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 자폐 당사자의 권익 관점에서의 부모 진영에 대한 글을 썼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당사자의 목소리와 당사자 부모 간의 입장 차가 어쩔 수 없이 있음에도 협력적 동반자가 될 여지가 있음을 말한 글이었다.
그러나 현실적인 장벽은 다른 곳에서도 발생한다. 바로 정말 쉽게 건드릴 수 없는, 그러나 발달장애와 신경다양인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언젠가는 피하려고 해야 피할 수 없는 주제이다.
최중증으로 분류되는 발달장애인의 가족과, 상대적으로 덜 중증으로 분류되면서 직접 목소리를 내는 당사자들에 대한 것이 그것이다.
각자의 다른 한(恨)이 있으니 손을 맞잡는 방향으로 감정이 흐르기 쉽지 않다. 바로 이것이, 이 주제가 자폐 당사자와 당사자 부모 간의 이야기 중 단 하나의 부분임에도 충분히 글감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하고 글로 옮기게 된 이유이다.
법적 장애인으로의 등록, 인정 없이 명목상 비장애인으로 힘겹게 살아오고, 앞으로도 등록 희망이 희박한 채 계속 살아가야 하는 미등록-경증 자폐 당사자의 존재는 이제 극소수의 특출난 일로 여겨지는 무시할 일 취급까지는 아닌 듯하게 되었다.
이 점은 (비록 현실은 갈 길이 많더라도) 가시화 측면에서 진전이고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자폐 당사자가 주도적으로 글을 쓰고 목소리를 내는 것이 조금씩이라도 나오기 시작함으로 인해 생긴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강력히 유효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은 '이런(미등록-경증 자폐인) 사람들의 사회적 사각지대 호소는 기본적인 자신의 일상생활을 전혀 못 돌보는 최중증 발달장애인의 부모님들이, 가족들이 가진 아픔 앞에서는 배부른 기만에 불과한가?'라고 할 수 있다.
일상 내내 계속, 사실 그대로의 고통으로 가득 찬 이들의 서사가 가진 무거움 앞에서 감정적으로 "애매하지 않아서 등록이라도 할 수 있던 처지가 부럽다."며 자폐 당사자가 정말 '눈치 없이' 돌직구로 말해서 듣는 이의 감정이 폭발해 언쟁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런 정서적 차이를 이유들로 하여, 중증 발달장애인 자녀의 부모님들이 모이는 인터넷 카페 등의 커뮤니티에서는 미등록-경증 자폐 당사자의 가입을 반기지 않는 편인 분위기가 조성되기도 한다.
저렇게 그대로 표현하는 게 자폐인의 장애 특성이기도 하니 따옴표를 친 건 있지만, 눈치없다는 표현을 쓴 것처럼 당사자라도 이런 식의 태도를 가진다면 필자는 속이 시원할 것도 없고 동의하지 않음을 분명히 한다.
등록 제도에 문제가 있더라도 그 감정이 발달장애에 대한 고통을 함께 겪는 이의 역린을 건드려 싸우자는 방향이면 곤란하다는 것이 이 글의 주제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렇다고 미등록-경증 자폐 당사자들에 대한 오해를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이들의 사실상 거의 전부는 최중증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을 대상으로 한 근본적인 적이 될 의지가 없다는 것에 있다.
그들을 자신에 대한 차별을 행하는 주체로 인식하지도 않는다. (장애인이라도 더 중증도의 장애인을 비하하는 경우야 있지만 그건 이 글과는 논외다.)
절대 다수의 미등록-경증 자폐 당사자들은 그런 무거운 주제 앞에서는 기가 눌려버려 자신의 표현을 검열하고 삼가게 되기 십상이다. 미등록-경증 발달장애인의 어려움을 진지하게 말하려던 사람이라도 쉽지 않다. 이렇게 당사자의 입이 쉽게 열리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게 뭐가 문제냐면, 여기서 언급되는 양 측은 발달장애로 인해 사회적으로 불이익을 겪고 차별을 겪어 현실적인 더 나은 생존책과 복지를 필요로 하는 이들이다. 이런 뜻을 위해 내는 목소리의 총량과 다양성이 발달장애 범주 안에서 줄어드는 모습은 '불행 배틀'의 결과로써 모두의 상처, 모두의 불이익일 수밖에 없다.
한편, 다른 방향으로는 미등록-경증 자폐 당사자를 부러워하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만 써 놓으면 대체 이게 무슨 말이냐 싶겠지만, 다름아닌 중증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님들이 '내 자녀가 저만큼이라도 되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정서이다.
사실 이런 경우를 부러워하는 것이 근본적으로는 마스킹(자폐 특성을 의도적으로 숨김)으로 인해 힘들어하고 있는 당사자에게 마스킹 잘 되는 거 부럽다고 하는 현상이나 마찬가지일 수는 있다.
그러나 미등록-경증 자폐인들도 대부분은 그런(내 자녀가 저만큼이라도 되었다면) 말까지 나온 상황을 공감하고 납득하니 이 말을 어쩌다 한두 번 듣는 것을 크게 면전에서 불쾌해하는 경우는 잘 없다.
허나 생각해볼 부분은 분명 존재한다. 가령 '정상성을 벗어난 청년'이 되기 쉬운 미등록-경증 자폐 당사자, 내지는 신경다양성적 특성을 가진 자녀의 부모 입장이 또 있을 것이다.
그 부모가 자녀의 신경다양성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질지도 천차만별인 만큼 정말 쉽게 말할 수 없는 다양한 경우의 수가 있다. 정신적 장애와 신경다양성 담론에서 다양성이 말살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는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불행 배틀'만 하다간 끝까지 불행 총량 대결만 하다가 끝나지 발달장애와 신경다양성, 신경다양인에 대한 사회적 진전에는 나아가지 못한다고 요약할 수 있다.
진영을 막론하고, 감정의 골이 쌓였을 지 모를 이들에게 조금만 더 이성과 침착함을 당부드리고 싶은 것들로 마무리하려 한다.
미등록-경증 자폐 당사자들의 어려움을 사회에서 방관하지 말고 사각지대 없이 주목하자고 한다고 해서 최중증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에 대한 가해나 모욕이 되는 것이 아니다. 미등록 정책이 적어도 최중증 발달장애인 가족에 안배할 자원을 뜯어가서 만드는 것은 아닐 것이다.
설령 정말로 무게감이 온전히 같은 주제가 아니더라도 이거 하고 저거 한다면 모를까 무게를 저울 달아 덜 무거운 쪽을 사회에서 팽개쳐 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그리고 최중증 발달장애인 가족들이 겪는 어려움을 헤아린다고 하는 것이 미등록-경증 자폐 당사자들을 '배가 불러서 토다는 이들'로 만드는 것 그 자체가 되서는 안될 뿐만 아니라, 본질적으로 그런 차원의 문제도 아님을 진영보다 이성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발달장애 정책에서 다양한 주체의 목소리가 공론장을 오가는 것이 익숙해지는 현실을 마주하기를 꿈꾸고, 그것이 모두에게 상처 대신 진전을 만드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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