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건강검진차가 지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동안은 무심코 지나쳤을 테지만 이제 새 인생을 살게 되면서 건강검진을 한번 해 보고 싶었다. 건강검진을 하고 1주일 후에 받은 결과지에는 적색 글이 난무하였다.

“담당의사는 의뢰서를 써 줄 테니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했습니다.”

소화기관, 장루협회 회보에서. ⓒ이복남

어디가 안 좋으냐고 물어도 의사는 대답을 안 해주고 큰 병원으로 가 보라고만 했다.

집이 광안리라 가까운 센텀병원에서 검사의뢰를 했는데 담당의사는 보호자를 데려 오라고 했다. 아내는 없고 애들은 다 서울 있는데 누구를 데려 오란 말인가. 그는 하는 수 없이 J 씨를 보호자로 동행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

병원에서는 대장 내시경을 찍는다고 했다. 저녁을 굶고 밤새도록 물을 마시고 대장을 비워서 다음 날 대장 내시경을 찍었다. 대장에 용종이 있다며 이번에는 CT를 찍자고 했다. 조직 검사를 하고 다시 일주일 뒤에 보호자 J 씨와 같이 가보니 직장암이니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그 때만 해도 설마 했었다. 혹시 오진이 아닐까 생각했고 오진이라고 믿고 싶었다. 가끔 변을 보면 피가 묻어 나오기도 했지만 그냥 치질이겠거니 별로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 화근이었다. 그는 아내가 떠난 3년 동안이나 술로 허랑방탕했었다. 암이 자라는 동안 그의 유일한 친구는 오직 술이었던 것이다.

애들한테 연락을 하고 서울로 갔다. 서울에서 암으로 유명하다는 병원은 찾아다니며 검사를 했다. 아내의 죽음에 대한 기억 때문에 A병원만 빼고 다 진료 받았지만 모두가 직장암이라 했다. 암이 항문 가까이 너무 내려와 있어서 수술이 어렵다고 했다.

S병원에서는 방사선과 항암치료로 암의 크기를 줄인 후에 수술을 해 보자고 했다. 항문을 살리기 위해서였다. 통원치료를 하는 동안 J 씨가 간호를 하겠다고 했지만 애들의 집은 서교동인데 S병원을 가려면 지하철을 서너 번이나 갈아타야 했다. 너무 번거로워서 부산에서 치료를 하고 오면 어떻겠느냐고 했더니 담당의사는 친절하게도 그간의 진료차트를 빠짐없이 챙겨 주셨다.

장루주머니 모양. ⓒ이복남

다시 부산으로 내려와서 어느 병원으로 갈 것인지 수소문을 하다가 지인의 소개로 침례병원 대장항문외과 이윤식 박사님을 찾아 갔다.

서울 S병원에서 검사를 하니 치료방법은 암덩이를 줄여서 수술한다고 해서 항암치료 받으러 왔다고 했더니 이윤식 박사님은 소용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래봐야 항문을 살리지도 못하고 고생만 할 거라는 것이다.

항문을 꿰매야 한다니 눈앞이 캄캄했다. 똥주머니를 차고 어떻게 살아야 하나. 이렇게 살다가 아내 따라 가야 하나.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고 그냥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나마 J 씨가 곁에 있어서 버팀목이 되었다. J 씨가 그를 위로하며 용기를 주었던 것이다.

“아내 때문에 병이 들었지만 저를 살린 것은 J 씨였습니다.”

결국은 J 씨 덕분에 수술을 결심하고 침례병원에 몸을 맡겼다. J 씨가 그토록 지극정성이라면서 왜 아직까지도 재혼을 하지 않은 걸까.

“우리 애들은 J 씨를 새엄마로 맞이할 준비는 되어있지만 J 씨의 자식들은 우리 관계를 아직 모르고 있는 모양입니다.”

아무튼 2005년 8월 1일에 수술을 했다. 사실 암으로 목숨을 잃는다는 것이 걱정되는 것이 아니라 항문을 폐쇄하고 장루를 차야 한다는 것이 더 두려웠다. 아내는 암이 전이되어 세상을 떠났지만 그는 암의 전이는 둘째 문제이고 장루가 걱정이었다. 수술을 마치고 입원실로 돌아와서 회복하기까지 정신적인 고통과 육체적 아픔은 J 씨가 함께 감내해 주었다.

