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공무원을 퇴직하고 난 뒤, 이사도 하고 여러가지 일 때문에 많이 쉬지는 못했다. 하지만, 내 시간을 온전히 내 마음대로 쓸 수 있기에 현혜와도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하고 싶었지만 미뤄왔던 일들도 마음껏 할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자유로운 몸이 되고 나니 휠체어 여행의 욕구가 다시 꿈틀꿈틀거렸다.

​퇴직 기념(?)이라는 구실을 만들어 여행을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태국 치앙마이 한 달 살기, 베트남 나트랑 한 달 살기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집을 이사하며 전세 얻느라 돈도 없는데, 좀 짧은 여행을 가야 하나,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일단은 무작정 항공권을 알아 보았다. 대구로 이사를 왔지만, 아무래도 부산으로 가는게 편해서 부산 김해공항에서 갈 수 있는 비행기를 검색했다. 나는 될 수 있으면 제주항공, 진에어, 에어부산, 티웨이 등 저가항공을 먼저 알아본다. ​

제일 끌렸던 치앙마이를 부산에서 직항으로 가는 비행기가 제주항공에 있었다.

부산에서 치앙마이 직항 비행기를 제주항공에서 찾았다. ⓒ 박혜정
부산에서 치앙마이 직항 비행기를 제주항공에서 찾았다. ⓒ 박혜정

고객센터에 어렵게 통화를 해서 휠체어를 타고 있고, 보행이 전혀 안되는 상황이라고 얘기를 했다. 그랬더니 리프트카(지상에서 비행기 문까지 올려주는 차량)가 없어서 제주항공은 탈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알아보니 김해공항에서는 대표 항공사인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이들의 자회사인 진에어와 에어부산만 휠체어 승객을 위한 리프트카를 보유하고 있단다. 그렇다면 제주항공 뿐 아니라 다른 저가 항공사도 이용할 수 없다는 거였다.

​리프트카는 어쩌면 김해공항이나 지방공항에서만 필요한지 모르겠다. 왜냐면 새로 지어진 인천공항의 경우는 탑승구, 브릿지(연결 다리) 수가 120개가 넘게 있는 반면, 김해공항은 고작 국내선 6개, 국제선 13개 뿐이라니... 도대체 비교가 안된다. 아마도 인천공항은 리프트카가 아예 필요 없을 것이다.

인천공항 터미널의 탑승구 개수는 120개가 좀 넘는다. 반면 김해공항은 19개이다. ⓒ 박혜정
인천공항 터미널의 탑승구 개수는 120개가 좀 넘는다. 반면 김해공항은 19개이다. ⓒ 박혜정

원래는 비행기를 타려면 인천공항에서처럼 지정된 탑승구에서 비행기 문으로 연결된 브릿지를 통해 바로 탑승하게 된다. 그런데 탑승구, 브릿지가 국내선, 국제선 다 합쳐봐야 총 19개 밖에 없는 김해공항에서는 탑승구와 브릿지를 통해 비행기에 바로 탑승하는 건 아주 운이 좋은 일이 틀림없다.

김해공항에서 거의 대부분 탑승구와 브릿지가 없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는 승객들이 비행기가 있는 멀리까지 무료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그리고는 비장애인이든 장애인이든, 어쨌든 이동해서 비행기 탑승구에 장착된 계단을 이용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특히 거동이 힘든 중증 장애인에게 리프트카가 꼭! 필요하다. 불편해도 그나마 지상에서 비행기 문까지 올려주는 장치라서 탑승이 가능하도록 만들어 준다. 그런 리프트카가 김해공항에서는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진에어, 에어부산밖에 없다는 게 문제인 것이다.

비행기 탑승구와 브릿지가 연결된 모습. ⓒ 박혜정
비행기 탑승구와 브릿지가 연결된 모습. ⓒ 박혜정

그러니 휠체어를 타는 중증 장애인은 가격이 아주 비싼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만을 타야 되나? 아니면 저가항공을 타고 싶다면 진에어, 에어부산이 취항하는 곳만 여행해야 하나? 중증 장애인은 김해공항에서 다른 저가항공은 전혀 이용할 수 없는가? 아니면 업고 탈 수 있는 보호자를 무조건 동반해야 하나?

​너무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현재로는 그럴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지방 공항 중에 취항하는 도시가 제일 많은 곳이 부산 김해공항이다. 그렇지만 부산 김해공항에 직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휠체어를 타는 중증 장애인은 여행의 많은 짐을 가득 가지고, 기차를 타고 공항철도를 타고 힘들게 반나절이나 걸려서라도 인천공항으로 가야 하는 게 현실이다.

20년 전, 김해공항에서 직원에게 업혀 도쿄에 갔었다. ⓒ 박혜정
20년 전, 김해공항에서 직원에게 업혀 도쿄에 갔었다. ⓒ 박혜정

20년 전, 일본 도쿄를 김해공항에서 갈 때는 리프트카가 당연히 없었다. 다행히 남자 직원이 나를 업고 올라가는 도움을 줬었다. 지금은 그렇게 도와주지도 않을 뿐더러, 서로가 더 불편할 수 있기에 그런 도움까지 바라는 건 아니다.

하지만 20년 전도 아닌 지금에 고작 항공사의 리프트카가 없고, 시설이 안되기 때문에, 아직도 이렇게 지방에 사는 중증 장애인은 저가항공을 내 돈 주고도 탈 수 없는 현실이 답답하기만 하다.

​폭발하는 여행 수요를 전혀 감당하기 힘든 김해공항의 시설이 너무나 열악하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다. 분명 근본적으로 다른 넓고 넓은 부지로 확장 이전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당장 할 수 있는 공항 이전이 아니기에, 그 전까지만이라도 항공사의 인식 개선과 배려, 노력으로 나와 같은 지방에 사는 장애인들도 편하고 즐겁게 여행다닐 수 있길 바라는 마음 뿐이다. 아무리 신체적인 제약이 있더라도, 고작 시설 하나 때문에 하늘을 날아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는 많은 기회를 박탈당할 수는 없지 않을까?

하늘을 날아 새로운 세상을 보고 싶은 욕구, 권리는 모두에게 있다. ⓒ 박혜정
하늘을 날아 새로운 세상을 보고 싶은 욕구, 권리는 모두에게 있다. ⓒ 박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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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정 칼럼니스트 글 쓰는 휠체어 여행가, 현혜(필명), 박혜정입니다. 1994년 고등학교 등굣길에 건물에서 간판이 떨어지는 사고로 척수 장애를 입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29년 동안 중증장애인으로 그래도 씩씩하고 당당하게 독립해서 살았습니다. 1998년부터 지금까지 혼자, 가족, 친구들과 우리나라, 해외를 누비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또, 여성 중증 장애를 가지고도 수많은 일을 하며 좌충우돌 씩씩하게 살아온 이야기를 통해 누군가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전)교육공무원으로 재직했고, <시련은 축복이었습니다>를 출간한 베스트셀러 작가, 강연가, 글 쓰는 휠체어 여행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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