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지인으로부터 결혼식에 참석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적어도 분기별로 한 번 이상의 청첩장을 받기는 했으나 당사자로부터 “결혼식 당일에 비가 오면 콜택시라도 집 앞으로 불러줄 테니 꼭 참석해달라”는 부탁이 특이했다. 그렇게까지 부탁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이유가 있다는 뜻이었기에 무슨 일로 그렇게까지 부탁을 하는지를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녀는 한참 동안 말이 없더니 “남편 될 사람의 동생이 뇌병변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장애의 유형을 떠나 정도에 따라서는 활동지원사를 구하기 어려울 정도의 중중장애인지 물었더니 아니라고 했다. 예비신랑의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기 위해 시부모 되실 분 집에서 동생을 처음 봤을 때도 말을 알아듣기가 조금은 힘들었던 것을 제외하면 혼자 살아도 될 정도의 상태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부모 되실 분들이 아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그녀와 상당한 격차가 있었다. 나이 마흔이 다 되어 어렵게 얻은 둘째 아들이 장애로 태어나자 자신들이 죄가 많아서 아들이 성치 않은 몸으로 태어났다고 생각했고, 일흔이 넘은 지금까지 최선을 다해 지금껏 키웠지만 이제는 몸도 약해지고 더 이상은 몸이 불편한 아들에게 온전히 집중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렇게 내린 결론은 시설입소, 시설에 가기 위해서는 비용이 필요하니 결혼 자금과 별도로 어느 정도의 자금 지원을 약속하며 “우리가 죽어서 이 세상에 없더라도 시설에 있는 동안 1년에 서너번이라도 찾아가서 잘 지내는지 보고 와 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동안 그 집안의 공기는 초상집과 다름이 없었을 것이다. 그 무거웠던 분위기를 어떻게든 수습하기 위해 예비신랑에게 “내가 아는 분 중에도 도련님과 비슷한 장애를 가진 사람이 있는데 혼자서도 잘 지내는 것 같더라”는 이야기를 했고, 그 이야기를 듣고 “네가 말한 그 사람이 누구인지 한번 보고 싶다. 내가 00 이만 생각하면 잡이 안온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시설과 독립의 차이점은 자유 의지의 차이다. 시설에 살아야 한다면 커피한잔의 여유는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정현석
시설과 독립의 차이점은 자유 의지의 차이다. 시설에 살아야 한다면 커피한잔의 여유는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정현석

굳이 택시까지 불러가면서 결혼식에 와 달라고 하는 그녀의 마음도 그리고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람을 통해서 “내 아들과 비슷한 사람도 시설에 가지 않고 혼자서 살고 있다니 만나서 몇 가지만 물어보고 싶다”라고 했다던 예비 시부모의 마음도 이해는 충분히 되고도 남았다.

나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고 나니 “그 몸이 불편한 남자는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받아주겠다는 시설도 가족도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나온 거냐”고 물었다고 하니 장애를 가진 자녀의 독립은 어쩔 수 없을 때 알아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인식도 읽혔음은 물론이다.

적지 않은 시간 동안의 고민 끝에 지인의 결혼식에는 가지 않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일생에 한번뿐인 결혼식에 가지 않는 것이 미안한 부분이기는 했지만, 그곳에 당연히 나와 있을 신랑측 부모님을 볼 자신이 없었다. 만약 그 초대를 받아 결혼식자리에 간다면 그날 신랑측 부모님들의 관심사는 결혼하는 맏아들이 아닌 동생과 비슷한 장애를 가진 외부인인 내가 될 가능성이 있었고, 그걸 지켜보는 결혼 당사자는 당일에는 물론, 나중에도 그날의 일이 상처로 남을 수 있었다. 축하할 것은 축하하고 고민할 것은 고민해야 하지만 형이 상처를 받으면 장애를 가진 동생에게도 좋을 것은 없었다.

다행히 그녀도 내 뜻을 존중해 주었다. 자신의 시부모님들에게 내 의사를 분명히 전하고 양해를 구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장애인 자녀를 가진 부모의 마음까지 무시할 수는 없는 법, 시간이 좀 더 지난 후 나중에 한 번 연락을 주고받기로 했다. 장애인 자립은 일회성 100미터 달라기가 아닌 마라톤과 같은 긴 호흡으로 진행되어야 할 주제인 만큼 언제든 건설적인 대화가 오고 갔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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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석 칼럼니스트 집에서만 살다가 43년 만에 독립된 공간을 얻었다. 새콤달콤한 이야기보다 자취방을 얻기 위한 과정에서 겪었던 갈등들과 그것들이 해결되는 과정이 주로 담으려 한다. 따지고 보면 자취를 결심하기 전까지 나는 두려웠고, 가족들은 걱정이었으며, 독립 후에도 그러한 걱정들은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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