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발과 오븐’ 표지. ⓒ한뼘책방
‘목발과 오븐’ 표지. ⓒ한뼘책방

나는 내가 가진 것 중에서 가장 이상한 것을 빚기 시작했다. 나의 오른쪽 다리를 하얀 점토로 빚었다. 지구의 자전축보다 훨씬 기울어져 있는 내 하체였다. 처음으로 학교 과제물에서 형을 이겼다. 처음으로 미술 최고점을 받았다. 아크릴판 위에 내 작품이 놓이고, 선생님의 평가가 종이에 적혀 있었다. “유니크하고 유일하다. 예술이다.” 그날 내 몸은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것이 되었다. 아름답고 멋있는 예술 작품이 되었다.(이상 본문 내용 중)

자라는 동안 목발에 능숙해지고, 승차 거부에 익숙해진 사람. 우울한 날에는 오븐을 데워 사람들과 음식을 나누는 사람 김형수의 에세이 ‘목발과 오븐’(한뼘책방, 224쪽, 정가 17,000원)이 최근 출간됐다.

김형수는 1975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1995년 특수교육대상자 특별전형으로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해 이듬해 국내 최초의 장애인권동아리 게르니카를 결성했다.

경험도 조직도 없던 그들에게 농성의 노하우를 전수해 준 것은 성소수자 모임이었고, 현수막을 대신 쓰고 자보를 붙여 준 이들은 총여학생회였다. 여럿이 힘을 보태 더디지만 조금씩 장애인권을 향한 길을 만들어 갔다.

그는 점차 학교 바깥으로 반경을 넓혀 연대하고 싸웠다. 에바다복지회 비리척결 운동에 동참하고, 군가산점 제도의 위헌 결정을 이끌어냈다.

또 김형수는 오븐에 고기를 굽고 어묵탕을 우려 따듯한 음식을 대접하는 동안 함께하는 이의 마음이 잠시나마 달달해지기를 기원한다. 지친 누군가와 한 끼 식사를 나누는 것, 그것이 그의 저항이다.

어린 시절부터 제사상 차리는 외할머니를 거들고 냄비밥이 타지 않는지 감시하고 대학 모꼬지에서 밥물을 맞추면서 김형수는 부엌일을 익혔다. ‘누군가를 위해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나는 다른 이들에게 중요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는 그는 지금도 우울한 날에는 요리를 한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차별과 혐오에 지쳐 갈수록 혼자 밥을 먹으면 안 된다는 것이 김형수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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