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애인계가 정부의 ‘장애인지원종합대책’에 대해 조목조목 비판하고 나섰다. 장애인이동권쟁취를위한연대회의를 비롯한 7개 단체는 지난 6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장애인지원종합대책은 장애인을 기만하고 우롱하는 생색내기 종합대책”이라고 꼬집었다. 왜 장애인들이 이번 대책에 대해 반발하는지 짚어본다.
활동보조인서비스, 그렇게 지적했어도…

정부가 내년부터 실시하겠다고 밝힌 활동보조인서비스 제도화와 관련한 2007년도 국고 예산은 105억원. 이 예산으로는 도저히 활동보조인서비스 제도화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현재 장애인계의 입장이다.
이미 장애인계는 오래전부터 천막농성, 노숙농성을 벌이며 반발해왔지만 이번 종합대책에 아무런 개선책 없이 활동보조인서비스 제도화가 포함됨에 따라 또 다시 반발하고 있는 것.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박홍구 부회장은 “활동보조인 서비스가 필요한 35만명 중에 1만3천명, 실질적으로 따지면 1인당 하루에 30분밖에 안되는데 과연 이것이 제도화라고 말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박 부회장은 또한 “선택적복지제도라고 하면서 활동보조인서비스와 함께 제시한 것이 요양시설 입소료를 지원하겠다는 것인데 대상자가 390여명밖에 안 되면서 제도라고 말하고 있다”면서 “공동모금회에서 전동휠체어를 보급하는 것도 2천~3천명인데 그럼 그것도 제도라고 해야 되느냐”고 덧붙였다.
왜 탈시설화 정책은 빠뜨렸나

장애인계가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탈시설화 정책은 이번 종합대책에서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비판이 나왔다.
장애인생활시설생활인권확보를위한연대회의 활동가 김정하씨는 “장애인 수용시설 정책은 장애인계가 결사적으로 반대하며, 이 예산을 중증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자립생활 지원 예산으로 전환하라고 요구했음에도 이번 종합대책에서는 어떠한 언급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씨는 또한 “성람재단 사태가 오늘로써 43일째를 맞고 있다. 성람재단에서 운영하는 2개 시설에서만 256명의 장애인이 죽었다. 이곳의 이사장 혼자서 27억원을 횡령한 곳이다. 이것에 대해서 정부는 한번도 반성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기자회견 주최측은 올해만 770억원, 4년간 2천500억원 이상이 투입될 것으로 추정되는 수용시설 확대 정책을 즉각적으로 폐기돼야하며, 이 예산을 활동보조인 서비스 제도화 등 자립생활 관련 예산으로 전환해야한다고 요구했다.
“장애인 노동권에 대한 상식조차 없다”

“이번 대책에서 노동권에 대한 이야기는 말뿐인 고용혁신이다. 빈 깡통이 요란하다고 아무것도 들지 않아서 소리만 요란한 것 같다.”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 김병태 상임대표는 이번 종합대책 중 가장 부실하고 실질적인 내용이 없는 것이 노동권과 관련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2007년부터 연구용역을 통해 직업적 장애개념을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도 아니고, 이제 검토하겠다고 하고 있다. 또한 대책과 관련한 예산은 장애인고용촉진기금에서 충당하겠다고 차관이 발언했는데, 정부가 장애인 노동권에 대해 기본적인 상식과 정책의지가 없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장애인고용촉진기금과 관련해 정부가 일반회계 예산에서 예산을 확보하지 않은 채 고용장려금은 물론 장애인고용촉진공단의 일반 사업비까지 충당하면서 고갈을 불러왔고, 이로 인해 고용장려금 축소사태가 야기됐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
이러한 상황에서 연구용역 사업과 취업지원서비스 등 종합대책에 포함된 고용과 관련한 과제에 대한 예산을 고용촉진기금에서 충당하겠다는 발언이 노동부 차관에게서 나오자 정부가 과연 장애인노동권 확보에 대한 의지를 갖고 있는지를 묻는 지적들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예산확보 없이 전 과정 의무교육 없다”

