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주익 지구로 가는 관문인 에스퍄냐 광장. ⓒ이원무
몬주익 지구로 가는 관문인 에스퍄냐 광장. ⓒ이원무

【에이블뉴스 이원무 칼럼니스트】코로나 19가 종식된 이후 우리나라 사람들이 해외로 가려는 움직임이 많아졌는데, 여행을 좋아하는 필자로선 언제 유럽을 갈까 고민 중이었다. 8년 전 유럽여행 당시 스페인에서 바르셀로나만 2박 3일이란 짧은 기간에 갔다 온 게 못내 아쉬웠다. 바르셀로나 포함해서 스페인을 이번에 조금은 여행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긴 했었다.

그러다 마침 모로코 사막 투어가 인기 있다고 해 동영상을 봤는데, 음식도 맛있게 보였고, 투어 자체가 재미있을 거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모로코는 지리적으로 스페인과 가까운 곳에 있기도 하고, 유럽에서 저가항공이나 페리로 갈 수 있겠다는 생각에 사막 투어할 겸해서 모로코 여행도 결심했다. 그리하여 올해는 스페인, 포르투갈, 모로코를 중심으로 하고, 이외에도 프랑스, 독일, 벨기에, 스위스 등지도 여행하자는 생각에 약 2개월 동안 여행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비행기표, 숙박시설(가서 돈을 내야 하는 숙박시설도 일부 있음)을 예약하면서 결재한 다음, 7월 16일 드디어 싱가폴 항공을 타고 싱가폴을 경유하고 거기서 스위스항공으로 환승해 약 13시간 비행 만에 스위스 취리히 클로텐 공항에 도착했다. 이후 짐을 찾고, 프랑스 디종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싣고서 그곳에 도착해 본격적으로 여행에 돌입했다.

스위스항공을 타고 도착한 스위스 취리히 클로텐 공항. ⓒ이원무
스위스항공을 타고 도착한 스위스 취리히 클로텐 공항. ⓒ이원무

한 6일 동안은 디종, 마르세유, 몽펠리에 등을 돌아다니면서 사람들과 만나고, 그곳의 음식들을 먹으면서 차츰 적응해갔다. 그러다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넘어갔는데, 거기서 재밌고도 기억에 남을 경험을 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선 바르셀로나 여행에서 느낀 점을 잠깐 얘기해보겠다.

7월 23일 바르셀로나 산츠 역에 도착한 후 호스텔로 가 피곤한 몸을 쉬고, 다음날 글을 어느 정도 쓰고 나서, 오후쯤에 33년 전 올림픽이 열렸었던 몬주익 지구로 여행하게 됐다. 당시 마라톤 선수인 황영조 선수가 우승했던 몬주익 주경기장으로 갔는데, 경기장 문이 닫혀서 그냥 겉모습만 사진 찍고 길을 걸었다.

그러다 옆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제7대 회장을 지냈던 고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를 기리는 박물관이 있는 걸 봤는데, 이전에 봤었던 로잔 올림픽박물관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아서인지, 이곳을 한번 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몬주익성에 가면 바르셀로나 바다를 볼 수 있기도 하고, 그곳 폐장시간이 다가올 걸 생각해서인지, 몬주익성을 먼저 들르기로 했다.

지중해가 보이는 몬주익성 입구 근처. ⓒ이원무
지중해가 보이는 몬주익성 입구 근처. ⓒ이원무

약 25~30분 정도 걸은 후 몬주익성에 도착해 입장표를 사고, 그곳에 입장했는데, 뭔가를 전시하는 게 눈에 확 뜨여 그곳에 가봤다. 봤더니 현재는 스페인 유명 축구팀 FC 바르셀로나가 임시 홈구장으로 사용하고 있는 바르셀로나 올림픽 주경기장 역사와 관련해 전시한 내용이었다.

그곳엔 1936년 가을 ~ 1937년 봄까지 스페인 내전 기간 당시 내전을 피해 스페인 전역에서 온 21,000명 이상의 피난민들을 수용했던 역사가 있단다. 그런 역사와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을 피하려 고향을 탈출해 리비우 아레나 경기장에서 피난 생활을 했던 사람들의 경험을 비교하며, 둘 간에 분명한 유사점이 있음을 전시내용에선 보여준다. 아울러 FC 바르셀로나 구단과 재단이 유엔난민기구(UNHCR) 과의 협력을 통해 우크라이나 난민 지원 의지를 표명하는 게 목적임을 전시내용에선 밝히기도 한다.

