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하부역사에 모였을 때는 5시 30분이나 되었다. 세병관이나 거북선 관람도 늦은 시간이었다. 하는 수 없이 동피랑으로 향했다. 동피랑 가는 길도 차가 천천히 가는 덕분에 차창 밖으로 보이는 거리 구경은 잘 할 수가 있었다.

미륵산 정상에서 김홍술 목사님과 이영우 봉사자님. ⓒ이복남

호수같이 잔잔한 바다를 보면서 목사님에게 ‘가고파’를 청했다. 목사님은 낭랑한 목소리의 무반주 테너로 ‘가고파’를 열창했다. 1933년 이은상의 시에다 김동진이 곡을 붙인 ‘가고파’는 많은 사람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이다.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꿈엔들 잊으리요 그 잔잔한 고향바다…….’는 마산 앞바다를 두고 만든 노래지만 마산이나 통영이나 그 잔잔한 고향바다는 마찬가지이리라.

이곳에는 통영과 미륵도를 잇는 해저터널이 있다. 1932년에 건립한 통영해저터널은 당동과 미수2동을 연결하는 동양최대의 해저터널인데 일제강점기 때 일본 어민의 이주가 본격화 되면서 거리단축을 위해서 만들어졌는데 2005년 등록문화재가 되었다. 그러나 통영대교로 인해 요즘은 유명무실하단다.

그러나 강미정 해설사에 의하면 이 해저터널에는 전해오는 전설이 있단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에 의해 많은 일본군이 통영앞 바다에 수장이 되었다. 그 후 사람들은 착량교라는 구름다리를 놓아 통영과 미륵도를 오갔는데 일제강점기 때 일본사람들이 와서 보니 기가 막혔다는 것이다. 조선 사람들이 일본군을 밟고 지나다니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구름다리를 없애고 해저터널을 만들었다는데 이제 등록문화재가 되었으니 알 수 없는 전설이라는 것이다.

미륵산 정상에서 두사람 뒤로 보이는 한려수도. ⓒ이복남

병선마당에 정박한 거북선. ⓒ이복남

멀리 남망산이 보이고 오른쪽으로 거북선이 보였다. 강미정 해설사는 거북선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왜적을 물리친 철갑선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림이나 설계도 같은 것이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아 곧잘 짝퉁 시비에 휘말린다고 했다.

거북선이 정박해 있는 곳은 원래 군선들이 정박하는 병선마당이었는데 요즘은 문화마당이라고 한단다. 통영의 군선은 운반선인 판옥선과 공격선인 거북선이 있는데 병선마당에서 제일 먼저 보이는 배가 판옥선이고, 그 옆에는 한강유람선을 가져온 거북선이고, 그 옆에는 얼마 전에 전라좌수영에서 가져 온 거북선 2척이란다.

그리고 이곳의 명칭이 삼국시대에는 고성군, 고려시대에는 남해군 등으로 변경되었으나 선조 37년(1604) 삼도수군통제영(三道水軍統制營)이 설치되면서, 임진왜란 이후 농촌은 통영군이고, 도심은 이순신의 시호를 따서 충무시가 되었다.

그러다가 1995년 주민들의 투표로 도시와 농촌의 복합형태로 통영시로 통합되었다고 한다.

동피랑으로 가는 길에 오른쪽은 거북선이 있는 병선마당 바다이고 왼쪽은 전부 상가였다. 필자는 젊었을 때부터 박경리 선생을 존경하고 좋아했는데 딱 한 가지 마땅찮은 것이 있었다.

‘통영은 다도해 부근에 있는 조촐한 어항이다. 부산과 여수사이를 내왕하는 항로의 중간지점으로서 그 고장의 젊은이들은 조선의 나폴리라 한다. 그러니 만큼 바닷빛은 맑고 푸르다. 남해안 일대에 있어서 남해도와 쌍벽인 큰 섬 거제도가 앞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에 현해탄의 거센 파도가 우회하므로 항만은 잔잔하고 사철은 온난하며 매우 살기 좋은 곳이다.’ 이 글은 ‘김약국의 딸들’에 나오는 통영에 관한 설명이다.

‘김약국의 딸들’이 나 온 때가 1962년이었는데 박경리 선생이 이탈리아의 나폴리에 가 보셨는지 잘 모르겠지만 필자는 아직 나폴리를 가보지 못했다.

나폴리가 얼마나 아름다운 지 잘 모르겠지만 박경리 선생이 파도 잔잔하고 사철 살기 좋은 고장 통영항을 나폴리에 비유하는 바람에 그 후부터는 너도나도 통영을 나폴리에 비유했다.

동피랑 고래 앞에서. ⓒ이복남

천사의 날개 앞에 두 팔을 벌린 이선진씨. ⓒ이복남

옛날 뱃사람들이 양념을 넣은 김밥은 오뉴월 뙤약볕에 빨리 시므로 밥따로 반찬따로 하는 충무김밥을 하게 되었다는데 믿거나 말거나이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고 충무김밥이 인기가 있다 보니 너도나도 서로가 원조라하고 한 술 더 떠서 아예 나폴리충무김밥이라고 하니 나폴리충무김밥은 나폴리에서 왔다는 것일까.

