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우주”의 표지. ⓒ밝은미래
“안녕, 우주”의 표지. ⓒ밝은미래

【에이블뉴스 서인환 칼럼니스트】 “안녕, 우주”(Hello, Universe)는 에린 엔트라다 켈리(Erin Entrada Kelly)가 2017년에 출판한 소설이다. 출판한 지 1년 후에 뉴베리 대상을 수상했다. 미국 청소년 소설로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아이들이 우연히 얽히며 성장하는 이야기다.

뉴베리 메달은 1922년에 제정된 것으로,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아동문학상 중의 하나이다. 아동문학 노벨상이라고도 불린다.

상을 만든 존 뉴베리의 이름을 딴 상으로, 미국도서관협회에서 선정을 주관하고 있다. 필자가 이제 이 책을 읽은 것은 한글 번역판이 이제 나왔기 때문이다.

에린 엔트라다 켈리의 어머니는 필리핀 사람이고, 아버지는 미국 선원이었다. 작가는 피부색과 생김새가 다른 아이로 호기심도 많았지만 두려움도 많았다. 친구들로부터 이상한 이 취급을 받으면서 외로웠지만, 책을 통해 그 외로움을 탈출할 수 있었다. 책을 좋아하면서 작가가 될 수 있었고, 다른 문화 속에서의 경험이 “안녕 우주”라는 책을 쓰게 하였다. 청각장애인은 바로 언어가 다른 외국 사회 속에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막 중학생이 된 아이들 4명이 소설에 등장한다. 버질은 남자아이지만 용기가 없고 부끄러움이 많다. 소심하고 자기를 놀리는 사람에게 대항하지 못하고 참기만 하는 청각장애 아이다. 발렌시아는 매사에 적극적이고 당당한 청각장애 여자아이다. 카오리는 심령에 관심이 많으며, 운명을 믿음으로써 우주를 이해한다.

점성술은 청소년들의 솔깃한 주제이다. “우주 안녕”이란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 환타지 공상 소설인 줄 알았는데, 여기서 우주는 신이 점지해 준 운명을 말하는 것이었다. 카오리는 정령을 믿으며 점성술을 행한다. 쳇은 버질을 ‘띨띨이’라고 부르며 업신여기고 놀리고 무시하는 아이다. 버질이 중학생임에도 구구단을 몰라 특수교사의 별도의 수업을 받는데, 그 반에는 발렌시아도 있다.

수업은 교사 1인에 학생 1인으로 수업하는 개별화 지도 모습이다. 구구단을 모른다는 말은 버질이 다른 장애도 있음을 말하는 것 같다. 쳇이 갑자기 나타나 저돌적으로 괴롭히기 때문에 버질은 쳇을 ‘황소’라고 부른다.

황소는 청각장애아를 만나면 손가락을 귀에 꽂아 흉내를 낸다. 세상에 겁이 없는 쳇도 개는 무서워한다. 성격이 어떠하다는 것도 고정관념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변할 수도 있는 것이다. 누구나 약점은 있는 것이다.

버질이 집에서 부르는 별명은 ’거북이‘이다. 껍데기 밖으로 좀처럼 나오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발렌시아는 로버타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장애로 인해 친구 사이에서 빨리빨리 적응하지 못하자 점점 멀어지더니 ‘역사적으로 유명한 청각장애인’이란 책을 선물하고 떠나버린다.

두 청각장애인은 입술을 읽는데, 이것을 눈으로 듣는다고 표현한다. 버질이 엄마에게 듣기 싫다며 거북이란 말을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으나, 장애인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고 엄마라서 하는 말이라고 일축해 버린다.

이야기꾼 할머니는 버질에게 여러 가지 필리핀에서 살면서 알았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손가락이 여섯인 소녀 이야기를 듣고 버질은 병원에 가서 수술을 했느냐고 묻자 가난해서 손가락 하나 더 달고 그냥 살았다고 말한다.

장애는 평생 함께 사는 것이란 암시를 말해 준다. 루비 산 살바도르는 일곱 언니를 두었다. 언니들은 태어날 때 다 점괘가 나와서 운명을 알고 살았는데, 자기는 그렇지 않아 운명을 몰라 운명을 찾아 길을 떠났다는 이야기도 한다. 여기서 운명은 자신이 마음먹기 나름이기도 함을 암시한다.

