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은 샀지만 그는 여전히 가난했고 신발가게 쪽방에 살았다. 그런데 남편이 샀다는 건물은 사기를 당했는지 부도가 났다. 하루아침에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빚쟁이들이 몰려와서 행패를 부렸다.

“1억 5천 쯤 된다던데 신발 장사로는 이자 갚기에도 벅찼습니다.”

남편은 이자라도 갚겠다며 노가다를 하러 다녔고 그는 아이 둘을 데리고 신발 장사를 했지만 빚은 늘어만 갔다. 남편은 이대로는 못 살겠으니 당분간 자기를 찾지 말라며 집을 나갔다.

서은숙 씨. ⓒ이복남

그는 신발가게를 청산해서 급한 불을 끄고는 막내까지 아이 셋을 데리고 부산으로 와서 감만동에 방을 하나 구했다.

“부산 와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전입신고를 하면서 수급자 신청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술독에 빠졌다. 울산에서도 남편에게 얻어맞고 나면 한잔 씩 술을 마시기는 했었다. 남편은 도망가서 없고, 빚쟁이들이 몰려와서 한바탕 난리를 피우고 가면 눈물도 말랐고 가슴은 텅 비었다. 그 빈 가슴에다 술을 들이부었다. 가슴이 터질 것처럼 답답했는데 술을 한 잔하고 나면 어느 정도 진정이 되었다.

부산에서 두 딸은 초등학교를 다녔고 그는 술을 마셨다. 처음에는 그가 술을 마셨고, 술이 술을 마시다가 결국에는 술이 그를 마셨다. 한 잔 또 한 잔 술은 점점 늘어나서 한 병이 두 병 되고 두 병이 세 병이 되었다.

“내 팔자가 와 이렇노, 팔자타령에서 시작하는데 술 앞에는 모성애도 없습니다.”

20일이 되면 수급비가 나오는데 수급비로 술을 마셨다. 그런데 또 20일이 다가올 때쯤이면 술값이 떨어졌다. 술값이 없으면 미칠 것 같았다. 택시를 타고 울산 엄마한테로 갔다. 택시비가 7~8만원 나오는데 팔순이 넘은 엄마는 장판 밑에서 또는 찬장 안 검은 비닐봉지 속에서 몰래 감취 둔 몇 만원씩을 찾아서 택시비를 건네고는 그를 보고 한탄했다.

“아이고 병도 무신 저런 병이 다 있노, 술만 처 묵으면 미처 날뛰지 삽짝(사립문, 대문) 걸에 나가서 춤을 안 추나, 엄마는 그리 말하면서도 보물찾기를 해서 택시비를 주시데요.”

울산까지 오는 동안 술이 좀 깨어서 설거지라도 할라치면 옆집 할머니가 들여다보고는 엄마에게 한 소리 했다.

“아가 우찌 저리 호자고, 술 처묵고 지랄하는 그 딸은 죽었나?”

할머니는 눈이 어두워 설거지하는 딸이 술 마시는 그 딸인 줄 몰랐던 것이다.

“알코올중독은 현재진행형 질환입니다. 술이 술을 부르면 죽기 전에는 먹어야 됩니다.”

그러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 밥도 안 먹고 술만 마시다 보니 어느 날 술에 취해 기절을 했다.

“39살에 처음으로 정신병원에 입원을 했습니다.”

병원에서는 술을 못 마셨다. 그런데 술기운이 떨어지면 전신이 아팠다. 그러다 퇴원해서 다시 술이 들어가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아픔이 싹 가셨다.

3~4년 쯤 있다가 남편이 돌아 왔지만 가족들은 그에게 술을 못 마시게 했다.

“가족들이 싫어해서 어떤 때는 화장실 물통 안에 술을 감춰 놓았습니다.”

딸들이 근처 마트에는 그에게는 술을 못 팔게 했으므로 그는 배낭을 메고 멀리 술을 사러 다녔다.

“소주 3병만 있으면 정말 행복했습니다.”

술 살돈이 없어서 어떤 때는 쌀을 한 되쯤 퍼가는 데 가게에서 술을 잘 안 바꿔 주므로 서너 군데를 다녀야 했다. 어떤 사람은 돈이 없으면 마트에 가서 무조건 소주병 뚜껑을 딴단다. 그러면 카운터 보는 사람이 그냥 가져가라고 한다는 것이다. 뚜껑을 딴 술은 팔 지를 못하므로.

비오는 날의 수채화. ⓒ이복남

술을 마시다가 쓰러지고 병원에 입원하고 다시 퇴원하고 또 술 마시고……. 자신도 그런 생활이 싫어서 죽고 싶었다. 황령산으로 가서 절벽에서 뛰어 내렸다.

“죽지는 않고 허리만 다 까지고 다쳤습니다.”

