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sonable Accommodations(합리적 조정/변경)에 대한 예를 나타낸 그림. ⓒ미국 상무부(U.S Department of Commerce)
Reasonable Accommodations(합리적 조정/변경)에 대한 예를 나타낸 그림. ⓒ미국 상무부(U.S Department of Commerce)

10여 년 동안 장애인차별금지법(이하 장차법)을 보면서, 가장 많이 접해본 용어 중 하나를 꼽으라면 ‘정당한 편의’다. ‘정당한 편의’란 ‘장애인이 장애가 없는 사람과 동등하게 같은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장애인의 성별, 장애의 유형 및 정도, 특성을 고려한 편의시설ㆍ설비ㆍ도구ㆍ서비스 등 인적ㆍ물적 제반 수단과 조치를 말한다.’라고 장차법 제4조 2항에 정의돼 있다.

‘편의’란 말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형편이나 편하고 좋음’, 또는 ‘용구적 수단으로 평가’ 등의 뜻이 있다. 그리고 편의 제공이란 말을 생각하면 누군가가 배려해 편의를 제공해준다는 뉘앙스로 들리게 된다. 그런데 배려란 건 사람에 따라서 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되는 뉘앙스가 포함돼 있기에 뭔가 시혜적인 느낌이 나는 단어다.

정당한 편의 제공’과 관련해선 고용영역에서의 예를 보면, 화면낭독·확대프로그램, 한국수어 통역자, 시설·장비의 설치 및 개조 등이 있다. 화면낭독·확대프로그램은 시각장애인이나 저시력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일을 제대로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한국수어 통역자, 시설·장비의 설치 및 개조의 경우는 각각 농인과 휠체어 사용인이 일을 잘하기 위해, 필요한 지원방법이다.

이런 것들은 반드시 제공해야 하는 권리 차원이지, 때에 따라 제공할 때가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는 시혜 차원이 아니다. 물론 ‘편의’란 말은 가치 중립적이고, ‘정당한’이란 말로 권리를 나타내기에 ‘정당한 편의’를 써도 되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정당한 편의 제공’의 예를 보면, 장애인에게 반드시 제공해야 하는 권리 차원의 것들이기에, ‘편의’란 단어는 적절하지 않다. 그리고 ‘정당한 편의’에서 편의라는 말을 통해 권리의 느낌이 조금은 감소된다.

'정당한 편의'와 비슷한 것이 장애인권리협약엔 영어로 Reasonable Accommodation이란 말이 있다. 이 말의 정의가 2장에 있는데, 정의는 ‘다른 사람과 동등하게 장애인에게 모든 인권과 기본적인 자유의 향유 또는 행사를 보장하기 위하여, 그것이 요구되는 특별한 경우, 불균형적이거나 부당한 부담을 지우지 아니하는, 필요하고 적절한 변경과 조정을 의미한다.’라고 되어 있다.

Reasonable이란 말은 ‘합리적’이란 뜻인데, 이는 장애인에 관한 관련성, 적절성, 효과성으로 해석돼야 하며, 의무 이행을 제대로 했는지 확인 시 실제 조치가 장애인에게 효과적이었는가를 판단해야 한단 의미다. 그리고 정의에서 보듯 장애인에게 모든 인권과 기본적 자유의 향유 또는 행사를 보장한다는 의미가 있기에, 시혜적인 뜻인 ‘편의’란 말은 맞지 않다. 따라서 Reasonable Accommodation이란 말은 ‘합리적 조정/변경’으로 번역하는 게 더욱 정확하다고 본다.

다음으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울리며 살아간다는 의미로 장애인 당사자와 장애계, 시민사회는 Inclusion이란 말을 쓰는데, 장애계와 시민사회 등에선 ‘포용’이란 말로 번역한다. 여기서 ‘포용’이란 말은 ‘남을 너그럽게 감싸주거나 받아들임’이란 뜻이다. 이걸 가만히 생각해보면 권력자나 기득권이 장애인을 너그럽게 감싸주거나 받아들인다는 뜻으로 오인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뭔가 권력 관계가 불평등한 느낌을 받게 된다. 그런데 Inclusion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동등한 관계란 게 전제로 깔려 있다. 그렇기에 불평등하고 권위주의적 뉘앙스에 시혜적 느낌이 담긴 ‘포용’으로 번역하는 건 장애의 인권적 모델과는 거리가 먼 번역이다.

