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복지법 개정안의 통과를 촉구하는 국회앞 천막농성은 한달째 계속되고 있다. <에이블뉴스>

■창간4주년 기획특집-④장애인복지법

자립생활 패러다임 도입을 골자로 하는 장애인복지법 개정을 촉구하면서 지난 11월 6일 시작된 중증장애인들의 국회 앞 천막농성이 한달 째를 넘기고 있다. 하지만 국회와 정부는 이들의 투쟁에 대해서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장애인복지법 개정안은 과연 올해 정기국회를 통과할 수 있을까? 정부는 과연 이러한 상황에 책임이 없는 것일까? 에이블뉴스가 창간 4주년을 맞아 장애인복지법 개정안 처리가 늦어지고 있는 원인을 살펴봤다.

자립생활 패러다임 도입이 핵심

한나라당 정화원 의원이 2005년 12월 28일 대표 발의한 장애인복지법 개정안이 1년째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계류되어 있다. 비슷한 취지로 지난 5월 17일 발의된 장향숙 의원의 장애인복지법 개정안도 빛을 못보고 있다. 현재 장애인계가 연내 통과 여부에 주목하고 있는 이들 장애인복지법 개정안은 자립생활 패러다임의 도입이 핵심이다.

“현재까지의 장애인 정책의 근간은 보호와 재활, 시설지원, 전문적인 서비스의 확대 등 장애인을 대상화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어 왔으며, 이 법 또한 이러한 과거의 사회적 맥락을 반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 들어서 장애인들의 권익이 신장되고, 장애인의 삶이 재활에서 자립으로 바뀌어나가는 등 장애인들의 인권신장 및 당사자주의에 많은 발전을 이뤘다. 이에 이러한 장애인의 다양한 정책욕구에 부응하기 위해….”

이는 장향숙 의원 개정안이 밝히고 있는 제안이유의 일부다. 장애인 정책과 관련해 보호와 재활이라는 낡은 패러다임을 버리고, 자립과 당사자주의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도입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담겨 있다. 정화원 의원도 개정안의 제안이유에서 이러한 의지를 명확히 드러냈다.

“장애인복지수요 및 장애인의 자립생활과 사회적 접근의 패러다임이라는 새로운 변화에 대응해 장애인의 장애관련 정책결정과정에 참여를 보장하고, 활동보조인의 파견 등 장애인 자립생활 지원을 강화하고 여성장애인의 권익을 증진하는 등 장애인의 자립생활 및 사회참여 여건을 강화하는 한편….”

장향숙·정화원 의원은 자립생활 패러다임의 도입을 위해 각각의 법안에 ▲장애인 정책 결정과정에 장애인 당사자 참여 보장 ▲활동보조인 서비스 제도화 ▲중증장애인자립생활센터 명문화 ▲동료간 상담 지원 등의 방안을 이구동성으로 담아냈다.

우선순위에서 밀린 장애인복지법

“국민연금법 개정안과 노인수발보험법이 얼마나 빨리 처리될 수 있느냐에 운명이 달렸다. 이 두 법안을 처리하고 나서 다른 법안들을 심사한다는 것이 현재 보건복지위원회의 계획이다. 우선순위에서 장애인복지법 개정은 밀려있는 것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한 국회의원 비서관이 전한 장애인복지법 개정안의 연내 통과 가능성에 대한 전망이다. 이에 대해 지난 11월 6일부터 천막농성을 계속하고 있는 장애인복지법개정및생존권쟁취를위한공동투쟁연대측도 “복지위 소속 국회의원들과 계속해서 접촉하고 있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올해 정기국회의 종료 시점(12월 9일)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으로 장애인복지법 개정안의 연내 통과는 사실상 어려워 보인다. 임시국회가 오는 11일부터 15일까지 열리기로 여야간 합의가 이뤄졌지만 장애인복지법이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다뤄질 수 있을 가능성은 희박한 상황이다.

현재 보건복지위원회에 계류되어 있는 장애인관련 입법안은 총 23건. 이중 올해 정기국회를 통과할 수 있는 법안은 단 한 건도 없다. 국회 내 장애인관련 주무 위원회 역할을 하고 있는 보건복지위원회가 사실상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비판이 나올 만 하다.

지방정부 정책추진에 제동 거는 복지부

보건복지부의 지침때문에 지방정부가 활동보조인 서비스 정책을 추진하는데 제약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사진은 지난 1일 서울시청 앞에서 본인부담금 부과 등에 대해 반발하는 기자회견. <에이블뉴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장애인들의 열망을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지만, 장애인정책의 주무부서인 보건복지부가 변화의 속도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더욱 큰 문제로 다가온다.

