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블뉴스 이디다 칼럼니스트】 “처음 가는 곳이라 무서워요.”
발달장애인이 새로운 운동 시설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보이는 표정은 긴장입니다. 발걸음이 느려지고, 시선이 이리저리 흔들리거나, 손끝에 힘이 잔뜩 들어가는 모습을 우리는 종종 관찰하게 됩니다. 어떤 분들은 갑자기 말을 멈추거나, 반대로 질문을 반복하기도 합니다. 이는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겠다”는 감각적·정서적 불안의 표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발달장애인의 ‘낯선 환경 적응’을 단순히 “성격이 소극적이어서”, “사람을 어려워해서”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 현장에서 보면 그보다 훨씬 복합적입니다.
소리, 냄새, 조명, 온도, 사람의 움직임, 규칙의 변화 같은 요소들이 한꺼번에 들어오는 상황, 이 자극의 총량이 이미 익숙한 사람에게도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발달장애인은 이러한 감각자극과 환경 변화에 민감하기 때문에, “처음 방문”이라는 자체가 상당한 에너지를 요구하는 사건입니다.
저는 발달장애인의 운동지도를 하면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적응은 ‘시간’이 해결해주는 것이 아니라 ‘예측 가능성’을 확보할 때 비로소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이 예측 가능성을 어떻게 만들어갈 수 있는지, 운동 현장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하려 합니다.
첫 방문 전에 ‘사진으로 미리 보기’ – 예측의 첫 단추
발달장애인은 시각 정보를 통해 안정감을 얻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방문 전 사진·영상으로 공간을 오픈해주는 것이 큰 효과를 냅니다.
예를 들어 이전에 제가 지도했던 한 청소년은 새로운 시설에 가면 늘 문 앞에서 멈춰 서곤 했습니다. 하지만 방문 하루 전에 운동실 전경 사진, 입구에서 안쪽으로 들어가는 동선, 어떤 기구가 있는지, 강사의 얼굴을 보여주었더니, 다음 날 문 앞에서 멈추던 행동이 훨씬 줄었습니다.
이런 간단한 예고는 “갑자기 나타나는 상황”을 줄이고, 낯선 공간 → 예측 가능한 공간으로 전환시키는 강력한 방법입니다.
소리·냄새·조명 – 감각 환경을 조절하면 불안이 절반으로 줄어듭니다
발달장애인에게 감각은 ‘환경을 판단하는 첫 번째 기준’입니다. 음악 소리가 크면 불안이 올라가고, 방향제 냄새가 강하면 얼굴을 찡그리거나 집중이 흐트러지며, 조명이 너무 밝거나 반짝이면 머리를 돌려버리기도 합니다
특히 청각 과민이 있는 분들은 작은 충격음에도 놀라고, 기계가 ‘달칵’ 하는 소리만으로도 몸이 굳습니다.
그래서 처음 적응 기간 동안은 음악 볼륨은 너무 크지 않도록 음량을 조절하고, 방향제 최소화, 조명은 부드럽고 일정하게 문 닫히는 소리와 기구 소리 최소화 같은 작은 조절만 해도 “여기는 나를 공격하지 않는 환경”이라는 느낌을 줄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감각 배려는 단순한 친절이 아니라, 적응을 위한 필수 조건입니다.
첫날은 ‘사람보다 공간’을 먼저 익히기 – 대인 자극은 천천히
많은 보호자들이 센터에 오면 “안녕하세요, 선생님 인사드려야지!”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발달장애인에게는 사람의 얼굴, 목소리, 말을 이해해야 하는 ‘사회적 자극’이 가장 난이도가 높습니다.
그래서 첫날은 인사보다 ▲화장실, 대기 공간, 운동실 ▲가장 많이 사용될 기구 ▲출구와 입구의 위치 ▲‘어디에 가만히 있을 수 있는지’를 먼저 알려주는 것이 훨씬 좋습니다.
실제로 많은 분들이 “사람과 대화하고 난 뒤 더 긴장됨”을 표현하기 때문에, 대인 자극을 뒤로 미루고 공간부터 익히는 것이 가장 안정적입니다.
강사도 첫날은 말을 적게 하고, “여기서 이렇게 움직여요”처럼 동선 중심 안내가 효과적입니다.
‘시작–중간–끝’을 시각화하면 예측 불안이 크게 줄어요
많은 발달장애인은 “오늘 뭐해요?” “언제 끝나요?” “지금은 뭐 하는 시간이죠?” 같은 질문을 반복합니다. 이는 불안해서가 아니라 예측 흐름을 정확히 알고 싶어서입니다. 그래서 저는 숫자가 보이는 디지털 시계를 활용합니다.
한 회원은 시계가 50분이 되면 운동이 끝난다는 것을 알고 난 뒤 “이제 알겠어요”라며 더 이상 질문을 반복하지 않았습니다. 예측 가능성은 그만큼 강력한 안정제입니다.
적응은 ‘2주 루틴’으로 설계하세요 '급하게 배우는 것이 목표가 아닙니다'
첫날부터 운동을 많이 시키려 하면 실패 확률이 높습니다. 오히려 적응만 목표로 하는 2주 루틴을 설정하면 스트레스가 크게 줄어듭니다.
<1주차>
공간 익히기
기구 만져보기
쉬운 동작만 맛보기
강사의 말투·동선·수업 구조 적응
<2주차>
안정된 루틴 속에서 간단한 동작 따라하기
반복 패턴으로 안전감 형성
“지난주 했던 것” 중심으로 구성
이 과정을 거치면 “어제보다 오늘이 낫다”는 감각이 생기고, 그 순간 이미 적응의 절반은 끝난 상태입니다.
발달장애인에게 새로운 운동 시설은 단순히 운동하는 공간이 아니라, 새로운 감각·사회적 상황·규칙·자기 몸의 움직임이 한꺼번에 펼쳐지는 복합 경험입니다.
그래서 적응은 단순히 잘 참는 능력의 문제가 아닙니다. 예측 가능성, 반복, 친숙한 루틴이 쌓여 만들어지는 신뢰의 여정입니다.
우리는 그 여정을 함께 동행하며 ▲공간을 미리 열어주고 ▲감각 환경을 조절해주고 ▲말보다 구조를 보여주고 ▲약속 된 시간표를 지키는 것. 그저 이 네 가지만 해줘도, 발달장애인은 낯선 공간에서 “여긴 내가 아는 곳이야”라는 가장 큰 안정감을 얻습니다.
새로운 운동 공간에서 한 걸음 내딛는 그 순간, 우리가 만드는 이 ‘첫걸음의 안정감’이 발달장애인의 삶 속에서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현장에서 매일 목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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