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가을, 내가 일하는 대학교 직원 노조에서 단체 워크샵 공지 메일을 받았다. 단체 워크샵으로 제주도를 1박2일 빡빡한 풀 일정으로 간다는 내용이었다.

​재작년에 한달살기도 하고, 제주를 몇번이나 간터라 제주도가 괜히 친정같은 느낌이 들어서 꼭 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무작정 신청을 했다.

직원 노조에서 가는 제주도 단체 여행 일정. ⓒ박혜정
직원 노조에서 가는 제주도 단체 여행 일정. ⓒ박혜정

그런데 일정을 보니 내가 그 전 제주도 여행에서 엄두가 나지 않아서 전혀 가보지 못한 곳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한라산 둘레길, 천아숲길, 사려니숲길(이곳은 당시에 가보지 못해서), 한담공원 등' 휠체어를 타고는 가기가 좀 어려운 곳인 것 같았다.

​그런데다 단체여행이니 단체 일정에 따라야 하고, 무엇보다 관광버스로 이동을 한다는 게 휠체어를 타는 나에게는 난관이었다. 딱히 보호자가 없으니 누군가 업고 버스를 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재작년 울릉도 패키지 여행에서 관광버스에 남편이 업고 탈 수밖에 없었다 . ⓒ박혜정
재작년 울릉도 패키지 여행에서 관광버스에 남편이 업고 탈 수밖에 없었다 . ⓒ박혜정

이렇게 단체 일정도, 관광버스 이동도 모든게 힘들 것만 같았다. 괜히 신청을 했나 싶은 생각이 들 때 즈음, 아니나 다를까, 여행을 주도하는 지부장님이 전화가 왔다. 나는 혹시나 여행을 같이 가는게 힘들 것 같다고 말하실 줄 알고 마음을 비웠다.​

그런데 지부장님은 내 생각을 못했었다며, 미안하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어떻게 하면 함께 갈 수 있을지 의논해 보자고 하셨다. 나도 고민에 고민을 하고 다음 날 지부장님을 만났다.

역시 버스 이동의 문제를 말씀하시고, 비행기 탑승을 걱정하시길래, 비행기는 여행을 많이 다닌 내가 휠체어 탑승과 필요한 부분을 항공사에 전화하기로 했다.

버스 이동은 제주도 장애인 교통약자 택시를 따로 타고 일정에 맞게 움직이겠다고 얘기했다. 대신 장애인 택시는 즉시콜이어서 시간이 꼭 맞춰지기는 힘들 수 있다고 미리 말씀을 드렸다.

제주특별자치도 교통약자 택시. ⓒ신장병환우모임 카페 - 봅슬님 사진
제주특별자치도 교통약자 택시. ⓒ신장병환우모임 카페 - 봅슬님 사진

그렇게 해서 휠체어 타고는 힘들다고 생각했던 제주도 단체 여행을 처음으로 가게 되었다.​

하지만 또 하나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수동휠체어를 타는 나는 위의 단체 일정을 따라다니려면 수동휠체어 앞에 부착하는 전동 바이크가 꼭 필요할 것 같았다. ​

그런데 문제는 전동 바이크 배터리가 비행기에 실리지 않는다는 거다. 항공사마다 규정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배터리 용량이 300W 이하여야 하는데, 내가 가진 바이크는 300W 보다는 훨씬 넘는 용량이었다.

