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차법’ 제정해서 인간답게 살아보자."
일명 ‘장차법’. 장애인계가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줄여서 부르는 말이다. 좀더 정확한 명칭은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다. 이 ‘장차법’이 1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의 대표발의로 국회에 넘겨졌다.
이 법안을 4년여에 걸쳐 완성한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추진연대(이하 장추련)는 14일 오후 옛 한나라당 당사 앞에서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결의대회’를 열어 “장차법 제정해서 인간답게 살아보자”고 목청껏 외쳤다. 장추련에는 현재 65개 장애인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이날 결의대회에는 100여명의 장애인들밖에 참석하지 않았지만 그 어느 장애인관련 집회보다 뜨겁게 진행됐다. 이날 참가자들은 오후 1시부터 3시까지 연좌집회를 개최한 이후 KBS 정문앞-서울교-영등포 민주노총에 이르는 도로행진을 벌였다.
“법 자체가 절규요, 눈물이요, 희망이다”

“오늘은 정말 뜻 깊은 날입니다. 여러분들이 오랫동안 소망하던 법률이 국회에 상정하기로 선포한 날입니다. 이미 잘 알고 계시지만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여러 면에서 상당히 큰 역사적 의의를 갖고 있습니다.
이 법은 장애인을 위해서 뭔가를 베풀려는 법이 아닙니다. 선천적으로 혹은 후천적으로 장애인이 돼서 온갖 차별과 고통과 불이익과 설움을 겪은 장애인 당사자들이 여러분의 손으로 직접 만든 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어떤 다른 법과 비교해 보더라도 이 법 자체가 하나의 절규입니다. 눈물입니다. 이 법 자체가 한입니다. 그리고 이 법 자체가 희망입니다.
제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있기 때문에 이 법을 대표 발의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영광이거니와 정말 이렇게 뜻 깊은 법을 대표 발의하게 돼서 여러 가지 감회가 새롭습니다.”
이날 오전 기자회견을 통해 장차법 대표발의 계획을 알린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은 결의대회에 참석해 장차법이 지니고 있는 의의에 대해 설명한 후 “여러분들이 제출한 그 내용 그대로 국회에서 통과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노 의원이외에 국회의원으로서는 유일하게 참석한 한나라당 정화원 의원도 “반드시 장차법이 통과돼서 한국에 있는 장애인 누구라도 차별을 받지 않고 멸시를 받지 않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정 의원은 “지난번에 여러분이 뭉쳐서 교통약자이동보장법을 완벽하게 만들어냈듯이 이번에도 힘을 모아서 반드시 쟁취하고, 만들어내야 할 것이다. 단결해서 우리의 힘을, 뭉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면서 “정부와 열린우리당을 많이 이해시키고 설득시켜야할 것”이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사회당 신석준 대표는 “당연히 없어야할 차별을, 법으로까지 제정해서 금지해야하는 현실이 슬프다”면서 “장차법을 만든다고 생각하지 말고 차별 없고 평등한 세상을 새로 만든다는 마음으로 여러분의 힘과 지혜를 모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신 대표는 장차법안에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와 독립적인 장애인차별금지위원회가 꼭 포함돼야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우리의 의지대로, 우리의 의견대로”
“이 법을 통해서 장애인차별이 없어져야하고, 정말 평등한 세상이 앞당겨져야한다. 당사자들이 마음을 모으고 생각을 모아 만들어낸 이 법안을 국회의원들이 통과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이제 시작이지만 우리의 뜻이 이뤄질 것이라고 믿고, 이뤄질 때까지 힘차게 나아가자.”
가장 먼저 연단에 오른 한국여성장애인연합 곽정숙 상임공동대표는 “장차법 제정을 통해서 장애인차별이 물러날 것을 기대한다”면서 “장애인계가 더욱더 힘을 모아야할 때”라고 강조했다. 곽 대표이외에도 이날 연단에 오른 장애인단체 인사들은 ‘오늘부터 본격적인 투쟁의 시작’이라며 앞으로 투쟁의 강도를 높여나갈 것이라고 이구동성으로 전했다.
