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긴 14줄 172자의 유언은 한국 정치사의 비극이지만 동시에 분열과 갈등을 치유하는 교훈으로 승화시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노컷뉴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캄캄한 고독 속에서 남긴 14줄 172자의 유서를 몇 번이고 꼼꼼히 읽어봤다.

마치 싯구절을 연상케하는 짧은 단문이지만 결코 짧지 않은 길고도 긴 여운이 행간마다 고스란히 드리워져 있었다.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이라고 표현했지만 산 자가 어찌 죽음을 선택한 그의 고통과 번민을 헤아릴 수 있겠는가.

역설적이게도 노 전 대통령의 서거(逝去)에서 자유롭지 못한 검찰의 애도성명처럼 정말로 형언할 수 없이 슬프고 안타까울 뿐이다.

생명의 고귀함은 지위고하를 떠나 있는 것이지만 그래도 일국의 국가원수를 지낸 그의 힘겨운 유서는 오늘을 사는 우리를 슬프게 만들고 있다. 적어도 그가 남긴 유서에 그 어떤 정치적 주석도 달아서는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바보' 노무현을 지탱해 온 것은 자존심과 솔직함이었고, 대통령의 지위도 그의 자존심에 비할 바 아니었다. 때문에 자존심과 도덕성이 무너져내린 현실에서 그는 더 이상의 또 다른 무엇을 선택할 수 없었던 것이다.

물론 그의 솔직함은 어떤 때는 가벼움으로 비판받았고, 그의 신념은 현실과의 타협을 거부하는 아집으로 지탄받았으며, 독단적 권위주의를 배격하다 정작 대통령의 권위를 훼손했다는 질타도 꼬리표처럼 따라 다녔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은 고통과 번민, 자괴감과 슬픔을 억누르며 마지막으로 남긴 유서에서 고마움으로 말 문을 열었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고.

그리고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는 죄책감,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는 번민,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 밖에 없다"는 자괴감은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는" 존재감의 상실로 이어졌다.

'노무현'을 잃어버린 노 전 대통령은 이내 스스로를 다독이고 위로했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고.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 하지도 누구를 원망하지도 마라"고. 그는 이 모든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지인들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전한 뒤 떨리는 손으로 자신을 다독인 노 전 대통령은 유서 말미에 가족들에게 화장(火葬)을 부탁했다. 세파에 갈기갈기 찢겨진 고통의 더미-육신(肉身)-를 태워 자유를 찾고 싶었던 것은 아닌지...

그러나 남편이자 아버지로서 소중한 가족과 함께 하고 싶은 애틋한 마음은 어찌할 수 없었다.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달라"고.

그리고 유서 맨 마지막 줄에 남긴 이 모든 것은 "오래된 생각"이라는 문구는 그 누구도 상상못할 고통의 시간을 함축하고 있다.

한국 정치의 풍운아로 삶을 살아 온 노무현 전 대통령은 누구도 원망하지 않겠다면서 세상과 작별을 고했다.

안타까운 것은 마지막 산행에 동행했던 비서관이 담배라도 한 개비 가지고 있었으면 그나마 어땠을까 싶다. 가슴 깊은 곳의 딱딱한 응어리들을 담배 한모금의 연기와 함께 훌훌 날려 보낼 수도 있었을텐데 말이다.

그의 죽음은 우리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만의 슬픔이 아니다. 우리 모두는 지금 '노무현을 애도하는 사람들'이 돼야 한다.

그래서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우리의 분열과 갈등을 치유하는 계기로 승화시켜야 한다. 비라도 죽죽 내려 국민들의 답답함을 잠시나마 씻어줬으면 좋겠다.

워싱턴=CBS 박종률 특파원 nowhere@cbs.co.kr / 에이블뉴스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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