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블뉴스 김세이 칼럼니스트】 지난 3월 20일 목요일, 국회의원회관에서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서미화 의원실의 주최로 estas, 세바다, RI Korea 청년포럼, 한국장애학회가 주관한 'KCD-9로 보는 자폐·신경다양인 인권실태토론회'가 열렸다.
나라가 바쁜 시국인지라 의원님께서 직접 참석하시지 못하신 점을 양해한 가운데, 미등록 자폐인이며 미등록 정신(심리사회) 장애인인 본인으로서는 토론회의 사회자 자리를 진행하면서 갖는 그 의미가 특별한 시간이었다.
그렇기에 토론회 각 발제자들의 발표 주제를 비롯한 전반적인 진행이나 학술적인 내용보다는, 미등록 정신적 장애인인 필자가 행사를 진행하며 특별히 느낀 바를 중심으로 글을 쓰고자 한다.
알려진 바와 같이 대한민국의 장애인등록법 상 자폐성 장애의 현 등록 기준은 구 3급~1급. 즉 '심하지 않은 장애' 등급 없이 '심한 장애'가 아니면 장애 미해당 대상자가 된다. 이 부분은 미등록 자폐의 가시화와 함께 많은 당사자들이 문제를 제기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번 토론회가 갖는 특별한 의미는 단연 미등록 자폐성 장애 당사자들의 라운드테이블 발표 자리가 마련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발표자들은 미등록 자폐 당사자로서 자폐성 장애로 인해 민감한 감각이나 사회·경제적 활동, 인간관계,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고도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분류되어 사회적 이해를 기대할 수 없고 복지 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현실을 중심으로 각자의 삶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자립적인 삶의 의미로든, 삶 자체의 의미로든 삶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생존을 위해 지속적으로 내내 정신적 소모를 하며 마스킹(자폐 특성을 노력하여 최대한 비자폐인처럼 보이려고 함)에 전력을 다해야만 했다는 증언들이 이어졌다.
어렵고 괴롭고 불리한 것이 어찌 다양성이겠냐는 일차원적인 발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 어려움, 괴로움, 불리함이 어디서 왔는지를 논하기 이전에, 잘나야만 다양성인 것으로 정해졌을 리도 없는데 말이다. 역설적으로 다양성에 대한 이해와 수용이 배제된 사회가 만들어낸 결과물이 지금의 모습이지 않을까?
이번 토론회의 당사자 발표를 보더라도, 더 많은 자폐 당사자들이 개개인에 필요한 일자리 지원 같은 복지의 수혜를 받고 정책 범위에 포함될 수 있도록 하는 자폐성 장애 경증 등급 신설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이는 자폐 당사자에게 필요한 정책이 신경다양성을 비롯한 다양성 중시와 모순되지 않음을 나타내고 있다. 오히려 함께 가야 할 것이다.
자폐에 대한 지식은 지금도 활발하게 점차 밝혀져 나가고 있는 단계이며, 이 과정에서 토론회의 주제이기도 한 현행 질병 분류 역시 20세기 말부터 활발한 변화를 거쳐 왔다.
이 과정에서 냉장고 엄마 이론, 자폐가 아동에게만 발생된다는 통념 등이 폐기되고, 마음 이론이 자폐당사자들로부터 반박되기도 했다. DSM 기준에선 특성이 이질적인 레트 증후군이 자폐 스펙트럼 장애에서 제외되기도 했다.
DSM-5 및 ICD-11에서 여러 자폐 계열 진단명들이 자폐 스펙트럼 장애로 통합되(국내의 현행 KCD 체제에서는 반영되어 있지 않다.)는 등 지식은 계속 '업데이트' 되고 있다. 자폐성 장애만으로 장애 등록을 하는 것마저도 1990년대만 해도 국내에 제도 자체가 없었으니 이러한 기준 변화는 당사자의 삶과 직접적 연관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인권과 다양성을 바탕으로 하는 학술적인 논의 진전은 당사자의 삶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시켜 나가는 방향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장애'를 포괄하는 신경다양성에 대해서도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해야 하며, 그곳에는 자폐 당사자를 비롯한 정신적 장애인의 자리가 있어야 할 것이다.
신경다양성은 정신적 장애인이 겪는 어려움과 모순되지 않는 새로운 언어이다. 다양성은 획일적이고 능력주의적인 정상성에 편입되기보단 그에 맞서는 뜻을 담기에 새롭다고 늘 믿는다.
많은 미등록 자폐인들이 말하는 자폐성 장애의 '심하지 않은 장애' 등급 신설은 단순히 나 자신이 복지 범위에 끼어들어가겠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지 않을까? 현행 의학적 손상의 정도만으로 재단하기엔 자폐 당사자의 삶은 너무도 다양하고, '신경다양'하기에.
그렇기 때문에 '법적 장애인이 되길 바란다'고 하는 것을 '스스로 다양성이길 거부하는 것이다'라며 꼬집으려 든다면 자폐 특성 차별이 만연한 사회 안에서 심히 비열한 공격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자폐·신경다양성에 있어, 의료, 복지, 인권 등 각자의 자리에서 할 이야기가 너무나 많고 현재진행형이다. 그러나 어느 하나 당사자의 현실에서의 삶을 떠나 따로 노는 이야기를 할 수 없다는 점은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술 및 제도적인 관점에 있어, 자폐 당사자와 신경다양인 당사자의 목소리를 더 청취하고 경청해 반영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근래의 질병분류 기준 개정도 비당사자 관점으로 처음 생겼던 것이 당사자와 인권 관점을 반영해나가기 시작한 것이고, 신경다양성은 장애인을 '교정되어야 하는 불완전한 인간 상태'로 정의한 장애인 차별주의에 대한 저항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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