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의 계단도 열차 선택의 중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작년에 도입된 itx 마음열차.  ©정현석
열차의 계단도 열차 선택의 중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작년에 도입된 itx 마음열차.  ©정현석

“영등포역에서 열차를 타도 되는데, 왜 꼭 지하철을 타고 서울역까지 가니? 거기까지 가는 시간만도 20분 이상 걸리는데?”

장애인콜택시를 기다리며 지인들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있던 중 내 옆 테이블에 있던 사람의 전화통화 소리가 들렸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통화 내용이었기에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지만, 손에 들고 있던 전화기를 내려놓고 살짝 통화에 집중하게 된 것은 그다음에 나온 말이었다.

“장애인 도우미를 이용하는 건 서울역이나 영등포역이나 똑같은데, 왜 엄마 말 안 듣고 여행을 갈 때마다 영등포역에도 서는 열차를 서울역에서 타는 게 엄마는 이해가 안 된다는 거야.”

“서울역에서 도움을 받으면 안전하고 영등포역에서 타면 안전하지 않은 거야? 이해를 하고 싶어도 이해를 할 수가 없어. 너 마음대로 해. 일단 전화 끊고, 다녀와서 두고 봐. 너는 집에서 혼 좀 나야 해. 사춘기도 아니고 대학생이나 된 애가 왜 그래?”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진 탓인지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방금전 통화를 마친 어머니에게 집중되었다. 그 시선이 부담스러운 듯 급하게 짐을 챙겨 빠른 걸음으로 커피숍을 나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떠오른 생각은 “대학생 자녀가 참 힘들겠다” 였다. 나 역시 여행 때마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두고 열차의 최초 출발역으로 이동하는 것을 감수하기 때문이다.

역무원 혹은 사회복무요원이 상주하는 기차역에서는 장애인도우미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각 열차의 최초 출발역에서는 출발 10-15분 전에 역 직원이나 사회복무요원의 안내를 받아 열차에 승차해 좌석에 착석하는 것까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데 비해, 중간 정차역의 경우에는 열차가 도착해 문이 열리면 승무원에게 장애인 승객을 인계하는 것으로 사회복무요원이나 역 직원의 역할이 끝나게 된다.

중간 정차역의 특성상 1분에서 3분 사이에 장애인 승객을 자리로 안내한 후 다시 객실 밖으로 나가 승객을 안내하게 되는데 간혹 “열차 출입문을 닫고 출발 후 자리로 안내하겠다”며 잠시 대기해야 하는 시간도 생기는 경우가 있다. 이 과정에서 열차의 출발하는 열차의 흔들림 혹은 다른 승객과의 부딪힘으로 인해 다칠 수 있다는 위험도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누군가의 아들이던 그 대학생 아이도, 그리고 나도 이런 위험들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겠는가. 한 두번쯤은 위험한 고비를 넘기면서 나름의 경험이 쌓이고, 그날 그날의 몸 상태와 여러가지 상황에 따라 대응 방법이 생겼을 것이고 그 과정을 겪으며 생각해 낸 방법 중 하나가 “수고스럽더라도 출발역으로 가서 타자”로 결론이 나온 것이다.

그에게는 영등포역에서 열차를 타는 것은 안전하지 않은 것이었고, 기차의 출발역이냐 정차역이냐의 차이는 비장애인인 어머니의 생각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었지만 그의 어머니는 이러한 아들의 생각을 “고집”으로만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판단을 이해하지 못하는 엄마와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갈등을 겪어야 할까.

장애인의 자립 또한 단순히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것이 아닌, 자신이 살고 있는 공간을 본인의 장애 특성에 맞게 이용하면서 세면 식사 신변처리 빨래 등 모든 영역에서 본인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고 조리기구에서부터 세면도구까지 본인에게 맞는 기구를 선택하여 삶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당사자의 선택을 고집이 아닌 존중으로 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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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석 칼럼니스트 집에서만 살다가 43년 만에 독립된 공간을 얻었다. 새콤달콤한 이야기보다 자취방을 얻기 위한 과정에서 겪었던 갈등들과 그것들이 해결되는 과정이 주로 담으려 한다. 따지고 보면 자취를 결심하기 전까지 나는 두려웠고, 가족들은 걱정이었으며, 독립 후에도 그러한 걱정들은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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