전시물 내용을 보며, 우크라이나 난민 지원에 대한 FC 바르셀로나 구단의 지원 의지와 연대의 뜻을 알 수 있었다. 실제로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에, FC 바르셀로나 구단이 난민 관련 물품 수집과 전달 등을 했고, 바르셀로나에 도착한 우크라이나 난민 청소년들과 관련해 다양한 스포츠, 교육 활동 등을 했다고 하니, 생각해보면 전시물에서 그런 뜻이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한편으로는 난민과 전쟁의 비극적인 역사는 반복된다는 쓰라린 교훈도 보게 되는 것 같다.

몬주익성에 전시된 올림픽 주경기장의 역사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한 내용들을 유심있게 보는 관광객들. ⓒ이원무
몬주익성에 전시된 올림픽 주경기장의 역사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한 내용들을 유심있게 보는 관광객들. ⓒ이원무

이와 관련해 작년 이맘때쯤 우크라이나 정부에 관한 장애인권리위원회 심의가 있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아직도 끝나지 않은 상황에 위원회는 관련 우려, 권고를 최종견해에 담았는데, 찾아보니 다음 내용들을 포함한 우려였다. ▲인도적 지원 자원 분배 결정에 장애인에 대한 고려 부족, ▲전쟁 중에 장애인은 폭력에 더 많이 노출되고, 특히 장애여성과 소녀는 학대, 인신매매, 강제 결혼의 위험성이 큰 것, ▲장애아동은 러시아 점령 지역으로 강제 이송, ▲분쟁으로 장애 입은 사람이 연금, 장기재활서비스 등의 수급 절차 복잡 등이 우려 사항에 있었다.

관련 권고로는 ▲장애여성, 소녀를 강제 결혼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법적 장치 마련하고 사례 조사와 가해자 차벌 및 포괄적인 피해자 보상, ▲점자, 쉬운 정보 등 접근 가능한 형태로 전쟁 등의 긴급상황 정보 제공, ▲분쟁으로 장애 입은 사람들의 장기재활서비스 및 연금 수급 등에 관한 접근성 강화를 위한 절차 간소화 등을 위원회에서 발표했다.

이걸 보면서 특히 우려 사항을 읽다 보니 전쟁 시 장애인은 버려진 상태를 넘어, 폭력과 공포, 억압을 겪는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추위와 굶주림에 장애인은 도망칠 수도 없었다고도 들었다. 장애인에게 잔혹하고도 비극적인 이런 현실을 다시금 보며 생각하니, 몬주익성의 전시물에 담긴 연대의 뜻에 함께하고픈 마음을 나 자신의 마음속에 재차 확인하게 된다.

이후 몬주익성의 역사와 건축양식 등의 전시를 보고 나서, 도보로 20분 정도 걸어 국제올림픽위원회 제7대 위원장이었던 고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위원장을 기리는 올림픽 및 스포츠 박물관에 도착해 전시물들을 봤다. 고대·근대 올림픽의 역사와 올림픽 마스코트, 성화봉, 올림픽경기의 위대한 족적을 남긴 선수들을 보면서 다시금 그때로 돌아가고 싶었다.

고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국제올림픽위원회 전 위원장을 기리기 위해 만든 올림픽 및 스포츠 박물관. ⓒ이원무
고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국제올림픽위원회 전 위원장을 기리기 위해 만든 올림픽 및 스포츠 박물관. ⓒ이원무

더군다나 패럴림픽 전시물도 함께 보게 됐는데,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 전 위원장이 밝혔던 다양성 속의 통합을 부분적으로나마 느끼게 되어, 나름대로 의미 있다고 봤다. 파리올림픽과 패럴림픽에서의 디자인 통합 시도도 있었던 적을 생각하면 이전에 비해선 조금 나아지긴 하고 있다. 물론 정신적 장애인의 경우, 아직까지 올림픽, 심지어 패럴림픽 참여가 저조하고, 차별의 벽에 직면하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이렇게 하루가 지나고, 다음날엔 8년 전에 봤던 가우디의 걸작인 사그리다 파밀리아를 다시 관람하기 위한 입장권을 인터넷상에서 신청하려고 했는데, 이미 다 매진된 상황이었다. 워낙 인기가 많은 곳이니 그랬나 보다. 그래서 사그리다 파밀리아 대신 '카사 바트요''카사 밀라' 입장권을 인터넷에서 신청해 표를 얻었다. 그리고선 1984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됐으며, 해초를 닯은 철제 발코니 난간이 특징인 '카사 밀라' 건물로 향했다.

