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제6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 관련 브리핑을 하는 모습. ⓒ보건복지부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제6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 관련 브리핑을 하는 모습. ⓒ보건복지부

지금까지 제6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에 대한 생각을 적어보았다. 전체적인 느낌은 예산이 충분하고 장애인의 욕구와 선호, 의지를 반영하는 장애의 인권적 모델에 기반한 정책기획이기보단 예산과 구 장애등급 등에 기반한 계획인 제공자 중심의 정책계획이라는 게 확연히 느껴졌다. 그게 예상됐긴 했지만, 그래도 그런 현실을 보면 씁쓸하기만 하다.

작년엔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가 대한민국 정부의 제2·3차 병합국가보고서를 심의한 후 9월 초에 권고를 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시설과 건축물, 정보기기, 장애인방송 등의 접근성, 장애인연금 등의 소득보장, 장애여성과 관련된 권고 내용 등이 정책계획엔 미반영되거나, 반영이 부족했다. 장애인권리위원회에서 중시하는 일반 노동시장으로의 전이방안 역시 정책계획엔 부재하다.

심지어 장애 특성 있으나, 순전한 의료적 장애 판정 기준이 이유이거나, 또는 장애에 대한 사회의 지독한 편견 등으로 인해 미등록된 장애인에 관한 정책계획도 사실상 부재하다. 사법 지원, 고용장려금, 장애인연금, 가족지원 등이 이들에게 없는 건 예나 지금이나 여전할 게 우려된다.

물론 현행 장애인복지법상 장애 개념(의학적 장애 모델)을 사회적 장애 모델까지 확장할 수 있도록 국회와 협력한다지만, 탈시설만 해도 시설세력의 눈치를 보며 제동을 걸고, 장애인 정책·제도는 아직도 예산 등에 얽매이는 게 현실이다.

이런 현실을 생각해보면 사회적 장애 모델까지 장애 개념을 확장해 놓긴 하지만 장애 권리 증진 위한 예산은 쥐꼬리만 하게 배정해 장애의 인권적(사회적) 모델은 실질적으론 실체 없는 정치적 수사로만 남게 하려는 건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든다.

이런 의심이 괜히 하는 거고, 거짓이면 좋겠지만, 어쨌든 이번 장애인정책종합계획에선 UN 장애인권리협약 미반영돼 사실상 삭제되거나, 반영이 부족한 건 부인할 수 없다. 이렇게 된 데는 보건복지부 내에서 장애인권리협약 이행 담당 부서인 장애인정책국 장애인권익지원과의 담당 인력 부족은 물론, 2년마다 다른 부서로 옮기는 등의 순환보직제 등이 요인이란 생각이 든다.

권리협약에 약간 전문성이 생기는가 싶으면, 다른 부서로 옮기고 이런 일들이 계속되니 협약 이행에 대한 전문성 제고는 애당초 불가능하다. 게다가 권리협약에 담긴 중요 원칙이나 권리 내용 등의 교육이 단순교육에 불과하고, 협약을 훈련 수준으로까지 공무원들이 교육·실습해 이를 현장 정책에 제대로 적용하고, 장애인의 실질적인 사회 참여 활성화까지 가는 수준은 아닌 거다.

그러니까, 장애인권리협약을 체계적이고 정기적으로 배우고 훈련 수준까지 실습하는 과정을 거쳐 정책·법·제도 등에 반영하고 이에 대한 장애인 당사자와 장애인단체의 정기적 피드백이 있으면 이걸 다시 정책 등에 반영하는 시스템이 행정부에 마련되지 않았다는 거다. 사법부, 입법부의 경우도 이는 거의 비슷하다. 그러니 장애인 권리 증진은커녕 인권침해가 만연할 수밖에.

기획재정부 간판.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기획재정부 간판.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장애인 예산에 대한 기획재정부의 태도도 문제다. 장애인권익옹호기관과 관련해, 5년 동안 각 지역기관마다 1명씩만 늘리고 중앙엔 2명만 늘리는 정책계획만 봐도 기획재정부가 장애인 권익옹호 예산 동결 또는 삭감하는 걸 보건복지부에서 두려워한 거 아니냔 의심이 들 정도이다.

과거에도 기획재정부(이하 기재부)는 장애인권익옹호에 관해 노인, 아동과 동등한 사업으로 보았기에, 지적·자폐성 장애인에 대해선 장애 특성상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는 장애인권익옹호기관 관계자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관련 예산 증가가 아닌 동결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었다. 이처럼 기획재정부는 장애, 성적 지향 등의 다양성에 관련해 예산 증대에 인색하다.

이와는 반대로 부유층이나 경제관료 등을 위한 정책엔 아낌없이 지원하는 게 기획재정부다, 장애 감수성, 장애인권리협약 등에 대해선 별로 고려하지 않는데, 이는 기재부 구성원 대부분이 경리 출신의 관료들이라는 점도 한 몫을 차지한다,

그러기에 경제 전문가와 인권 감수성에 전문성이 있는 사람들이 기재부에 기용되는 게 필요한데, 이에 대한 의지가 기재부엔 없어 보인다. 지금처럼 경제 침체 시기엔 부유층 아닌 서민층들의 호주머니를 두둑하게 하는 게 필요함에도 말이다. 이런 기재부의 행보는 장애인 권리 증진에 큰 걸림돌이 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미등록 자폐·정신장애인 등 미등록 장애인에 대한 정책은 아까도 말했지만 사실상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데, 이는 자폐성 장애인, 정신장애인, 신경다양인 당사자 등 정신적 장애인 당사자들이 장애인정책종합계획을 구상·공유하는 자리에 초대받지 못한 점과도 관련 있다, 즉 정신적 장애인 당사자들은 정책·사회 참여 배제를 겪고 있는 현실이 여전한 거다.