올해 TV장례식, 자동차장례식, 누드퍼포먼스 등을 벌이며 청각·언어장애인의 차별철폐를 외쳐온 한국농아인협회 변승일 회장은 “국회가 우리들의 법을 통과시키도록 하기위해 TV, 자동차, 휠체어, 목발 등을 모두 국회와 청와대로 가져가서 불태워버리는 시위를 벌이자”고 말했다.
구체적인 장차법 운동을 처음 시작한 열린네트워크의 변경택 대표는 “장애인차별이 서러워서 첫 국토순례를 할 때는 이렇게 되리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데 너무나 가슴이 뭉클하다”면서 “이제는 쓰러지지 않고, 이제는 끝까지 내가 주인되어 우리가 하나 되는 세상을 위해서 우리가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위해 전진하자”고 말했다.
“장차법은 아직도 얼굴에 눈물이 마르지 않은 대다수의 중증장애인들이, 태어나서 집밖에 한번도 나오지 못한 말 못하는 중증장애인들이, 내가 내 손을 갖고도 밥을 먹지 못하는 그런 중증장애인들이 똑같은 남자와 여자로, 똑같은 남편과 아내로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것이다.”
한국뇌성마비장애인연합 유흥주 대표는 이렇게 장차법의 의의를 설명한 후 “이 땅에서 한 번밖에 없는 소중한 삶을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가”라며 “장차법이 시행이 돼서 장애인들이 차별받지 않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아름다운 사회가 될 수 있도록, 그 사회를 완성할 수 있도록 한번 살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고 전했다.
이날 장차법 발의안이 만들어지기까지 과정을 설명하러 연단에 나온 장추련 김대성(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기획실장) 상임집행위원장은 “오늘 이후부터 이 법이 국회 상임위와 본회의를 거쳐서 우리의 의견대로 우리의 의지대로 통과되도록 하기 위해서 가열찬 투쟁을 전개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시혜에서 인권으로, 우리의 손으로"
“장애인에 대한 차별금지는 차별받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차별금지를 위한 인권지침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의 경험에 기반해 만든 차별판단 기준이 그대로 법으로 제정될 것을 강력하게 촉구한다.”
이날 연좌집회 말미에 발표된 장추련의 결의문의 일부이다. 장애여성문화공동체 정민자씨와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강완식씨가 낭독한 이 결의문은 장차법이 원안그대로 국회에서 통과되기를 바라는 장애인계의 염원이 실렸다.
장추련은 이 결의문에서 “장차법 속에 실효적인 차별금지를 법적 수단으로 포함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한다. 차별금지는 이상이 아닌 현실이 돼야 한다. 권리구제 수단이 없는 장차법 제정은 다시 한번 이 땅의 장애인을 기만하는 것이다. 우리는 시정명령,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등 실효적인 권리구제 수단이 장애인차별금지법에 포함될 수 있도록 적극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장추련은 “실효적인 장애인차별금지 수단을 실행하기 위한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독립된 장애인차별금지위원회 설립을 요구한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제거할 보다 강력한 조치를 마련하지 못하는 한, 독립적인 장애인차별금지위원회 설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장추련은 “장애인 당사자에 의해 만들어진 장차법 제정은 이 땅의 민주적 정당성을 공고히 하는 대표적인 입법이 될 것”이라며 “연내에 우리에 의한 장차법을 제정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며, 이를 위해 가열차게 힘을 모아 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날 대회 내내 좀더 널리 시민들에게 장차법 제정의 중요성을 알리려는 장애인들과 경찰들과의 신경전이 계속됐다. 산발적으로 몸싸움이 몇 차례 일어났지만 불상사는 발생하지 않았다. 장추련측은 도로행진 후 서울 영등포 민주노총 건물 앞에서 마무리집회를 갖고 대회를 마무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