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블뉴스 이원무 칼럼니스트】2박 3일 동안의 사막여행 후 나는 하실라바드에서 한국인 관광객과 함께 수프라 투어버스를 탔다. 야경을 즐겼고 중간에 쉴 때는 가게를 들러 과일 먹을 것을 샀다. 9시간 15분 만의 여행 끝에 버스는 목적지인 페스 역(Gare De Fes)에 도착했다. 시간이 흘러, 한국인 여행객과 작별한 후 페스에서 여행 계획을 잠깐 세우고 역을 떠나 숙소로 가려고 했다.
마라케시에서 버스 요금이 약 400~500원 정도 했던 걸로 기억했기에 페스에서도 숙소로 가는 저렴한 버스가 있겠지 싶은 마음에 구글 맵과 수소문 등 여러 방법을 통해 버스 있는 곳을 알아보려 했다. 그런데 택시를 타라는 사람이 적지 않았고, 버스 정류장을 찾긴 했지만, 잘 안 오는 것도 같고 해서, 하는 수없이 택시 타고 페스 숙소에 도착해 현금으로 잔금 치뤘다.
모로코에는 택시를 탈 때 보통 미터기가 아닌 택시 기사가 부르는 게 요금인데 버스 터미널 등지에서 왕왕 발생하는 일이다. 물론 미터기로 해 요금을 달라는 정직한 택시 기사도 있지만, 그런 기사는 별로 많지 않다. 관광객 입장에서 이 요금이 비싸다 싶으면 싼 가격을 제시하는데 그 가격에 찬성하는 택시 기사들은 별로 많지 않다. 그래서 관광객 입장에선 덜 부담스러운 요금을 내기 위해 택시 기사와 흥정 또는 협상을 할 수밖에 없다.
나의 경우도, 카사블랑카(Casablanca) 여행을 위해 쁘띠 택시(Petit Taxi, 소형택시로 도시 내를 운행하는 택시)에 탑승해 페스 역에 가려고 했을 당시, 기사가 100 모로코 디르함(약 15,000원)을 제시했는데, 나로선 조금 비싼 거 같아 50 모로코 디르함을 제시했다. 하지만 안 된다고 하니까 80 디르함이면 어떻겠냐고 했다. 그랬더니 80 디르함에 서로 좋다고 합의하면서 페스 역으로 갔다. 서로가 양보했을 때 작은 협상이 진척되며, 결국 택시에 탑승할 수 있었던 거다.
이걸 경험하니 장차법 제정 과정이 떠오르게 된다. 장차법 제정 당시에도, 장애계에선 완전하고도 즉각적인 차별 철폐를 요구했고 심지어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까지 주장했었다. 그러나 기업, 정부 등지에서 재정 부담 등을 이유로 장애계의 요구, 주장에 난색을 표했다. 이에 법 적용 관련 세부 기준에 대한 유예 기간, 방식 설정 등을 하는 절충안으로 서로가 합의를 봤다.
이렇게 장차법은 제정됐고, 17년이 지난 지금, 장애인들의 권리 의식은 향상됐다. 그런 긍정적인 면이 하지만, ‘현저히 곤란한 사정’과 ‘과도한 부담’이란 문구로 인해 사용자 측이 재정적 부담을 명목으로 차별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이게 사법당국에서 받아들여져, 장애인 권리인 합리적 편의를 인정하지 않는 판결이 아직도 있다. 그래서 장애계에선 ‘합리적 편의’를 권리로 인정하는 건 물론이고, 아예 ‘합리적 편의’와 ‘접근성’을 구분하며 관련 대안까지 요구하는 상태다.