전동 바이크는 수동 휠체어 장애인의 기동성을 높여 준다. ⓒ박혜정
전동 바이크는 수동 휠체어 장애인의 기동성을 높여 준다. ⓒ박혜정

재작년에 제주도를 가면서는 당시에 규정이 없던 때라 항공사 직원에게 어거지를 부리며 겨우 가져갈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도 통하지 않아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다.​

수소문한 끝에 다행히 제주도 현지에서 배터리를 빌려주신다는 분을 소개받았지만, 제주공항에 내가 워낙 아침 일찍 도착하기 때문에 그 시간에 배터리를 가져다 주셔야 하는 상황에 난감해하셨다. 그래서 나도 더 부탁을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

https://naver.me/5mYB8Hwp (제주공항 수화물 보관소 위치 정보)

​방법을 고민 고민하던 끝에, 제주에 일하러 가있는 사촌동생에게 바이크 배터리를 택배로 미리 보냈다. 그리고는 사촌동생에게 하루 전에 제주공항 수화물 보관소에 맡겨 달라고 부탁했다. 사촌동생에게 좀 번거롭게 해서 미안하지만, 그래도 가족이니 흔쾌히 해주겠다고 했다.

이렇게 이동의 큰 문제, 두 가지를 결국 해결했다!ㅎㅎ


누군가는 '그렇게 불편한 몸으로 굳이 그렇게 고민해가며 가야 하나?' 생각할 수도 있다. 또 나처럼 중증장애인 분들 중에는 '다른 사람들한테 피해를 줄까봐' 단체여행 자체를 아예 포기하시는 분도 있으실 것 같다.

나 역시도 단체여행은 여태까지 거의 포기를 하며 갈 생각도 안한게 사실이었다. 이번 단체여행도 처음에 '제주도는 너무 많이 가봤으니 가지 말까?, 내가 괜히 가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되지 않을까?, 나도 굳이 따라가서 힘들기만 한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가고 싶음 그냥 가즈아~!!! ⓒ박혜정
가고 싶음 그냥 가즈아~!!! ⓒ박혜정

하지만 나는 일단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그냥 직진이다.ㅋㅋㅋ 그리고 막상 부딪혀 보면, 어떻게든 다 된다는 걸 많이 경험했다. 어려움은 그때 그때 해결하면 되는거다! 겪어보지도 않았는데 지레짐작으로 미리 힘들까 포기를 한다면, 한번의 멋진 제주도 여행 기회를 '내가' 놓치는 것뿐이다.

​그리고 내가 포기하고 참여하지 않으면, 우리 학교의 다른 직원들은 앞으로 당연히 나를 아예 배제하고 생각하지도 않을게 분명하다.

난 앞으로도 가고 싶은 곳이 어디든, 무조건 갈것이다. ⓒ박혜정
난 앞으로도 가고 싶은 곳이 어디든, 무조건 갈것이다. ⓒ박혜정

장애인 인식 개선은 다른 게 없다고 생각한다. 장애인 스스로가 용기내어 사회에 더 참여하고, 비장애인들은 장애인을 배제하지 않고 함께 하려고 배려하며, 부족하고 어려운 부분은 같이 해결해 나가는 것 밖에는...

이 글을 보시는 분이 장애인이시라면 용기를 조금만 내셔서, 하고 싶은 건 뭐든 참여하셨으면 한다. 비장애인이시라면 큰 배려도 필요 없다. 조금의 편의와 함께 하려는 마음만 가져주셨으면 한다. 다 같이 잘 사는 세상은 그리 어렵지도 않고 함께 하면 만들 수 있다!​

우리 모두 아자아자 화이팅입니다!!!

* 휠체어 타고 제주 단체 여행을 다녀온 이야기는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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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정 칼럼니스트 글 쓰는 휠체어 여행가, 현혜(필명), 박혜정입니다. 1994년 고등학교 등굣길에 건물에서 간판이 떨어지는 사고로 척수 장애를 입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29년 동안 중증장애인으로 그래도 씩씩하고 당당하게 독립해서 살았습니다. 1998년부터 지금까지 혼자, 가족, 친구들과 우리나라, 해외를 누비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또, 여성 중증 장애를 가지고도 수많은 일을 하며 좌충우돌 씩씩하게 살아온 이야기를 통해 누군가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전)교육공무원으로 재직했고, <시련은 축복이었습니다>를 출간한 베스트셀러 작가, 강연가, 글 쓰는 휠체어 여행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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