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향숙씨가 필자에게 보내 온 편지.

정신병원에 1년쯤 있었다. 병원에는 가끔 신부님이 왔는데 교리 공부를 하고 영세도 받았다. 세례명이 데레사였다. 큰언니를 졸라 병원을 몇 군데 옮겼다. 왼쪽 앞머리 부분이 움푹 들어가 있어서 큰언니가 수술을 하자며 서울로 오라고 했다. 서울에서 머리 피부 이식수술을 하고 동사무소에서 돈이 나와 의족도 다시 맞추었다. 그리고 다시 부산으로 내련 온 것이 지난 6월이란다.

지하철 사고에서 보상금도 못 받고 병원비도 언니가 부담을 했다면서 좀 알아봐 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당장 먹고 살 길이 없으니 영세민이 되게 해달라고 했다.

필자는 우선 그의 거주지 동사무소에 문의를 했다.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작은오빠와 같이 되어 있어서 정부 보조금은 그의 통장으로는 들어오지 않았고 통장에는 장애수당 11만원만 들어오고 있었다.

동사무소 담당자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세대를 분리하여 수급자 보조금을 본인이 받을 수 있도록 협조를 부탁하였다. 그러나 구청 담당자에게 문의를 해보니 세대가 분리되어도 전세계약서 등 필요 서류를 구비해야 되고 실사를 나가서 조사를 해야 되니 불가능하다고 했다. 정 어렵다면 후원자는 연결 시켜 주겠다고 했다.

그가 입원해 있었다던 병원을 수소문해 알아보니 정신병원 두군데는 확인이 되었지만 처음 입원했었다던 강북00병원은 이미 없어지고 없었다. 서울 지하철 본부로 전화를 해서 사고를 확인했다. 2000년 6월 1일 17시 6분 이대역에서 사고가 났는데 자살로 처리되어 있었다. 목격자도 2명이나 있었는데 그가 전동차로 뛰어 들었다는 것이다.

필자가 이런 과정을 확인하느라고 당시의 사고기사가 있는지 인터넷을 며칠을 뒤졌는데 사고 기사는 찾지 못했다. 그리고 서울 지하철 본부를 비롯하여 이대역, 그가 입원해 있었던 정신병원 구청 동사무소 등 여러 곳에 많은 사람들과 통화를 했다.

그러는 과정에 동사무소 담당자의 주선으로 서울 큰언니와 연락이 닿았다. 큰언니 말에 의하면 동생이 유부남 K와 살림을 차린 것을 알고 가족 모두가 말렸단다. 남(유부남 K의 본처) 한테 피해를 주면 안되니까 헤어지라고 해도 말을 안 들었다.

결국 부산에 내려 온 후에는 스님이 되겠다고 집을 나가서 여기저기 떠돌아다닌 것 같았는데 사고가 나고 지하철에서 연락이 왔다는 것이다. 그 무렵 어머니가 동생 때문에 많이 속 상해 하시다가 치매가 와서 자신은 부산에서 어머니를 돌보고 있었기에 사고 소식을 듣고는 하는 수 없이 K에게 연락을 했었는데 사고 처리가 그렇게(자살미수)되어 있더라는 것이다. 목격자라는 두 사람도 알고 보니 공익요원이었다.

병원비도 처음에는 자기(큰언니)가 다 부담했고 나중에는 영세민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재활시설을 알아보고 있던 차에 부산까지 택시를 타고 왔더라는 것이다. 집에 와서는 걸핏하면 화를 내고 아무도 없으면 집을 나가 기어다니다가 -갑자기 한쪽 다리가 없어 걸을 수가 없게 되었으니 처음에는 기어 다녔단다- 이 집 저 집 기웃거리니까 동네 사람들이 놀라 경찰에 신고가 들어가서 정신병원에 입원시킬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1년쯤 지나자 '(큰언니) 말 잘 들을 테니 퇴원시켜 달라'고 하도 졸라서 퇴원을 시켰더니 또 전날과 같은 상황이 반복되고. (동생은) '왜 나를 정신병자 취급하느냐'며 대들고 해서 다시 입원시킬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동생은 내가 지를 정신병원에 넣었다고 나를 원망 하는데 주변의 신고로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금년 봄에 병원생활이 지긋지긋하다면서 또 졸라대기에 하는 수없이 서울로 데려다가 머리에 피부이식 수술을 하고 의족도 새로 맞추었다.

수술을 끝내고 퇴원은 했으나 그런 동생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 갈 수도 없어 근처 여인숙에 방을 하나 얻었다. 큰언니도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집과 여인숙을 오가며 동생을 돌보면서 재활시설을 알아보던 중 동생이 부산 집으로 가겠다고 고집을 부려서 두 달 전에 내려보냈다는 것이다.

"옛날에는 얼굴도 정말 이쁘고 똑똑했는데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는지..." 큰언니는 제발 동생 사람(?) 좀 되게 해달라고 필자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그는 2000년에 지체 3급을 받았고 2001년에 정신장애2급을 받은 중복장애 1급이다. 아버지는 알콜중독으로 어머니는 치매로 각각 다른병원에 있고 그는 정신지체 3급의 작은오빠와 기초생활수급자로 살고 있다.

처음 필자를 찾아 온 며칠 뒤 편지 한 장을 보내 왔는데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부러움 반 시샘 반을 느낍니다.'라고 적고 있었다. 그래서 집을 떠나고 싶고 경제적 여유도 찾고 싶다는데 이 두 가지 소망을 어떻게 하면 이뤄 줄 수가 있을까.

그는 사고 당시 머리를 다쳤고 지금은 정신분열병을 앓고 있다. 그는 절대로 자살이 아니라고 하는데 서울 지하철에서는 그가 뛰어 들었다고 했다. 즉 자살미수로 처리되어 보상금은 커녕 병원비 한푼도 보조받지 못했던 것이다.

혹시라도 2000년 6월 1일 오후 5시경 이대역에서 회색빛 바지저고리 절복(?)을 입고 검은 배낭을 둘러 멘 긴 머리의 가련한 이 여인의 사고를 목격한 사람이 나타나서 자살미수가 아니었음을 증언해 줄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김향숙씨의 삶 끝.

# 이 내용은 부산일보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누구나기자로 현재 하사가장애인상담넷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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