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4대 육신과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4대 육신과 안이비설신의의 어느 한 부분이 다치거나 기능을 상실하게 되면 장애인이 된다. 세상에 장애인이 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살다 보면 자신이 원하지 않았음에도 불가항력으로 장애인이 되는 경우가 있다.

시각장애인은 눈이 보이지 않은 사람이다. 예전에는 시각장애인은 1급부터 6급까지 나누었으나 현재는 심한 장애인과 심하지 않은 장애인으로 구분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시각장애인이란 앞을 전혀 볼 수 없는 심한 장애인 이야기다.

8살의 헬렌 켈러와 앤 설리반. ⓒ지식백과에서
8살의 헬렌 켈러와 앤 설리반. ⓒ지식백과에서

헬렌 켈러(Helen Keller, 1880.6.27.~1968)는 미국의 저술가이자 사회사업가이다. 헬렌 켈러는 눈도 보이지 않고 귀도 들리지 않고 말도 못하는 삼중고의 장애를 가지고 있었으나 앤 설리번 선생을 만나 공부하고 나중에 말은 할 수 있게 되었다.

헬렌 켈러의 “사흘만 세상을 볼 수 있다면”이라는 저서가 있다. 헬렌 켈러는 이 저서에서 어떤 기적이 일어나 사흘만 볼 수 있게 된다면. 첫째 날은 내게 다가와 바깥세상을 활짝 열어 보여주신 사랑하는 앤 설리번 선생님의 얼굴을 보고 싶다고 했다. 둘째 날은 밤이 아침으로 변하는 새벽의 기적을 보고, 셋째 날은 사람들이 오가는 평범한 거리를 보고 싶다고 했다.

헬렌 켈러의 “사흘만 세상을 볼 수 있다면”은 이루어질 수 없는 헬렌 켈러의 픽션이고 희망 사항이다. 가끔 시각장애인들은 사랑하는 아내와 딸의 얼굴을 한 번 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소망을 말하기도 한다.

시각장애인은 앞을 보지 못하므로 점자를 배운다. 우리나라 점자는 박두성 선생이 1926년 11월 4일 훈맹정음(訓盲正音)으로 발표하였는데 6개의 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우리가 배우는 한글 가나다라는 24자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 속담에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른다는 말이 있다. ㄱ은 낫처럼 생겼으나 글을 모르는 사람은 물론이고 글자의 모습을 본 적 없는 시각장애인은 모를 수 있다.

그러나 점자를 배운 시각장애인은 한글 ㄱ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가 있고, 특히 유치원 등에서 한글을 처음 배우는 아이들은 한글 모형을 맞추기도 하므로 시각장애인도 한글의 모양새는 알 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만난 강용봉 작가. ⓒ이복남
필자가 만난 강용봉 작가. ⓒ이복남

한글은 그렇다 치고, 시각장애인이 한자는 어떻게 알 수가 있을까? 시각장애인은 한자를 본 적이 없기 때문에 한자를 알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열국지 팩트체크”를 쓴 강용봉 작가가 시각장애인이다.

열국지는 중국의 주(周)나라가 서쪽 오랑캐에 쫓겨 도읍을 현재의 시안(西安) 부근에 있던 호경(鎬京)에서 동쪽의 낙양(洛陽)으로 옮겨 동주(東周)라 칭하는 BC 770년부터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는 BC 221년까지 춘추전국시대 550년간의 역사를 소재로 삼은 역사소설로 정식 명칭은 ‘동주열국지(東周列國志)’다.

열국지는 명나라 말기의 풍몽룡(馮夢龍 1574년~1646년)이 민간에 전해져오던 이야기를 서술했다고 한다. 이 같은 열국지에서 어떤 것이 픽션이고 어떤 것이 넌픽션인지 팩트체크를 한 사람이 강용봉 작가의 “열국지 팩트체크”이다.

강용봉의 열국지 팩트체크 유튜브 6편. ⓒ이복남
강용봉의 열국지 팩트체크 유튜브 6편. ⓒ이복남

필자가 강용봉 작가를 만났을 때 처음 물어본 말이 “한자를 어떻게 했어요?”였다. 강용봉 작가가 웃으면서 하는 말이 “장애인복지 하는 사람이 그것도 모릅니까?”였다. 사실 필자는 이 말에 더 어리둥절했다.

“눈 감은 사람이 한자를 어찌 알겠습니까? 한자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당연히 모르지요.” 그 대신 점자정보단말기(한소네)에서 획수와 뜻을 가르쳐 준다면서 필자에게 보여 주었다.

선천성 전맹 시각장애인은 눈이 보이지 않으므로 모양이나 색깔 등은 알 수가 없다. 시각장애인은 색깔을 알지 못하므로 일부이기는 하지만 후천성 전맹의 경우 꿈도 차차 흑백으로 꾼다고 했다. 필자가 어떤 시각장애인에게 빨간색이 어떤 느낌이냐고 물었을 때 ‘어머니의 사랑’이 아니겠느냐고 했다.

'사랑한다고 말해 줘'에서 차진우와 정모은. ⓒENA
'사랑한다고 말해 줘'에서 차진우와 정모은. ⓒENA

Genie TV 드라마 ‘사랑한다고 말해줘’(연출 김윤진, 극본 김민정)는 지난 2023년 11월 27일부터 ENA에서 방영하고 있다. 이 드라마는 차진우(정우성 분)와 정모은(신현빈 분)이 주연인데 차진우는 청각장애인이다. 차진우는 화가인데 아트센터에서 청각장애인 학생들에게 미술을 가르치고 있다.

