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9. 28.
“장애인스포츠”
이현옥 장애인스포츠 평론가와 함께 합니다. 어서오세요?
문1) 지난주에는 서울에서 IPC 총회가 있었습니다. 모처럼 장애인스포츠에 대한 관심과 화제가 모아졌는데요. 국제적으로 장애인스포츠 하면 떠오르는 인물에는 누가 있을까요?
- IPC는 장애인스포츠를 총괄하는 국제기구니까 행정과 정책을 집행하는 곳이고요, 장애인스포츠 하면 선수를 우선 떠올리게 됩니다. 장애인스포츠의 가장 큰 행사인 패럴림픽에서는 이슈와 화제를 만드는 선수가 매번 탄생합니다만, 장애인스포츠를 스포츠의 한 장르로 끌어올린 인물에는 하계종목에 남아공 출신의 남자 육상선수 ‘오스카 피스토리우스’, 동계 종목에 미국 대표선수인 여자 크로스컨트리의 ‘옥산나 마스터스’를 꼽을 수 있겠습니다. 둘다 패럴림픽을 빛낸 챔피언들입니다.
문2) 동·하계 종목에다 남성과 여성을 각각 대표하는 선수들인가요?
- 그렇게 볼 수도 있습니다만, 이 두사람 동·하계와 남성·여성을 떠나 그 자체로 빛나는 장애인 스포츠선수입니다. 뛰어난 경기력과 개인스토리, 그리고 사회적 반향을 준 인물로 꼽을 수 있겠습니다. 오늘은 이중 오스카 피스토리우스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양다리에 의족을 하고 단거리에서 기록을 세워‘블레이드 러너’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선수이지요. 최근에는 스포츠과학과 첨단소재의 발달로 많은 절단장애 선수들이 의족을 하고 달립니다만, 의족선수 1세대로 전세계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장애인스포츠에 대한 사회적 재해석을 이끌어 낸 대표적인 인물이기도 합니다.
문3) 영화제목이 생각나기도 하는데요, 이 선수에게 붙여진‘블러드러너’는 어떤 의미인가요?
- 양 다리에 날(블레이드) 모양의 의족을 해서 그런 별명이 붙었는데요. 양쪽 종아리뼈가 없는 상태로 태어난 피스토리우스는 생후 11개월 때 양쪽 무릎 아래를 절단했으나, 어린 나이에 달리기 재능을 발견해 남아프리카공화국 남자 육상 국가대표 선수로 뛰게 되었습니다.
피스토리우스는 2004 아테네 패럴림픽 T44(절단 및 기타 장애) 200m 금메달, 2008년 베이징 패럴림픽에서 같은 부문인 T44 육상 100m·200m·400m 3관왕에 오르며 남아공의 육상 스타가 됐습니다. 그러나 피스토리우스를 유명하게 만든 건 장애인 선수 최초로 2011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은메달을 획득하는 기록을 세우는가 하면, 절단 장애인 육상선수 최초로 2012 런던 올림픽, 남자 육상 400m에 출전해 비장애인 선수들과 겨루는 모습으로 전 세계인에게 감동을 주었던 것이었습니다. 올림픽에 이어 열린 그해 런던 패럴림픽에서도 육상 400m 계주 금메달, T44 남자 육상 200m 은메달을 획득하기도 했습니다.
문4) 장애인선수가 비장애인 올림픽에 나가 뛰었다니 그 자체로 엄청난 일이군요. 장애인선수가 올림픽 나가는 사례가 예전에도 있었습니까?
