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성 없는 충격, 잊을 수 없을 그 날의 밤의 기억
2024년 12월 3일 늦은 밤. 그야말로 상식적으로는 일어나지 못할 일로써 한국인의 기억과 역사에 남을 사건이 일어났다. 윤석열 대통령은 종북좌파 척결, 자유 헌정질서 수호 등의 모호한 정치적 구호를 거론하며 대한민국에서 45년 만의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결정을 내렸다.
전시나 사변에 전혀 준하지 않던 상황에서의 불법 계엄령이며, 대통령의 의지에 따라 학살에 군경을 동원할 수도 있었을 내란 행위였다.
군사독재 시절도 아니고 이 시대에 계엄이라니. 시대에 안 어울리는 낯선 단어만큼이나 비현실적인 일이었다. 이런 게 정말 가짜뉴스가 아니라는 건지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더하여, 이런 일이면 모두의 휴대전화에서 요란하게 울려야 했을 재난문자도 울리지 않아 인터넷을 계속 보고 있지 않다면 알 수도 없을 소식이었다.
물론 야간 통행금지, 불시검문에 대한 소문 등(이미 늦은 밤 시간에 계엄령이 선포되어 필자를 비롯한 많은 시민들이 밤에 집 밖에 있었다.) 이런 시국에 SNS 등을 통한 유언비어가 아예 돌지 않았을 리는 없으니 소식을 접하고 사실검증하는 데에 주의가 필요하단 것까진 사실이었다. 그래도 계엄 자체는 분명 이제 맞이하게 된 상황이었다.
신뢰성 있는 실시간 소식을 듣기 위해 켰던 뉴스 채널들의 생중계로는 심야시간에 국회 입구를 막고 건물 유리창을 깨어 부수는 군인들이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계엄 해제 요구 표결을 위해 군경들로 막힌 문 대신 수백 미터 떨어진 국회 옆 담장을 넘어 국회로 들어가는 국회의원들이 있었다. 그리고 민주주의의 위기를 느끼고 분노로 국회 앞으로 달려온 시민들이 있었다.
필자를 비롯해 많은 이들이 원래대로였다면 잤을 시간인 새벽 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실시간 뉴스를 지켜보았다. 또 수많은 사람들이 계엄 선포 이튿날인 12월 4일에 있던 각자의 일정들을 적어도 제 컨디션으로는 해낼 수 없었으리라 생각한다. 그 날 새벽, 국회에 진입한 200명 조금 덜 되는 국회의원들은 계엄 해제 요구 표결을 긴급히 통과시켰다.
국회 계엄해제 표결 이후 대한민국은 나라의 내란사범이 된 윤석열 대통령을 탄핵하기 위한 험난한 시간으로 진입해 있다. 또한 국회 앞에서의 시민 집회와 국회 탄핵소추 표결 통과를 거쳐 이제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갑자기 맞이하게 된 미래 불안정성
12월 3일 밤에 든 감정은 이것이었다. 자고 일어나면 내가 살고 있는 이 나라에서 더 이상 민주주의도, 사회적 약자에 대한 기본적인 인권도, 인간의 존엄에 대한 보편적인 상식도 어찌 될 것인지 장담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제 앞으로 살아갈 세상은 어떤 비극을 맞이하게 될까 싶은 심한 불안에 진정하기가 힘들었다. 없는 기운으로 뉴스에 집중하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고, 스트레스는 마치 통증과도 같은 감각으로 몸으로 오고 있었다.
그나마 필자는 그 즈음에 정신적 어려움이나 증상이 심하던 기간은 아닌 편이었다. 그래서 놀라서 잠을 못 잔 것이라든지, 평온하고 안정적이며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일상들이 깨졌다는 것에 짜증과 화가 나는 정도였다.
그러나 정신건강의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계엄 시국 이후 매우 많이들 증상 악화를 호소해 정신과 약을 증량했다는 등 곳곳의 소식들을 보면 정신적 장애를 겪는 이들에게 직접적인 타격을 가한 사건으로 보기에도 부족함이 없음을 짐작할 수 있다. 불면, 불안, 망상 등 영향을 줄 수 있었을 범위 또한 여럿이다.
또한 경제 지표에의 악영향을 비롯한 수많은 국가 위기성 뉴스가 12월 내내 지속적으로 쏟아지기도 하고, 한 마디로 현재진행형인 상황으로써 미래에 대한 불안을 만들어내고 있다.
