은 장애인이 어디에서나 법 앞에 인간으로서 인정받을 권리가 있음을 재확인한다.
2. 당사국들은 어디에서나 장애인들이 비장애인들과 같이 평등하게 [법적 권한]을 소유함을 인식하고, [법적 권한][법적 권한의 행사]를 이행할 때 필요한 지원을 가능한 최대로 보장하도록 한다.
(a) 지원(assistance)을 제공할 경우 필요한 정도에 비례하여 제공되고 개인의 상황에 맞추도록 하여, 이러한 지원으로 인하여 개인의 법적 권리가 훼손되지 않고 개인의 의지와 선호사항이 존중되며 이해충돌과 부당한 위압으로부터 자유롭도록 한다. 이와 같은 적절한 지원은 정기적이고 객관적인 심의 (independent review)를 조건으로 한다.
[(b) 당사국은 마지막 수단으로 대리인(personal representative)을 지정하는 조치를 법률로 준비할 때, 적절한 보호조항을 제공해야 하며, 여기에는 적합 하고 공정하며 객관적인 심의기관이 대리인 지명과 대리인이 행한 결정에 대해 정규적으로 심의 하는 것이 포함된다. 대리인 지정 및 관리는 본 협약 및 국제인권법과 일치되는 원칙에 따른다.]
3. 당사국들은 적절하고 효과적인 제반의 대책을 마련하여, 장애인의 재산 소유 또는 상속에 있어 평등권을 보장하고, 이들의 재정적 사항을 다루고, 은행대출, 담보 및 기타 재무신용 이용에 있어 평등한 대우를 보장한다. 또한 임의적으로 장애인의 재산이 박탈당하지 않도록 보호해야 한다.
제13조 사법 접근권
당사국들은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평등하게 장애인의 사법 접근권을 효과적으로 보호하고, 모든 법적 절차상의 증인, 조사 및 기타 사전준비 과정이 포함된 직·간접적 참여자로서의 역할의 효율성을 촉진시킨다. |
*이 글은 지난 16일부터 시작된 국제장애인권리조약 제7차 특별위원회에 정부대표단으로 참석하고 있는 국제장애인권리조약한국추진연대 김동호(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사무총장) 초안위원이 보내온 글입니다. 오는 2월 3일 회의가 끝날 때까지 김동호 위원은 생생한 현장 소식을 발 빠르게 전해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