이걸 보며, 그때 양보하지 말고, 완전하고 즉각적인 차별 철폐를 관철시켰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많이 든다. 협상과 타협이 불완전한 채 제정된 장차법 시행 이후 장애인 삶의 현실은 나아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 말이다. 형태는 다를지 모르나, 관광객 입장에서의 택시 요금에 완전히 합의했으면 내 입장에선 살짝 손해 본다는 마음이 들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페스 숙소에서 방을 잡은 후 조금은 더워 쉬다가 오후에 페스 메디나 지역으로 향했다. 보통 이슬람 사원이 있는 광장을 메디나로 생각해 메디나가 어디 있냐고 물어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전통시장이 전부 다 메디나라는 거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전통시장, 그리고 현대적 도심 외곽의 흙벽돌로 쌓여진 옛 도시 전체가 메디나였다는 걸 인정했지만 말이다.
돌아다니면서 싸고 시원한 쥬스를 마셔 나름 좋긴 했지만, 어디가 메디나냐고 물어보니 행인들이 알려주겠다며, ‘친구’라고 부르는 말에, 과거에 당했던 삥뜯김 기억이 선명해선지 행인들에게서 도망치는데 바빴다. 그러다 가죽 염색장으로 유명한 태너리를 소개하며 사진 찍게 해주겠다는 현지인 말에 그곳으로 가 염색원료 악취를 견디며,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그 현지인이 엄청난 소개료를 요구하기에, 나는 돈이 진짜 없다고 얘기하고선 일종의 팁인 30 모로코 디르함을 주고, 다음 일정 있다며, 다른 곳으로 성공적으로 피신해 위기를 모면했다. 어쩌면 과거의 경험이 현재를 살렸다고 할까? 이후, 저녁을 먹고 숙소로 들어가 아름다운 모로코 페스의 야경을 잠시 즐겼다.
다음날엔 12세기 중반에 세워진 대학으로, 이슬람 교리, 천문학 등을 가르쳤고, 이슬람 사원도 겸한 보우 이나니아 신학교(Medersa Bou Inania)를 봤는데, 아름다운 아르베스크 문양에 감탄을 금치 못했고, 하필 그때 한국인 관광객이 함께 여행해선지 상당히 반가웠다. 페스 왕궁도 방문해 아름다운 문양에 속으로 연신 감탄을 쏟아냈다. 이국적 풍광의 페스 공동묘지도 방문하려 했었지만, 당시 문을 닫았기에 그 모습을 볼 순 없었다.
날이 저물어 글을 쓰려고 숙소 옥상의 테라스로 올라갔는데, 야경을 보는 것 자체가 황홀했다. 거기에 머문 사람들은 처음 만나 조금 낮설긴 했는데, 어떤 남성 두 사람과 이야기하다, 한 사람이 나와 똑같은 자폐성 장애가 있음을 알고는 동지가 있음에 기쁜 나머지 사진을 찍었다. 슬로베니아 출신의 로브로(Lovro)로 전공이 IT계열이다.
그래서 그런지 다음날에 자폐성 장애인과 관련한 고등교육 현황이 슬로베니아에선 어떤지 궁금해 그의 친구에게 물어보기는 했는데, 자세한 답변은 듣지 못했다. 우리나라의 Inclusive Education은 물리적인 수준에만 그치며 다양성이 존중되지 않는 현실을 그 친구에게 알려주었다. 서로 얘기를 나누다 보니, 실질적인 Inclusive Education의 필요성에 같이 공감하게 됐다. 그리고선 모로코 최북단 탕헤르(Tangier)에서 기회 되면 보자는 말에 자폐성 장애인과 함께 서로 아쉬움을 뒤로 하고 나는 다음 행선지인 카사블랑카로 향했다.
카사블랑카는 영화 ‘카사블랑카’로 잘 알려진 도시이기도 한데, 그것의 배경이기도 한 릭 카페(Rick Cafe)의 경우는 8월 27일까지 휴점이라 영화에 담긴 분위기를 보지 못한 점이 아쉽긴 했다. 하지만, 그 주변의 유명한 건축물인 카사블랑카의 명물 하산 2세 모스크(Hassan II Mosque)를 보는 것으로 만족했는데, 모스크 그 자체의 아름다움에 다시금 감탄했다.