혹시라도 탄핵이 최종 실패한다면 2차 계엄령으로 정말 대학살이 일어나지 않을지, 탄핵이 성공하더라도 진영 지키기에 결집한 집권여당과 지지층이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고 군부 쿠데타 같은 힘으로 대응하지 않을지, 이런 상태가 장기화되면 나라의 민생 경제가 최소 외환위기 수준으로 파탄나지 않을지 등 불안정성이 존재하는 한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한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런 우려들을 하는 건 국민들 중 정신적 장애를 겪는 이들만의 일은 아닐 것이 자명하다. 그러나 급박한 상황에서 정신적 장애인들의 건강에 해로운 영향을 끼친다는 것 외에도, 이 글을 정신적 장애인을 중심으로 써 보고 싶던 이유가 있었다.
정신적 장애 이슈가 정치와 따로 노는 게 아니라는 것, 그리고 다양성
필자 또한 이 사건 이전에도 정치관에 대한 나름의 견해는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본 언론에 칼럼을 쓰면서 정신적 장애인과 직접 연관성이 없거나 적은 정치 이야기는 하지 않으려 해 왔다.
직전 글에서 일자리와 복지에 대해 언급하면서 윤석열 대통령과 문재인 전 대통령의 발언을 같이 가져왔었다. 이 또한 정파적인 색채를 담지 않는 사실 관계 위주의 인용을 택했다. 애초에 그랬으니 같은 주제에서 두 인물의 발언을 함께 인용했던 것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지금의 사건은 다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정신적 장애 당사자와도 무관할 수 없게 되고 말았다.
글의 중심 내용으로 의도한 건 아니지만, 윤석열 대통령을 비난하는 언어들 중 정신적 장애인 비하의 의미를 담은 말들이 나온다는 것이나, 윤석열 대통령이 정신적 장애 당사자일 여지도 있다는 말들이 우선 사람들로부터 나오고 있다.
전자의 경우, 인터넷 댓글 정도를 말하는 것뿐만 아니라, 내란을 규탄하기 위해 모인 시민들 중 일부의 현장 발언에서도 나왔다. 익숙한 방식으로 '정신병자 윤석열'을 비난하는 발언 방식을 여전히 끌고왔다가 민우회를 비롯한 단체들, 시민들의 지적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이에서 보듯 이젠 여러 다양성 안의 배경을 가진 수많은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자리에 모였고, 우리는 다른 시민에 대한 혐오 발언이 될 여지가 있을 오래된 문화를 바꾸고 함께 자정을 시작할 수 있음을 증명해냈다.
후자의 경우는 발언 자체가 시작부터 정신적 장애를 욕설로 쓰는 것과 다를 바 없는 행위일 수도 있고, 설령 진지한 접근을 의도했더라도 국가원수의 자리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위협을 개시한 무거운 범죄를 개인의 (어떠한 종류든) 정신적 장애로 환원시키는 것에 불과하다. 이는 정신적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만 추가적인 상처를 주고 사건의 본질을 흐리는 행위가 될 것이다.
글을 마무리하며
그렇지만 당장 정신병, 내지는 정신적 장애를 욕설로 쓰는 행위가 문제가 있고 하지 말아야 한다는 걸 사람들에게 널리 인식시키는 기본적인 정도만 하더라도 분명 갈 길이 먼 게 맞다고 느껴지는 때도 많은 게 사실이다.
대통령 비난에 정신적 장애인 비하를 가져오지 말자는 주장마저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그 중 적지 않은 수가 '실제 정신적 장애인들은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선한 사람들이다'를 전제로 하는 문제가 있다고 말하면 너무 앞서가는 것 아닐까 싶기도 했다.
그렇지만 혐오 이슈에 대한 지적들에 대해 '지금은 중요한 대의를 위해 소수가 참고 넘길 시국이다'로 묻어 버려서 '나중에'를 외칠 게 아님을, 그 사실을 이젠 역사에 기록시킬 수 있다는 희망도 많은 이들이 확인했을 것이라고 본다. 그것이 8년 전의 대한민국과도 지금이 사뭇 달라진 듯한 시민들의 목소리이기도 했다.
우리 대한민국 사회는 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점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힘든 시간이 지나면 정의롭고 민주적이며, 약자들과 다양성이 인정받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희망으로 살아나간다. 그렇기에 우리나라, 우리 사회에 가진 믿음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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