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보문화진흥원의 중고PC 보급사업에 대한 소개 페이지.

“컴퓨터 좀 기증받고 싶은데요? 얼마나 걸리고, 컴퓨터 사양은 어떻게 되나요?”

“신청하시면 받을 때까지 한 달반에서 두 달 정도 걸리고요. 사양은 펜티엄Ⅱ입니다.”

“네! 펜티엄Ⅱ라고요? 네, 잘 알겠습니다.”

수업에 필요한 컴퓨터를 기증받고 싶어서 한국정보문화진흥원에 전화했던 작은자야간학교(교장 김도진)의 한 교사는 전화를 끊고 나서 실망감이 밀려왔다. 컴퓨터를 무료로 보급한다고 해서 잔뜩 기대를 품고 전화를 했지만 사양이 너무 낮아서 받아봤자 사용할 일이 없을 같아서였다.

얼마 전 인천시교육청으로부터 중고PC를 기증받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컴퓨터를 준다고 해서 일단 받아놓았는데, 사용하려고 보니 사양이 너무 낮아서 쓰레기만 늘어난 꼴이 됐기 때문이다. 가관인 것은 컴퓨터를 기증하면서 하드웨어를 포맷시키지 않아 교육청의 각종 공문서들이 그대로 들어있기까지 했다.

▲겉도는 중고PC 보급사업=중고PC 보급사업은 장애인 등 정보소외계층이나 저소득층에게 도움을 주기위해 시작된 사업이지만, 관련기관의 부적절한 사업수행으로 겉돌고 있는 실정이다. 이 문제가 13일 열린 한국정보문화진흥원 국정감사에서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소속 의원들에 의해 지적됐다.

먼저 열린우리당 강성종 의원은 한국정보문화진흥원이 지난해 12월 국민대에 의뢰해 실시한 ‘정보접근성 제고사업의 실태조사 및 성과평가에 관한 연구’ 결과를 인용, “중고PC 보급사업의 수혜자 중 65.1% 만이 PC를 사용 중”이라고 꼬집었다.

이 연구결과에 따르면 중고PC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로 응답자의 55.6%가 ‘PC 사양이 너무 낮아서’라고 응답했다. 또 올해 보급된 중고PC의 70%가 펜티엄Ⅱ급이었고, 펜티엄 III급은 30% 이하인 것으로 나타났다. 강 의원은 “중고PC 보급사업의 본래 목적이 무색하다”며 “보급된 중고PC는 고물 덩어리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외에도 강 의원은 “지난해와 올해에 걸쳐 부처별 중고PC 기증 현황 결과, 정부부처의 중고PC 기증이 전체 PC 기증의 0.55%에 불과하다”며 중고PC 보급사업에 대한 정부의 무관심을 지적했다.

한나라당 김희정 의원도 “지난해 90%, 올해 8월 현재 90%로 수집된 중고 PC의 불량률이 너무 높고 사양(최저 펜티엄Ⅱ233)이 떨어져 수혜자에게 전달하고도 쓰레기를 주었다는 불만을 듣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김 의원은 “민간기업의 경우, 컴퓨터를 5~6년 정도에 한 번씩 교체하고, 교체되는 PC들은 대부분 현재 ‘중고 PC 수집기준 최저 사양인 펜티엄Ⅱ 233’ 보다 고사양인 펜티엄Ⅲ 500이상으로 기업의 규모에 따라 대량의 교체가 수시로 발생하고 있으나 한국정보문화진흥원이 적극적인 수집을 하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와 관련 자유민주연합 류근한 의원은 “정부, 공공기관 및 기업체 등에서의 PC사용 연한을 감안했을 때, 현재 주로 펜티엄Ⅳ 이상을 사용하고 있고 펜티엄 III는 사용연한이 거의 다 됐다. 그런데도 기증된 PC 중에 펜티엄 III가 약 30%에 불과한 것은 이들이 기증보다는 매각을 위주로 자산을 처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중고PC 보급사업 개선책=유명무실한 중고PC 보급사업을 개선할 수 있는 대안도 이날 국정감사장에서 제시됐다. 자민련 류근찬 의원은 캐나다의 ‘Computers for Schools(CFS)’ 프로그램에서 벤치마킹을 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류 의원이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캐나다의 경우, 지난 93년부터 2002년까지 전국의 학교와 도서관에 30만대 이상의 컴퓨터를 보급했다. 캐나다가 이처럼 컴퓨터 기증과 보급이 활발한 것은 연방정부에서 잉여동산자산처분법에 관한 규정에 의해, 캐나다 국가를 네트워크화하기 위한 CFS 프로그램에 잉여 PC를 기증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

류 의원은 “중고 PC의 효율적 활용과 정보소외계층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서 국가기관 등이 정보소외계층 및 비영리단체에 무상으로 양여할 수 있도록 관련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한국정보문화진흥원이 류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중고 PC 기증을 활성화하기 위해 한국정보문화진흥원은 지난 4월 개정된 `법인세법시행규칙'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하다고 내다봤다. 또 공공기관의 경우 사용하지 않아도 사용연한 제한으로 기증이 어려운 문제 해결을 위해 `물품관리법' 등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이에 류 의원은 “물품관리법 제 38조의 ‘불용품의 양여’ 조항을 개정해, ‘정보격차해소에관한법률’에서 규정한 ‘정보통신서비스를 접근하거나 이용하기 어려운 자’에게 우선 공급되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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