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폭소클럽 코너 '바퀴달린 사나이'로 코미디에 데뷔한 박대운(34·지체장애1급)씨.

장애인 MC에 이어 장애인 코미디언이 브라운관에 등장했다.

대학시절 유럽과 일본을 휠체어로 횡단하며 유명세를 탔던 박대운(34·지체장애1급)씨가 그 주인공이다. 박씨는 KBS 2TV ‘폭소클럽’(프로듀서 강영원 연출 원종재, 신미진, 매주 월요일 밤 11시 방송)에서 ‘바퀴달린 사나이’라는 고정코너를 맡게 됐다.

지난 23일 밤 그의 데뷔무대는 전국으로 송출됐다. 첫 무대에 오른 박씨는 “여러분, 저 아세요? 저도 여러분 몰라요. 이제부터 알아가도록 하죠”라고 말문을 연 후 “제가 여기 나온 이유는, (뜸을 들이고는) 웃기러 나왔어요”라고 말해 장애인 코미디언을 처음 만나 긴장해 있는 관객들의 웃음을 끌어냈다.

“제 발이 좀 특이하게 생겼죠? 그래서 아이들이 절 보면 흠칫 놀랍니다. 그리고 한마디 하죠. 아저씨는 왜 다리가 없어요? 그럼,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없는 게 아니라 숏다리야.”

박씨는 대학 때 수영을 배우기 위해 야한 수영복을 입고 수영장 들어갔다가 발버둥이 아닌 ‘손버둥’을 사연도 유머로 풀어냈다. “외국에서는 장애인을 잘 쳐다보지 않는데, 한국에서는 (제가) 잘 생겨서 그런지 너무 쳐다봐 불편해요”라는 고백 등을 털어놓으며 장애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을 지적하기도 했다.

박씨는 마지막으로 ‘다름’과 ‘틀림’에 대해 이야기했다. “사람들은 ‘다름’과 ‘틀림’에 대해 잘못 사용하고 있어요. 내 다리가 다르게 생겼다고 내가 틀렸나요? 장애를 나와 ‘다름’이 아니라 ‘틀림’으로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틀렸죠”라고 꼬집으면서 “나와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삶을 인정하는 사회,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나는 오늘 작은 첫 발자국, 아니 첫 바퀴를 굴렸습니다”라고 인사한 뒤 첫 무대에서 내려왔다.

앞으로 ‘메시지 있는 코미디’를 하겠다는 박씨는 이미 꽤 유명한 장애인이다. 여섯 살 때 불운의 사고로 두 다리를 잃게 된 박씨는 1995년 대구대 미술대 서양학과에 입학한다. 미술학도 꿈꾸던 그는 지리산 노고단을 휠체어로 자력 등정한 이후 미술을 포기했다. 이후 1997년 연세대 신방과에 입학해, 이듬해에는 유럽 5개국 2,002㎞를 휠체어로 횡단했으며, 1999년에는 한일국토종단 4천㎞ 대장정에 올라 성공했다.

대학을 졸업한 후 박씨는 ‘내게 없는 것이 길이 된다’는 에세이를 출간하고, KBS와 EBS에서 방송 활동을 활발히 하던 중 갑자기 방송활동을 접고, 2003년 11월 생과일주스 전문카페 ‘베티 데이비스’를 운영했다.

폭소클럽 원종재 PD는 “폭소클럽은 형식이 자유롭고, 다양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나와 자기 얘기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블랑카’에 이어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담은 새 코너를 고민하던 중에 개그맨 홍록기씨가 가수 강원래씨를 통해 알게 된 밝고 건강한 친구가 있다며 박대운씨를 소개시켜줬다. 만나보니 정말 도전적으로 사는 건강한 사람이라고 느꼈고, 이런 사람이 무대에 오르면 들을만한 이야기를 해주겠다 싶었다”며 박씨의 캐스팅 이유를 설명했다.

원 PD는 “장애인도 자신의 장애경험을 소재로 남을 웃길 수 있다. 그것은 장애인을 비하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TV프로그램에서 흔히 다뤄졌던 장애인에 대한 고정적인 이미지를 탈피할 수 있는 계기가 되리라 본다. TV에서는 장애인의 모습을 불쌍하게만 비춰 시청자의 감성을 자극시키려는 경향이 많다”며 “그러나 장애인들은 단지 생활이 불편할 뿐이다. 나도 소아마비 장애인인 형이 있어서 대운 씨의 유머를 공감했다”고 덧붙였다.

박씨는 첫 방송 후 기자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언론에서 장애인을 다루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감동, 고난, 역경 등의 틀 속에 가둬놓고 장애인을 보는 것이 싫었다”며 “시청자들이 내 개그를 통해 장애인들을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 자연스럽게 봤으면 한다. 길에서 봐도, 회사나 학교에서 동료가 되어서도 ‘나와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이구나’하고 느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박씨는 유럽횡단 후 팬으로 만나 사랑을 키운 최윤미(31)씨와 오는 6월 결혼할 계획이다. 박씨는 또 경기도 일산에서 운영하던 카페를 접고, 닭갈비집 개업을 준비 중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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