그래도 그의 술타령은 계속되었다.

“한 번은 차도에 들어 누워 있었는데 ‘죽을라믄 남의 신세 망치지 말고 곱게 죽어라’고 고함을 치대요.”

그를 보고 멈춘 덤프트럭 기사였다. 광안리 바다에 뛰어 든 적도 있었는데 해경에 끌려 나오기도 했다. 그런 생활이 몇 년이나 반복되었다. 남편이나 아이들은 그를 벌레 보듯이 인간 취급도 안 했다. 그도 그런 줄은 알고 있었지만 절망의 늪에서 그를 구원해 줄 수 있는 것은 술 밖에 없었다.

마흔 네 살의 가을이었다. 그는 정신병원에 갇혀 있었다. “서은숙 씨, 술을 끊어야 됩니다.” 간호사가 알코올중독은 진행성질병이므로 질병은 치료를 해야 된다고 했다. 어떻게 치료를 하란 말인가. 알코올중독은 혼자서 치료하기가 어려우므로 단주모임에 나가보라고 했다.

정신병원에서 퇴원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술을 끊어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기에 마지못해 단주모임에 나갔다. 알코올중독자들이 술을 끊겠다는 단주(斷酒)모임인데 마치고 나면 또 술을 마셨다.

“내가 뭣하러 가느냐부터 내가 왜 알코올중독자냐”하는 반발심으로 마시고, 괴로워서 마시고 핑계는 얼마든지 있었다. 한 번은 자신이 하지도 않은 말로 누명을 쓰고 쫓겨나기도 해서 화가 나서 마시기도 했다.

정신병원에 입원하면 술을 못 마시는데 오래 입원하면 술을 끊게 되지 않을까.

“안 됩니다.”

서은숙 씨는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병원에 입원하면 술을 못 마시니까 처음에는 불안초조하고 전신이 쑤시고 아프기도 하지만 며칠만 지나면 괜찮아진단다.

“그 때부터 마른 주정을 하기 시작하는데 누가 자신을 입원시켰는지 온갖 저주와 원망으로 그 사람을 욕합니다.”

마른 주정(술 안마시고 하는 주정)으로 자신을 입원시킨 가족(부모 배우자 자녀 등)을 원망하며 복수로 이를 간다는 것이다.

현재 서은숙 씨는 술을 끊었다. 어떻게 술을 끊었을까.

“단주모임에서 다른 사람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나도 술을 끊어야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게 잘 안되었는데 어느 날 정말 충격을 받았습니다.”

6년 전 어느 날이었다. 큰 딸이 결혼을 하고 식당을 하고 있었는데 그날 딸이 술주정꾼들과 시비가 붙는 모습을 보았던 것이다.

“내가 이래 사니까 딸도 엄마를 닮을까봐 덜컥 겁이 났습니다.”

단주모임. ⓒ이복남

그 모습은 정말 충격이었다. 그가 속해있는 단주모임은 1주일에 두 번인데 그날부터는 1주일 내내 하루도 안 빠지고 단주모임을 찾아 다녔다. 단주모임은 각 구 마다 하나씩 있는데 한 번 모임에는 10여명이 참석한다. 그는 해운대 단주모임 소속이었는데 술을 끊기로 결심을 하고는 해운대모임 뿐 아니라 다른 모임에도 날마다 찾아 다녔던 것이다.

“자신이 알코올중독자였을 때의 경험담을 얘기하는데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라 얘기 못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자존심 내세우고 그러면 술 못 끊습니다.”

자신의 아픈 과거를 다 드러내고 그런 자신을 받아들여야 치료가 된다는 것이다.

그는 단주 모임에 나가면서부터 청소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했다. 낮에는 이집 저집 다니면서 청소로 몸을 혹사시키고 밤이면 단주 모임에 나갔다.

“아파트에 신주로 되어 있는 계단손잡이를 반짝반짝하게 닦는 것이 제일 힘듭니다.”

현재는 해운대 단주모임을 이끌고 있는데 일주일에 두 번 모임을 하고 있다. 알코올중독자는 혼자서는 술을 끊기 어렵다면서 혹시라도 주위에 알코올중독자가 있다면 자신에게 연락을 달란다. 함께 단주하자고.

“장애인복지, 그런 거는 잘 모지만 장애인은 남한테 피해는 안 준다 아닙니까.”

알코올중독은 자신 뿐 아니라 가족 친지 나아가 사회에 해를 끼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음주운전, 폭력범죄 등 대부분이 술 때문에 생긴다는 것이다. 장애인도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여 술 마시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지만 대부분이 숨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서은숙 씨의 마지막 바람은 알코올중독자 한 사람이라도 더 술을 끊게 하고 싶다는 것이란다. <끝>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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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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