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대학교의 교수는 한 학기 강의를 마치면서 학생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합니다.

"교수로 학교에 돌아왔을 때 마치 2학년의 내가 잠깐 후문 하숙집에서 점심을 먹고 돌아온 것 같았는데 30년이 흘러 있었다. 시간의 속도가 잘 느껴지지 않겠지만, 하루하루 흘러가는 시간들을 꼭 붙잡아라. 그러지 않고선 어느 날 눈을 떠서는 후회할 수도 있다. 누구나 언덕 높은 곳의 큰 나무가 될 수는 없고, 누군가는 도로 옆 작은 관목이 되어야 한다.“

이 교수는 강의한 학교를 졸업한 이후 현장 생활을 하다가 학교에 교수로 돌아온 이력이 있었다고 합니다. 딱 제가 이 이야기를 전해야 할 시점이 된 듯합니다.

저는 장애계 관련 타 매체 합류 등 여러 사정으로 인하여 2015년에 1년간 바짝 이야기하고 다시 2018년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장지용 앞에 벌어진 파란만장한 삶과 세상’을 이야기한다며 여러분들과 신나게 이곳 에이블뉴스에서의 이야기를 모두 마쳐야 할 시간이 되었음을 아쉬운 마음으로 전합니다.

러시아 출신 방송인 이나 마슬로바 씨(오른쪽)와 함께. (2014년 촬영). ⓒ장지용
러시아 출신 방송인 이나 마슬로바 씨(오른쪽)와 함께. (2014년 촬영). ⓒ장지용

제가 2015년에 처음으로 “발달장애인인 장지용이 인사합니다”라면서 여러분을 처음 만났던 날이 2주 전 이야기 같았고 처음으로 올린 사진에 등장한 러시아 출신 방송인인 이나 마슬로바 씨의 얼굴을 보면 바로 기억하면서 최소한 커피 한 잔 사달라고 조르고 싶은 마음은 여전한데 시간은 9년 뒤가 되었습니다. 단지, 이나 마슬로바씨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대외 활동이 줄었는지 영 보이지 않는 것이 아쉬울 뿐이었습니다.

그 사진 속의 저는 사회초년생이었는데 벌써 사회인 10년 차는 지나간 뒤의 일이 되었습니다. 올해인 2024년이 직장생활 경력 만 10년 차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2013년 2월 27일부터 직장생활을 시작했으니 말입니다.

러시아에서 교환학생으로 온 여학생(가운데 )과 함께. 필자는 그 여학생 옆에 검은 코트를 입고 있었다. 해당 여학생은 이후 페이스북에서 재회하였으며 현재도 종종 연락 중이나 우크라이나 전쟁 등 각종 사정으로 직접 보지는 못했다. (2008년 촬영) ⓒ장지용
러시아에서 교환학생으로 온 여학생(가운데 )과 함께. 필자는 그 여학생 옆에 검은 코트를 입고 있었다. 해당 여학생은 이후 페이스북에서 재회하였으며 현재도 종종 연락 중이나 우크라이나 전쟁 등 각종 사정으로 직접 보지는 못했다. (2008년 촬영) ⓒ장지용

심지어 대학 1학년 시절에 만난 러시아에서 교환학생으로 온 여학생이 헤어진 지 10여 년 만에 다시 페이스북을 통해 제 앞에 나타났을 정도이니 말입니다. 지금도 그 여학생은 러시아에서 국영기업 직원으로 일하며 어떻게든 페이스북으로 소식을 전하고 있다 합니다.

단지 러시아 정부에서 페이스북을 적국의 매체로 규정하여 규제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 하겠지만요. 게다가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한러교류가 중단되면서 인천국제공항-러시아 항공편 운항이 중단되는 등 오가기도 어려워졌으니 말입니다.

지난날의 글들을 모두 되돌아봅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겪은 이야기, 장애계를 바라보면서 나름대로 죽비를 날려보겠다며 써봤던 이야기 등이 눈앞에 어른거리기도 합니다.

몇몇 분들은 제 글에 놀라워하시기도 했고, 몇몇 언론은 제 글을 보고 갑자기 다른 기사를 쓰지를 않나, 어떤 단체에서는 토론회에 정중히 저를 초청해서 이런저런 말씀을 해달라고 전하지를 않나, 여기저기서 제 글을 가지고 온갖 이야기를 하지를 않나 등등을 이제 추억 속으로 담아둘 시간이 되었습니다.

서버를 열어보니 정확히 299번째 이야기가 바로 이 이야기가 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야기 하나 더 하면 300번째 이야기를 전해드릴 수 있었는데, 아쉽게도 저는 정확히 299번째 이야기에서 마치게 되었습니다.

영화 '타이베이 카페 스토리'의 결말 부분으로, 공부만 했다는 주인공 '두얼'(구이룬메이)가 '36번째 이야기'라는 것을 찾는다며 여행을 떠나기 위해 짐이 든 배낭을 메고 집으로 추정되는 장소를 떠나는 순간. ⓒ영화사 찬란 
영화 '타이베이 카페 스토리'의 결말 부분으로, 공부만 했다는 주인공 '두얼'(구이룬메이)가 '36번째 이야기'라는 것을 찾는다며 여행을 떠나기 위해 짐이 든 배낭을 메고 집으로 추정되는 장소를 떠나는 순간. ⓒ영화사 찬란 

이 의미는 결국 다른 의미가 되었습니다. 300번째 이야기는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이야기로 전해야 할 것이라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첫 번째 쉼표가 찍혔던 그때 이야기했던 대만 영화 ⟪타이페이 카페 스토리⟫ (원제는 ⟪第36個故事⟫. 주: ‘타이베이’가 맞춤법에 맞지만, 번역된 제목이 그러니 이렇게 씁니다)를 복기합니다.

