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타는 엄마가 아이 둘을 데리고 사이판 한 달 살기를 간다고 했더니 주변의 반응은 대부분 '갑자기 웬 사이판? 휠체어 타고 어떻게 한 달이나?'였다. 어쩌면 그런 생각이 드는 게 당연했다.

이 무모한 여행의 시작은 사실 너무 단순한 이유에서였다. 하긴 단순하니까 무모했던지도 모르겠다.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며 거의 모든 사람에게 해외여행은 올 스탑(All-Stop)되었다. 여행을 미치도록 좋아하는 나 역시도 해외에 가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누르며 3년을 보냈다. 짧게나마 국내 여행을 하거나 2021년 이맘때 아이들과 제주 한 달 살기를 하며 여행 허기를 달랬었다. 제주 한 달 살기가 너무 행복했기에 또 다시 어디서든 한 달 살기를 꼭 하고 싶었다.

너무나 행복했던 제주 한 달 살기. ⓒ 박혜정
너무나 행복했던 제주 한 달 살기. ⓒ 박혜정

1998년 첫 해외 여행 이후, 돈을 모으는 대로 낯선 곳으로 떠났던 젊은 시절의 나는 경제적, 시간적인 여유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몇 달 일하고 돈이 조금 모이면 2박, 3박, 길어야 4박 5일 정도의 여행밖에 갈 수 없었다.

지금도 여유가 그렇게 있지는 않지만, 그 시절보다는 돈과 시간을 모을 수 있는 연륜이 생겼다. 그래서 7~8년 전부터는 몇 박 며칠의 짧은 여행이 아닌 10일, 보름 정도의 여행을 하기 시작했다.

조금 긴 여행의 매력은 여유가 있기에 현지를 더 깊숙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어디를 가도 여행을 통해 관광 뿐 아니라 시간의 여유가 주는 쉼과 휴식, 힐링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짧은 여행보다 절대적인 비용이 조금 더 들긴 하지만, 신기하게도 가성비는 훨씬 좋아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3박 4일의 가족 여행에 300만원 가량이 들었다고 치면, 9박 10일을 간다고 900만원이 드는 게 아니었다. 기간은 3배로 늘어나지만, 나의 경우에 대체로 1.5배 정도의 비용이면 가능했다. 물론 상황마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기간이 3배로 늘어난다고 경비가 절대적으로 3배까지 들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이렇게 장기 여행을 늘 꿈꾸는 내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하늘길이 열리자 근질근질, 꿈틀꿈틀 여행의 욕구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 동안 모은 돈을 계산해보고, 작년 10월부터 어디를 갈지 설레는 마음으로 검색을 줄곧 했다.

그런데 문제는 장기 여행을 꿈꾸지만, 현실이었다. 이제는 제주 한 달 살기를 할 수 있었던 육아 휴직이나 다른 어떤 휴직을 쓰고 갈 핑계가 없었기 때문이다. 너무 가고 싶은데.. 가고 싶은데...

​결국 사고를 치기로 마음을 먹었다. 나에게 있는 2023년, 1년치 연가를 거의 모두 당겨서 한 달 살기를 하기로 말이다~ 게다가 3년 가까이 여행을 못 가서 아끼고 모은 돈을 거의 다 털어서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후아~ 여행에 탕진하는 무모함의 극치인 나란 여자.

여행에 탕진하는 무모함의 극치인 나란 여자.
여행에 탕진하는 무모함의 극치인 나란 여자. ⓒ unsplash

이런 무모한 휠챠녀가 처음 목적지로 끌렸던 곳은 호주였다. 예전부터 너무 가고 싶었던 곳이지만, 이상하게 기회가 닿지 않았던 곳이다. 그리고 나는 엄마이기에 호주 한 달 살기를 하며 이왕 간김에 초등 아이 둘, 현혜의 스쿨링도 하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호주는 체류비, 물가가 너무 비쌌고, 현혜의 4주 영어 캠프를 알아보니 금액이 후덜덜~ 내가 생각한 예산을 넘어섰다. 결국 호주는 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 캐나다 영어 캠프는 금액이 호주보다 말할 것도 없이 비싸서 검색을 하다 말았다.

방향을 바꿔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을 알아 봤다. 그런데 필리핀, 말레이시아는 체류비와 물가는 싸더라도 생각보다 초등 아이들 영어캠프는 상당히 비쌌다. 현혜가 연년생이라 한번에 두배의 비용을 들여야 하니 더 부담이 되었다.

