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었다. 여행의 계절이다. 작렬하는 태양사이로 사람들은 떠난다. 환상과 모험을 찾아 떠나는 나른한 일상에서의 탈출일지도 모른다. 일탈을 꿈꾸는데 음모처럼 애잔한 절규 같은 제니스 조플린(Janis Joplin)의 섬머타임(Summer Time)이 따라붙는다.

이경희 교수. ⓒ이복남

어떤 목적으로 여행을 떠나든지 언젠가는 돌아온다. 그런데 돌아오지 않는 여행이라면. 인명은 재천이고 생사일여(生死一如)라 했다. 삶과 죽음이 같다고? 천만에다. 태어남은 축복이고 죽음은 슬픔일진대 생사가 같다니. 그러나 생로병사는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우주의 섭리라 아무리 슬프고 억울해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치열하게 너무나 치열하게 그리고 우아하고 고고하게 살다가 아름답게 간사람 이경희 선생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자. 

이경희(54) 선생은 부산 서구 초장동에서 4녀 2남의 넷째 딸로 태어났다. 언니가 셋이고 아래로 남동생이 둘이었다. 동생들은 태어나기 전이었고 딸만 있는 집안의 넷째였으나 집안의 귀여움은 독차지하였다.

그러나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사랑스런 막내딸의 귀여움을 시샘이라도 하는 듯  자박자박 잘도 걸어 다니던 아이가 어느 날 털썩 주저앉더니 다시는 일어서지 못했다. 소아마비가 그를 덮친 것이다.

어머니는 불덩이 같은 아이를 업고 병원을 전전했다. 아버지는 건설설비 관련 사업을 하였는데 돈이 궁한 편은 아니어서 어머니는 딸에게 좋다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했다. 대여섯 살까지 약과 주사를 달고 살았고, 지네를 넣은 닭까지 고아 먹이는 등 온갖 정성과 별의별 방법을 다 동원해 보았으나 그의 오른쪽 다리는 다시는 땅을 디딜 수 없어 평생 목발을 짚어야 했다.

차별금지법 토론회. ⓒ이복남

그는 암 선고를 받고도 수술도 항암제도 거부했었다. 형제와 지인들은 장성한 막내 남동생이 암으로 세상을 떠나는 과정을 직접 목격했었고, 어렸을 때의 치료과정이 너무나 지긋지긋했기 때문 일거라고 했다.

아버지의 사업을 따라 진해로 이사를 했고 남산초등학교를 다녔다. 언젠가 이 선생은 필자에게 넋두리를 했었다. “어렸을 때 우리 엄마가 계모인 줄 알았어요.” 집 근처에 야트막한 동산이 있었는데 어머니는 저녁마다 그를 앞세우고 동산엘 올랐다. 어린 나이에 양 목발을 짚고 뒤뚱뒤뚱 걷는 게 정말 싫었는데 어머니는 모질게도 날마다 다그쳤던 것이다. 어머니는 어린 딸에게 모진 걸음연습을 시키면서 얼마나 속으로 눈물을 삼켰을까. 그것이 어머니의 사랑이었다는 철이 든 후에야 깨달았다고 했다. 

조그만 계집아이가 목발을 짚고 걸어가는 학교 길에는 가방을 든 큰언니가 따라 다녔다. 눈이 똘망똘망한 아이는 선생님의 말씀을 하나도 놓치지 않았고 시험만 쳤다하면 100점이었다. 언니 때문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100점짜리 아이는 친구들은 물론이고 학부모들에게까지 시샘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어느 봄날의 야유회. ⓒ이복남

여느 장애인들처럼 체육시간은 교실지킴이였기에 체육점수가 없었음에도 언제나 전교수석이었다. 진해여중을 졸업하고 부산 동래로 이사를 했고 동래여고에 입학을 했다. 열심히 어쩌면 악착같이 공부를 하면서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했고 약대를 지망했다.

동래여고 수석 졸업생이 약대에 떨어졌다. 장애인 입학거부. 참으로 서러운 시절이었다. 지금은 생각조차 할 수 없지만 당시만 해도 몇몇 학과 외에는 장애인을 받아주지 않았던 것이다. 자신을 거부하는 대학이라면 가고 싶지 않았다. 대학을 포기하고 양재학원에 등록을 했다. 바느질을 배워보니 재미도 있었고 생각지도 못했던 소질까지 있었다. 양재학원을 졸업한 뒤에는 그 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이경희씨 이야기는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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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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