건물 안에는 기도할 수 있는 자리가 따로 마련돼 있고, 모스크 옆이 대서양이라 바다와 파도 소리도 들을 수 있다. 안이 아름다움은 물론 웅장하기까지 했는데, 가이드 말로는 이 건물을 짓는데 6년의 시간이 걸렸단다. 이렇게 큰 건물이면 적어도 10여 년 소요되는데, 빨리 짓는 데는 강한 정부 추진력이 작용했다고 한다. 그 당시는 모로코에 독재정권 시기였는데, 국왕이 강제로 직접 기금을 모아 건축했지만, 생각한 대로 많이 모이진 못했다고 한다.
느낌이 조금 씁쓸했고, 이와 관련해 메나라 메거진 보도를 찾아봤다. 이 보도에 따르면, 민중의 사회 기반 시설에 써야 할 자원이 애초에 건축이 필요하지 않은 모스크 같은 건축물에 사용됐고 이로 인해 공공사업과의 단절까지 됐다고 말한다. (‘중동 및 북아프리카 국가 모스크 경쟁의 실태(The Debacle of State Mosque Competition in the Middle East and North Africa), 메나라 메거진, 2020년 3월 13일 기사) 그러니까 사회적 불안과 재정적 어려움이 있던 당시 복지, 교육, 고용 등 다른 인프라에 써야 할 돈이 대중 불만을 잠재울 목적으로 모스크 건축에 썼다는 거다.
우리나라도 형태는 다르나, 독재정권 시절 초고속 성장 위에 고층건물도 짓고 여러 발전이 있었다. 국가 전체가 가난함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서 88 서울올림픽, 2002 한일월드컵을 치르는 등, 세계 경제 10위 권 선진국 대열에 올라서긴 했다. 하지만 그런 과정에서 장애인이 안 보이게끔 거리에서 내쫒은 과거 모습, 아직도 장애인 인권은 유린 수준에 머물러 있는 현실을 보며, 장애인의 기본권과 자유엔 소홀한 대한민국 정부의 모습과 모스크에서의 모습이 자꾸만 중첩되는 건 왜일까 하는 질문을 남겨보련다.
이후엔 카사블랑카 엘 헹크 등대를 방문하며 나름 분위기 좋았고, 도심에 자리잡은 모하메드 5세 광장(Place Mohammed V)에도 가면서 시원함과 이국적인 풍취에 잠시 빠져보기도 했다. 모로코 몰도 갔었는데 그 옆이 대서양이라 바다가 보이는 몰 안의 자리에서 피자를 먹으며 분위기를 즐겼다. 특히나 우리나라는 과일, 음식값이 상당히 비싼데 그 몰에선 1000원 주고도 멜론 조각들을 충분히 사 먹으며 즐길 수 있다는 점이 좋아, 모로코 재여행하자는 마음이 생길 정도였다.
마침 오래 여행하다 보니 한국 음식이 그리웠나 보다. 그래서 서울 가든이란 식당에 갔는데 거기서 미역국, 오징어볶음을 맛있게 먹었다. 식당 청중이 소수인 상태에서 한국분인 사장분이 거기서 버티 히긴스의 카사블랑카란 노래를 기타 연주에 맞춰 공연했는데, 솜씨가 조금은 서툴렀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그래도 청중을 즐기게 하겠다는 그분 마음이 느껴져 나름 고무적이었다.
이렇듯 페스와 카사블랑카 여행을 통해 양면적인 경험을 했다. ’택시 기사와의 미니 협상‘, ’하산 2세 모스크 방문'과 관련해선 불안정한 상황에서 장차법 타협안을 성사시키거나, 과거 독재정권의 그늘 등이 있었던 우리 사회의 현실이 떠올랐던 반면 ’자폐인과의 만남‘, ’멜론‘ 등을 통해선 긴장된 여행 가운데 공감과 위안, 즐거움을 느끼며 소확행(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을 챙겼다고나 할까? 그런 의미에서 양면적이었다는 거다.
이런 양면적인 경험을 뒤로 하며, 나는 다음 행선지인 모로코 행정상의 수도 라바트로 발걸음을 옮겼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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