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청각장애인 미인대회인 ‘미스 데프’ 최종 우승자 김예진씨. ⓒ에이블뉴스

“미스코리아라는 게 미, 지성, 품격을 모두 지니고 있는 아름다운 여성을 뜻하겠지만 청각장애인 미스코리아라면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해야 합니다. 바로 수화라는 언어를 사용하고, 농 문화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농 정체성이죠. 그게 없으면 미스 데프는 무의미해요.”

두 달 전 청각장애인(농인)을 지원하는 비영리단체인 ‘미스 앤 미스터 데프 인터네셔널’이 주관하는 세계청각장애인 미인대회 ‘미스 데프’에 참가한 김예진(여, 28세, 청각2급)가 차분히 인터뷰를 마치자 심사위원들의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2010년 미국에서 시작해 올해로 5회를 맞고 있는 대회에 참가한 예진 씨. 비록 국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아 크게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이날 예진 씨는 최종 ‘미스 데프’ 선정돼 왕관을 수여받았다.

대회에 참가하라고 주변에서 권유하는 사람도 선뜻 나서서 도와주는 사람도 없었지만 영문서류부터 의상, 항공편 등 모든 준비를 스스로 하면서 예진 씨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대회를 준비했다.

예진 씨는 “독학으로 국제 수화를 배우고 장기자랑 때문에 댄스학원에 가서 장구춤도 연습했다”면서 “워킹은 현지로 가서 다른 참가자들이 하는 걸 어깨 너머로 보면서 익혔다”고 말했다.

이어 “6일간의 합숙생활 중에도 간혹 생긴 자유 시간에 다른 경쟁자들이 서로 친분을 쌓는 동안 대회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우승하려면 어떤 기준에 해당되는지 조직위원 사람들에게 말을 걸도록 노력했다”고 밝혔다.

이처럼 예진 씨가 남들보다 더 특별한 열정으로 대회에 임했던 것은 반드시 우승을 해야 하는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예진 씨는 “부모님이 농인이세요. 어릴 때부터 어떻게 차별을 받아 왔는지 잘 알고 있어요. 농인들이 겉으로 보기에는 비장애인들과 똑같아 보이지만 언어 때문에 받는 차별이 심하거든요”라고 설명했다.

이어 “농인들에게는 수화라는 고유한 언어가 있어요. 그런데 아직은 우리 사회에 의사소통을 제공해주는 데가 아직 많이 부족해서 차별이 생기고 있다”면서 “성폭행을 당했는데 112에 직접 신고를 하지 못했다는 한 여성청각장애인의 이야기는 같은 청각장애인으로써 안타깝게 하는 사회의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두 달 전 '미스 앤 미스터 데프 인터네셔널'이 주관하는 미인대회에 참가해 '미스 데프'로 우승자로 선정된 김예진씨. ⓒ에이블뉴스

또 예진 씨는 “학교에서 공부할 때도 수화를 원활하게 사용할 줄 아는 선생님이 없어 필기를 하면 받아 적는 식으로만 진행되고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다”면서 “수화의 경우 조기교육이 중요한데 특히 초등학교는 더 심했다”고 말했다.

예진 씨는 “우리 사회에서 청각장애인을 바라보는 인식이 아직 많이 부족하다”면서 “주변에서 많이 힘들어하는 동료, 친구, 이웃들을 보면서 미스 데프로 청각장애인의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활동하고 싶어서 처음부터 우승을 목표로 해서 참가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예진 씨는 ‘미스터 데프’로 뽑힌 미국의 애런 로긴스와 한 해 동안 세계의 청각장애인을 대표해 활동하게 된다. 국내 청각장애인 사회에 활동하는 것과, MMDI(국제미스앤미스터 데프 대회조직위원회)와 연계돼 있는 나라에 가서 자원봉사를 하거나 연설 등을 하는 것이다.

예진 씨는 “가장 먼저 농사회의 일원으로 청각장애인 인권을 강화하려는 운동에 나서고 싶은 마음”이라면서 “가장 기본적인 수화언어권 보장과 농교육 개선 등을 위한 수화언어법 제정을 위해 활동하고 싶다”고 밝혔다.

아직 구체적인 활동방향이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남성청각장애인에 비해 더 차별받는 여성청각장애인을 위해서도 활동하고 싶다.

예진 씨는 “여성청각장애인은 남성청각장애인에 비해 제대로 된 문화적인 생활을 못하고, 인간관계를 멀리하고, 고립적으로 사는 여성분이 많이 계신다”면서 “여성청각장애인의 정보접근 향상을 위해서도 노력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청각장애인의 인권향상을 위해 욕심이 많은 예진 씨에게는 한 가지 꿈이 더 있다. 바로 청각장애인 미스코리아로 농 정체성을 가진 훌륭한 여성리더를 양성하는 것.

예진 씨는 “몇 달 전 비영리 단체 ‘미스 앤 미스터 데프 코리아’를 만들었어요. 참가를 위한 행정업무, 워킹, 의상 등을 돕는 에이전시인데 미스 데프를 많이 배출해 농사회의 훌륭한 여성리더십을 양성하고 싶어요”라고 전했다.

끝으로 “농인 진정한 아름다움은 수화에서 나온다”며 “농인으로써 우리 사회에 모국어인 수어를 언어로 인정받게 된다면 참 얼마나 기쁜 일이겠어요”라고 소망하는 예진 씨의 바람처럼 수화가 언어로 인정되는 그 날이 오기를 응원해본다.

'미스 데프'로 선정된 김예진씨가 '미스터 데프'로 뽑힌 미국의 애런 로긴스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에이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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