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둘째는 천성이 느긋하고 너무 착하다. 잘 울기도 하고, 엄마인 내가 보기에 너무 여린 성격인 것 같다. 둘째고, 막내라서 그런지 엄마, 아빠가 자꾸 해주게 되거나 고작 한 살 더 많은 첫째가 대신 해주는 일이 많았다. 둘째는 독립심이 좀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늦은 오후, 둘째가 창고에 있는 씽씽카를 꺼내달라고 했다. 당시에 집에는 나와 둘째만 있었다. 창고 깊숙이 있는 씽씽카 앞에는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가 막고 서 있어서, 나는 도저히 꺼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아빠가 오면 꺼내달라 하든지, 엄마는 하기 힘드니 네가 할 수 있으면 한번 해보라고 했다.

​평소 같으면 당연히 아빠가 올 때까지 기다렸을 아인데, 웬일인지 그날은 자기 혼자 해보겠다고 했다. 여태까지 혼자서 뭔가를 해본 적이 별로 없는 둘째였기 때문에, 속으로 ‘할 수 있을까? 괜히 더 큰 일 만드는 거 아냐?’ 하면서 나는 그냥 모른 척 다른 집안일을 했다.

꺼내기 힘든 씽씽카를 혼자 꺼냈다며 뿌듯한 성취감을 처음 느낀 둘째. © 박혜정
꺼내기 힘든 씽씽카를 혼자 꺼냈다며 뿌듯한 성취감을 처음 느낀 둘째. © 박혜정

한참이 지난 뒤,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엄마! 내가 씽씽카 꺼냈어!!!”라는 소리가 들렸다. 놀라서 가보니, 다른 저지레도 전혀 생기지 않았다. 창고 안의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를 뒤로한 채, 둘째는 환하게 웃으며 씽씽카를 들고 있었다.

창고 안쪽 깊숙이에 있던 씽씽카를 어렵사리 꺼내고는, 내가 해냈다고 뿌듯하게 웃으며 자랑하는 둘째였다. 혼자 해내는 성취감을 둘째도 조금씩 느끼게 되는 것 같아서 나도 너무 뿌듯했다.

​이런 일을 겪고 난 뒤, 우리 둘째는 부쩍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졌다. 무엇이든 처음 한 번이 어렵지, 그 다음은 쉽지 않은가. 늘 언니만을 따라 다니며, 학교도 꼭 같이 가곤 했었다. 이제는 혼자 학교도 씩씩하게 걸어간다.

​심지어 혼자 라면도 끓이고 설거지까지 해놓는다. 똑 부러진 첫째보다 어설프다고 생각했던 둘째가 요즘은 더 혼자 하는 게 많아졌다. 우리 둘째가 드디어 혼자 해내는 성취감을 맛보게 된 것이다.

혼자 해내는 성취감을 맛 보게 된 둘째. © 박혜정
혼자 해내는 성취감을 맛 보게 된 둘째. © 박혜정

나는 내가 신체적으로 많은 걸 해 줄 수 없는 엄마이기에 더욱 아이들을 자립적, 독립적으로 키우려고 노력했다. 일례로 연년생인 아이들이 초등학교 3, 4학년이 되었을 때부터 아침에 알람을 듣고 스스로 일어나도록 했다. 식탁에 차려 놓은 아침 먹거리를 알아서 먹고, 알아서 챙겨 학교를 가도록 했다.

​처음에 한동안은 지각을 하기도 했고, 고작 10살 남짓 아이들이 엄마의 도움 없이 일어나기 힘들어한 건 당연했다. 하지만, 엄마가 잔소리하며 깨우는 아침 전쟁을 하고 싶지 않았고, 스스로 하루를 시작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지각을 해도, 힘들어 해도 놔두었다.

​그 뒤로 첫째가 중학생이 된 지금, 수동적으로 일어나는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완전 습관이 들어서 아침이 너무나도 활기차다. 아침 전쟁 - 잔소리, 짜증, 화를 서로 듣지 않기에 우리집 아침은 정말 평화롭고 스트레스가 전혀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들 스스로 각자의 아침을 열고, 하루를 시작하니 누구보다 주도적인 삶을 산다는 건 확실하다. 엄마인 내가 편해진 건 두말 할 것도 없는 보너스다. 하하~~

아침에 스스로 일어나 알아서 준비하는 딸들, 주도적으로 공부하는 딸들 모습. © 박혜정
아침에 스스로 일어나 알아서 준비하는 딸들, 주도적으로 공부하는 딸들 모습. © 박혜정

​나는 아마도 20대에 혼자 독립해서 살면서부터 혼자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웬만하면 혼자 다닌다. 나는 밥을 혼자 먹는 것도 정말 아무렇지 않다. 나는 혼자서 숯불갈비도 구워 먹으러 가곤 했다. 혼자 병원 진료도 가고, 혼자 가게에 가서 볼일을 본다. 혼자 영화를 보거나 노래방도 간다.

건강검진을 휠체어 타고 혼자 가서 했던 모습. © 박혜정
건강검진을 휠체어 타고 혼자 가서 했던 모습. © 박혜정

특히 병원 진료를 보러 가면, 왜 보호자 없이 혼자 왔냐고 간호사나 의사들이 묻는 일이 정말 다반사다. 얼마 전 건강검진을 하러 갔을 때도, 휠체어에서 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누웠다, 엑스레이 테이블에 올라갔다, 휠체어에 앉기를 수십 번 해야 했다. 보호자도 없이 온 나를 보고 아주 난감해했다.