“중증장애인들의 투쟁으로 이뤄낸 성과들이 보건복지부에 의해 묻힐 위기에 놓여있다.” 이는 최근 자립생활운동 활동가들이 이구동성으로 꺼내놓는 말이다. 서울시, 인천시, 대구시, 충청북도, 울산시, 경기도에서 “활동보조인 서비스를 중증장애인의 권리로 인정하겠다”는 약속을 했지만, 보건복지부가 이를 뒤집어 버렸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본인부담금 10% 부과이다. 서울시는 지난 11월 30일부터 총 15억원을 투입해 중증장애인 활동보조서비스 시범사업을 시작했는데, 뒤늦게 내년 4월부터 사업을 시작할 계획인 보건복지부의 강력한 요청에 따라 본인부담금 10%를 부과하고 있다. 활동보조비용이 1시간당 5천원으로 정해졌기 때문에 중증장애인들은 1시간당 500원을 부담해야하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서울특별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준)는 서울시장애인복지과를 점거하고 농성을 벌인데 이어, 본인부담금을 장애인에게 받지 않는 등 서울시의 지침을 거부하는 운동을 벌여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들이 반발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활동보조인 서비스의 이용에 있어 10%의 본인부담금 부과는 전면 폐지되어야 한다. 활동보조인서비스는 중증장애인이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생존권적 권리이다. 이러한 서비스를 통해 중증장애인은 어떤 높은 질의 삶을 영위하게 되는 것이 아니며,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게 될 뿐이다.

즉 중증장애인의 삶에 어떤 플러스(Plus)를 주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마이너스(Minus)로 존재해왔던 삶의 부분을 제로(Zero)로 만들어 내고자 하는 것이 바로 활동보조인서비스인 것이다. 이러한 권리에 본인부담금을 의무적으로 지출케 하겠다는 것은 활동보조인서비스의 본질과 권리성을 왜곡하는 것으로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이다.”(11월 14일 점거농성 보도자료)

변화의 속도에 둔한 중앙정부

보건복지부가 지난 2005년 4월부터 실시하고 있는 중증장애인 자립생활(IL)센터 시범사업도 서울시보다 3년이 느린 것이다. 서울시는 지난 2002년부터 자립생활센터 5곳에 예산을 지원하는 자립생활센터 시범사업을 시작해 사실상 보건복지부의 자립생활센터 시범사업이 실시될 수 있도록 견인해냈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법적 근거를 만드는 데에서도 복지부가 지방정부보다 느리다는 것이다. 복지부가 지난 2005년부터 자립생활센터 시범사업을 하고 있지만, 현재 장애인복지법에는 ‘자립생활센터’라는 단어도, ‘자립생활’이라는 단어도 없다. 내년 4월부터 활동보조인 서비스 사업을 전국적으로 전개한다고 하지만 마찬가지로 장애인복지법상에 ‘활동보조인’이라는 말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복지부가 이렇게 늑장을 부리는 사이, 지난 2006년 6월 26일 광주광역시의회는 중증장애인 자립생활지원 조례를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이는 전국 최초의 자립생활지원 조례이자, 구속력을 가지는 국내 최초의 자립생활지원 근거이다. 중앙정부도 하지 못한 자립생활 지원의 법적근거를 갖추는 일을 지방정부에서 먼저 해낸 것이다.

정부와 국회가 활동보조인 서비스 도입을 비롯한 자립생활지원 제도화에 대해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것에 대해 반발하는 장애인들의 투쟁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에이블뉴스>

복지부 “예산 확보하는데 주력하느라…”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재활지원팀 관계자는 “당장 내년부터 활동보조인 사업을 시행하는데 있어서 법적 근거를 만드는 것보다 예산을 확보하는 것이 급하다고 판단을 했기 때문에 예산 확보하는데 주력했고, 장애인복지법 개정에 대해서 장향숙, 정화원 의원의 개정안을 지원하는 쪽으로 일을 추진한 것”이라고 밝혔다.

‘지방정부보다 변화의 속도가 느린 것이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중앙정부가 일을 처리하는데 있어서 지방정부보다 절차가 복잡하고 어려운 측면이 있다”면서 “지방화시대에 있어서 지방정부가 중앙정부보다 능동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이 나쁘다고 할 수만은 없는 것 같다”고 답변했다.

복지부는 내주 중으로 자립생활센터 시범사업에 참여한 자립생활센터들과 함께 ‘자립생활 정책 발전을 위한 회의’를 개최해 내년부터 규모가 확대될 예정인 자립생활센터 시범사업에 대해 논의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결론은 하나, 법적 근거 만들어라”

지난 11월 6일부터 국회 앞에서 천막농성을 벌여온 ‘장애인복지법개정및생존권쟁취를위한공동투쟁연대(이하 공투련)’은 지난 4일 ‘장애인복지법 개정 및 생존권 쟁취를 위한 2차 결의대회’를 갖고 국회와 정부를 향한 투쟁을 강화하겠다고 선언,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이들은 투쟁결의문을 발표해 “결론은 이제 하나다. 그 어떤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장애인 당사자의 자립생활 열망에 대한 법적 근거를 명확히 하는 장애인복지법 개정투쟁을 통해 자립생활운동의 저변 확대를 위한 예산을 확대하는 것”이라고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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