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고 진보적인 이중공감 문제, 의문은 없는가
【에이블뉴스 김세이 칼럼니스트】자폐 당사자의 소통을 이해하는 것에 큰 의의를 남긴 개념으로 단연 영국의 학자 데미안 밀턴(Dr. Damian Milton)이 지난 2012년 제기한 이중공감 문제(Double Empathy Problem) 이론이 있을 것이다.
이는 자폐인은 공감이 결여되어 감정 교류를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그간의 전통적인 관점을 벗어나, 자폐인의 소통 방식과 비자폐인의 소통 방식 간에 차이가 있을 뿐이라는 유의미한 논점을 제시하였다.
즉, 간단히 말하면 비자폐인과 비자폐인 간의 소통, 자폐인과 자폐인 간의 소통은 잘 이루어지지만 자폐인과 비자폐인이 섞여있는 상태에서는 앞서보다 유의미하게 더 소통이 잘 되지 않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자폐인의 공감이 틀림, 결함이 아니라 방식의 다름이라는 점에서 이 관점은 자폐 스펙트럼에 속하는 당사자를 이해하는 것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또한 다양성의 측면에서 자폐를 이해하는 젊고 진보적인 패러다임을 제시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이중공감문제에 대해서는 의문을 던질 부분이 없을까? 자폐인이 모인다면 이중공감문제에 따라 소통이 속시원히 잘 되기만 하는 결과를 가져올까?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이 글을 쓰게 되었다.
다양한 비자폐인들, 그리고 어쩌면 더욱 '다양한' 자폐인들
이중공감문제는 자폐인 간의 대화가 잘 통한다는 점뿐만 아니라 비자폐인 간의 대화가 잘 통한다는 뜻도 담고 있다. 바로 여기에서 일반화는 위험하다는 부분을 짚을 수 있을 것이다.
두 사람 이상의 상호간의 의견 차이와 성향 차이로 인한 분쟁은 어디에나 많다. 비자폐인 간에도 많이 일어나고 자폐인 커뮤니티 내에서도 많이 일어난다. 분란이 꼭 비자폐인과 자폐인 간의 소통 방식 충돌 탓이라고 일차원적으로 단정지어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이는 비자폐인 간, 자폐인 간에도 자폐 특성의 유무뿐만 아니라 여러 복잡한 정체성들을 갖고 다양한 경험의 삶을 살아오며 각자의 가치관을 형성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한다.
자폐 스펙트럼 여부는 인간 개개인의 다양성을 구성하는 '일부'이며, 정치, 종교 뿐만 아니라 자폐 권리와 치료적 개입을 비롯한 여러 주제에서 자폐인들마다도 주장이 충돌하는 예시가 많은 만큼 모든 자폐인을 균일한 집단으로 보는 시각은 적절하지 않으며, 타자화의 위험성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즉 이를 포괄적인 의미에서 다양성의 한 단면으로 설명할 수 있다. 단순히 자폐인과 비자폐인이라는 또다른 이분법으로만 분류해버리면 그 안에서 일어나는 사람들의 다름과 갈등은 은폐되는 것이다. 이중공감문제 만능론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렇다면 자폐인끼리, 비자폐인끼리도 저 정도인데 섞이면 더 힘들지 않을까'라고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비자폐인과 자폐인 간에도 우정을 쌓는 사례가 충분히 있다. 필자도 여러 비자폐인 친구들과 어울려 지내고 있고, 이곳 에이블뉴스에도 자폐인 친구와의 이야기를 연재해 온 비자폐인 칼럼니스트 분이 계신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외에도 비자폐인들과의 인간관계를 비롯 여러 사회적 상호작용을 하며 세상을 살아내고 있는 수많은 자폐인들이 있다. 이들 가운데 일상에서 감각과 소통방식 등의 차이에 대해 사람들의 관용을 얼마나 기대할 수 있는 환경인가는 개개인마다 다르겠지만 모두가 실패만 겪는다고 볼 수는 없다.
다양성은 다름에 대한 이해와 포용
다양성을 동등한 위치에서 존중하자는 취지의 이중공감문제를 적용할 때 주의깊은 과정을 거치지 못한다면 오히려 당사자들 안의 다양성을 놓치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예시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다르다고 꼭 적이 되는 게 아니라 다름에 대한 이해로 이어질 수 있기에 다양성은 아름답다. 서로 온전히 같지 않더라도 서로에 대한 호감을 통해 맞춰가기도 하고 이해하려고 하기도 하며 그러다가 맞는 것을 찾기도 하며 교류를 키워가는 것이다.
또한 자폐인 간에도 작지 않은 개인차가 존재한다. 가령 마스킹을 능숙하게 하며 겉보기엔 그럭저럭 유창하게 말을 하는 자폐인이 있는가 하면, 인간관계 욕구가 강한 기질로 말을 열심히 하되 사회적 스킬이 서툴어 줄곧 미움을 사는 자폐인이 있고, 조용하며 사람 대하기를 잘 하지 않으려 하는 자폐인이 있는 식이다.
물론 자폐 특성이 드러나는 정도 외에도 자폐인이 갖는 특성은 다양하다. 이런 다름에 대한 이해와 포용의 자세는 이중공감문제에만 기댄다고 생기는 것은 아니고, '같음'뿐만이 아니라 '다름'도 대하는 마음가짐에서 생겨나게 된다.
그럼에도 이중공감문제인 이유? 자폐인 간의 소통의 힘을 믿기에
이렇게 이중공감문제만으로는 충분치 못한 점들이 있음에도 이중공감문제를 많은 자폐인들이 믿고 싶어 하고, 필자 또한 그러한 이유는 어렵지 않다.
필자를 비롯한 많은 자폐 당사자들이 비자폐인들 사이에서 소통과 공감받기의 실패를 경험했기 때문이며, 또한 당사자들과의 대화에서 마치 '외계에서 고향 행성 사람을 만난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자폐 당사자인 개인은 여러 비정상성을 가지고 있을 수 있고 불완전한 사람일 수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비자폐인이라고 다를 바는 아닐 것이다. 부족함이 있는 인간이라고 해서 이해받지 못하고 무자비한 교정 요구에만 놓인다면 이어지는 것은 심리사회적인 고통이 된다.
다름이 있더라도 열등함의 자리에 놓아 꾸짖고 고치려 들지 않고, 서로 포용해줄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개념으로써 이중공감문제를 다루는 것은 여전히 유효하다. 스스로에 대한 자긍심을 갖고 삶의 의미를 찾기라는 중요한 의미도 가질 것이다.
자폐인들끼리는 각자의 어려웠던 소통 경험을 갖고 있기에, 비록 어떤 자폐인끼리도 서로 같지는 않더라도 서로의 힘들었던 일들을 짐작하고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수 있을 것이다.
'일단 내가 옳다'로 시작하지 않고, '내가 틀렸을 수도 있다'로 시작할 수 있는 사람들의 소통은 그 자체로 힘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중공감문제는 이중공감문제에'만' 기대지 않는다면 진정으로 자폐 당사자들의 힘이 되어줄 수 있을 것임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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