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2월 나와 내 동생, 내 친구와 친구의 동생 이렇게 4명이 북경을 가려다 중국 비자를 미리 준비하지 못해서 대만을 가게 되었다. 나와 내 동생, 내 친구도 자기 동생이니, 말하자면 서로 가족끼리 같이 가게 된 거였다.

그때 이상하리만큼 대만의 2월은 비가 많이 왔다. 우리 네 명은 그래도 할 수 있는 것을 하며 나름 재밌게 여행했다. 그런데 서로 가족과 여행을 함께하니 크게 화나는 일이 아니었지만, 툭탁툭탁 하는 일이 생겼다.

​아마도 그 여행에서 내내 비가 오니 활동이 아무래도 제한되는 게 많았다. 하고 싶은 것도 비가 와서 못 하게 되니 짜증이 좀 났었던 것 같다. 그런데다 어떤 사찰을 갔는데, 휠체어가 전혀 들어갈 수 없어서 나는 기분이 별로 안 좋았다.

2005년 2월, 여행 내내 비가 내렸던 대만을 동생과 함께 갔던 여행. ⓒ 박혜정
2005년 2월, 여행 내내 비가 내렸던 대만을 동생과 함께 갔던 여행. ⓒ 박혜정

여행 중 내 휠체어는 거의 다 내 동생이 나를 밀고 다녔다. 그런데 길을 건너려고 하다가 앞에 작은 턱을 못 보고 그냥 밀어서 내 몸만 앞으로 굴렀다. 그 건널목에서 빗길에 구정물 투성인 땅바닥에 철퍼덕 내동댕이쳐진 것이다.

그렇게 된 나 자신도 싫었지만, 동생한테 짜증과 화가 치밀었다. 나는 동생에게 있는 대로 짜증을 부렸던 것 같다. 앞에 못 봤냐며,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휠체어를 밀었냐며… 그렇게까지 화를 낼 것도 아니었고, 동생도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르는데 말이다.

​친구와 친구 동생, 내 동생의 도움으로 휠체어에 앉아서도 화가 가라앉지 않았다. 옷도 완전히 젖어서 더러워졌고, 기분도 엉망진창이었다. 그 엉망진창인 기분을 동생에게 그대로 전해줬음은 정말 아직도 미안하다.


2007년 유럽 9개국 성지순례 여행을 엄마랑 같이 갔을 때다. 엄마는 당연히 나만 챙기셨고 계속 내 휠체어를 밀고 다니셨다. 그런데 독일이나 오스트리아 관광지는 정말 대부분 휠체어가 가기 어려운 돌길이었다.

엄마가 조심해서 다니셨지만, 시간에 맞춰 어딘가 가야 해서 빨리 가기 시작했다. 옛날 고장 난 리어카를 타고 가는 기분이랄까. 울퉁불퉁 돌길을 휠체어를 타고 빠르게 가니 나도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도착했을 때 내 발가락에서는 피가 나고 있었다. 정신없이 가는 동안 샌들을 신고 있던 내 발이 휠체어 발판 아래로 떨어진 채로 울퉁불퉁 돌길에 계속 발이 치였던 것이다.

아무 감각도 느낌도 없는 내 발가락이지만, 피를 본 순간 엄마한테 짜증과 화가 확! 치밀어 올랐다. 동생에게 냈던 화의 몇 배를 엄마에게 냈던 것 같다. 엄마한테는 오만 짜증과 화를 다 퍼부어도 되는 것처럼, 못난 딸은 그렇게 화를 내었다.

2007년, 유럽 9개국을 엄마와 함께 갔던 여행. ⓒ 박혜정
2007년, 유럽 9개국을 엄마와 함께 갔던 여행. ⓒ 박혜정

난 가족한테는 제일 못 해주고, 남들한테 잘하는 사람을 아주 싫어한다. 그런데 가족은 매일 보는 사람이고, 너무 편해서일까. 가장 날 이해해줄 것만 같은 기분일까. 그렇다고 해도 화내고 못되게 하고 짜증을 내면 안 되는 거다! 그걸 알면서 잘 안 되는 나도 똑같은 사람인가 보다.

​사랑하는 남편에게도, 소중한 아이들에게도 화를 내고 함부로 하면 안 되는데, 지금까지도 반성하고 있다.

한 8년 전까지 육아 우울증에, 내가 마음이 편하지 못하고 힘드니 그 화를 남편과 아이들에게 늘 내고 살았던 것 같다. 그때는 남편과 아이들이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화를 내고 짜증을 냈다.

남편과 아이들이 문제가 아니라 내 마음이 문제인지도 모르고 말이다. 그걸 깨닫기가 참 힘들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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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정 칼럼니스트 글 쓰는 휠체어 여행가, 현혜(필명), 박혜정입니다. 1994년 고등학교 등굣길에 건물에서 간판이 떨어지는 사고로 척수 장애를 입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29년 동안 중증장애인으로 그래도 씩씩하고 당당하게 독립해서 살았습니다. 1998년부터 지금까지 혼자, 가족, 친구들과 우리나라, 해외를 누비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또, 여성 중증 장애를 가지고도 수많은 일을 하며 좌충우돌 씩씩하게 살아온 이야기를 통해 누군가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전)교육공무원으로 재직했고, <시련은 축복이었습니다>를 출간한 베스트셀러 작가, 강연가, 글 쓰는 휠체어 여행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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