그 영화에서 주인공이 있는 카페에서 35가지 이야기가 ‘교환’되면서 온갖 이야기가 쌓였습니다. 그리고 엔딩에서 공부만 했다는 주인공 두얼(구이룬메이)은 그다음 이야기라는 36번째 이야기라는 것을 찾으러 여행을 떠났다는 이야기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참고로 실제 촬영장으로 사용된 대만 타이베이 시내 ‘두얼 카페’는 이후 계약 문제가 복잡해지자 이전 제의를 받았다지만 그 카페 주인이 “여러분의 추억 속에 남기고 싶다”라는 말과 함께 지난 2015년 3월 완전 영업 종료되었다 합니다.)

딱 그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두얼이 결국 여행을 떠나는 것도 36번째 이야기를 찾으러 떠난 것이고, 저도 이제 딱 300번째 이야기를 찾으러 먼 길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이야기했던 온갖 이야기들은 이제 여러분들에게 남겨놓고 떠납니다. 여러분과 함께 제가 살아왔던 이야기도, 장애계에 죽비를 날려보겠다고 이야기했던 것도 여러분들의 기억 속에서 다시 회자하기를 기원합니다.

심지어 저는 여러분과 함께 나눈 이야기를 근거로 논문 근거를 찾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 것처럼 제가 여러분과 같이 이야기했던 것을 바탕으로 장애계에서 제 생각을 담은 이야기를 장애계 다양한 곳에서 이야기하고 제안했던 것을 실현할 수 있다면 실현하고, 제가 알려준 방법을 보셨다면 직접 따라 해보시는 등 이제 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저도 그렇겠지만 여러분도 다양한 모습으로 실천하는 이야기를 이뤄나가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렇지만 “인간의 지식은 일천한 동안은 가르치고 설교하러 돌아다니지만, 완벽한 지식을 습득했을 때에는 자신의 지식을 쓸데없이 과시하지 않는다”라고 인도 종교가인 라마 크리슈나(1836~1886)가 이야기했다 합니다.

어느 교수는 한 학기 강의를 마치는 종강 인사말에서 이 이야기를 끄집어내며 "이건 여러분이 아니라 나한테 하는 이야기다. 이번 한 학기(그 교수가 강의한 학기를 의미) 동안 지식을 쓸데없이 과시해 상당히 죄송하다"라고 이야기했었습니다. 딱 제가 이 순간에 해야 할 말인지도 모릅니다.

이제 언제 전해줄지 기약이 없는 300번째 이야기를 찾으러 떠납니다. 장애계 이곳저곳, 이 세상 이곳저곳을 다니며 온갖 이야기를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언젠가 300번째 이야기를 가지고 돌아올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지만 기억해주세요, ‘장지용 앞에 벌어진 파란만장한 삶과 세상’은 어디선가 다른 모습으로, 이번에는 실천하는 이야기 등으로 그 이야기는 계속될 것입니다. 어디선가 이야기가 전해질지도 모릅니다.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마지막 대사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한다면, "언젠가 자폐인도 더 자유롭고 평등해지며 스스로 살 수 있고 시설도 없고 세상에 더 나아가게 된 대한민국에서 시유 어게인!"

(원래 대사는 작품의 배경인 대한제국 말기 의병 전쟁과 경술국치 후 독립전쟁을 통해 해방이 오게 되었음을 암시하는 대사인 "독립된 조국에서 시유 어게인"이다.)

그동안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필자의 2024년판 프로필 사진. 서울 이태원의 모 스튜디오에서 촬영한 것이다. ⓒ장지용
필자의 2024년판 프로필 사진. 서울 이태원의 모 스튜디오에서 촬영한 것이다. ⓒ장지용

추신 :  그 이후에 이야기를 소소하게 듣고 싶다면 제 네이버 블로그인 ‘이상한 나라의 알비스’ (blog.naver.com/alvis), 개인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alvisjiyong), 카카오 브런치스토리 등을 통해 여러분에게 전해드립니다. 계속 제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은 얼마든지 와 주세요. (개인 재정 사정상 블로그에 소정의 광고를 유치해야 하는 것이 안타깝지만)

또한, 얼마 전 Act 2가 마무리된 제가 추진하는 에피소드 에세이 프로젝트인 가칭 ⟪파란만장 자폐인⟫은 Act 3 집필 등을 마치면 이후 책으로 만나보실 수 있게끔 준비하겠습니다. 언젠가 여러분이 서점에서 책을 통해 저를 만날 수 있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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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계약 만료로 한국장애인개발원을 떠난 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그 이후 장지용 앞에 파란만장한 삶과 세상이 벌어졌다. 그 사이 대통령도 바뀔 정도였다. 직장 방랑은 기본이고, 업종마저 뛰어넘고, 그가 겪는 삶도 엄청나게 복잡하고 '파란만장'했다.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파란만장했던 삶을 살았던 장지용의 지금의 삶과 세상도 과연 파란만장할까? 영화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는 픽션이지만, 장지용의 삶은 논픽션 리얼 에피소드라는 것이 차이일 뿐! 이제 그 장지용 앞에 벌어진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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