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어린이 프로그램 '세서미 스트리트(Sesame Street)' 50주넌을 축하하는 모습. ⓒSesame Street Facebook
미국 어린이 프로그램 '세서미 스트리트(Sesame Street)' 50주넌을 축하하는 모습. ⓒSesame Street Facebook

내가 속한 자조모임의 어느 한 회원이 나에게 한 기사를 알려줬다. 미국 어린이 프로그램 ‘세서미 스트리트(Sesame Street)’의 귀요미이자, 붉은 털 아동 캐릭터인 엘모(Elmo)‘모두 잘 지내?’라고 X(트위터의 새로운 이름)에 메시지를 날렸는데, 엘모 친구들의 안부를 묻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전 세계 X 이용자 중 1만 4천여 명이 엘모의 이 메시지에 답장 보내는 등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기사인 거다.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나 슬퍼”, “우리는 지쳤어”, “세상은 불타고 있고, 종족학살이 일어나고 여성의 권리가 박탈되고, 생존이 어렵습니다. 우리가 지내는 것에 대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직장을 잃어 집을 팔아야만 했고, 한 달 보험료가 30% 상승했습니다”, “난 해고됐어”라는 등 힘들고 낙담된 일상이었다는 반응들로 이뤄진 답변들이 적지 않았다.

누리꾼 일부 가운데는 친구 안부를 물어 감사하다며 “세상은 좀 힘들어.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서비스가 부족하고, 경제가 모든 이들에게 그리 좋은 것은 아냐. 전쟁이 여럿 발생하지만, 당신은 우리가 필요했던 어린 시절의 많은 즐거움을 줬어”라고 답변하는 것도 있었다.

엘모는 그냥 잘 지내냐며 한 마디 던졌을 뿐인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힘든 일상과 엘모에 대한 그리움 등을 전달했다는 건 그만큼 인간이 혼자선 살 수 없고 힘들 때 위로와 격려를 누군가에게 청하며, 마음을 토로하고 기댈 만한 사람이 누구나 다 필요하다는 단순하고 새삼스러우면서 너무도 중요한 메시지를 던졌다고 본다.

내가 힘들고 울적하거나 혼자라고 느낄 때, 오래된 친구들이나 절친들이 ‘너가 생각나서 전화했어. 요즘 어떻게 지내?’라고 가끔 안부를 물어보면 반가운 느낌이 든다. 일과 삶이 분리된 자본주의 세상에서, 너무나 자기 살기에도 바빠, 친구와의 연락도 잊어버릴 만함에도 나에게 안부를 묻는 이들을 보면, 나는 혼자는 아니란 생각에 세상은 살만한 곳이라 느끼게 된다.

요즘엔 자폐성 장애인을 혐오하거나 자폐를 치료해야 한다는 기사들과 댓글들을 종종 접할 때마다 마음이 힘들어지는 때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페북에 이야기하고, 카톡에도 절친들에게 이야기하곤 했다. 그러면 이들에게서 ‘그 사람 소양이 없는 사람 같으니 축구 보면서 스트레스 풀어요’, ‘일일이 상대하지 말아요’라는 등의 이야기를 들으며, 다시금 세상을 살 용기를 갖게 되는 것 같다.

사람 인(人)이란 글자가 서로 기대고 있는 모양을 형상화한 거라, 그 글자에서 인간이라는 건 혼자선 살 수 없음을 암시하기도 한다. 서로 함께해야 더불어 공존하며 살아갈 수 있으니, 어떻게 지내냐는 엘모의 물음을 다시금 상기해야겠다. 다만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정도는 아니고, 이를 존중한다는 전제하에서 말이다.

올해 1월 30일 미국 어린이 프로그램 '세서미 스트리트'의 캐릭터 엘모가 X(옛 트위터)에 올린 게시물. ⓒElmo X 캡처
올해 1월 30일 미국 어린이 프로그램 '세서미 스트리트'의 캐릭터 엘모가 X(옛 트위터)에 올린 게시물. ⓒElmo X 캡처

한편 위로를 얻는 만큼, 내 주위에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위로했는가를 자문한다면 나 스스로 만족할 대답이 나오기 어려울 거 같다. 나 자신의 이기심·게으름을 보며 조금이라도 힘든 이가 있으면 진심으로 위로하는 마음을 가져야겠다고 다짐해본다. 각기 삶의 경험이 달라, 완전히는 공감하진 못하겠지만, 그래도 이전보다 최대한 공감하려 노력해야겠단 생각은 든다.