이는 장애인 종합정책 수립과 부처 간 의견을 조정하며 정책 이행을 감독·평가하기 위해 국무총리 소속 하에 세운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 위원 명단만 봐도 알 수 있다. 척수장애인, 장애여성, 시각장애인과, 지적·자폐성 장애인 당사자의 부모나 정신장애 당사자와 관련해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비장애인 교수는 있지만, 정신적 장애인 당사자들은 위원 명단 어디에도 없다.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 위원 명단. ⓒ보건복지부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 위원 명단. ⓒ보건복지부

 

그러니 특히 지적·자폐·정신 장애인 관련 정책은 가족들만의 목소리가 담기고 정작 담겨야 할 장애 당사자들의 목소리는 담기지 못하는 구조다. 그러니 정신적 장애인 당사자들은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자 관료들·전문가들 간의 탁상공론 과정에서 나오는 제공자 중심의 정책이 늘상 있을 수밖에,

이는 지적·자폐·정신 장애인 당사자들의 정책·사회 참여를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일반논평 7호는 물론 이번에 나온 장애인권리위원회 권고 중 하나인 다음 내용을 무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위원회는 협약 이행 및 모니터링에 장애아동을 포함하여 그들을 대표하는 단체를 통한 장애인의 참여와 관련된 일반논평 제7호(2018)를 상기하고, 당사국이 공공 의사 결정 과정에 장애인단체를 통해 장애인이 효과적으로 참여하는 메커니즘을 강화하고 이행하며, 장애아동, 지적장애인, 심리사회적 장애인, 간성 장애인, 장애여성, 난민과 이주장애인, 자폐성 장애인,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 젠더 다양성 장애인과 높은 수준의 지원이 필요한 장애인을 포함한 모든 장애인단체의 의미있는 참여를 보장할 것을 권고한다.

다른 장애 유형의 경우엔 정책 수립에 참여라도 있어서 그나마 나아 보이지만, 해당 장애 대표하는 당사자와 당사자 단체가 장애인 정책과 관련해 적극적 역할 수행하지 못하도록 하는 사회 인식과 구조가 존재하는 현실은 정신적 장애인의 경우와 어느 정도 비슷하다.

그래서 ▲기재부에 인권 감수성 있는 사람 및 경제 전문가 기용,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에 장애인권리협약을 정기적·체계적으로 훈련 수준까지 배워 정책·법·제도에 적용한 다음 이를 장애인 당사자와 장애인단체 등의 피드백 받는 등 장애인의 권리 증진을 위한 시스템 구축, ▲자폐성 장애인, 정신장애인, 신경다양인 등 모든 장애인의 의미 있는 정책·사회 참여를 위한 공식통로 마련 등을 통해 장애의 인권적 모델에 기반한 이용자 중심의 정책계획이 나올 수 있어야 한다.

아울러 당사국엔 장애인 정책이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 점검하는 독립적 모니터링 메커니즘이 존재해야 할 것이다.

2일 차 정부심의 때 보건복지부 염민섭 장애인정책국장이 위원들의 질의에 답변하는 모습. ⓒ이원무
2일 차 정부심의 때 보건복지부 염민섭 장애인정책국장이 위원들의 질의에 답변하는 모습. ⓒ이원무

그런데 이번에 나온 장애인정책종합계획에선 이런 요소들이 부재했고, 이는 결국 하나같이 장애인은 동등한 존엄성을 지닌 인간이 아닌 시혜·동정의 존재란 우리 사회의 핵심 메시지로 수렴하고 있다. 기존의 장애의 의료적 모델에 기반한 정책을 여전히 그대로 답습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따라서 우리는 정부에 다음과 같이 질문해야 한다.

‘어떻게 인권적 모델에 기반한 장애인 정책으로 바꿀 건가요?’

하지만 현재 정황을 보면, 이 질문에 당사국은 사실상 그런 의지가 부재하다는 식의 답변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기에 장애인 당사자와 장애인단체는 대안들을 내놓으며, 전보다 적극적 모니터링을 하고, 향후 이런 질문들을 정부 등 당사국에 끊임없이 하며, 요구하기도 하고, 때로는 투쟁도 해야 할 것이다. 향후 장애인 정책에 대한 당사국의 방향을 주시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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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팝송 감상, 월드컵 등을 즐기고 건강정보에 관심이 많은 반백년 청년이자, 자폐성장애인 자조모임 estas 회원이다. 전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정책연구팀 간사였으며,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정부심의 대응을 위해 민간대표단의 일원으로 2번 심의를 참관한 경험이 있다. 칼럼에서는 자폐인으로서의 일상을 공유하고, 장애인권리협약, 장차법과 관련해 지적장애인, 자폐성장애인과 그 가족이 처한 현실, 장애인의 건강권과 교육권, 접근권 등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나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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