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었을까. 뭉크의 절규까지 갈 것도 없었다. 꿈속의 아이는 어눌하지도 않았고 느리지도 않았다. 아이는 불이 났다고 절박하게 소리 질렀다. 놀라서 깨어보니 정말 불이 나 있었다. 그는 부랴부랴 불을 껐다. 아이들이 꿈속에서도 그를 구원해 준 것이다.

아이들의 멈칫거림은 또 다른 준비를 위한 몸짓일까. 아마도 그 아이들의 전생은 별이었을 것이다. 자주색 스웨터가 들꽃 같았다. 안개는 방울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되었다. 온누리에 별들이 태어났다. 들꽃처럼 별들처럼.
“처음에는 장애인의 아픔을 작품에 이용하는 것은 아닌지 많이 망설였습니다.”
그러나 들꽃 같은 아이들을 누군가는 어둡고 깜깜한 골방이 아니라 밝은 세상으로 끌어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아이들은 서로가 서로를 돕는 공생관계라고 같다고 했다. 동정과 극복의 대상에서 소통과 공감의 대상으로 바뀌었다.
“마음을 바꾸면 우리는 모두 하나가 됩니다.”
그가 그리는 것은 아름답고 때 묻지 않고 순수한 들꽃 같은 아이들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교통사고가 났다. 안경을 끼고 있었는데 안경이 깨지면서 동공에 박혔다. 그는 절망과 고통으로 비명을 질렀다. 안구를 제거하고 의안을 박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다친 눈이 나쁜 쪽 눈이었던 것이다.
그는 한 쪽 눈으로 들꽃 같은 별들을 그려서 전시회를 했다. 전시회가 끝나면 비평이랍시고 술꾼들과 어울렸고 옥신각신 티격태격 폭력적인 술버릇은 여전했다. 그러다 지각변동이 왔다. 교회를 다닌 것이다. 어느 날 새벽기도 때 기적처럼 술을 끊었다. 술을 안마시니까 술친구가 없어서 그림을 그리고 운동하고 기도하는 생활로 바뀌었다.

아내는 기독교로 개종 한 계기가 있었다고 했다. 집은 가난했고 늘 빚에 쪼들렸기에 중학생이 된 아들은 공짜로 기타를 가르쳐 준다고 해서 교회에 갔다고 했다. 아들이 교회에 나가는 것에 남편은 무심했고 아내는 묵인했다.
“아들이 신학교를 가겠다고 해서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가 벌써 7년 전이란다. 지금 되돌아보니 아내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다.
2012년 인사동 인사아트에서 전시회를 하고 있는데 한 관람객이 그림을 둘러보더니 우리나라사람들만 보기에는 너무 아깝다면서 세계인이 볼 수 있는 UN전시를 제안했다. UN전시라니 언감생심이었다. 그런데 며칠 후에 또 다른 사람이 와서 같은 말을 해서 그때부터 UN전시를 놓고 기도했단다.
“어느 날 남편이 옛날 술친구를 몇 년 만에 우연히 만났는데 그 친구가 기자였답니다.”
기자 친구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100m 작품을 UN에서 전시를 하고 싶다 했더니 친구가 도와주겠다고 하더란다.
UN전시를 희망한다는 이야기가 신문과 방송에 나가자 이낙연 국회의원(현 전남지사)이 찾아왔었고, 그 후 이낙연 도지사의 노력으로 2015년 12월 3일 세계장애인의 날에 뉴욕 UN본부에 전시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모두가 저희 길을 인도하신 주님의 은혜라고 아내는 울먹였다.
전시회의 주제는 「들꽃처럼 별들처럼」인데 100호 짜리 캔버스 77개로 구성된 100m를 기획했으나 그에게는 100m 대작을 그릴 재료비도 없었다.
“다시 아내에게 손을 내밀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내도 더 이상 빚을 얻을 데가 마땅찮아 하는 수 없이 명예퇴직을 결심했다. 그는 아내의 명예퇴직금으로 재료를 사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번 작품은 비발디의 사계에서 모티브를 얻어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나눠 그 속에 들꽃 같은 지적장애인을 담아냈다. 그는 3년을 그림 속에 파묻혀 들꽃 같은 아이들을 그려냈다.

그리고 2015년 3월부터 “들꽃으로 피어라”는 주제로 전국 순회전시를 시작했다. 2015년 3월 목포를 시작으로 광주 대구 청주 부산에서 UN전시를 앞둔 기념전시회를 했고 11월에 국회전시가 끝나면 뉴욕으로 갈 거란다.
“사람들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데 나이 들고 병들면 다 똑같아집니다.”
이번 전시회가 장애인에게는 위로와 희망을 주고, 비장애인에게는 공감과 감동을 조금이라도 선사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단다.
아내 최호순 씨가 모든 것을 기획을 하고, 큰딸은 결혼을 했지만, 아들은 UN전시회가 끝날 때까지 아버지의 매니저 역할을 할 거란다. 아직 마땅한 후원자를 구하지 못했지만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생각하기에 별로 걱정하지 않는단다.
김근태 그의 삶은 9회 말에 하나님을 만나 역전한 인생의 승리자이자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란다. 이제는 자신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내를 사랑하고 그리고 생명을 노래하는 화가로서 그의 그림 속에 살아 있는 들꽃 같은 아이들도 모두 모두 사랑한단다. 세상에서 소중하지 않은 생명은 하나도 없으므로.
김근태 화백은 UN전시동안 그림이 팔리고 기부가 된다면 「들꽃처럼 별들처럼」 예술학교를 세워 재능 있는 장애아들을 길러내고 싶단다. 그러기 위해서 독일 프랑스 등에서도 전시회를 가질 예정이라지만 그의 작품 속 들꽃 같은 지적장애인들의 얼굴이 루브르 박물관에 당당히 걸리는 꿈이 하루 빨리 이루지기를. <끝>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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