사실 나는 2~3주 정도 병원에 입원할 때도 여태까지는 거의 혼자 했다. 혼자 입원하고 지내다가 수술이나 시술 당일이나 그 다음 날만 친정엄마나 남편이 와서 도와줬다.

​아주 큰 수술을 하지 않아서 간병인이나 보호자가 없어도 가능했던 것이지만, 어쨌든 입원하면 링거를 꽂아야 하고, 링거를 꽂으면 휠체어를 타기가 쉽지 않은 건 사실이다.

그래서 화장실을 가야 하거나 샤워를 혼자 한 후에 링거를 꽂아달라고 부탁을 하는 편이다. 그게 안 되면 손목과 팔꿈치 부위가 아닌 곳에 놓아 달라고 한다. 그래야 링거를 꽂고도 혼자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입원한 병원에서 같은 병실에 있는 다른 간병인분들이 많이 도와주시기는 한다. 그렇지만 대소변 처리, 샤워, 물 뜨러 가는 것, 식사 식판을 받고 식당차에 꽂는 것 등등 대부분 어떻게든 혼자 하려고 한다.

나라고 힘이 안 드는 건 아니지만, 혼자 하는 그 자체로 하나하나 내가 해내는 게 뿌듯하고 기분이 좋다. 도저히 나 혼자 하기 힘든 건, 주변의 누구에게든 도와 달라고 하면 다 도와주시고, 또 도와주시면 감사한 일이다.

내 가족들이 힘든 것보다 차라리 전혀 모르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 편하다. 가족이 나만을 위해 매일 따라다닐 수도 없는 것 아닌가.

혼자 여행다니면 스스로가 대견하고 뿌듯하다. © 박혜정
혼자 여행다니면 스스로가 대견하고 뿌듯하다. © 박혜정

어디를 가나 “혼자예요? 보호자 없어요? 혼자 힘들지 않아요? 도와줄까요?”라는 말을 항상 듣다 보니, 내가 이상한 건가 싶기도 하다. 나는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제가 할 수 있어요, 신경 써주시는 마음 정말 감사합니다.” 이렇게 답을 한다.

​그렇게 혼자 하는 아주 작은 일에도 매일 작은 성취감을 느끼고 사는 것 같다. 또, 자꾸 혼자 하다 보니 어디든 혼자 가는 게 두렵지도 않고, 스스로가 대견하고 뿌듯하다.

특히 여행을 혼자 다니기 시작하면서 나는 혼자 해내는 성취의 짜릿함과 뿌듯함을 더 느끼게 되었다. 독불장군처럼 그 어떤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나홀로’ 가겠다는 건 절대 아니고, 휠체어를 타는 내가 절대 그럴 수도 없는 건 사실이다.

​계단이 있다든가 내가 넘어졌다든가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까지 도움을 받고 싶지는 않다. 항상 도움을 받는 존재로 내가 기억되고 싶지 않고, 장애에도 불구하고 해내는 존재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여행을 혼자 다니면, 어떻게든 휠체어를 밀고 가야 한다. © 박혜정
여행을 혼자 다니면, 어떻게든 휠체어를 밀고 가야 한다. © 박혜정

혼자 여행하다 보면, 휠체어를 밀어줄 누군가가 없기 때문에 어떻게든 내가 밀고 가야 한다. 또 무거운 짐도 당연히 내 짐이니까 어떤 식으로든 내가 짊어져야 한다. 밥을 혼자 먹는 것도 처음엔 어색하지만, 나 혼자라면 어쨌든 혼자 먹어야 한다.

혼자 무언가를 하고, 그걸 혼자 해내는 게 11살 아이에게도, 45살 어른에게도 성취감을 주는 건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특히 장애를 입은 사람은 처음엔 비장애인이 하는 것에 비교하기 때문에 좌절만 하고 성취를 못 느낄 뿐이다. 그런 비교 따위는 하지 말고, 나에게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자그만 일 하나씩이라도 찾아보자!

그 자그만 일들을 혼자 해내다 보면 나 자신에 대한 작은 성취감이 쌓여갈 것이다. 그 작은 성취감들이 쌓이면, 자존감은 점점 상승하게 될 것이고, 언젠가는 나 스스로가 정말 멋지게 느껴질 것이다. 멋지게 혼자 해내는 짜릿한 성취감을 꼭 맛 보시길~!

혼자 일본 여행을 하던 모습. © 박혜정
혼자 일본 여행을 하던 모습. © 박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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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정 칼럼니스트 글 쓰는 휠체어 여행가, 현혜(필명), 박혜정입니다. 1994년 고등학교 등굣길에 건물에서 간판이 떨어지는 사고로 척수 장애를 입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29년 동안 중증장애인으로 그래도 씩씩하고 당당하게 독립해서 살았습니다. 1998년부터 지금까지 혼자, 가족, 친구들과 우리나라, 해외를 누비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또, 여성 중증 장애를 가지고도 수많은 일을 하며 좌충우돌 씩씩하게 살아온 이야기를 통해 누군가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전)교육공무원으로 재직했고, <시련은 축복이었습니다>를 출간한 베스트셀러 작가, 강연가, 글 쓰는 휠체어 여행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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