그런데 수술을 하고 보니 그와 같은 환자는 그 뿐만이 아니었다. 수술을 하고 간호사가 장루 사용법에 대해서 여러 가지를 설명해 주면서 장루모임의 단체가 있다면서 장루협회를 소개해 주었다.

“장루인 단체가 있다는 것을 그 때 처음 알았습니다.”

장병근 씨의 최근 모습. ⓒ이복남

장루협회는 서울에서 1985년 150여명의 장루보유자로 설립되었으나 1997년에 와서야 사단법인으로 보건복지부에 등록했다.

그 때만 해도 일종의 환자로서 보건과에 등록하였으나 2003년 7월 1일 장애인복지법의 개정으로 장루·요루 장애인으로 인정되어 장애인과로 변경했고 2012년 한국장루장애인협회로 개칭하였다고 한다.

“저 같은 경우에는 영구장루로 장애4급을 받았습니다.”

장루·요루(腸瘻·尿瘻)장애란 직장암이나 방광암 등으로 배변이나 배뇨의 배출을 위하여 복부에 인위적으로 조성된 구멍(장루 또는 요루)을 가지고 있는 경우이다. 장루·요루 장애는 2급부터 5급까지가 있는데 2~3급은 중증이고 그는 4급이라 비교적 경증에 속한다.

암의 경우 한시법으로 본인부담률이 5%인데 기간이 5년이고 한 번 더 연장 할 수가 있다. 그도 처음에는 항암제를 복용하고 정기 검진을 했는데 이제는 10년이 지나서 완치판정을 받았단다.

아내가 병들었을 때 작은 아들은 서울공대에 다니고 있었는데 어머니의 병에 대해 속수무책이었다고 자책하면서 군복무를 마치고 다시 수능을 준비하여 한의대를 나온 한의사란다.

“한의사 아들이 아버지 건강을 위한 약을 지어줘서 지금도 탕약을 음용하고 있습니다.”

배꼽에서 왼쪽 장루를 결장루라 하는데 자신처럼 영구장루는 배꼽 왼쪽에 있고, 복원이 가능한 일시적 장루는 회장루라 하여 오른쪽에 있다고 한다. 현재 장루는 일주일에 2개씩 일반의료보험이 적용되는데, 문제는 청결과 냄새란다.

“처음에는 냄새가 나지 않을까, 방구(가스) 냄새가 나면 어떻게 처리할까 하루하루가 노심초사하는 스트레스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덤덤하단다. 냄새가 많이 나는 날것이나 달걀, 치즈, 마늘, 양파 등을 주의해야 하고 단연 금연이고 절주란다. 그리고 사용한 장루의 내용물은 처리를 변기에 버리고 장루주머니는 씻어서 사용한다고 했다.

그도 수술 후 부산 장루장애인협회(회장 김영택)에 참여를 하다가 현재는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부산 장루협회에는 70여명이 등록회원이었으나 연회비(3만원)를 내는 정회원은 50여명에 불과합니다.”

2014년 12월 말 통계에 의하면 전국의 장루·요루 장애인은 1만 4천여 명이다. 부산의 경우 2015년 12월 말까지 등록장애인은 16만 8119명인데 이 중에서 장루·요루 장애인은 955명이다.

장루보유자는 누구나 편하게 정보를 공유하고 회원으로 등록하여 협회를 활용하고 공생과 상생으로 권리보장을 받았으면 좋겠는데 아직도 자기 권리를 제대로 찾지 못하는 취약함에 씁쓸함을 금할 수 없단다.

그럼에도 그는 장루협회 사무국장으로서 회원이 많아지고 발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오늘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필자의 인터뷰 요청에 대부분의 장루·요루 장애인이 고개를 젓는 바람에 결국 장병근 사무국장이 협회 홍보차원에서 인터뷰에 응해 주셨기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끝>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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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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