엘모가 나오는 어린이 프로그램인 ‘세서미 스트리트’는 1969년부터 미국에서 시작해 현재도 140여 개국에서 사랑받는 프로그램이다. 사실 나는 이 프로그램을 좋아하는데, 쿠키를 순식간에 먹어치우는 등 쿠키에 꽂혀 열정을 발산하는 쿠키 몬스터(Cookie Monster)의 존재 때문에도 그렇다. 나도 쿠키 몬스터처럼 축구 등 꽂히는 게 있으면 한 시간, 아니 두 시간 넘어서도 얘기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걸 느끼고, 그게 쿠키 몬스터랑 닮아 더욱 그를 좋아하는 것 같다,

한번은 어느 동영상을 보면서 쿠키 몬스터가 멋진 캐릭터라고 느끼게 되는데, 어떤 이야기인지 말해 보겠다. 크리스란 친구가 쿠키를 만드는 동안에 당근 먹어보면 어떻냐고 쿠키 몬스터에게 제안하자 그는 그러겠다며 당근을 냠냠냠 맛있게 먹어치우는 중이었다. 그런데 이를 본 엑스트라 세서미 스트리트의 마리오 로페스 기자가 특종이라며 쿠키 몬스터가 베지 몬스터(Veggie Monster, 야채만 보면 순식간에 먹어치우는 괴물 캐릭터를 일컬음)라고 전했다.

쿠키 몬스터는 뭐라고 했냐고 로페스 기자에게 물어봤고, 그 기자는 쿠키 몬스터가 이젠 베지 몬스터라는 특종을 전했다고 답했다. 이에 쿠키 몬스터는 자신은 베지 몬스터가 아닌 쿠키 몬스터라고 했지만, 로페스 기자는 베지 몬스터인 것 숨기지 말라며 당근 먹는 영상을 쿠키 몬스터에게 보여줬다. 영상을 본 쿠키 몬스터가 자신은 쿠키 몬스터라며, 이를 설명하려고 했지만, 설명하기도 전에 기자는 소문이 사실임을 주장한다.

쿠키 몬스터는 어이없다는 듯, 난 베지 몬스터가 아닌 쿠키 몬스터라며, 크리스에게 물어보라고 했다. 로페스 기자가 크리스에게 물어봤고, 크리스는 그가 쿠키를 사랑하는 쿠키 몬스터인 것은 물론이고, 야채 먹는 것도 사랑한다고 했는데, 기자는 야채라는 말에 꽂혀서인지 베지 몬스터라며 엑스트라 세서미 스트리트 방영할 때 다시 찾아뵙겠다고 시청자들에게 전했다.

로페스 기자가 가고 난 후, 쿠키 몬스터는 자신이 쿠키 몬스터임을 증명해야 한다며 크리스에게 쿠키를 달라고 재촉했고, 크리스는 아직 쿠키 다 안 만들었다고 하며, 이전에 쿠키를 다 먹어 치웠으니 인내심을 가지라고 쿠키 몬스터에게 조언한다. 그는 자신의 명성이 망가지기 전에 자신이 베지 몬스터라는 소문을 멈추게 해야 한다고 했고, 크리스는 좋다며 쿠키 다 만들 때 알려주겠다고 했다. 이후 쿠키 몬스터는 쿠키를 찾으러 어디론가 갔다.

빅버드(세서미 스트리트에서 키가 큰 노란색의 의인화된 새 캐릭터)와 스너피(빅버드 친구이자 귀 없고, 코가 긴 갈색 털 캐릭터)를 만나게 된 쿠키 몬스터는 이들에게 소문 들었냐고 물었고, 둘은 못 들었다고 했다. 이를 들은 쿠키 몬스터는 신경 쓰지 말라며 이들에게 쿠키 있냐고 물어봤지만, 빅버드는 쿠키 없다며 미안해했고 스너피는 양배추 스파게티를 먹을 거라고 했다.

