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인정 많고 잘 웃고 활달했으나 불의를 보면 참지 못했고, 자신에게는 물론이고 학생들에게도 엄격하고 철저해서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았다. 필자에게는 잊지 못할 사건 하나가 있다. 언젠가 춘해대학에서 10명의 실습생을 받았는데 실습기간 중 마침 시각장애인 산행이 있어 실습생들에게 자원봉사를 하겠는지 물었다. 일요일이었기에 실습점수와는 상관이 없다고 말했었고 서너 명이 자원을 했다. 그런데 토요일 아침시간에 전부 다 못하겠다는 것이 아닌가. “할 수 없지 뭐. 다른 자원봉사자를 찾아볼게요.” 부랴부랴 다른 자원봉사자를 수소문해서 산행행사는 무사히 마쳤다.

부산사회복지발전 토론회. ⓒ이복남

세상엔 비밀이 없다. 며칠 후 알고 보니 세상에나, 학생들이 담합을 했던 것이다. 분명히 실습점수하고는 상관이 없다고 했는데 자원봉사를 하겠다고 해 놓고 담합을 해서 펑크를 내다니, 그런 정신으로 어떻게 사회복지사가 되겠다고 하느냐. 실습생 전원에게 낙제를 면할 만큼의 점수만 주었다. 이 선생은 학생들을 잘못 가르쳤다고 필자에게 미안해했지만 학생들은 얼마나 족쳤겠는가.

그는 장애인주차장에 일반차량이 주차해 있는 것을 보면 운전자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렸다. 모르고 그랬다며 미안하다 사죄하면 그냥 보내주었지만, 비어 있는데 좀 대면 어떠냐고 했다가는 “니 장애인 되고 싶냐?”로 시작되는 매섭고도 긴 훈시를 들어야 했다.

동료나 학생들은 그를 대비마마 또는 공주마마라고 불렀다. 보통의 혼자 사는 여자들이 바쁘다보면 식사를 대충하게 마련인데 그는 임금님 수라상 정도는 아니라 해도 자신의 밥상은 언제나 반듯하게 차렸던 것이다. 고운 것, 예쁜 것, 맛있는 것을 좋아해서 옷도 언제나 곱게 차려입었고, 예쁜 액세서리로 치장을 했고, 예쁜 그릇에다 맛있는 음식을 손수 만들기도 하고, 맛있는 집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특히 맛있는 집을 발견하면 지인들을 불러다가 대접하기를 좋아했다. 그러면서도 제자들의 잘못은 눈물이 빠지도록 야단도 쳤기에 그가 어려운 사람들은 대비마마라 불렀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공주마마라 불렀다.

고 이경희 교수 빈소. ⓒ이복남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 외에도 부산장애인총연합회를 비롯하여 여성장애인연대 등 사회단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장애인1종 운전면허, 편의증진법, 장애인차별법 등 장애인복지와 인권운동에 이론적 기반을 마련해 주었다. 부산시와 울산시의 사회복지위원을 비롯하여 부산과 울산의 여러 곳의 복지관에서 자문위원 또는 운영위원을 맡아 사회복지 현장의 소리를 학생들을 가르치고 집필하는 데 반영하기도 했다.  

그는 언제나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하루에 잠을 서너 시간은 잤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어디서라도 장애인으로서 동정 받기를 거부했다. 그래서 3시간 연강도 꼿꼿이 선채로 강의를 했다. 장애인이 아니더라도 3시간 쯤 되면 다리가 아파서 앉을 수도 있건만 그에게는 용납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3시간 강의가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운동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는데 몸과 마음이 지쳐가는 지 운동하는 한 친구를 만나면서 휠체어배드민턴을 시작했다.

뒤늦게 시작했지만 운동은 정말 열심이었다. 그 바쁜 사람이 운동시간에 맞추느라 스케줄을 체크하면서 연습시간에는 대통령이 아니면 찾지 말라고 했다. 운동을 하면서 장애인들에게 운동이 얼마나 필요한지 절실하게 느꼈기에 부산여성장애인연대에서 주최한 ‘생활체육 워크숍’에서 발제도 했고 올 3월에는 부산장애인배드민턴협회 회장도 맡았다.

연화사의 샘물 ⓒ이복남

그런데 그가 운동을 시작한 2~3년 전부터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느꼈지만 애써 외면 한 것 같았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병원을 찾았을 때는 이미 유방암 말기였다. 주변에서는 수술을 권했지만 그는 거절 했다. 수술을 한다면 생명은 조금 더 연장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더 이상 목발을 짚고 강단에 설 수는 없을 것이다. 그냥 이대로 강단에서 죽고 싶다는 데 뉘라서 그 고집을 꺾을 수 있었겠는가. 5월에 입원을 했지만 입원 중에도 6월까지는 강의를 하면서 죽음을 준비했다. 암세포가 폐로 전이가 되면서 입이 마르고 숨이 차서 더 이상 강의가 어려울 때까지 그는 강단을 지켰다.

이경희씨 이야기는 4편에 계속.

* 이 내용은 문화저널21(www.mhj21.com)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