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당대의 위인이었습니다. 그는 당당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적어도 자기 자신에 대하여 말할 때만큼은 부족한 것이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는 신체적으로 작은 자였습니다. 작은 키가 다른 사람에게는 문제가 될지는 몰라도 바울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바울을 바라볼 때에는 그의 작은 키를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바울을 바라볼 때마다 바울의 눈빛을 보았습니다. 그의 눈동자에 비친 그들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오히려 주눅 들곤 했었습니다. 상대방을 주눅 들게 하는 바울! 무엇이 바울로 하여금 이처럼 자신감 넘치는 사람을 만들었을까?

그는 히브리(Hebrew)사람입니다. 오늘날에는 그를 이스라엘 사람(Israel)이라고 합니다. 히브리 사람들은 그를 사울(Saul)이라고 부릅니다. 그럼에도 그가 바울(Paul)이란 이름으로 더 유명한 것은 그의 활동반경이 이스라엘 지역에 머무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의 무대는 유럽(Europe)이었습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큰 무대에서 자랐습니다. 이스라엘의 조그마한 땅에서 거주하면서 스스로를 선민(選民)이라고 여기는 사람들과 차원이 달랐습니다. 그는 부모님을 잘 만나서 가말리엘이라는 대학자(大學者) 밑에서 최고의 학문을 수학했습니다. 그는 로마의 시민권(Citizenship)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히브리인이 로마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아주 희귀한 일에 속하는 특권이었습니다. 게다가 바울은 히브리인들이 소중히 여기는 율법(Law, 律法)에 정통했을 뿐 아니라 이를 몸소 지켜 행하는 일에 다른 사람에 결코 뒤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키가 작았지만 큰 사람이었고 강한 남자였습니다. 이러한 배경을 가졌으니, 자신의 작은 키에 위축될 바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신념에 위배되는 사람(바울은 율법을 잘 지키는 것만이 최고의 신앙이요, 신에 대한 올바른 자세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자신의 신념이었습니다)은 사람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율법에 의거하여 단호하게 대응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그는 얼마 전 율법의 이름으로 골고다 언덕 위 십자가에서 처형된 예수(Jesus)라는 젊은이를 추종하는 세력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가 알고 있는 예수는 율법을 훼손(毁損)한 자였고, 율법을 배약(背約)한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의 눈에는 예수를 좇는 사람들은 율법의 이름으로 처단해야 할 사람으로 간주했습니다.

바울은 이 날도 예수를 추종하는 사람을 잡으러 다마스커스(Damascus- 다메섹)로 가는 중이었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눈앞에 펼쳐진 너무나도 밝은 빛으로 인하여 엎드러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희한한 음성을 들었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그는 부활하신 예수를 만났습니다.

예수와의 만남은 바울의 삶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는 이 순간부터 예수의 격렬한 추종자가 되었습니다. 예수가 선포한 사상을 체계적으로 만들어 놓은 주역이 바로 바울이었습니다. 바울은 기독교 사상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인간됨이 바뀐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수의 추종자가 되었지만 그는 여전히 당당했습니다. 자신감에 차있었고 자기 효능감(Self-Efficacy)은 하늘을 찔렀습니다. 바뀐 것이 있었다면 삶의 방향 즉 목표(푯대)가 바뀌었을 뿐이었습니다.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에서 부활하신 예수로 바뀌었을 뿐이었습니다. 바울은 속칭 예수쟁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바울이 예수를 믿는 사람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더욱 당당하고 때로는 교만해 보이기도 한 것에는 또 다른 배경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를 배척하던 자가 갑자기 예수의 추종자가 되었으니 예수의 제자들이 그의 변화를 쉽게 받아들일 리가 만무했습니다. 그들은 바울의 변화를 부정할 뿐 아니라 바울을 내쫓으려고 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러저러한 어려움이 가중될수록 바울은 더욱더 강하게 자신의 변화를 주장하고 변호하였습니다. 이제 예수를 몰랐던 바울이 진리이신 예수를 확실히 알게 된 이상 그의 삶은 더욱 명쾌하고 분명한 길로 전개되었습니다. 자신의 훌륭한 가문, 자신의 학력, 완벽했던 삶의 자세, 적극적이었던 실천적 행동양식. 모두가 바울의 장점이요 강점이었습니다. 바울은 고백합니다. 예수를 전하기 위해 이 모든 것을 다 버렸다. 하지만 이 또한 “버릴 수 있다”는 말의 뒤에는 “가지고 있음”에 대한 역설적 강변(强辯)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에게는 예기치 않았던 작은 아픔이 생겼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 진리(Truth, άληθεια)를 경험했지만 그는 강한 빛을 접촉했기에 시력에 문제를 안게 된 것입니다. 그에게는 소위 안질(眼疾)이 생겼지만 치유할 수 없는 질병이었습니다.

