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양지우 ©양지우
피아니스트 양지우 ©양지우

소리에 반응하다

2000년에 태어난 지우는 열 달을 채우지 못하고 7개월 만에 세상 밖으로 나왔다. 그래서 인큐베이터에서 지내야 했다. 그것이 지우에게 시각장애라는 남다른 삶의 조건을 지워 주었다. 미숙아 망막병증이라고 하는데 망막혈관의 비정상적인 발달로 인해 망막의 혈관성 변화가 일어나는 질환으로 임신 주수가 낮을수록, 출생 시 체중이 작을수록 많이 발생한다고 되어 있지만 인큐베이터 산소 농도가 높아서 망막혈관이 수축하여 시각을 잃은 것이기에 의료사고이다.

지우는 빛을 본 적이 없기에 듣는 것에 흥미를 보였다. 소리가 나는 라디오와 TV를 좋아했다. 특히 음악이 나오면 집중도가 더욱 높았다.

어느 날 이모가 전자올겐 장난감을 사갖고 왔다. 이모는 ‘지우야, 듣지만 말고 네가 소리를 만들어 봐. 그러면 훨씬 재미있을 거야.’ 하면서 동요를 건반으로 쳐 주었는데 지우는 그것을 듣고 바로 건반을 누르며 노래를 완성시켜 엄마와 이모를 놀라게 하였다.

지우는 수많은 소리 가운데 특히 연주음에 즉각적으로 반응하였다. 요즘은 그것을 절대음감이라고 하지만 예전에는 그런 것도 모르고 그저 음악을 좋아해서 연주를 잘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때가 지우 네 살이었다.

지우는 엄마 손을 잡고 거리를 걸어가다가도 피아노 소리가 들리면 그곳에 딱 멈춰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손을 잡아끌어도 온몸에 힘을 꽉 주고 피아노 소리에 집중하였다. 피아노에 대한 반응이 지우의 본능인 것 같았다. 그때는 아이들이 동네 피아노학원에 가서 피아노를 많이 배웠기에 엄마는 지우도 학원에 보내기로 하고 학원에 찾아갔지만, 학원에서는 시각장애아는 가르쳐 본 적이 없어 받을 수 없다고 거절하였다.

지우는 여섯 살 때 한빛맹학교 유치원에 입학하였다. 학교 근처에서 피아노 소리가 들리자 지우는 또 멈춰 섰다. 유치원에 갈 때마다 피아노 소리에 발길을 멈추는 지우 때문에 엄마는 학원도 없는데 매일 피아노 소리가 나는 것이 이상해서 알아보니 가정집에서 피아노를 가르치고 있었다. 엄마는 다시 문을 두드렸다. 한빛학교 학생들을 많이 봐 왔던 피아노 선생님이 ‘한번 가르쳐 보겠다.’고 하여 지우는 피아노를 배우게 되었다.

피아노 수업중 ©양지우
피아노 수업중 ©양지우

피아노 스승을 만나다

장애인 맘카페에 장애아동에게 피아노를 가르쳐 주겠다는 피아니스트 김지현 선생님 글을 보고 엄마는 지우와 함께 선생님을 찾아갔다. 선생님은 피아노전공 유학파 박사인데다 장애인에 대한 깊은 애정이 있는 분이라 김지현 선생님을 만나고부터 는 피아노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대학 입시를 준비하기 시작한 고등학교 2학년까지 무려 8년 동안 김 선생님의 지도를 받았다.

그리고 한빛학교 중학교에 진학하자 음악교사가 시각장애인 당사자인 피아니스트 이재혁 선생님이어서 점자악보를 보는 법을 배우는 등 큰 도움이 되었다. 이재혁 선생님은 지우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잘 알고 있었다.

모든 교육과정을 거치면서 지우는 공부는 공부대로 열심히 했고, 피아노는 자기가 좋아서 열심히 연습하며 학창 시절을 보냈는데 고등학교에 올라가니 진로를 정해야 했다. 대학 진학을 할 것인지, 진학을 한다면 무엇을 전공해야 직업을 갖고 자립을 할 수 있을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지우는 생각했다. 피아노를 공부한 시간이 결코 짧지 않고 연주할 때는 즐거웠고, 콩쿠르에 나가서 상을 받았을 때는 너무도 뿌듯하였던 순간을 떠올리자 피아노 전공을 결심하게 되었다. 그래서 부모님께 대학을 피아노학과로 진학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아빠는 지우가 하는 일을 항상 말없이 지지해 주셨는데 음악을 좋아하시던 아빠는 ‘잘 생각했다.’며 흔쾌히 허락하셨다. 엄마는 지우와 늘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시각장애인이 음악인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알기에 오히려 말씀이 없으셨지만 딸이 하고 싶어하는 공부이기에 딸의 결정을 따라 주셨다.