차진우에게 그림을 배우는 학생들은 미대 입시를 준비하는 청각장애인들인데 여기에 청인 안태호(한현준 분)가 들어 왔다. 안태호는 또래 학생들에게 학교 폭력을 당하던 아이였다.

안태호가 이 수업에 들어와 보니 이지민(나현진 분)이 항상 이어폰을 끼고 있었다. 하루는 안태호가 용기를 내어 이지민에게 물었다. 안태호는 아직 수어를 잘 모르므로 핸드폰에 글을 썼다.

너는 이어폰으로 뭘 듣니. ⓒENA
너는 이어폰으로 뭘 듣니. ⓒENA

안태호 : “너는 항상 이어폰을 끼고 있던데 뭘 듣는 거니?”

이지민 : ”귀가 안 들리는데 듣기는 뭘 들어, 이어폰을 끼고 있으면 사람들이 말을 안 시켜서 그냥 끼고 있는 거야.”

안태호는 이지민이 항상 이어폰을 끼고 있어서 뭘 듣고 있는 줄 알았단다. 안태호는 버스에서 이어폰을 끼고 눈을 감고 있는 이지민을 만난 적 있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이지민에게 어르신이 서 있으면 좀 일어나라고 했으나 이지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지민이 잠들었을 수도 있으나 이지민은 못 듣는 청각장애인이다. 곁에 있던 안태호가 대신 일어나 주었다.

버스를 타고 다니는 젊은 시각장애인이 있었는데 그 시각장애인이 자리에 앉아 있으면 옆에서 젊은 애가 어른도 몰라보고 안 일어난다고 구시렁거리더라고 했다. 그래서 목소리를 듣고 자리에서 일어난다고 했다.

보이스피싱 예방광고. ⓒ공익광고협의회
보이스피싱 예방광고. ⓒ공익광고협의회

어떤 시각장애인은 버스나 지하철에서 점자책을 펴놓고 읽는다고 했다. 다른 사람에게 시각장애인임을 알게 하려고. 그렇게 함에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일어나지만 65세가 되지 않는 사람이 뭐라 하여 신분증 제시를 요구한 시각장애인도 있다고 한다.

일반화의 오류라고 해야 할까, 얼마 전부터 텔레비전에서 김다현과 그의 아버지 김봉곤이 보이스피싱 예방 광고로 심청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광고에서는 심청이 김다현이 아버지 심봉사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공양미 삼백 석을 대출받으려는데, 대출해 줄 테니 관아에 출두하라는 보이스피싱이 등장한다. 아버지 심봉사는 “늘 의심하고, 꼭 전화 끊고, 또 확인하는” 가훈을 잊지 말고 보이스피싱에 속지 말고 눈을 뜨라는 이야기인데 심청이 이야기는 코믹하게 잘 만든 것 같다.

광고에서는 심청이 아버지를 심봉사라고 하는데 시각장애인이나 시각장애인 부모들이 제일 듣기 싫어하는 말이 봉사다. 어렸을 때는 아이들이 봉사라고 놀리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심청이 아버지를 심봉사 말고 달리 무슨 말로 표현하겠는가, 그리고 요즘은 심한 장애인도 심청이 아버지 심봉사같이 검은 안경을 쓰고 다니는 사람은 별로 없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조선시대 봉사(奉事)는 시각장애인을 이르는 말이 아니고 종8품 관직명이다. 조선시대에는 시각장애인들이 독경이나 관현악 그리고 침술(침구)이나 안마 등을 했는데 종8품 봉사(奉事)라는 벼슬을 주었으므로 당시만 해도 봉사는 시각장애인에 대한 존칭이었다. 그리고 소경(少卿)은 고려시대 관직명이다.

나 듣고 싶은 거 없어. ⓒENA
나 듣고 싶은 거 없어. ⓒENA

안태호는 한 가지만 더 물어보고 싶다고 했다.

안태호 : “만약 네가 들을 수 있다면 어떤 소리를 제일 듣고 싶어?”

이지민 : “소리를 모르는데 무슨 소리를 듣고 싶어? 뭔가 되게 듣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들어, 나는 그래.”

가끔 드라마나 소설 같은 데서 딸이 부르는 소리 또는 파도 소리를 듣고 싶다는 청각장애인이 있는데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는 청각장애인은 소리에 대한 환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어느 지인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 혹시나 오해의 소지가 있을지도 몰라서, 여기서 이야기하는 사람은 색깔이나 소리를 아예 모르는 선천성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 이야기다.

예전에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이 달 밝은 밤에 송도 앞 바다에 배를 타고 나가서 낚시한 적이 있다. 물론 필자도 같이 따라갔다. 그때 시각장애인은 뱃전에 부서지는 파도소리를 듣고, 청각장애인은 은빛으로 출렁이는 달빛소리를 보곤 했다.

‘사랑한다고 말해 줘’에서 작가나 연출이 청각장애인의 심정을 잘 표현해준 것 같아서 다행인 것 같다. 그러나 헬렌 켈러의 “사흘만 세상을 볼 수 있다면”은 헬렌 켈러의 픽션이고 희망 사항일 뿐이다.

그런데 헬렌 켈러가 이런 말을 했다. 본다는 것은 축복이고, 그리고 장애는 불편하지만 불행하지는 않다고.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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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남 원장은 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는 결코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이란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원장은 또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하는 아름다운 마음 밭을 가꿀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 같은 일성은 이 원장이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면서 장애인이 받고 있는 불이익을 현장에서 몸으로 뛰며 실천하면서 얻은 교훈이다. 이복남 원장은 현재 장애인 상담넷 하늘사랑가족<하사가>를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 홈페이지: http://www.988-7373.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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