'카사 밀라'에 도착해 그곳 직원에게 입장권을 보인 다음, 전달받은 오디오 기기를 갖고, 건물의 각 부분에 대한 한국어 설명을 듣게 됐는데, 놓친 설명은 다시금 반복해 나의 개인 카톡에 저장했다. 집 전체는 대리석 재료를 활용했고, 요리사들이 편안하게 일하도록 미닫이문을 통해 넓은 부엌과 식사서비스 공간으로 나눈 부엌 부분에선 가우디의 세심함이 조금은 느껴졌다. 이외에도 영국 정원 도시에 영감받은 구엘 의뢰로 가우디가 만든 구엘 공원 등에 대한 설명도 듣게 됐다.

설명에 집중하다 조금씩 졸음이 몰려오는 그때, '카사 밀라' 옥상으로 올라가서 그곳에서 구조물들을 접했다. 구조물들을 보는 순간 아름다운 예술작품들을 보는 듯한 느낌에 졸음이 달아나고, 황홀한 기분이 밀려와 연신 사진을 찍기 바빴었다. 자연과 건축의 조화까지도 느껴지다 보니, '카사 밀라' 입장권 값이 아깝지 않다고 느낄 정도였다.

안토니오 가우디의 걸작인 '카사 밀라' 옥상에 있는 작품들. ⓒ이원무
안토니오 가우디의 걸작인 '카사 밀라' 옥상에 있는 작품들. ⓒ이원무

기분 좋게 '카사 밀라' 방문을 마친 다음, 핸드폰 충전을 하러 어느 한 카페에 가서 음료를 마시고 음식을 먹었는데, 조금 이따 로제의 ‘아파트’란 곡이 울러 펴졌다. 로제가 자신이 좋아하던 게임인 ‘아파트 게임’에서 영감을 받아 곡을 만들었다는데, 필자의 경우엔 윤석열 파면을 위한 시위 때 적지 않게 들었던 기억이 난다. 경쾌한 음색에 따라부르기도 쉬워 그 곡을 좋아했는데, 그게 바르셀로나의 한 카페에 나오다니! K-POP의 위상에 다시금 자랑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충전을 어느 정도 하고 '카사 바트요'로 갔는데, 이 건물도 유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단다. 당시에 가우디는 바트요씨로부터 예술적 결정과 관련한 전권을 받으면서 빛, 색이란 주제로 상상력이 담긴 예술작품인 '카사 바트요'를 만들었다고 한다. 거북이 등껍질 모양의 현장 채광창 방식으로 '카사 바트요' 건물 구석구석에 빛이 닿게 만들었다고 하니 자연과 건축을 조화시키려는 가우디의 생각과 노력을 다시금 보는 듯했다.

내화성 도자기로 제작해 열기 보존하는 버섯 작품이 있는 바트요씨의 서재, 부피가 서로 다르기에 문의 입체감이 살아나고, 거리 조망하면서 행인 시선을 느낄 수 있는 바트요씨 거실 등을 보면서는 아늑함과 따뜻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건물 벽과 천장에서 물결이 일고 물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니 아름답다는 말이 절로 나올 지경이었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나의 발길은 다양한 색감의 은은한 빛이 흘러나오는 다락방에 도달했다.

이 다락방이 원래 자연 채광과 독특한 곡선 형태를 활용해 다양한 빛의 효과를 내게 연출됐다는데, 거기서 사진들을 보게 되었다. 동성끼리 서로 키스하며 사랑을 나누는 모습, 무지개 깃발의 부채로 성 소수자의 긍지를 나타내는 듯한 모습을 담는 등의 사진들이었는데, 그것들을 보면서 나로선 다양한 색감의 은은한 빛만큼 인간 서로 간의 다양성을 수용하고 존중하라는 메시지가 느껴졌다. 그러기에 개인적으로는 다락방이란 공간이 사람들의 다양성 존중과 차별 금지를 다시금 다짐하는 계기로 작용하는 것 같다.