버질이 가장 믿는 할머니가 들려주는 민담 중에는 바위 소년 이야기가 있는데, 버질은 자주 꿈에서 너무 외로워 숲속으로 가서 바위에게 잡아먹히는 꿈을 꾼다. 페데리코왕은 늘 슬픔에 젖어 있었는데, 너무 울어서 온 나라가 물에 잠기고 섬이 떠내려가 사람들이 서로 멀어져 혼자가 된 왕이 악어에게 잡아먹혔다는 이야기도 들려준다.

악어 통제 속에 있는 한 마을에서 사람들이 너무나 배가 고프지만 악어에게 주어야 하기에 음식을 먹지 못하는데, 한 아이가 음식을 먹으면 악어가 없어진 음식 대신 잡아먹힐 것이라는 충고를 무시하고 배가 고픈데 먹고 봐야 한다며 음식을 먹는 이야기와 대조를 이룬다. 이는 운명을 이겨낼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할머니는 다야판이란 소녀 이야기도 들려주는데, 다야판은 곡식을 재배하는 법을 몰라 굶주리고 있었다. 곡식정령이 나타나 곡식을 주고 농경법도 가르쳐 주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신에게도 운명을 바꾸어 줄 정령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걸리버라는 설치류 애완동물로 기르고 있는 버질은 자신의 운명을 바꾸어 줄 카오리를 찾아가 마음속에 있지만 단 한 번 말도 해 보지 못한 발렌시아와 운명으로 엮을 방안을 물어본다. 카오리는 서로 다른 돌맹이 다섯 개를 찾아올 것과 카오리가 점성술사라는 홍보를 하는 명함을 마트에 부착해 줄 것을 요구한다.

보청기를 끼웠다고 대화가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얼굴을 마주 보고 말할 때 가능하며, 소리의 확대는 잡음이 확대되어 일부만 알아을음을 설명한다. 발렌시아는 눈으로 듣기에 버질 이름도 모르고 얼굴만 알고 있다. 버질이 마트에서 발렌시아를 만나 인사를 하고 싶지만 용기도 없고 보청기를 낀 사람과 대화법도 몰라 오히려 피해 버린다. 발렌시아도 친구가 없어 외롭지는 않지만(당당한 태도를 가진 성격), 친구 하나 어울리지 못함이 이상해 비법을 알아보려고 버질이 부착한 광고를 보고 카오리를 찾는다.

쳇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으려면 공포를 조장하거나 감탄을 하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지 못하면 먹이사슬 맨 아래 약자가 된다고 말한다. 뛰어나게 잘 하지 못하면 별 볼 일 없는 인간이라는 아버지 말에 쳇은 현재 환경에서 잘 할 수 있는 농구를 열심히 연습하지만 선수단에 끼지 못한다.

쳇이 고정관념이나 잘못된 장애 인식을 가지게 된 환경을 이렇게 설명한다. 발렌시아는 집에 청각장애인용 초인등이 있는 등 환경에서 왜 당당한 아이가 되었는지, 버질은 간호사로 바쁜 엄마와 무관심한 형들에서 왜 의기소침하게 되었는지 환경을 보여준다.

버질 할머니가 버질에게 하루는 빨간 나무에 반해 다가갔다가 나무에게 잡아먹힌 이야기를 하면서 오늘은 빨간색을 조심하라고 말한다. 버질이 전도를 하러 온 사람에게서 받은 책자에서 ‘귀를 기울이는 자만 말씀을 들을 수 있나니’란 문구를 본다.

이는 이사야서 55장 3절의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어라. 그러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란 문구를 해석한 것 같다. 중세에는 청각장애인(농인)들은 회개를 말로 할 수 없으므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한 적이 있기도 하다. 듣는 것은 귀만이 아니라 눈으로도 들으며 말은 입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도 한다.

돌을 찾아 찾아간 숲에서 쳇을 만난다. 쳇이 버질의 가방(가방 속에는 애완동물이 들어 있다)을 마른 우물 속에 던져버리고, 버질은 애완동물을 살리기 위해 우물 속으로 들어간다. 우물은 사다리가 있지만 길이가 충분하지 않아 내려갔지만 올라오지 못한다. 쳇은 뱀의 허물을 보았다는 친구보다 더 센 것을 보여주려고 뱀을 사냥하러 숲에 왔다. 뱀을 찾다가 뱀에 물리자 독뱀인 줄 알고 죽음을 기다린다.