대학 진학을 음대로 정한 지우는 대학입시를 위해 새로운 스승과 입시 준비를 하였다. 코리안컬쳐리더스 대표로 소외계층 음악교육을 위해 일하시는 김지현 대표님께서 상명대학교에 출강하는 교수님을 소개해 주셨다.

대학 생활은 지우의 풍선

2018년 11월, 지우는 2019학년도 대학수학 능력평가 시험을 서울맹학교에서 보았다. 서울 지역에서 대학수능을 치르는 학생은 총 9명이었다. 고사실로 향하면서 지우는 방송사와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그 해 처음으로 일반학생들처럼 시각장애 선배들이 수험생을 응원하는 이벤트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 날 신문에 기사가 이렇게 났다.

한빛맹학교 3학년 양지우(19) 학생은 “무대 체질이라 긴장하지 않는다.”며 “피아니스트가 꿈인 만큼 이번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원하는 대학 피아노과를 꼭 가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지우는 음악이 아닌 다른 분야의 큰 시험을 본 것이 그때가 처음이기 때문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음악 실기 시험은 2분 안에 떨어질지 붙을지가 결정이 된다. 아무리 연습을 많이 해도 그날 컨디션이 안 좋거나, 실수를 하거나 모두 본인의 몫이다. 그런데 수능시험은 주어진 시간 안에는 답을 얼마든지 수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시각장애 학생에게 주어진 1.7배의 시험시간으로 총 12시간 동안 시험을 봐야 하는데 그 긴 시간 동안 집중력을 끌어 올리는 것은 단점이라는 것을 알았다.

응원이 너무 소중하다는 것도 알았다. 이름 모르는 후배까지 응원하려고 점자 쪽지에 간식까지 챙겨 주니 가슴이 뭉클했었다. 그렇게 수능을 치른 지우는 2019학년도 상명대학교 음악학부에 합격하여 대학 생활을 시작하였다.

4년 동안의 대학 생활이 어땠느냐고 묻자 이렇게 말했다.

“한 단어로 정의하긴 그렇지만 저는 1학년부터 4학년까지 한 계단 한 계단 잘 밟아 올라왔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대학 생활은 풍선 같은 것이었어요. 왜냐면 풍선은 불면 엄청난 크기로 불어날 수도 있지만 바람이 탁 빠지면 완전 쪼그라들잖아요. 진짜 구름 위에 뜬 것 같을 때도 있고, 저 밑바닥까지 떨어진 것 같기도 하고….

저는 비장애인이랑 생활한 적이 없는데 대학에 오니 비장애인들을 너무 많이 만나야 되고 게다가 피아노를 잘 치는 애들을 한번에 만난 적이 없으니까, 실력적인 스트레스며 학업적인 스트레스가 엄청났어요. 대학에 와서 새로운 세상을 제대로 접하게 되었지요.”

지우는 코로나19시대 대학생이다. 2학년, 3학년을 코로나19로 학교생활이 제한적이었다.

코로나19로 연주할 기회가 별로 없었던 것이 지우를 힘들게 했다. 연주자는 연주를 할 때 성취감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집단 방역이 조금씩 풀렸을 때는 이미 졸업반이었다.

지우는 또다시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사회에 나가면 나의 이 (연주) 성과가 어느 정도로 지속될까? 음악은 학사 졸업이 초등학교 졸업 같은 취급을 당하더라구요. 박사분들이 많으시고 거의 유학파구. 나는 대학만 졸업하면 인정을 받는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햇병아리였어요.

그렇다고 음악이 아닌 다른 영역에서도 내가 역량을 키우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나는 이제 뭘 할 수 있지? 난 눈도 하나도 안 보이는데 뭘 할 수 있지? 피아노는 잘 칠 것 같은데 이걸로 내가 뭘 하지? 하다 못해 반주를 하더라도 외워야 되니까. 그런 막막함이 밀려왔어요. 그런 고민을 계속하며 내가 정말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여러 가지 사이트를 검색하다가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중증장애인인턴제라는 걸 알게 되어 자세히 살펴봤더니 시각장애인을 채용하는 데가 많지 않았지만 몇 개 올라온 기관들이 있어서 신청을 했어요.”

오케스트라와 협연 중 ©양지우
오케스트라와 협연 중 ©양지우

지우의 본캐는 시각장애, 피아니스트는 부캐?

지우는 현재 장애인자립생활센터라는 곳에서 일을 한다. 장애인복지에 대해 잘 모르지만 면접에 합격하여 10개월 동안 인턴으로 근무를 하게 되었다. 지우는 최대한 근무시간을 꽉 채우는 만근을 하고 있다. 이용자들을 상대하고, 강사 스케줄을 조율하고 한 번도 써 본 적 없는 업무 일지를 쓰고 있다. 요즘 지우가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바로 이런 것이다.

