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경계(border)라는 것은 그어져 있는 선보다 굴러가는 공에 가깝지 않을까 싶어지기도 한다. ⓒ pixabay
종종 경계(border)라는 것은 그어져 있는 선보다 굴러가는 공에 가깝지 않을까 싶어지기도 한다. ⓒ pixabay

【에이블뉴스 김세이 칼럼니스트】대한민국의 현 제도 상 기존의 장애등급제는 2019년 7월 1일 명목상 폐지된 상태이다. 그러나 6급부터 1급까지의 숫자 등급 대신 '심하지 않은 장애(구 6~4급, 경증)'와 '심한 장애(구 3~1급, 중증)'로 장애인을 구분하고 있는 지금 그 잔재는 여전히 분명하게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여러 비판이 있으나, 오히려 지금처럼 남아있기 때문에 더 주목이 가는 부분 또한 생긴다. 그 예시 중 하나는 대한민국 법으로 장애인으로 인정되는 장애유형 중 '심하지 않은 장애' 등급이 존재하지 않는 둘뿐인 유형이 지적장애와 자폐성 장애라는 것이다.

두 장애유형은 서로 구분되는 특성을 갖고 있지만, 지금의 기준에서 발달장애라는 범주로 묶이고 있는 유형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발달장애인은 중증이 아니면 비장애인인 걸까?'라는 의문을 던져볼 수 있게 된다.

경계선 지능이 한국에 700만 명에 달한다는데?

바로 경계선 지능 이야기로 넘어가는 이유는 지적장애 이야기를 하기 위함이다. 앞서 나왔듯 현재 모든 등록 지적장애인은 중증(심한 장애)으로 등록되어 있다.

즉, 지적장애에 경증 등록이 가능해진다는 가정을 해 본다면 기존 등록장애인 중 일정 인구를 경증으로 내리겠다는 발상이 아닌 한 필연적으로 현 경계선 지능으로 분류되는 인구 중 일부 또는 전부에게 등록의 기회가 생긴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여기에서 바로 '경계선 지능 700만' 이야기가 등장하게 된다. 사실 이 인구수는 지능 지수 정규분포도 상 그 비율을 경계선 지능으로 정의한다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IQ 71~84에 속할 인구 비율이 14%니 5천만 중 700만이라는 산수 계산과 같은 것이다.

그럼에도 거대한 인구수가 갖게 될 수밖에 없는 무게감은 그대로 흐름을 형성하게 되었다. 지능을 기반으로 한 사회적 혐오 문제도 크지만, '느린 학습자' 같은 이름을 비롯하여 이 많은 인구에 대해 국가적, 사회적으로 뭔가 복지와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을 대중에 납득시키고 공론화시키는 데 어느 정도 기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큰 수는 동시에 이들을 모두 제도권적 장애인으로 편입하여 복지를 주는 것이 현실적으로 우려스럽다는 사회적 인식을 형성시키기도 했다. 즉 대중에게 국가적 제도 필요성과 (지원 시) 국가적 부담이라는 양면적인 사회적 인식을 만들었다고 요약할 수 있다. 

미등록 자폐와 자폐성 장애 경증 등록에 대해서

다음은 자폐성 장애에 대해서 살펴볼 수 있다. 자폐성 장애는 지적장애와는 분명하게 다르고 구분되는 특성의 장애 유형임에도 여전히 지능이 자폐 당사자의 장애 정도를 인정하는 데 있어서 어릴 때 정신과 잘 갈 수 있었던지와 함께 막강한 잣대로 기능하고 있다.

미등록 자폐의 경우에는 지능 지수 정규분포도처럼 인구의 일정 비율을 경계선 장애로 간주하는 계산은 아니다. 이쪽은 대개 진단을 받았으나 법적 비장애인으로 남는 경우를 의미하므로, 수백만 명의 이론 상 인구수가 존재하는 경우와는 차이가 있다.

즉 이 경우는 제도권적인 장애인 복지로 편입하는 것에 있어 비대한 인구수로 인한 우려 발생이 생길 것은 아니겠으나, 대중적으로 문제를 충분히 납득시키고 정책의 시급한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된 것 또한 덜하다고 할 수 있다.

경증으로 분류되는 자폐 및 아스피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최중증 발달장애인' 담론이 가진 무게감이 매우 큰 상황에서 자기 자신에 대해 발언해볼 기회는 충분히 주어지지 못하는 처지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런 입장의 당사자로선 무엇을 위해 같이 발달장애로 묶여지는 건지를 물을 수 있을 지점인지도 모른다. 최중증 말고 이런 경증도 있다는 것을 처절하게 알려보기 위해 최신 진단기준 변화에도 어쩔 수 없는 언어로 '아스퍼거' 정체성을 다시 가져오기도 한다.