파란색 털을 가진 괴물 캐릭터인 쿠키 몬스터가 양배추를 먹었다는 장면을 포착했다며 엑스트라 세서미 스트리트(Sesame Street)의 마리오 로페스 기자가 특종을 전하자, 쿠키 몬스터는 자신이 양배추 사랑한다고 베지 몬스터인 건 아니라고 항변하지만, 이에 아랑곳 않는 듯 로페스 기자는 베지 몬스터가 양배추를 사랑한다고 보도하는 장면. ⓒ세서미 스트리트(Sesame Street) Youtube 동영상 캡처
파란색 털을 가진 괴물 캐릭터인 쿠키 몬스터가 양배추를 먹었다는 장면을 포착했다며 엑스트라 세서미 스트리트(Sesame Street)의 마리오 로페스 기자가 특종을 전하자, 쿠키 몬스터는 자신이 양배추 사랑한다고 베지 몬스터인 건 아니라고 항변하지만, 이에 아랑곳 않는 듯 로페스 기자는 베지 몬스터가 양배추를 사랑한다고 보도하는 장면. ⓒ세서미 스트리트(Sesame Street) Youtube 동영상 캡처

곧이어 쿠키 몬스터가 양배추 스파게티 냄새를 맡더니, 양배추가 좋아 보이지만 먹어보진 못했다고 했고, 스너피는 양배추엔 비타민이 듬뿍 들어있다며, 한번 먹어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쿠키 몬스터는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이며, 맛있게 양배추를 순식간에 먹어치웠는데, 이를 본 로페스 기자는 베지 몬스터가 다른 야채를 먹고 있다는 특종을 또 전했다.

이에 쿠키 몬스터는 야채가 아닌 양배추를 먹고 있다고 했지만, 스너피와 빅버드는 양배추는 야채라고 그에게 일러줬다. 듣더니 그는 양배추가 야채란 걸 몰랐다고 했고, 로페스 기자는 그가 야채를 먹는다는 사실조차 모른다며 그를 베지 몬스터라 칭했다. 쿠키 몬스터는 양배추를 사랑한다고 해서 베지 몬스터인 건 아니라고 했지만, 기자는 들었냐며 베지 몬스터는 양배추를 사랑한다고 시청자들에게 특종을 전했다. 맥락에서 벗어난 얘기라고 쿠키 몬스터가 얘기했지만, 기자는 개의치 않는 듯 다음 특종에선 베지 몬스터 스캔들에 대해 전하겠다며 자리를 떴다.

마음이 불안해진 그가 빅버드에게 자신이 베지 몬스터가 아니라고 생각하느냐 물었는데, 이 질문에 빅버드는 베지 몬스터이건 아니건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고, 스너피는 우리는 여전히 친구라며 쿠키 몬스터를 안심시키려 했다. 이젠 자신이 쿠키 먹기를 사랑한다는 걸 증명하겠다고 말하며 쿠키 몬스터는 크리스에게 쿠키 다 만들었냐고 물었고 크리스는 아직이라고 답했다. 이를 들은 빅버드는 쿠키 먹는 것 나중에 보여달라고 하며 스너피와 함께 공원으로 가기에 이른다.

이때 크리스는 쿠키 몬스터에게 다가가 셀러리 먹으면 어떻냐고 제안했고, 그는 먹을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쿠키 몬스터가 소화에도 좋은 셀러리를 사랑한다는 말을 늘 했다고 크리스가 그러자 그는 셀러리가 먹고 싶다고 하더니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며, 이후 가발을 쓰고 자신을 로즈 마리라고 부르기에 이른다. 그러더니 크리스는 로즈 마리라고 부르며 그에게 셀러리를 건넨다.

자칭 로즈 마리는 베지 벙가(Veggiebunga)라 외치며 셀러리를 맛있게 먹어치웠지만, 이 순간을 로페스 기자가 놓칠 리 없었다. 즉시 엑스트라 세서미 스트리트 특종을 전하더니 쿠키 몬스터는 자신은 베지 몬스터가 아닌 로즈 마리라고 주장했다. 기자가 베지 벙가라고 했던 것 같다고 말하자마자 마리아(세서미 스트리트의 인형 캐릭터들 간 싸움을 중재해주는 중년 여성)가 인형 캐릭터들과 같이 나오더니, 쿠키 몬스터의 셀러리 먹는 동영상 조회 수가 어마어마하다며, 동영상이 대박 났다고 이야기했다.

우울해진 쿠키 몬스터 자신도 베지 몬스터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했고, 로페스 기자는 그가 드디어 베지 몬스터임을 인정했다고 시청자들에게 전했다. 기자가 쿠키 몬스터에게 어떤 기분이냐고 묻자, 그는 사람들이 자신을 쿠키 몬스터로 생각하지 않는다며, 좌절감을 느낀다고 했고, 기자는 야채는 건강에 좋고 맛있다며 당신 자신한테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냐며 쿠키 몬스터의 기분을 심하게 건드린다.

