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대학수학능력시험은 대부분의 수험생에게도 결코 가볍지 않은 하루이다. 그러나 시각장애가 있는 수험생에게 수능은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시험지의 문장·기호·도형이 모두 점자로 변환되고, 듣기·시각 자료를 보조하기 위한 음성지원 컴퓨터를 병행해야 하므로 시험의 분량은 일반 시험지보다 6~9배 가까이 늘어난다.
이 때문에 시각장애 수험생은 일반 수험생보다 1.7배의 시간 연장을 받고, 제2외국어까지 응시할 경우 하루 13시간에 달하는 ‘진짜 마라톤’을 치러야 한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오후 5시 40분에 시험을 마치지만, 시각장애인 수험생들은 마지막 교시가 끝나는 밤 10시 가까이 되어야 고단한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다.
하지만 시간 연장은 시험 진행 속도의 조절만을 의미할 뿐이다. 저녁 시간은 제공되지 않고, 손끝과 청각에 모든 집중력을 쏟아야 하는 환경에서는 피로 누적이 가속된다.
최근 BBC와 인터뷰한 한빛맹학교의 오정원 군도 “4~5교시가 가장 힘들다. 저녁 시간이 없다 보니 지치지만, 끝내고 나면 보람이 있을 것 같아 버틴다”고 말한 바 있다. 그의 말처럼 시각장애 수험생들에게 수능은 ‘노력’만의 문제가 아니다. 오랜 시간 동안 익숙지 않은 방식으로 시험 문제를 변환해 읽고, 음성 프로그램을 통해 내용을 확인하며, 촉각과 청각을 동시에 활용해야 하는 복합적 과제이다. 이 모든 과정은 집중력의 소모가 매우 크고, 물리적·정서적 피로는 일반 수험생의 그것과 결코 비교하기 어렵다.
이처럼 시각장애 수험생의 시험 환경은 여전히 개선이 요구된다. 첫째, 저녁 시간 부재 문제이다. 시각장애 수험생에게 13시간 연속 시험은 단순한 ‘길어진 시험’이 아니라, 신체적 스트레스를 초래하는 구조적 문제이다. 최소한의 식사·휴식 시간이 제도적으로 마련될 필요가 있으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수험 환경의 질을 확보해야 한다.
둘째, 시험 문제의 점자 변환 과정 또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점자 시험지는 분량이 지나치게 많아 페이지를 넘기는 시간만으로도 부담이 크다. 점자 크기와 배열의 표준화, 디지털 점자 단말기의 활용 확대 등 기술적 지원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 이는 단순한 편의 제공이 아니라, 수험생이 자신의 능력에 기반하여 시험을 볼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다.
셋째, 시험장의 보조공학기기 지원 체계 역시 개선되어야 한다. 음성 프로그램 오류, 기기 인식 지연, 장시간 사용으로 인한 기기 발열 등 기술적 문제는 시험 중 장애 요인으로 작용한다. 국가 단위의 장비 점검 매뉴얼과 현장 지원 인력 배치가 요구된다. 이는 장애학생이 아닌 ‘모든 학생’을 위한 교육환경 안전성 강화와도 맥을 같이 한다.
넷째, 장시간 시험을 치르는 학생들의 정서적 지원도 필요하다. 수능은 물리적 시험이지만, 동시에 심리적 지구력을 요구하는 과정이다. 장애학생에게는 더욱 그렇다. 시험 전·후에 제공될 수 있는 정서지원 프로그램, 멘토링, 상담체계는 학업 지속성과 자존감 형성의 중요한 기반이 된다.
물론 우리 사회는 그동안 장애 수험생의 평가 접근성을 꾸준히 넓혀 왔다. 시간 연장, 시험지 조정, 보조공학기기 사용 등은 중요한 진전이다. 그러나 실제 수험 환경에서 드러나는 과제들은 여전히 많다. 특히 ‘형식적 배려’와 ‘실질적 지원’ 사이에는 큰 간극이 존재한다. 장애인의 평가권은 ‘특별한 혜택’이 아니라, 누구나 교육을 통해 자신의 역량을 증명할 수 있도록 하는 기본권이다. 수능에서의 공정한 평가 경험은 이후 대학생활과 직업 세계로의 전이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올해 수능을 마친 시각장애 수험생들은 참으로 긴 하루를 완주했다. 손끝과 청각에 집중하며, 누구보다 강한 의지로 자신을 시험한 이들에게 우리 사회는 응원을 보내야 한다. 그리고 동시에 질문해야 한다. “내년 수능은 이보다 더 나아진 환경에서 치를 수 있을까?” 장애 수험생을 위한 시험 환경 개선은 단지 ‘배려’가 아니라, 우리 교육이 지향해야 할 기본적 책무이다. 평가의 공정성은 단순히 ‘동일한 조건’이 아니라, ‘필요한 것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을 의미한다. 시각장애 수험생들이 더 이상 지쳐 버티는 시험이 아니라, 온전히 자신의 실력을 표현할 수 있는 시험을 치를 수 있도록 제도적 변화가 요구된다.
올해 긴 여정을 완주한 모든 수험생들, 특히 시각장애를 지닌 수험생들에게 따뜻한 응원을 보낸다. 이것은 우리 교육이 계속해서 답해 나가야 할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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