장애등록에 대해 관련된 당사자들은 예민해진다

자폐성 장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필연적으로 국가 제도권상의 장애 판정에도 기여하고 있다. 이는 지능, 조기발견 여부 등으로 장애의 진정성을 판단하는 지점이 현실의 장애차별 문제와는 다소 맞지 않아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나중에 등록할 작정으로 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진단을 받고 심지어는 의사의 장애진단서를 받는 경우들마저도 국가적인 장애 등록은 줄줄이 미해당으로 거부당해 여러 사람이 미등록 자폐로 남는 일이 계속 발생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장애등록에 대해 당사자들이 예민해진다는 건 미등록 및 법외장애인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등록 정신적 장애인들도 재판정 및 갱신 때마다, 또는 '못남'이 덜해 보인다고 주변에서 의심과 문제를 제기당하는 일을 볼 때마다 증명 문제에 불안해하기도 한다.

자폐성 장애의 경우 지적장애가 같이 있는지의 여부가 자폐로 인한 일상적, 사회적 장애의 고착화 이전에 실질적인 장애 수준을 판단받는 기준 자체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장애 유형을 지적장애와 구분하는 의미를 흐리는 전개는 곤란하다.

한편, 실제 사례로도 자신은 '중증 발달장애인'이 아니라 경증으로서 사회생활을 하려는데도 경증 등록 자체가 현재 불가능하니 '자폐성장애 장애정도 중증'이라는 자신의 장애등록 서류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오해를 부른다고 여기는 등록 자폐 당사자도 있다.

이 내용으로 한 자폐 당사자 칼럼니스트의 공개적인 글 또한 이미 수 년 전 있었던 것처럼 자신의 중증 판정 복지를 지키는 데에만 현 등록 자폐인들이 관심을 가진다는 것도 오해이다. 

이래저래 오늘날의 자폐성 장애 등록 관련 제도는 스펙트럼인 자폐 특성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한 단면이라고 볼 수 있겠다. 

살아남기에 필요하고 맞는 지원이 주어지는 것이 복지

한편, 정신적 장애라는 공통점이 있는 정신장애의 경우에도 지금은 아니지만 꽤 최근인 2021년 초까지는 마찬가지로 '심한 장애'로만 등록할 수 있었다가 이후 법이 개정되었다.

이쪽도 일상생활 수행 기능이 어떻든 등록 가능 진단명이 매우 협소하여 수많은 법외장애인, 즉 아예 등록 기준에 자신의 진단명이 없어 등록 자체가 막히는 사례들을 여럿 탄생시키는 등 많은 문제가 제기되었던 바 있다.

이후 여전히 완전하진 않다지만 개정을 통해 '심하지 않은 장애' 등록 기준이 도입되고 등록 기준에 속하는 진단명이 늘어났던 변화가 있었다. 발달장애 등록의 현 상황을 정신적 장애의 특수성이라고 받아들일 수만은 없는 이유이다.

진단이 있고 장애의 고착화로 일상과 사회적 제약이 분명해도 법적으로 장애인으로 인정되지 못한 이들의 복지 사각지대에 대해선 최근 들어 꾸준히 이야기가 나와 온 추세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단순히 사고를 막자고 군 복무에서 걸러내는 정도를 제외한다면 국가적인 공론화와 문제 인지가 충분한 상태는 아니다. (다만 이 부분은 국가가 존재를 분명히 인식하고는 있다는 근거는 될 수 있다.)

경증 발달장애로 등록이 필요할 예상 인구수가 얼마나 잡히고 그 중 얼마나 실제 인구수가 되든, 장애 상태를 인정하여 사회적 복지 필요가 있을 이들에게 그에 맞는 지원이 주어지고 삶의 질을 개선시키는 것이 당사자 개인에게도 좋고, 아예 법적 비장애인으로 누락시키는 것보단 사회적 부담을 줄이는 측면에서도 합리적일 것이다.

이렇게 보면 경계선 지능만 해도 700만이라는데 다 장애인으로 지정해 나라가 책임지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는 비당사자들의 공감대에 대한 답은 나온다.

경증 장애의 인정이란 그런 것이다. 국가가 전적인 비용 부담만을 하는 게 아니라, 일자리 맞춤 및 유지 지원을 통한 자립, 생계 안전망 지원 같이 결국 장애를 갖고도 독자적으로 온전한 인격체로 살아갈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해 달라는 것이다.

장애인 인정을 비롯한 관련 제도는 장애에 대해 복지의 제도권으로 편입시킬 여지를 주는 최소한의 안전망이다. 장애에 대한 장애인 복지가 지금의 사각지대를 해소해 주는 방향으로 기능해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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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을 살아가고 또 사색하는 청년 신경다양인이 ‘그럼에도 우리답게’ 이야기한다. 따뜻하고 강하게 성장해가고 싶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정신적 장애인이 주체적인 삶으로 함께 살아가는 미래를 그리며, 우리들의 삶이 때론 지칠 순간을 마주해도 그래서 틀리고 나쁜 것 되진 않는단 걸 공감으로 꼭 담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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