결국, 쿠키 몬스터는 용기 내어 그건 내가 아니라며 우울한 음악에 맞춰 노래를 부른다. ‘나는 나(Me am what me am, 쿠키 몬스터는 I를 Me로 표현함)’고 나는 쿠키 몬스터라며 그게 전부라고 자신의 심정을 전한다. 브로콜리, 상추 등도 좋아하지만 자신은 여전히 쿠키 몬스터라며, 진짜라고 강조하며 말한다. 가지나 애호박 먹는 게 무슨 상관이냐며, ’나는 나‘임을 다시금 노래로 강변하더니 노래를 끝마치고는 한숨을 내쉰다.

쿠키 몬스터(Cookie Monster)가 ’나는 나‘라며 자신의 정체성은 쿠키 몬스터임을 강변하는 노래를 부르는 모습. ⓒ세서미 스트리트(Sesame Street) Youtube 동영상 캡처
쿠키 몬스터(Cookie Monster)가 ’나는 나‘라며 자신의 정체성은 쿠키 몬스터임을 강변하는 노래를 부르는 모습. ⓒ세서미 스트리트(Sesame Street) Youtube 동영상 캡처

이를 들은 마리아는 ’야채를 좋아한다고 해도 너가 항상 쿠키 몬스터를 알았더라면 어땠을까?‘라며 쿠키 몬스터에게 미안함을 전했다. 뒤이어 쿠키 다 만들었다고 크리스는 쿠키 몬스터에게 말했고, 쿠키 몬스터는 좋아서 어쩔 줄 모르더니 가와벙가(Gawabunga)라고 외치며 쿠키를 순식간에 먹어치우게 된다. 기자는 지금까지 전한 특종은 더 이상 믿지 말라며, 쿠키 몬스터는 진짜 쿠키 몬스터고 전하며, 보도를 마친다.

사실 쿠키를 순식간에 먹어치우는 쿠키 몬스터의 모습에 그의 친구들과 이웃들은 그 모습이 다른 사람들에게 좋지 않게 보인다고 생각한 나머지, 쿠키 먹지 말라고 하던지, 말 잘 들으면 쿠키를 주겠다고 하거나, 건강에 좋은 야채를 먹으라는 식으로 그에게 말해왔다. 그는 이를 종종 들으며 쿠키 먹는 걸 자제하려고 했지만 그래도 쿠키를 먹고픈 마음을 참기가 어려웠다.

물론 야채를 먹으면 몸이 건강해지고 베지 몬스터로 불리는 게 로페스 기자를 포함해 사람들에겐 괜찮게 보일 순 있겠지만, 쿠키 몬스터 자신은 그건 자신이 아니고, 자신의 정체성과는 거리가 먼 것임을 깨달았던 거다. 무엇보다 쿠키를 사랑하고, 순식간에 쿠키 먹어 치우는 게 자신이고 그게 자신의 정체성임을 그는 알았던 거다.

가발로 자신의 본 모습과 정체성을 숨겨 정신건강을 해치고 우울해지느니 쿠키 몬스터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는 게 여러모로 좋다고 생각했던 게 아닐까? 사람들과 인형 캐릭터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안 좋게 생각할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그걸 뚫고 정체성 밝힌 쿠키 몬스터는 그래서 용기 있고, 멋지다고 느끼게 된다. 정체성을 밝힌 쿠키 몬스터의 용기에 친구들과 이웃들이 그를 존중하니 그의 정체성뿐만 아니라 다양성까지 존중한다는 느낌마저 든다.

나한테는 배려와 눈치가 없으니 눈치 챙기라고 말하는 가족, 교회 사람들이 있다. 또 말하는 것 반복한다며 반복하지 말라는 사람들이 있다. 심지어 가족 중엔 발 좀 떨지 말라고 나에게 몸짓으로 눈빛으로 신호를 주는 사람들이 있다. 목소리 좀 낮추라고 다른 사람들이 핀잔을 줄 때도 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나 자신이 몸을 움츠리며 손바닥으로 다리를 만지거나 칠 때가 있다. 장애인단체에서 일할 때, 프로포절을 잘 쓰지 못해 내가 무능력하다고 느낄 때도 많았다.