- 수영 계주와 탁구, 양궁에도 사례가 있기는 합니다. 폴란드 여자 탁구선수 ‘나탈리아 파르티카’는 선천적으로 오른팔 팔꿈치 아래가 없는 장애를 가진 선수로 2008년 베이징부터 2024년 도쿄까지 4회 연속 비장애인 올림픽(여자탁구)에 출전했으며 수차례 패럴림픽에서도 우승했습니다. 지난해 파리 패럴림픽에서도 경기를 볼 수 있었습니다. 호주 탁구선수인 ‘멜리사 테퍼’ 역시 한팔 장애임에도 2016년 리우와 도쿄올림픽에 호주 비장애인 대표팀에서 뛰고 동시에 패럴림픽에도 출전했습니다. 남아공 수영선수인 ‘나탈리 뒤투아’도 골반아래 한쪽 다리에 의족을 했지만 2008 베이징 올림픽 여자 10km 마라톤 수영에 출전해 완주하며 전세계인들에게 깊은 인상은 준 바 있습니다. 이란의 양궁선수 ‘자흐라 네마티’는 휠체어를 탄채 2016 리우올림픽에서 비장애인 대표로 양궁에 출전해 활시위를 당겼습니다. 이들은 비장애인들과 똑같은 조건으로 세계 최고 무대인 올림픽에 출전하여 당당히 경쟁을 펼쳤고 스포츠의 평등과 포용 정신의 대표적인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선수들 중 입상권에 든 경우는 없었고요. 피스토리우스가 유일하게 메달을 땄습니다. 피스토리우스가 주목을 받은 것은 육상이 상대와 겨뤄 승점을 올려 출전권을 따는 종목이 아니라(물론 이것도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만) 올림픽 기록이라는 기준이 있어서 신체적인 능력이 따라줘야 설 수 있는 무대라는 점에서 특별하다는 점입니다. 피스토리우스의 등장 이전에는 스포츠 보장구의 기능과 능력에 대한 검증이 따로 없었는데,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은메달로 비장애인 선수를 능가하면서 스포츠계에 ‘어디까지가 인간의 능력인가’ 라는 논란이 벌어졌습니다. 생체다리로 뛴 선수들의 거센 반발도 있었고요. 결국 이후로는 의족 육상선수의 비장애인 대회 출전이 금지되었습니다만, 장애인선수의 질주를 전세계인들이 지켜봤고 또한 이른바 장애를 일컫는 단어인 ‘핸디캡’이 현대과학을 만나 앞으로의 인류에게 어떤 삶으로 펼쳐질지 짐작케하는 일대 사건이 되었습니다. 무쇠다리, 무쇠팔이 스포츠에서 엄청난 일을 해낸 것입니다.
문5) 장애인선수가 한계를 뛰어넘으며 새로운 차원의 경기를 보여준 것이군요. 그렇다면 비장애인 선수가 패럴림픽에 나온 경우는 없습니까?
- 비장애인 선수가 패럴림픽에 경기 파트너로 나오는 경우가 있겠고요, 이를테면 시각육상의 가이드러너나 텐덤바이클의 앞자리 안장에 앉아 눈 역할을 대신하는 파일럿이 있겠습니다. 2022년 항저우 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에서 시각장애인 김정빈선수와 비장애인 윤중헌 파일럿이 함께 금메달을 일궈낸 적이 있었지요. 시각장애 축구에서는 골기퍼가 비장애인 선수나 약시 선수가 포지션을 맡을 수 있고요. 비장애인 출신 중도장애 선수로 패럴림픽에 나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헝가리의 펜싱선수 ‘제커스 팔’은 비장애인 올림픽 메달리스트였다가 사고 후 장애를 얻었으며, 이후 패럴림픽에서 자신의 메달을 추가했습니다. 청각장애 선수 ‘제프리 플로트’는 1984년 LA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수영선수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작년 파리 패럴림픽에 출전한 최용범 선수가 있습니다. 이 선수는 과거 실업팀에서 활동하던 비장애인 카누 선수였습니다. 교통사고로 왼쪽다리를 잃은 뒤 재활 과정을 거쳐 장애인 카누선수로 전향했습니다. 파리 대회에서는 한국 최초로 장애인 카누(남자 카약 200m KL3) 종목에 출전해 결선 8위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최용범선수는 비장애인 시절 꿈으로만 간직했던 올림픽 무대를 장애인이 되어서 밟은 사례였지요. 청각장애인 중에는 사격과 태권도에서 비장애인 국가대표급으로 데프림픽에 나가 좋은 성적을 내는 사례가 있습니다.
6) 경계를 넘나드는 선수들의 활약이 볼만하겠군요. 비장애인들을 제치고 앞서 달렸던 오스카 피스토리우스는 아직도 선수 생활을 하고 있나요?
- 안타깝게도 '인간 승리 표상'으로 추앙받는 등 화려했던 피스토리우스의 커리어는 2013년 밸런타인데이에 막을 내렸습니다. 여자친구를 향해 총을 쏜 혐의로 수갑을 차게 되었는데요, 그는 욕실에 있던 여자 친구를 침입자로 오인했기 때문에 쏜 것이라며 정당방위를 주장했으나 검찰 측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살인 혐의로 징역 13년 5개월 형이 최종 확정되었고 약 7년 6개월 수감 생활을 마친후 지난해 가석방 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가 다시 트랙에 설지는 알 수 없지만, 장애인 인식개선의 산표본이 한순간에 그렇게 나락으로 떨어진 것, 스포츠 영웅으로 떠올랐다가 한순간에 범죄자가 된 것, 참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인성이 갖춰지지 않은‘벼락스타’는 설 자리가 없다는 교훈을 다시한번 확인한 것으로 만족해야 될거 같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피스토리우스와 완전 비교되는 진정한 스포츠 정신의 상징, 패럴림픽 통산 메달 19개를 보유한 여자 장애인선수‘옥산나 마스터스’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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