병선마당을 지나자 멀리 동피랑이 보였다. 왼쪽 중앙시장과 오른쪽 남망산 사이에 있었다. 동피랑은 동쪽에 있는 언덕 즉 벼랑인데 피랑이란 벼랑의 통영 말이란다. 동피랑은 이순신 장군이 설치한 통제영의 동포루(東砲樓)가 있던 자리로, 일제 강점기에는 하역인부들이 주로 살았던 낙후된 곳이란다.

통영시에서는 낙후된 마을을 철거하고 동포루를 복원하려고 했으나 2007년부터 시민단체 등에서 ‘동피랑 색칠하기’를 시작하여 요즘은 전국 명소가 되었단다.

슬로우 슬로우로 차량 7대가 동피랑으로 들어섰다. 주차할 곳도 없으니 그냥 빙빙 돌다가 주차할 곳이 있으면 알아서 세우란다.

필자는 강미정 해설사와 목사님 봉고에 함께 탑승했고 목사님이 알아서 할 테니까 내리라고 해서 일행과 함께 내려서 동피랑을 둘러보았다. 동피랑은 아직도 사람이 사는 곳이니 시끄럽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아무 데나 들여다보고 들어가는 것은 안 된다고 했다.

각양각색의 그림들이 동피랑의 담벽을 장식하고 있었는데 한참을 지나다 보니 ‘천사의 날개’가 나왔다. 어느 일가족이 차례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우리 일행 중에 이선진씨가 자기도 사진을 찍어 보고 싶다고 했다. 일가족의 사진 촬영이 끝나고 이선진씨가 천사의 날개 앞에서 두 팔을 쫙 벌리고 사진을 찍었다.

이선진 씨가 사진을 찍을 때도 주변에 사람들이 삥 둘러서 있었기에 그냥 구경꾼이려니 생각했었다. 그런데 사진을 찍고 난 후에 보니 ‘천사의 날개’에서 왼쪽으로 길게 줄이 서 있는 게 아닌가.

‘죄송합니다. 정말 몰랐어요. 죄송합니다.’ 공연히 ‘장애인들은 질서도 무시하는구나!’ 쓸데없는 오해를 주는 것 같아 정말 미안하고 죄스러웠다. 그러나 사진 찍을 때는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정말 몰랐었다.

통영시에서도 동피랑 벽화는 2년에 한 번씩 공모하여 우수작에는 100만원을, 참가자들에게는 50만원씩을 지원하고 있다고 했다. 올해는 우수작 2편이 공동수상했는데 하나는 ‘천사의 날개’이고 또 하나는 통영항의 ‘등대’란다.

‘등대’는 이층구조로 되어 있어 해설사가 지정한 곳에서는 그림이 하나로 보였으나 조금만 벗어나면 일층과 이층 그림은 연결되지 않았다. 그러나 ‘등대’ 아래에는 차들이 주차해 있어서 제대로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다.

이층구조로 되어 있는 통영항의 등대. ⓒ이복남

지정된 자리를 벗어나면 이층의 등대와 연결이 안 됨. ⓒ이복남

동피랑을 한 바퀴 돌아 나오니 어떤 사람이 볼멘소리를 했다.

“이런 그림은 우리 마실에도 천지빼까린데 여까지 와서 이런 그림 보라카노?”

그 사람의 집은 문현동이었고 부산 남구 문현동 안동네에도 벽화마을이 있다.

동피랑에서 올해 우수작이라는 ‘천사의 날개’와 ‘등대’을 보고 큰길로 내려와서 인원을 점검하니 세 사람이 부족했다. 모두가 자신이 타고 온 차를 다시 타라 했건만 중간에서 전달이 잘못 된 모양이었다.

필자의 휴대폰은 아침부터 통화를 많이 한 탓인지 배터리가 다 되었고 여기저기 아는 사람들 휴대폰으로 실종자를 찾기 시작했다. 동피랑이 넓지 않은 곳이니 찾을 수야 있겠지만 당장 행방이 묘연하니 애가 탔다.

미수해양공원에서 찍은 단체사진. ⓒ이복남

통영시의 꽃길을 장식하는 꽃양귀비. ⓒ이복남

“없는 사람은 우리가 찾을 테니 선생님은 먼저 가세요. 오늘 정말 수고 하셨습니다.”

아침부터 종일 애쓰신 강미정 문화관광해설사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벌써 6시가 넘었던 것이다.

그동안 봉사자들이 전화를 하고 여기저기 뛰어 다녔는데……. 20~30분쯤 지나서 잃어버린 세 사람이 이윤희씨 차에 타고 왔다. 이윤희씨 차에는 휠체어 장애인이 타고 있었고, 내릴 곳이 마땅찮아 두어 바퀴 동피랑을 돌다보니 낯이 익은 장애인이 서성거리고 있어 태웠다는 것이다.

모두가 무사히 하사가의 봄나들이를 마친 것 같다. 오뉴월 긴긴 해도 이미 저물고 오늘의 통영 나들이도 이제는 접어야 할 시간이었다. 안녕, 우리 여름에 다시 만나요.

하사가의 문화향기, 통영 나들이에 참가하신 분 모두모두 고생하셨습니다.

좋은 해설사님을 소개해 주신 통영시청 문화관광과에 감사드립니다.

여러 가지로 탑승을 배려해 주신 통영관광개발공사 임직원 여러분 고맙습니다.

강미정 문화관광해설사님 정말 고맙습니다.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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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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