장애, 연령, 성별, 성적 지향, 인종 등에 상관없이 다양성을 존중하며 모두가 무지개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그림(좌측), Inclusion(포함)은 소중히 버리고, Exclusion(배제)는 쓰레기통에 버리자는 의미를 나타낸 그림(우측). ⓒPixabay
장애, 연령, 성별, 성적 지향, 인종 등에 상관없이 다양성을 존중하며 모두가 무지개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그림(좌측), Inclusion(포함)은 소중히 버리고, Exclusion(배제)는 쓰레기통에 버리자는 의미를 나타낸 그림(우측). ⓒPixabay

이와 관련해, Integration Inclusion은 종종 호환되는 식으로 사용하나, 둘은 뜻이 다르다. Integration은 통합이란 뜻으로 어떤 사람을 기존 그룹이나 시스템에 연결한다는 뜻이지만, Inclusion은 차이와 상관없이 모든 개인을 가치 있게 여기고 존중하는 환경을 만든다는 뜻이다. 즉 Inclusion은 개인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환경을 만드는 거라, 다양성이란 가치가 포함돼 있다는 점에서 Integration과는 다르다.

장애인권리협약에선 24조 교육 관련 일반논평에선 제11조에 Inclusion에 대해 나와 있다. 이와 관련해 Exclusion(배제), Segregation(분리), Integration, Inclusion 등 4단계로 설명하는데, 여기선 IntegrationInclusion에 대한 것만 말하기로 한다.

‘통합’이란 뜻의 Integration은 장애인이 기존 주류 교육기관의 표준화된 요구조건에 적응할 수 있다는 이해를 바탕으로 장애인을 그런 교육기관에 배정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그런데, 예를 들어 조직, 교육과정, 교육·학습 전략에서 구조적 변화를 수반하지 않는 한, 장애인을 주류 교육기관에 배치하는 것은 Inclusion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거다. ‘통합’이 된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분리에서 Inclusion으로의 전환을 자동적으로 보장하지 않는다는 거다.

이걸 가만히 생각해보면 기존 주류 교육기관은 대개는 비장애 중심의 교육기관을 말한다. 가령 예를 들어, 장애 학생들에게 점자 자료, 쉬운 학습자료, 조용한 환경 등 합리적 조정을 제공하는 등의 변화를 수반하지 않고, 그냥 비장애 중심의 교육환경에 적응하라고 한다면 이건 장애인이 봤을 땐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거다. 그러기에 Integration은 장애인이 볼 땐 권리와 거리가 있다.

이어서 Inclusion이란 말은 장애 여부와 상관없이 관련 연령대의 모든 학생들에게 공평하고 참여적인 학습경험과 학생의 요구와 선호에 가장 잘 대응하는 환경을 제공하려는 목표를 갖고 (사회의) 장벽을 극복하기 위해 교육에서의 내용, 방식, 접근법, 구조 및 전략에서 변경·수정을 포함한 체계적 개선 과정을 포함한다는 뜻으로 나온다. 참여적인 학습경험과 학생의 요구와 선호를 고려한다는 뜻이 담겨 있으니 Inclusion은 다양성의 관점을 포함함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장애인이 권리의 주체로 다른 사람과 어울린다는 의미가 담긴 건 Inclusion이며, 교육 관련 일반논평에서 알 수 있듯, Inclusion은 권리 관점이기에 ‘포용’이란 뜻은 맞지 않는 거다. 서로 호환되는 InclusionIntegration이라는 단어의 뜻을 구별하기 위해 Inclusion은 ‘포함’이란 뜻이 있으니 ‘포함’이란 뜻으로 정의하되, 다양성 존중을 전제한 ‘포함’임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Reasonable Accommodation에서 Accommodation을 편의라 번역하는 것에도, 정부는 이를 권리로 인식하지 않는 것이라고 본다. 또한, Inclusion을 포용이라 번역한다면 그 말에서 오히려 대중들은 장애인을 시혜와 동정의 존재로 인식하는 게 더 심화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런 번역이 사회에 공식화되면, 장애의 의료적 모델에 기반한 사회로의 방향만 부추길 뿐이다.

그러니 우리나라 실정법인 장차법의 ‘정당한 편의 제공’을 ‘합리적 조정/변경’으로 바꿔야 하며, Inclusion은 ‘포함’으로 번역하되 다양성 존중을 전제함을 기억해야 한다. 이런 번역을 통해 결국엔 대중들이 장애인을 사회의 동등한 시민의 일원이자, 권리의 주체로 인식하는 작은 실마리를 마련할 수 있을 터이니 말이다. 장애인 권리 관련 용어의 번역, 정말 신중해야 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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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팝송 감상, 월드컵 등을 즐기고 건강정보에 관심이 많은 반백년 청년이자, 자폐성장애인 자조모임 estas 회원이다. 전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정책연구팀 간사였으며,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정부심의 대응을 위해 민간대표단의 일원으로 2번 심의를 참관한 경험이 있다. 칼럼에서는 자폐인으로서의 일상을 공유하고, 장애인권리협약, 장차법과 관련해 지적장애인, 자폐성장애인과 그 가족이 처한 현실, 장애인의 건강권과 교육권, 접근권 등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나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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