버질이 약속 시간이 되어도 나타나지 않자, 카오리와 발렌시아가 무슨 일이 일어났음을 직감하고 사라진 자를 찾는 식을 거행하기 위해 숲으로 온다. 그곳에서 밥을 챙겨 주던 개를 만나고, 쓰러져 있는 쳇도 만난다. 발렌시아는 쳇이 죽게 되었다고 말하자 시간이 한참 지났음에도 몸에 증세가 없음을 눈치채고 엄살부리지 말고 일어나라고 말한다. 식을 거행하려고 초에 불을 붙이려다 풀에 불이 나서 불은 껐지만 식을 치르지 못하게 되었다. 우물, 동굴 등은 문학에서 자궁을 상징한다.

우물 속에 갇힌 버질은 바위에 먹힌 아이나 악어에 잡힌 신세가 되어 소리를 지르고 울어봐도 소용이 없었다. 어둠의 입에 들어간 것이다. 이 우물은 매우 위험한 상태를 말하기도 하지만 다른 삶을 찾아 변신하는 생명의 재탄생 역할을 하기도 한다.

죽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 버질은 발렌시아에게 자신 있게 고백을 해 볼 걸, 엄마에게 별명을 부르지 말라고 확실하게 말 할 걸, 쳇에게 강력하게 기 죽지 않고 말할 걸 하고 후회함으로써 새로운 장애에 대한 태도를 갖게 된다. 우물 속에서 느끼는 두려움은 거대한 새인 ‘파’가 나타나는 환청을 듣게 된다.

‘파’는 바로 두려움이다. 그리고 루비 산 살바도르의 용기를 북돋우는 소리도 듣는다. 두려움을 극복하면 악몽이 사라진다. 루비는 버질에게 바야니(영웅)라고 부른다. 버질은 껍데기도 눈총을 받지 않는 발리(이상향)을 생각하지만 루비는 형들은 왜 뭐든지 잘하느냐는 질문에 그게 뭐 중요하냐고 답한다.

파울리토는 겨우 키가 3cm라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사람들이 자기 잘났다고 떠들기만 하는 동안 모래를 조금씩 날라다 요새를 지어 용을 물리치자 왕으로 추대되었다는 이야기를 루비에게 말하며 스스로 자문자답으로 이야기 속의 교훈을 찾아낸다. 중요한 것은 장애가 아니라는 것을. 버질이 자포자기하려 하자 루비는 ‘소용없어?’라는 질문이 세상에서 가장 나쁜 말이라고 말한다. 루비는 또 다른 내면의 자신이다.

버질은 카오리에게 자신이 사귀고 싶은 사람 이름을 쑥스러워 VS라고만 말했는데, 그것이 발렌시아라는 유추하여 알게 되고, 버질이 시간대별 있을 만한 공간을 생각하다 숲에 쳇과 같은 공간에 있었을 것이라는 점과 발렌시아가 자주 들르는 숲에서 우물에 다섯 개의 돌맹이가 있고, 우물 뚜껑이 평소와 달랐음을 생각하고 우물에 버질이 빠졌음을 알게 된다. 버질은 우물에서 카오리 동생이 가지고 있던 줄넘기를 밧줄 삼아 구출이 되는데, 새로운 눈을 뜨면 세상이 달리 보인다는 것을 암흑 속을 경험하면서 알게 된다.

자기를 구해준 발렌시아 앞에서 얼굴만 빨개져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는 버질을 보고 카오리는 실망한다. 고맙다는 말 한마디도 못하고 말았던 것이다. 발렌시아는 자신도 과거에 애완동물을 키웠던 경험을 말한다(애완동물 이름은 릴리푸트인데, 갈리버 여행기에서 처음 찾아간 섬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청소년 문학이므로 흥미를 더하려고 이런 작품에서 이름을 따오기도 했지만, 두 사람이 새로운 모험의 여행 즉, 우주적 인연으로 발전해 나갈 것이라는 것을 상징하기도 한다) 버질은 엄마에게도 쳇에게도 당당하게 말하고 따지는 변모된 모습을 보이지만 발렌시아에게만은 부끄러움을 걷어내지 못한다.

단지 밤에 문자로 ‘안녕’이란 문자를 보내 마음을 전한다. 이것만으로도 발전한 것이고 앞으로 잘 이어나갈 것을 암시하면서 소설은 끝이 난다. 그리고 숲에서 따르는 개를 집으로 데리고 오는 것으로 이제 버질이 강해졌음을 상징한다.

갈등과 고정관념, 미국으로 건너와 늘 외로움으로 두통을 가진 할머니, 장애에 대한 편견 등을 청소년들의 사회라는 우주 속에 필연적인 긍정적 에너지를 찾아냄으로써 우리는 누구나 귀한 별들로서 우주를 구성하고 있어 공존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함을 행간에 깔고 있다. 우리는 우주만큼 무한한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누구든지 존중받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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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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