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9개월 만에 국가인권위로 287건의 진정이 몰려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대한 장애인들의 기대가 얼마나 큰지 실감하게 했다. 하지만 국가인권위원회가 장애로 인한 차별 진정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분석됐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이하 장추련)는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장애차별 국가인권위원회 진정결과 분석 토론회를 열어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시행된 지난 4월 11일 이후 국가인권위에 제기된 287건의 진정을 분석하고, 그 의미를 되새겼다.
장추련 상임공동집행위원장 배융호 장애인편의시설촉진시민연대 사무총장의 발표에 따르면장애로 인한 차별 진정은 2001년 13건 → 2002년 20건 → 2003년 18건 → 2004년 54건 → 2005년 121건 → 2006년 115건 → 2007년 246건 → 2008년 530건으로 매년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었다.
이는 병력, 성별, 용모․신체조건 등으로 인한 차별 진정이 최근 몇 년 새 줄어들고 있고, 그동안 급증했던 성희롱에 대한 진정건수도 올해 확연히 감소된 것과 대비된다.
특히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시행된 지난 4월 11일 이후에 제기된 장애로 인한 차별 진정은 287건에 달해 주목된다. 지난 2001년 이후 8년간 장애로 인한 차별 진정 1,117건 중 25.7%에 해당하는 수치이다.
국가인권위 인력 부족으로 진정건 해결 못해
하지만 국가인권위원회는 급증하고 있는 장애로 인한 차별 진정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2008년 장애로 인한 차별 진정 530건 가운데 11월 현재까지 종결된 사건은 287건으로 진정사건의 절반 정도는 종결이 되지 않았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이후 진정 287건 중 조사 중 해결은 85건, 합의종결은 10건, 인용은 5건으로 34.8%인 100건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배융호 사무총장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접수하고 종결하기까지 지나치게 오래 시간이 걸리는데, 가장 큰 원인은 국가인권위원회의 인력 부족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가인권위 장애차별팀 조사인력은 팀장을 포함해 총 7명이며, 지난해 정부가 계획했던 인력 20명의 증원은 실현되지 않았다.
배 총장은 “국가인권위원회의 장애차별위원회는 조사인력의 부족이 이미 한계에 달했다”면서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시행에 따라 향후 장애차별로 인한 진정은 계속 증가할 것이며, 조사의 지체는 계속 늘어만 갈 것”이라고 비판했다.
장애인관련 정책․제도 개선으로 연결 안돼
진정사건이 정책이나 제도의 개선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제기됐다. 배 총장은 “인권위 진정사건이 해결된 후 정책이나 제도의 개선을 통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며 “인권위가 해당 진정사건의 해결에도 힘을 써야겠지만, 근본적인 정책이나 제도개선에도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 총장은 국가인권위 조사자들이 대수롭지 않는 사건이라는 태도를 보이거나, 피진정인을 거들고 옹호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어 불신과 불만이 높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조사자에 대한 정기적인 교육이 필요하고, 선발 기준이 엄격해져야한다고 제시했다.
또한 배 총장은 “차별이 개선된다고 하더라도 이미 피해를 본 것에 대해서는 사과나 보상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피해 보상에 대해 지적했고, “진정인이 조사가 시작된 사실도 모르고 피진정인으로부터 연락을 받거나, 시정권고를 했다는 통보만 받고 이후의 시정여부에 대해서는 아무런 통보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부실한 진정서비스에 대해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배 총장은 “진정사건 심의를 할 때 장애감수성은 매우 중요하다”며 “법적인 요건은 객관적으로 분별할 수 있지만, 진정사건에 대해 장애차별인가 차별이 아닌가를 결정하는 것은 장애감수성이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국가인권위 조사관의 장애감수성 향상을 주장했다.
장차법 주무부처 복지부 장애감수성 부족
장애인차별금지법 주무부처인 보건복지가족부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지정토론자로 참석한 한국농아인협회 정진호 기획부장은 “국가인권위에 장애인차별로 진정하는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그 역할을 감당해야하는 복지부가 장애인들의 감수성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아직까지 중심을 잡지 못하는 것을 보면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정 부장은 “청각장애인은 장애특성상 문장이해력이 약하고 법규에 대한 이해가 어려워 장차법에 대해 잘 모른다”면서 “장차법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복지부에 만화책을 제작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예산상 어렵다고 해서 장차법 홍보를 전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 부장은 “주무부처의 청각장애인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한 상황에서 올바른 정책을 기대하기란 역부족인 것 같다. 장차법을 통해 인간다운 삶을 살기를 기대했던 청각장애인들에게는 아직도 갈 길이 너무나 멀기만 하다”고 비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