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자신의 일이 아니면, 타인의 사정은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 것 같다. 굳이 타인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 필요는 없지만, 개인주의가 만연한 사회가 되면서 공감 능력이 점점 더 없어지는 것 같다. 그러니 타인의 사정을 알게 되어도 대부분 공감하지 못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 정도는 알 것 같은데도 타인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는 무척 힘든 것 같다.

나는 추위는 별로 타지 않는데, 손이 굉장히 차가운 편이다. 특히 겨울이 되면 휠체어를 밀어야 하는 쇠로 된 휠 부분이 더욱 차가워지고 손이 너무 시려서 꼭 장갑을 낀다. 어느 날 아침에 엘리베이터에서 지인을 만났다. 장갑을 끼고 있는 나를 보고 그 사람이 '장갑을 끼셨네요~ 차 운전하는데 핸들이 너무 차가워서 손이 시리죠? 나도 혜정 씨처럼 장갑을 하나 사서 껴야겠네요!'라고 말을 했다. 내가 장갑을 끼는 이유를 자동차 운전하는데 핸들이 차갑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줄은 몰랐다.

겨울이면 휠체어를 밀기에 손이 너무 시려서 장갑을 꼭 낀다. ⓒ 박혜정
겨울이면 휠체어를 밀기에 손이 너무 시려서 장갑을 꼭 낀다. ⓒ 박혜정

예전에 왼쪽 새끼발가락에 욕창이 생겨서 피부과를 간 적이 있었다. 피부과 의사에게 나는 하반신이 마비 상태이고 감각이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발가락을 어디서 다쳤는지도 모르고 상처가 났는데, 욕창이 되었다고 설명을 했다.

감각이 없다는데도 계속 아프냐고 물어보는 피부과 의사. ⓒ unsplash
감각이 없다는데도 계속 아프냐고 물어보는 피부과 의사. ⓒ unsplash

그렇게 말을 했건만, 욕창 치료를 하는데 그 의사는 '따갑습니다, 조금만 참으세요~', '안 아파요? 괜찮으세요?, '발가락 느낌이 어때요?'라고 자꾸 물어봤다. 나는 처음에는 '아무런 느낌 없어요.'라고 했다가 몇 번이나 물어봐서 약간 짜증이 났다. 그래서 '감각이 전혀 없어서 아픈 것도, 따가운 것도 아무것도 모른다니까요!'라고 신경질적으로 얘기해 버렸다. 타인의 상황은 말을 해도 정말 공감이 안 되는 것일까?

[두산대백과 두피디아]에 따르면, 공감(共感)은 '대상을 알고 이해하거나, 대상이 느끼는 상황 또는 기분을 비슷하게 경험하는 심적 현상'이라고 한다. [네이버 영어사전]에 '공감'을 검색하면'sympathy'라는 단어가 나온다. 'sympathy'는 정확히는 '동정, 연민'에 가까운 단어이다. 'empathy'라는 단어가 '특히 자기 경험에서 우러난 공감'이라는 말이다.

동정이나 연민, 'sympathy'라는 것은 타인의 고통과 슬픔을 같이 느끼지만, 혀를 끌끌 차며 '쯧쯧, 안됐네.'라고 대부분 안 좋은 감정을 표현하며 머리로 이해만 하고 끝나버린다. 하지만 공감, 'empathy'는 '남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면 그 사람의 신발을 신고 일주일은 걸어보아야 한다.'라고 슈익스가 말한 것처럼, 그 사람의 고통을 느끼는 것뿐 아니라, 타인의 마음속까지 충분히 들어가 보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해하고 배려하는 행동까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타인의 마음 속까지 충분히 들어가 보는 게 '공감(sympathy)'이다. ⓒ unsplash
타인의 마음 속까지 충분히 들어가 보는 게 '공감(sympathy)'이다. ⓒ unsplash

코로나 상황 이전에 지인들과 청도 운문사를 간 적이 있다. 지인 중 한 명이 내 휠체어를 밀어주었다. 그런데 앞에 있는 조그만 턱을 나도, 그 사람도 보지 못하고 가다가 휠체어는 턱에 걸리고 내 몸만 앞으로 떨어지게 되었다. 놀란 나는 순간적으로 오른쪽 손을 땅에 짚었는데, 두 번째 손가락이 꺾이면서 좀 다치게 되었다. 다행히 다른 곳은 다친 데가 없었다. 하지만 오른손이 퉁퉁 붓고 너무 아팠고, 손을 못 쓰게 되니 너무 힘들었다.