“나는 양지우인데 사람들에게는 내가 그냥 시각장애인이예요. 시각장애가 본캐릭터인 거예요.

나는 피아니스트가 캐릭터인데 시각장애인이 되면 그 무엇을 해도 시각장애가 본캐가 되는 거죠. 저도 어느 순간 ‘안녕하세요? 시각장애인 양지우구요.’ 이렇게 말을 시작해요. 그래야 편해요. 나중에 시각장애가 있다는 것을 알고 상대가 ‘아, 그러시구나!’라며 난색을 보이는 것을 미리 막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김지현 선생님은 지우가 피아노가 아닌 다른 일을 하는 것에 대해 걱정을 많이 한다. 전공을 살려 일을 해야 지우가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지현 선생님은 지난해 졸업을 앞둔 제자 양지우를 위해 오케스트라 협연 무대를 기획하여 지우가 피아니스트로 무대에서 마음껏 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그리고 지난 5월 삼성동 코엑스에서 세계루푸스학회 국제심포지엄(LUPUS & KCR 2023)에 소개하여 암전된 상태에서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 양지우가 <포 더 피스 오브 올 맨 카인드(For The Peace Of All Mankind)>라는 곡을 연주하고 난 후 ‘The Light’라는 제목으로 첫 번째 강연자로 나서도록 하였다. 두 번째 곡은 의사와의 협연을 하였다. 이는 ‘과학과 예술의 조화’라는 의미를 갖는다.

“협연 같은 것을 저희 동기들 중에 저만 해 봤으니까 특혜죠. 시각장애인이기 때문에 이런 기회가 또 온 것이니까 장애 때문에 생기는 기회도 있어요.

한빛학교가 음악 특화학교여서 음악을 하는 친구들이 많았지만 중간에 그만두기도 하고, 게다가 인원 자체가 적다 보니까 학교에서는 늘 잘하는 편에 속했었어요. 나랑 비슷한 또래에 비슷한 수준으로 피아노를 치는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콩쿠르였죠. 넘사벽이다 싶은 애들도 있고, 어떤 애는 나보다 더 못 하네 싶을 때도 있는데 그런 지표를 확인할 수 있는 데가 콩쿠르밖에는 없었어요. 그래서 나는 콩쿠르에 참여하며 조금씩 성장한 것 같아요.”

피아노 독주 무대 ©양지우
피아노 독주 무대 ©양지우

지금도 고민 중

“말하는 일을 하고 싶어요. 라디오 DJ 같은 거. 음악을 좋아해서 많이 듣거든요. 음악 교사가 되고 싶기도 해요. 연주를 많이 하고 싶기도 하고… 졸업 후 개인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그날 내가 피아노를 칠 수 있다는 게 너무 감사하고, 연주를 마친 그 순간이 행복했어요. 연주는 그 누구의 도움 없이 오롯이 내 의지대로 내 실력으로 만드는 것이라서 자존감이 생겨요. 물론 어마어마한 실력자들이 많지만 저는 저만 낼 수 있는 소리가 있거든요. 사람들이 많이 해 준 말이, 저는 목소리도 엄청 크고 말도 많고, 와일드한 성격인데 피아노를 칠 때는 다들 깜짝 놀랄 정도로 음색이 아주 부드럽다고 해요.

유튜브 채널 <피아니스타 지우>에 제 연주를 올려놓고 있는데요. 1, 2, 3, 4악장을 모두 연주한 소나타가 하나 있는데 누가 그러더라고요, 2악장이 제일 좋다구요. 2악장이 느린 곡이거든 요. 느린 곡 칠 때가 더 힘들지만 감정을 담아서 연주를 하니까 사람들이 제 연주를 들어준다는 것이 신기했어요. 나만의 소리를 찾아 나만의 연주로 만들어 가고 싶어요.”

양지우는 자기가 이 일을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최근에 다시 한 번 더 확인했지만 피아니스트로 활동 기회가 너무도 불규칙하여 연주 하나만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피아니스트 양지우 ©양지우
피아니스트 양지우 ©양지우

양지우

2023년 상명대학교 음악학부 졸업

 

전국 청소년 뮤직콩쿠르 연말 특상

제1회 피아노 재능기부 콩쿠르 대상 툴뮤직 피아노 부문 1위

 

2022년 희망을 들려주는 사람들 협연

하트하트오케스트라 협연

서울교육청 런치콘서트

튜티앙상블 콘서트

제1회 네이버 클래식 스타리그 외 다수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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