동성끼리 사랑을 나누는 사진 등이 걸려있는 '카사 바트요'의 다락방 모습들. ⓒ이원무
동성끼리 사랑을 나누는 사진 등이 걸려있는 '카사 바트요'의 다락방 모습들. ⓒ이원무

'카사 바트요' 방문이 거의 끝나갈 무렵 신경다양인이란 말이 오디오 기기에서 나왔는데, 그 말에 반가운 나머지 방문을 끝내자마자 신경다양인들이 '카사 바트요'에서 고용되고 있는지 관계자에게 물어봤다, 그랬더니 적지 않은 수의 신경다양인들이 고용되고 있고, 대부분은 자폐인이란다. 더구나 이게 '카사 바트요'와 재단이 함께 협력해서 가능했단다.

재단의 이름은 스페셜리스테르네(specialisterne)인데, 그 재단의 CEO에게 자폐성 장애가 있는 막내아들이 있다고 한다. 그 CEO는 전통적 교육·고용 환경이 자폐인의 재능을 발현하지 못하게 한다고 생각했기에, 그런 경험 속에 20여 년 전 스페셜리스테르네를 설립했다. 그 재단은 디테일에 대한 예리한 감각 등의 자폐인 특성을 기업의 경쟁력으로 활용하는 직업을 찾아 연결하는 걸 목표로 삼았고, 그게 마침 사회적 책임 활동을 펼쳤던 '카사 바트요'와 연결된 거다. '카사 바트요'에서 일하는 자폐성 장애인들은 주로 방문객 서비스를 담당한다.

'카사 바트요'에서 일하는 자폐성 장애인들이 받는 급여 수준과 회사 복리 후생 등까지는 시간관계상 물어보진 못했다. 그럼에도, Inclusive한 고용의 작은 일환을 여기서 보게 되니 다음번에 다시 바르셀로나를 방문할 기회 생기면 '카사 바트요'를 또 들르고 싶을 정도다. 사그리다 파밀리아를 가지 못한 아쉬움을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는 방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가우디 걸작 중 하나인 '카사 바트요' 전경. ⓒ이원무
가우디 걸작 중 하나인 '카사 바트요' 전경. ⓒ이원무

바르셀로나 방문 마지막 날, 바르셀로나를 떠나기 직전에 구엘공원을 방문했는데, 전체적으로 자연과 곡선 형태의 건축이 조화를 이룬듯한 공원이라는 느낌에 방문하길 잘했다고 느꼈다. 특히 용의 계단과 계단에 있는 86개 기둥, 도마뱀 분수대 등을 보면서는 아름다움은 물론 예술작품 그 이상의 영혼을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구엘공원에 있는 용의 계단, 도마뱀 분수대, 86개의 기둥들. ⓒ이원무
구엘공원에 있는 용의 계단, 도마뱀 분수대, 86개의 기둥들. ⓒ이원무

3박 4일 동안의 바르셀로나 여행은 이렇게 마무리됐다. 이 여행을 통해 필자로선 장애 등을 포함한 다양성 존중, 예술작품의 아름다움과 거기서 느끼는 영혼, 평화와 연대의 중요성을 확인하게 된 계기였다. 유럽여행을 또 하게 될 기회가 있다면 다시 들르고 싶을 정도로 바르셀로나는 이런 점에서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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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팝송 감상, 월드컵 등을 즐기고 건강정보에 관심이 많은 반백년 청년이자, 자폐성장애인 자조모임 estas 회원이다. 전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정책연구팀 간사였으며,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정부심의 대응을 위해 민간대표단의 일원으로 2번 심의를 참관한 경험이 있다. 칼럼에서는 자폐인으로서의 일상을 공유하고, 장애인권리협약, 장차법과 관련해 지적장애인, 자폐성장애인과 그 가족이 처한 현실, 장애인의 건강권과 교육권, 접근권 등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나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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