도대체 호주는 언제 가보나ㅠ 기다렷! 캥거루들아~ 언젠간 가고 말테다! ⓒ unsplash
도대체 호주는 언제 가보나ㅠ 기다렷! 캥거루들아~ 언젠간 가고 말테다! ⓒ unsplash

그러다 알게 된 정보! 사이판에 아이들 학비가 엄청나게 싸다는 거다! 게다가 관광비자로 가서 영어 캠프가 아닌 현지 학교에 단기로 입학할 수 있다는 게 아주 매력적이었다. 알아보니 정말 사이판 학교의 학비는 한국에서 좀 비싼 영어 학원 한 달치 정도밖에 안되는 것 같았다. 미국 본토와는 거리가 아주 멀지만, 그래도 미국령의 섬이기 때문에 미국 현지의 수업 과정을 체험할 수 있는 것이 엄청난 장점이었다.

사이판이 너무 매력적으로 제일 끌리는 곳이었지만, 스스로 이렇게 무모해도 될까 싶은 생각이 한편에 자꾸 들었다. 1년치 연가를 몽땅 쓰는 게 괜찮을지, 현혜도 체험 학습 외의 기간은 무단(미인정) 결석을 해야 하고, 비용도 부담되었던 게 사실이다. 너무 무리해서 가서 괜히 무슨 일이 생기는 건 아닐지 이것 저것 걱정이 많이 되었다. 나름대로 한 달 내내 한참을 고민했다.

​하지만 그때 내가 든 생각은 ‘안 가고 포기하면 후회할 것 같다.' 였다! 10월 말쯤 갑작스럽게 운명을 달리 한, 아는 동생의 죽음에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 즈음 정말 있어서는 안될 안타까운 재난이었던 이태원 참사도 있었다.

하고 싶은 건 일단 하고 보자!

가고 싶은 건 일단 가고 보자!

사는 동안에는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걸 그냥 하자!

결국 사이판에 가기로 결정을 해버렸다. 하지만 지난 9월 이후부터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부산에서 사이판으로 가는 직항이 없어져 버려서 다시 망설였다. 부산에서 인천까지 바로 가는 KTX도 없어졌고, 바로 가는 항공편도 없다. 휠체어를 타는 내가 한 달 살기 그 많은 짐을 가지고, 어쨌든 아이들인 현혜를 데리고 가야 한다. 으아~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계속 고민이 되었다.

그러나 무모함의 극치인 겁대상실 휠챠녀는 여행에서 하나 꽂히면, 맙소사~ 나는 거의 직진이다! 까짓것~ 서울까지 KTX를 타고, 인천 공항까지 공항철도 타고 가면 되는 거지!

사이판인지 모를 이 사진을 보며 벌써 가슴이 설레고 있었다. ⓒ unsplash
사이판인지 모를 이 사진을 보며 벌써 가슴이 설레고 있었다. ⓒ unsplash

드디어 인천에서 사이판 왕복 항공권을 끊고야 말았다!

​그렇게 무모한 여행은 시작되었다. 휠체어 엄마와 아이 둘의 사이판 한 달 살기는 과연 순탄한 여행이 될 수 있을까...?

​* 다음 편부터는 항공권, 렌터카, 숙소, 현지 학교 입학 등 사이판 한달 살기를 준비하는 과정에 대해 차근차근 쓰겠습니다. 겁대상실 휠챠녀 현혜 박혜정의 우당탕탕, 우여곡절 이야기~ 기대해 주세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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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정 칼럼니스트 글 쓰는 휠체어 여행가, 현혜(필명), 박혜정입니다. 1994년 고등학교 등굣길에 건물에서 간판이 떨어지는 사고로 척수 장애를 입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29년 동안 중증장애인으로 그래도 씩씩하고 당당하게 독립해서 살았습니다. 1998년부터 지금까지 혼자, 가족, 친구들과 우리나라, 해외를 누비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또, 여성 중증 장애를 가지고도 수많은 일을 하며 좌충우돌 씩씩하게 살아온 이야기를 통해 누군가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전)교육공무원으로 재직했고, <시련은 축복이었습니다>를 출간한 베스트셀러 작가, 강연가, 글 쓰는 휠체어 여행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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