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생활지원법 제정을 주장하고 있는 한국자립생활연구소 전정식 소장. <에이블뉴스>

자립생활운동이 새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연합회(상임대표 고관철)가 지난 2월 25일부터 활동에 돌입했으며, 보건복지부는 올해 4월부터 6억5천만 원을 들여 전국 10곳의 장애인 자립생활센터를 지원하는 사업을 실시한다. 전국 곳곳에서는 자립생활센터들이 앞 다투어 개소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일부 자립생활센터들이 자립생활지원 조례제정운동에 돌입했으며, 더 나아가 자립생활지원법 제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자립생활 지원을 위한 조례제정 운동과 자립생활지원법 제정운동이 무엇인지 자세히 살펴본다.

조례제정운동은 이미 시작됐다

지난 2월 25일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연합회는 출범식후 ‘자립생활지원법의 필요성과 법제정을 위한 과제’를 주제로 출범기념 세미나를 가졌다. 이날 세미나는 자립생활지원법이 무엇인지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되는 자리였다.

한국장애인자립생활연구소 전정식(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 사무국장) 소장은 자립생활지원 조례제정 운동의 현황을 소개하고, 이어서 자립생활지원법의 필요성에 대해 역설했다.

이날 발표에 따르면 현재 광주광역시에는 ‘중증장애인 자립생활 지원조례제정을 위한 광주시민모임’(준)이 구성돼 있다. 지난해 2월부터 매월 정기적인 모임을 가져왔고, 지난해 10월 28일에는 토론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향후 이 모임은 공청회를 거친 후 광주시민들의 서명을 받는 등 본격적인 조례제정 절차에 들어갈 예정이다.

서울에서는 양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소장 이상호)가 조례제정을 위한 움직임을 시작했다. 양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올해 정기총회에서 2005년에는 장애인당사자 자조모임 결성과 자립생활환경 지원망을 구축하고, 2006년에는 시민연대를 통한 지역사회 여론형성 및 조례제정 준비에 들어가며, 2007년에는 실질적인 조례제정 추진에 돌입하겠다는 계획을 확정했다.

이렇게 조례제정운동이 시작되고 있지만, 아직 가야할 길은 멀다. 전 소장은 “상위 근거법 제정 이전에 조례가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조례제정운동이 효과적인 성과를 갖추기 위해서는 지역사회의 합의형성 과정과 더불어 조례 관련 모법으로서의 상위 근거법이 존재해야 한다”고 말했다. 바로 자립생활지원법이 거론되고 있는 이유이다.

자립생활센터지원 법적 근거 너무 미약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장애의 정도가 심하여 자립하기가 현저하게 곤란한 장애인에 대하여 평생 필요한 보호 등을 행하도록 적절한 시책을 강구하여야 한다.”(장애인복지법 제6조 중증장애인의 보호)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장애의 발생을 예방하고, 장애의 조기발견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높이고 자립을 지원하며 필요한 보호를 실시하여 장애인의 복지를 증진할 책임을 진다.”(장애인복지법 제9조 1항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책임)

이는 현재 서울시와 보건복지부가 자립생활센터 지원을 결정하며, 근거로 내세운 법 조항이다. 이에 대해 서울시정개발연구원 김경혜 연구원은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운영기반 조성방안’(2004년) 보고서에서 이러한 근거에 대해 “자립생활센터 지원에 대한 법적 근거로 보기에는 미흡하다”고 일축했다.

김 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1973년 재활법을 제정해 자립생활운동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고, 1978년에는 기존의 재활법을 전문 개정해 공법 95-602호로 '자립생활을 위한 종합시책'을 마련했다. 그 결과 미국 정부는 자립생활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자립생활센터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중증장애인의 권리를 보호해 줄 수 있는 권리옹호 프로그램을 실시하기 시작했다.

이와 관련 김 연구원은 “우리나라 자립생활운동은 민간부문에서 먼저 주체적으로 연구`보급해왔기 때문에 자립생활운동 또는 자립생활센터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없다”며 “이러한 이유에서 자립생활센터에 대한 지원도 미미하고, 관련 규정 및 감독체계도 갖춰져 있지 않다. 따라서 우선 자립생활센터의 법적 근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제시했다.

지난 2월 25일 열린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연합회 출범기념 세미나에서 자립생활지원법의 필요성에 대해 듣고 있는 장애인들. <에이블뉴스>

이와 관련 보건복지부가 올해 시범사업을 위해 내놓은 자립생활센터 운영지침도 허술한 점이 많다는 지적이다. 전 소장은 “2005년 정부의 자립생활센터 지원이 시범사업으로 이뤄지면서 자립생활센터 운영지침이 제시됐으나 이는 관련 모법의 부재 속에서 최소한의 형식성만을 갖추고 있을 뿐 지원의 근거와 내용, 자원 전달방법과 감독체계 등에 대한 구체적이고도 강력한 내용을 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근거를 토대로 전 소장은 “지금의 시범사업이나 그것을 위한 운영지침의 내실화, 그리고 지역단위에서의 자립생활관련 조례제정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자립생활 관련 모법으로서의 자립생활지원법이 마련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장애인복지법 개정후 자립생활지원법 제정”

자립생활 지원에 대한 명확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들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전 소장은 일단 장애인복지법에 자립생활과 관련한 포괄적 규정을 적시하고, 이후 자립생활지원법 제정을 통해 구체적인 자립생활 지원근거를 마련하자고 밝혔다.

전 소장의 발표에 따르면 장애인복지법 개정과 관련해 나오고 있는 주장은 장애인복지법 시행규칙 32조(장애인복지시설의 종류와 사업)와 33조(시설의 설치ㆍ운영기준)를 개정해 자립생활센터는 장애인지역사회재활시설의 하나로 추가하자는 것이다.

더 나아가 장애인복지법 제4장에 자립생활 자체를 하나의 이념과 내용을 지닌 장애인당사자들의 자조적 활동으로 규정하면서 자립생활지원의 포괄적 근거를 추가로 마련해야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전 소장은 “장애인복지법 속에 장애인 자립생활에 관한 구체적인 의미와 내용, 사업 그리고 그것들을 지원할 근거들에 대한 내용을 모두 담을 수는 없다”며 “장애인복지법에 적시한 자립생활 관련 내용을 구체화시키고 보다 강력하고 체계적인 자립생활 관련 지원 근거들을 마련한 법적 장치로서 자립생활지원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한국장애인IL센터연합회와 한국장애인IL센터협의회는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한국장애인IL센터연합회 고관철 대표와 한국장애인IL센터협의회 최용기 회장은 지난 2일 열린 장애인단체 대표 초청 간담회에서 한나라당 정화원 의원에게 이구동성으로 “현재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지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며 “1차적으로는 장애인 복지법을 개정을, 궁극적으로는 자립생활지원법을 제정해 자립생활을 제도화해야한다”고 건의했다.

한편 보건복지부도 ‘장애인 자립생활 사업평가 및 모델개발’을 주제로 올해 연구용역을 실시할 계획으로 자립생활 제도화를 위한 명확한 법적 근거 마련을 위한 움직임은 올해를 기점으로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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