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양행이라는 양복점 시다였는데 처음에는 청소하고 심부름하고 실밥 뜯고 하다가 몇 달 지나니까 단추 구멍 치고 단추 달고 했는데 그 무렵 월급이 3천 5백 원이었던 것 같습니다.”

국제장애인기능올림픽대회 금메달 증서(좌)와 국가대표 선발증서(우). ⓒ이복남

‘한국물가정보’에 의하면 새마을 담배 한 갑이 10원, 버스비도 10원이고 쌀 한 가마니(40kg)가 2,880원 이라고 하니 월급 3천 5백 원은 아무리 시다라 해도 쌀 한가마니 값은 되는 것 같다. 서울 등에서는 보통 작은되로 쳐서 한가마니를 40kg라고도 하는데 남쪽지방에서 한가마니는 50되 5말 80kg이다. -필자 주.

웬일인지 미라양행은 이사를 자주 다녔다. 서대문 시청앞 등으로 이사를 할 때마다 그의 직급도 조금씩 높아져서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재단사가 되었다. 그러자 아는 분이 부산에 점포를 차렸다면서 그에게 와주기를 요청했다. 그도 한 번쯤 서울을 떠나보고 싶던 터라 부산으로 내려왔다.

‘론손코너’라는 양복점이 광복동에 있었는데 그는 양복점에 딸린 기숙사에 묵으면서 양복을 만들었다. 부산에서 한참 일에 열중해 있을 때 신체검사 통지서가 나왔다. 군대를 가기 위해 일을 정리하고 고향에 가서 신체검사를 받았는데 무슨 연유인지 잘 모르지만 면제를 받았다.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셨고 시골에는 어머니 혼자 계셨지만 그는 일을 위해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신체검사를 마치고 처음에는 서울에서 일을 시작했으나 부산에서 같이 일했던 사람이 자꾸만 오라고 해서 부산으로 다시 내려왔다. 명절 때 고향 가면 어머니께 용돈을 드리기는 했지만 따로 나가는 게 없었기에 월급 타면 꼬박꼬박 적금을 부었다. 그 무렵 서면에 있는 양복점에서 일을 했는데 한편에서는 와이셔츠도 같이 만들었다.

장애인기능대회에서 전종석씨가 받은 메달과 명찰. ⓒ이복남

“그 때 와이셔츠 공장에서 일하던 아주머니가 조카딸을 소개했어요.”

조00씨는 조그만 회사에서 경리를 보던 아가씨였는데 서로가 맘에 들어 결혼을 했다. 그런데 서면에서 삼화양복점을 운영하면서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맞춤복보다 기성복을 선호하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양복점 운영이 기울더니 아내하고도 냉전이 계속되어 모든 것이 싫어졌다. 양복점을 정리하고 애 둘을 데리고 김해로 들어갔다가 몇 년 후 김해에서 차린 양복점 땅이 팔리는 바람에 다시 부산으로 나와 부산진시장 부근에서 로얄양복점을 차렸다.

“94년 겨울이었습니다. 그동안 사는 게 바빠서 친구들 모임에 한 번도 못 갔는데 그해 망년회에는 한번 가 보려고 했습니다.”

그는 밤늦게 혼자 차를 몰고 고향으로 향했다. 서천에 당도해서 시내로 들어서는데 갑자기 검은 물체가 나타났고 그는 그 물체를 피하려다 꽝! 하고 말았다.

“귀신에게라도 홀린 것 같았는데 교각을 들이 받는 순간 정신을 잃었던 모양입니다. 한참 후에 정신을 차리고, 차 밖으로 나가야지 하는데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합숙훈련에서 양복기술을 연습하는 전종석씨.(사진제공: 박숙은)

한적한 시골이라 차도 별로 없었고 요즘처럼 휴대폰도 없던 시절이었다. 멀리서 불빛만 보이면 클랙슨을 울렸는데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한 사람이 다가오더니 경찰에 신고를 해 주었다. 그는 서천병원에서 응급처치만 받고 다음날 부산으로 내려왔다. 그에게 고향친구들의 송년회는 사치였던 모양이다.

병원에서 오른쪽 발목을 수술하고 3개월을 입원했다. 양복점 일은 벌려 놨는데 다리를 다쳐 일을 할 수가 없었으니 미칠 노릇이었다. 목발을 짚고 통원치료를 했다. 처음에는 다친 다리 치료하느라고 그가 장애인이 되었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었다.

다행인지 양복 바느질은 손으로 하는 것이라 다리 장애가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었지만 문득문득 교통사고의 악몽이 떠올라 몸서리가 쳐졌다. 그리고 부산진시장의 계단을 오르내리기가 너무나 불편했고 비라도 올라치면 다리가 쑤시고 아렸다. <계속>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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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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