다음 날 정형외과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뼈는 이상이 없었고, 인대 손상과 염증이라고 하면서 손을 무조건 쓰지 말아야 한다고 의사가 말했다. 그래서 나는 그 의사에게 보다시피 휠체어를 타고 있어서 손을 안 쓰고는 생활을 할 수 없으니 더 빨리 나을 수 있는 다른 치료 방법을 물어봤다.

그런데 그 의사가 '손을 그렇게 쓸 일이 뭐가 있습니까? 일하시는 게 손을 엄청 많이 쓰는 일인가요?'라고 나한테 되물었다. 헉! 말을 기껏 다 했는데도 그렇게 말하는 의사의 말에 너무 당황스러웠다. 상세하게 일일이 설명하기도 뭣해서 그냥 물리치료라도 하게 해달라고 말하고 말았다.

그 뒤로 몇 번 물리치료를 하러 갔지만, 의사는 계속 위와 비슷한 말을 했다. 환자의 상태와 사정을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의사에게 신뢰가 가지 않는 건 당연하다. 그런 의사에게 굳이 진료를 받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그 병원은 다시는 가지 않았다.

손을 다치고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의사에게는 진료를 받고 싶지 않았다. ⓒ Pixabay
손을 다치고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의사에게는 진료를 받고 싶지 않았다. ⓒ Pixabay

나는 휠체어를 빼고 내리기 위해서는 장애인 주차공간이 아니면 아예 타고 내릴 수가 없다. 그래서 그 차주에게 전화해서 휠체어를 타는 거 아니면 양보해달라고 정중하게 부탁한다. 전화를 받고 나오는 차주는 내가 겪은 바로는 대부분 나보다는 훨씬 경증의 장애인이거나 장애인의 보호자이거나(이런 경우는 주차하면 안 된다.) 아니면 아주 멀쩡한 사람이 나오기도 한다. 아무튼 흔쾌히 주차공간을 양보하면서 차를 빼주면 나도 그냥 별말 없이 감사하다고 한다.

그런데 한번은 장애인 주차공간이 없어서 어떻게 할지 몰라 차에 한참을 있었다. 마침 장애인 주차공간에서 차를 빼려고 멀쩡한 사람이 바쁘게 뛰어나오길래, 가족 중에 장애인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자기가 장애인이란다. 너무 의아하고 황당했다.

그래서 내가 휠체어를 타서 여기 아니면 타고 내릴 수가 없다고 구구절절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자 그 사람은 '나도 장애인이고 주차 가능 스티커를 받았으니 여기 주차할 권리가 있다. 그리고 나도 다리에 심을 2개나 박아서 멀리 주차하고 걸어오면 다리가 욱신거린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 사람이 정말 힘든 상황일 수는 있다. 하지만, 장애인 주차장의 너비가 넓은 이유 - 휠체어를 차에 싣고 내리기 위해서 그 넓은 공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여기서 얘기할 건 아니지만, 우리나라의 법도 분명히 잘못되었다.) 아예 걸을 수도 없어서 휠체어를 타는 사람은 장애인 주차공간이 없으면 차에서 내릴 수도, 탈 수도 없는 더 힘든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반면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상대방을 감동하게 한다. 어느 날 아침에 출근해서 차에서 휠체어를 빼고 내리는데, 예전 부서에서 같이 일하던 선생님이 지나가며 인사를 하셨다. 나도 반가워서 인사를 하고 차에서 휠체어로 타려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그 선생님은 계단을 올라가려다 말고 나에게 '리프트 이거 누르면 돼요? 쌤 바로 탈 수 있게 내가 눌러서 리프트 내려줄게요~'라고 했다. 순간 정말 감동이 밀려왔다.