결국 바울은 시각손상(Visual ;Impairment)을 입게 되었습니다. 아마 초기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가면서 심각하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온 지역을 돌아다녀야 하고, 설교와 전도도 하고, 지나온 도시에 편지(별로 좋지도 않는 필기도구-2,000년 전이니까)를 써서 보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일에 어려움을 가져다주었고, 지장을 일으켰던 것이 시각손상이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시각손상만 사라지만, 하나님의 일을 더 잘할 수 있습니다. 고쳐주세요”세 번이나 기도했습니다. 바울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들어주신다고 설교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유독 자신의 기도는 효험이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시각손상은 더욱 중증화(重症化)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 때 그에게 하나님의 응답(Response)이 전해졌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후12:9)” 바울은 이제야 비로서 깨닫습니다. 자신의 시각손상이 없었다면, 바울 자신은 하나님의 일을 감당한다고 하면서, “내가 다 했노라”고 말했을 것이라고. 시각손상이 있었기에 비로소 강함(Strength)이 아니라 약함(Weakness)이 자신의 본질임을 알게 되었다고. 더욱 중요한 것은 자신이 약할 때에, 하나님의 능력에 자신을 통해서 일하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고.

장애(Disability)는 인간의 관점에서 불능(不能)으로 보일 뿐이었습니다. 자신의 약함을 알게 되었을 때 자신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을 의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바울은 비로소 깨달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어차피 세상은 혼자의 힘으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내가 먹을 것, 입을 것, 거할 곳, 이동할 수단, 공부하는 것 등 어느 것 하나도 나 혼자의 힘으로 할 수 없습니다. 수많은 사람의 도움(Assistances)과 원조(Helping)이 필요합니다. 그런데도 마치 자기 혼자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 인간의 모습이요, 모순이지요.

결국 이를 빨리 깨닫는 것이 사람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는 지름길이지요. 나의 약함, 나의 불능을 가능한 한 빠른 시간 내에 인정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나를 도와 나와 함께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요청할 수 있습니다.

함께 살아야 하고, 더불어 살아야 한다면,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수치스럽거나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지요. 나의 장애를 약점으로 인정하고, 다른 사람에게 당당하게 도움을 요청할 뿐 아니라 이를 통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제공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특별한 은사입니다. 더 나아가 나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들 역시 강한 존재가 아니라 약한 존재임을 깨닫게 하는 것도 아주 귀한 것입니다.

바울은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약함 속에 담겨있는 강점을 알지 못했고, 오히려 인간적인 강점만을 가지고 전부인 것처럼 살아갔던 과거가 진짜 문제였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차별이었습니다.

이 땅에 신체적, 정신적, 지적으로 장애(Disability)를 가졌다는 것이 약점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약점을 약점만으로 바라볼 때, 그것이 차별입니다. 그 약점 안에 위대한 강점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장애가 안고 있는 비밀입니다. 역(逆)으로 강점을 약점이 없는 강점만으로 인식할 때, 그곳에 불능(不能)이 있습니다.

장애는 약점입니다. 그러나 약점으로 머물지 않습니다. 약점 이상의 강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 장애입니다. 그래서 장애(Disability)는 장애(障碍)가 아니가 장애(長愛)입니다.

이계윤 목사는 장로회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숭실대학교 철학과 졸업과 사회사업학과 대학원에서 석·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한국밀알선교단과 세계밀알연합회에서 장애인선교현장경험을 가졌고 장애아전담보육시설 혜림어린이집 원장과 전국장애아보육시설협의회장으로 장애아보육에 전념하고 있다. 저서로는 예수와 장애인, 장애인선교의 이론과 실제, 이삭에서 헨델까지, 재활복지실천의 이론과 실제, 재활복지실천프로그램의 실제, 장애를 통한 하나님의 역사를 펴내어 재활복지실천으로 통한 선교에 이론적 작업을 확충해 나가고 있다. 이 칼럼난을 통하여 재활복지선교와 장애아 보육 그리고 장애인가족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독자와 함께 세상을 새롭게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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