배려 없고 눈치 없는 것, 불안해지면 목소리가 커지는 것, 말 반복하는 것, 발 떠는 것, 프로포절 잘 쓰지 못하는 무능력한 모습 등을 보며, 어쩔 땐 이런 나 자신이 불만족스럽다고 느낄 때가 있다. 물론 그런 모습을 조금은 줄이려고 노력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그럼에도 그런 모습이 없어지진 않는다.

오히려 그런 모습이 나의 특성이자, 정체성이요, 자폐성 장애에서 나오는 특징이자 다양성이라 생각하고 나 자신을 인정하니, 내가 자랑스럽다. 프로포절 잘 못 쓰는 무능력한 나라도, 무능력도 다양성으로 생각·존중하려 하니 역시 기분이 나아진다. 다른 면에서 능력은 있을 거니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능력주의에 빠지고 싶진 않다. 불완전한 나라도 나 자신이 자랑스럽다.

책 '한국의 능력주의' 표지. ⓒ이데아
책 '한국의 능력주의' 표지. ⓒ이데아

그런 나를 부정하면 오히려 나의 정신건강만 해칠 뿐이고, 나 자신을 차별하는 게 내면화될 뿐이다. 그러면 나 자신이 장애인인데도, 다른 장애인들의 다양성, 정체성을 부정하고, 능력주의 내면화 등으로 이들을 차별하기가 더욱 쉬워질 터이지. 나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인정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게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게 되는 길임을 새삼스러울지 모르나, 다시금 생각한다.

엘모쿠키 몬스터의 예를 통해 세서미 스트리트라는 프로그램엔 ’서로를 향한 관심‘ ’다양성·정체성 존중‘이 있고, 이게 나의 삶을 풍요롭게 할 것이란 생각마저 든다. '서로를 향한 관심'이 줄어들고 ’다양성·정체성 존중‘은커녕 오히려 이를 혐오하는 게 팽배해지는 세상을 보면 이런 세상 만든 어른들에게 환멸을 느낄 때가 많다. 한편으론 나도 그런 세상을 만들진 않았나 하는 생각에 나 자신을 성찰해야 한다는 생각마저 든다.

어린이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나를 유치하다고 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 또한 나의 특성이자, 정체성과 다양성 중 하나이고, 어린이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어른은 어른이 아니라는 것도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 자유롭게 놀고 어떤 걸 말할 때 거짓 없이 솔직한 어린이의 모습들은 어른들이 배워야 하는 것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어린이는 어른의 스승이고 그것은 진리일지니.

하지만 요즘 어린이들에게 강제적으로 학원 과외를 시키고 이들의 생각을 억압하는 등 어린이의 이런 모습들을 많이 죽이는 어른들이 적지 않은 것 같아 씁쓸하다. 나도 어렸을 땐 그게 좋은 줄로만 알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만큼 어린이들의 자유를 죽이는 일은 없으니 말이다. 그러고 보면 난 참 나쁜 사람이라는 걸 느낀다.

이외에도 세서미 스트리트가 끝날 때 맨 마지막에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아동과 비장애아동이 한데 어울리며 노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 요즘엔 한국계 미국인 지영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인종차별은 잘못이라는 메시지를 던져주는 것도 다양성을 존중하고 사회통합을 이루려는 상징적인 의미가 담겨 있기에 고무적인 느낌이 든다.

어쨌든 ’다양성·정체성 존중‘과 ’서로를 향한 관심‘이 느껴지는 세서미 스트리트라면 그게 어린이 프로그램이라도 어른들이 보고 배울 건 많다. 그런 걸 통해 각박해지는 세상에서 벗어나 세상은 그래도 따뜻하다고 느끼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그나저나 오늘 쿠키 몬스터 영상은 뭐가 올라왔을까? 나름대로 독특한 쿠키 몬스터의 모습이 담긴 영상 보며 마음껏 즐거움을 만끽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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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팝송 감상, 월드컵 등을 즐기고 건강정보에 관심이 많은 반백년 청년이자, 자폐성장애인 자조모임 estas 회원이다. 전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정책연구팀 간사였으며,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정부심의 대응을 위해 민간대표단의 일원으로 2번 심의를 참관한 경험이 있다. 칼럼에서는 자폐인으로서의 일상을 공유하고, 장애인권리협약, 장차법과 관련해 지적장애인, 자폐성장애인과 그 가족이 처한 현실, 장애인의 건강권과 교육권, 접근권 등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나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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