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이사를 하게 되면서 기존에 다니던 헬스장까지 거리가 멀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기존 헬스장 이용 기간이 만료된 뒤, 이사한 집에서 가까운 헬스장을 찾아 회원 등록을 했다.

방문 예약을 하고 처음 헬스장에 가서 계약할 때, 폰에 있는 음성인식기능 어플을 사용하여 헬스장 직원과 직접 소통했다.

내 경험상 음성인식기능 어플은 사람의 말을 60~70% 정도 인식한다고 생각했는데, 최근 폰에 무선 마이크를 연결해서 사용하면 90%까지 인식이 잘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을 활용해서 직원과 큰 막힘없이 소통했고, 회원 등록과 계약도 했다.

그날 저녁 헬스장에 가서 운동하고 있는데, 직원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내가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헬스장에서 운동하다가 다칠 것 같으니 환불을 해주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헬스장에 있었기에 바로 그 직원에게 가서 이야기를 나눴다.

헬스장에 등록해서 운동하려고 하니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보호자와 동행하거나, 계약서에 면책조항을 넣어야 한다고 한다. @KBS '사랑의가족' 화면 캡처
헬스장에 등록해서 운동하려고 하니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보호자와 동행하거나, 계약서에 면책조항을 넣어야 한다고 한다. @KBS '사랑의가족' 화면 캡처

내가 20년 가까이 헬스장을 다녔고, 운동도 혼자 했고, 한 번도 사고가 난 적 없고, 마라톤 하프코스도 혼자 완주했다고 했다. 혼자 운동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 직원은 언제부터 장애를 가지게 되었는지, 얼마나 보이는지 등 내가 가진 시각장애에 대해서만 계속 이야기했다. 일단 묻는 말에 잘 대답했고, 서로 웃으며 잘 마무리했다.

그런데 다음날, 직원에게서 또 문자가 왔다. 이번에는 꽤 장문으로 왔다. 회원님은 괜찮다고 했지만 눈이 잘 안 보이기 때문에 운동하다가 다칠 것 같다고, 사고가 날 것 같다고. 그래서 아무래도 환불을 해 드리는 게 맞는 것 같다고. 거듭 사과하면서 환불을 해주고 싶다고 했다.

어제는 그냥 웃어넘겼지만, 이번엔 나도 기분이 언짢았다. 오후에 헬스장에 가서 직접 이야기하겠다고 해서 직원과 다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가진 장애 때문에 환불을 요구하는 건 장애인 차별에 해당될 수 있다고 강력하게 이야기했다.

하지만 직원은 자신의 주장이 장애인 차별이 아니라고 했다. ‘장애’로 인한 차별이 아니라 ‘안전’상의 이유로 환불을 요구하는 거라고 했다. ‘눈이 잘 안 보이기 때문에’를 연신 강조하고 있는데, 이게 왜 장애 때문이 아닌가? 정말 황당한 주장이었다.

더 기가 막힌 건 여기서 운동하는 게 괜찮다고 내가 계속 주장하자 직원이 제시한 조건이었다. 여기서 운동하고 싶으면 운동할 때 보호자와 동행해야 한다는 것과 계약서상에 ‘면책 조항’을 수기로 작성해야 한다는 거였다. ‘면책 조항’은 내가 운동하다가 사고가 나도 헬스장 측에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나는 두 가지 제안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했다. 지금까지 혼자 운동했는데 왜 갑자기 보호자와 동행해야 하나? 그리고 다른 회원들은 다 계약서상에 ‘면책 조항’을 쓰지 않는데 왜 나만 그것도 수기로 써야 하나? 직원에게 물어보니 ‘장애가 있어서’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난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센터에 해당 내용으로 사례를 접수했고, 인권센터에서 헬스장으로 사실관계 확인을 위한 내용증명을 발송했다. 이후 헬스장 측에서 사과해서 다시 헬스장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직원이 보낸 사과한다는 문자에는 끝까지 ‘장애’라는 언급을 하지 않았다. ‘안전상 이유로 환불을 요구’했다는 주장만 내세울 뿐인 성의없는 사과였다.

장애인이 운동할 권리

이 일을 계기로 난 다른 헬스장에 회원 등록을 해서 다닐 생각을 했다. 그래서 총 네 곳의 헬스장을 찾아서 차례로 방문했는데, 충격적인 결과를 받아들였다. 방문했던 네 곳의 헬스장 중 어디에도 등록을 하지 못했다. 심지어 네 곳 중 두 곳은 공공체육시설이다.

방문했던 네 곳 모두 장애가 있다는 걸 이야기하니 하나같이 ‘보호자 동행’과 ‘면책 조항’을 이야기했다. 두 가지 조건을 모두 내미는 곳도 있었고, 어느 한 가지 조건만 내미는 곳도 있었다. 어떤 곳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이용하는 저녁 시간대에 한 번 와서 얼마나 위험한지 직접 보고 결정하라고 했다. 또 어떤 곳은 등록은 가능한데 위의 두 가지 조건을 받아들여야만 등록이 가능하다고 했다.

난 그동안 어떻게 운동해왔던 걸까? 내가 너무 ‘안전지대’에 있었던 걸까? 운동을 하면 사고가 날 수 있다. 장애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누구나 운동하면서 다칠 수 있다. 혹여 장애인이 이용하기에 다칠 가능성이 너무 크고 위험해 보이는 헬스장이라면 당사자가 계약하지 않았을 것이다. 헬스장은 통상의 관리만 하면 되지, 회원 중에 장애인이 있다고 해서 일일이 감독하고 배려해야 하는 건 아니다.

안전이라는 가면을 쓴 장애인 차별을 몸소 느끼면서, 대한민국에서 장애인의 운동할 권리는 얼마나 제대로 보장받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장애인이 자립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하는 게 건강이다. 그 건강권을 실행하기 위해 운동할 수 있는 권리가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다면, 어떻게 건강 관리를 하며 어떻게 자립생활을 영위해 나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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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밤하늘을 밝게 비추는 달의 존재는 참 아름답습니다. 그런 달이 외롭지 않게 함께하는 별의 존재도 감사합니다. 시청각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소소한 일상과 첼로를 연주하는 이야기를 통해 저도 누군가에게 반짝이는 별이 되어 비춰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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