"예산확보도 없고, 인프라 구축도 없는 의무교육은 허상이다."
전국장애인참교육부모회 박인용 교육국장은 “유치원 과정과 고등학교 과정까지 전 교육과정을 의무화하라는 것은 전국장애인교육권연대가 줄기차게 요구해서 교육부 장관이 약속한 것”이라고 밝힌 뒤, “하지만 의무교육을 추진할 수 있는 인프라 구축이나 실질적인 예산 확보방안이 전혀 없어 무늬만 의무교육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박 국장은 또한 “정부가 특수학교와 특수학급을 증설하겠다는 방안도 정부 예산을 직접 투입하지 않고 BTL(Build Transfer Lease) 방식의 민간자본 유치를 통해 하겠다는 것은 안정성과 일관성을 전혀 도모할 수 없는 것으로, 정부의 정책의지를 의심케하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박 국장은 “지난 주 공청회를 가진 정부의 특수교육진흥법 전면 개정안에는 ‘예산의 범위 안에서’라는 문구가 여러 곳에서 발견되고 있다”면서 “예산계획이 없는 정부의 대책에 신뢰를 보낼 수가 없다”고 밝혔다.
"이동권 정책은 오히려 더 축소됐다"

“이번 종합대책 안에서 이동권 대책이 제일 알맹이가 없는 것이다. 이미 나와 있던 정책보다 오히려 축소됐다.”
장애인이동권연대 배융호 공동대표는 “오히려 작년에 이미 50%로 명시돼 있던 저상버스 도입 비율이 이번 발표에는 30~50%로 애매하게 설정돼 있다”면서 “이는 원래 한국형 저상버스 표준모델 개발을 통해 2007년부터 저가의 저상버스를 생산하고 노선에 투입하려했으나 이것이 무위로 돌아간 것 때문으로 추정된다”고 지적했다.
특히 배 대표는 “매년 850억원 정도를 투입해야 정부의 대책대로 저상버스를 도입할 수 있을텐 데 지금 책정된 예산을 보면 저상버스 예산을 책정하지 않았든지 다른 부분의 예산을 책정하지 않은 것”이라고 꼬집었다.
배 대표는 “이미 만들어진 교통약자의이동편의증진법에 따라 저상버스뿐만 아니라 장애인콜택시도 인구 100만 이상의 도시에는 80대 이상씩을 도입해야하는데, 이번 예산안은 장애인콜택시 하나만 도입하기에도 어려운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외에도 배 대표는 실질적으로 예산을 확보해 투입해야하는 철도 역사에 대한 계획은 전혀 언급돼 있지 않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올해 안에 제정해야”

“복지부가 내년 2월까지 장애인차별금지법 정부안은 내놓는다는 말을 흘려서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연내 제정에 대해 부정적인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추진연대 김광이 법제부위원장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중단해왔던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을 다시 추진하겠다”고 밝힌 종합대책과 관련해 지적하며, 이같이 말했다.
김 부위원장은 또한 “민관공동기획단이 회의를 갖고 있지만 장애인차별금지법에는 독립적인 차별시정기구 설치, 시정명령제도,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등 실질적인 권리구제수단 마련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부위원장은 이번 종합대책 속에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에 따라 소요될 예산도 전혀 포함돼 있지 않다고 지적하며, “우리가 원하는 것은 실효성이 있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명숙 국무총리 면담 요구서 전달

이날 기자회견을 주최한 곳은 장애인이동권쟁취를위한연대회,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추진연대, 전국장애인교육권연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준), 한국근육장애인협회,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이들을 대표해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영희 공동대표는 기자회견문을 발표, “이번 대책은 장애인들이 피땀 어린 투쟁을 통해 이미 쟁취해놓은 성과들과 실제적인 내용이 거의 없는 명목상의 대책들을 함께 묶어 놓은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고 지적했다.
이어 “노무현 정부는 이제라도 장애인을 우롱하는 ‘생색내기 종합대책’을 집어치우고, 시설 확충 전면 폐기와 실질적인 활동보조인제도화 요구에 답하라. 그렇지 않는다면 전 장애민중의 들불 같은 투쟁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 단체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마친 뒤, 국무총리실 관계자에게 한명숙 국무총리의 면담을 요구하는 면담요구서를 전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