계단 8칸 높이밖에 되지 않지만, 휠체어 리프트는 정말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그리고 버튼을 계속 누르고 있어야 하니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다. 어떻게 이 분은 내가 제일 필요한 도움을 말하지도 않았는데 알 수 있을까? 정말 타인의 마음을 온전히 공감하지 않으면, 이 선생님처럼 행동할 수가 없다.

같은 부서에 있을 때도 이 선생님은 다른 사람이 업무든 직장 생활이든 힘들어하면, 자기 일처럼 나서서 도와주셨다. 그래서 정말 천사라는 평판이 자자했다. 당시에 나에게도 제일 따뜻하게 대해주신 분이었다.

아침 출근길, 이 선생님의 배려와 공감 능력 덕분에 하루를 너무 기분 좋게 시작할 수 있었다. 한참이 지난 일이지만, 지금 다시 그날을 생각해봐도 이 선생님 같은 분이 있기에 세상이 너무 따뜻하다고 느낀다. 그 잠깐의 배려를 통해 내가 사는 세상이 핑크빛이라고 느껴지고 행복한 기운이 마음속에 가득 채워진다.

아침 출근길, 리프트를 잡아주시던 동료 선생님 덕분에 너무 기분 좋은 하루였다. ⓒ 박혜정
아침 출근길, 리프트를 잡아주시던 동료 선생님 덕분에 너무 기분 좋은 하루였다. ⓒ 박혜정

팔불출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우리 남편은 단점이 수없이 많지만, 공감 능력 하나는 아주 큰 장점인 것 같다. 내가 억울한 일, 화나는 일이 있어서 저녁을 먹으며 씩씩거리며 얘기한다. 그러면 남편은 대부분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으며 '아고~ 힘들었겠네!'라고 말해준다.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누가 잘했고, 잘못했고 판단하지 않는다. 단지 내 말에 귀 기울여 주고, 힘들었겠다고 말해 주는 것뿐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남편의 별말이 아닌 위로에 나는 화가 풀리고 마음이 안정된다. 상대를 진정으로 공감하는 것은 희한한 힘을 가졌다.

'공감은 누군가를 심리적으로 포옹하는 것과 같다.'-로렌스 J ⓒ unsplash
'공감은 누군가를 심리적으로 포옹하는 것과 같다.'-로렌스 J ⓒ unsplash

'공감은 누군가를 심리적으로 포옹하는 것과 같다.'라고 로렌스 J가 말했다. 타인에 대해 공감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주변 사람들에게 주의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타인이 뭘 하든 관심도, 신경도 안 쓰는 사람은 바쁜 출근 시간에 절대 저런 행동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타인을 마음으로 안아주려는 공감의 노력을 하다 보면, 세상은 훨씬 더 살기 좋은 곳이 될 것이다.

물론 나도 어쩌면 내가 힘든 부분, 나의 고통만 알지, 타인의 힘듦과 고통은 다 알지는 못한다. 그래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아휴~ 힘들겠구나, 쯧쯧쯧~'라고 머리로만 타인을 이해하는 능력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포옹과 배려, 공감을 더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갖고, 마음을 다해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아파하고 함께 웃고, 서로 위해주며 살 수 있도록 나도 더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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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정 칼럼니스트 글 쓰는 휠체어 여행가, 현혜(필명), 박혜정입니다. 1994년 고등학교 등굣길에 건물에서 간판이 떨어지는 사고로 척수 장애를 입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29년 동안 중증장애인으로 그래도 씩씩하고 당당하게 독립해서 살았습니다. 1998년부터 지금까지 혼자, 가족, 친구들과 우리나라, 해외를 누비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또, 여성 중증 장애를 가지고도 수많은 일을 하며 좌충우돌 씩씩하게 살아온 이야기를 통해 누군가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전)교육공무원으로 재직했고, <시련은 축복이었습니다>를 출간한 베스트셀러 작가, 강연가, 글 쓰는 휠체어 여행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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