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뉴욕에 도착해서 몇 년 만에 만나는 내 여동생과, 몇 십년 만에 고모, 고모부를 뵙고 가족의 정을 듬뿍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뉴욕에서 남은 일정은 미리 예매를 한 시티패스 관광지와 내가 알고 있는 숨은 명소들을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가는 것이다.

  우선 숙소에서 거리가 가까운 미국 자연사 박물관과 센트럴 파크를 둘러보기로 했다. 미국 자연사 박물관은 "영화 '박물관은 살아있다'의 배경이 되기도 했던 곳이고, 지구의 역사와 인류의 진화를 한번에 보여주는 곳'이다." ( * 출처: Tripadvisor ) 우리 아이들에게 보여주면 좋을 것 같은 지구와 인류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는 곳인 것 같았다.

지구와 인류의 역사를 볼 수 있는 미국 뉴욕 자연사 박물관. ⓒ박혜정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나와 남편은 애들에게 설명해줄 지구와 인류의 역사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다. 게다가 영어로 된 설명이 우리도 이해가 다 안되었다. 그런데다 주로 큰 동물상이나 관심을 끌만한 것들은 공룡 화석이니 우리 딸들은 사실 관심이 크게 없었다. 이건 정말 개인의 취향일수도 있지만, 영어가 좀 원활하게 되고 배경지식을 더 가지고 있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 우리 아이들에게 더 유용한 시간이 되지 못해서 미안하기도 하고 아쉬웠다.

유물 발굴 작업 체험, 거대한 공룡뼈 앞에서 현혜. ⓒ박혜정
유물 발굴 작업 체험, 거대한 공룡뼈 앞에서 현혜. ⓒ박혜정

  그렇게 미국 자연사 박물관은 좀 아쉽게 보내고, 센트럴 파크를 둘러 보기 위해 갔다. 센트럴 파크는 뉴욕 맨하튼 중심에 위치한 오와시스와도 같은 아주 거대한 공원이다. 높은 빌딩으로 둘러싸인 맨하튼 섬의 2/3 지점 쯤에 위치한 어마어마한 규모의 공원으로 뉴요커들의 유일한 자연 쉼터가 되고 있다. 나는 뉴욕에 있을 때 자주 갔던 곳이지만, 아이들과 남편과 함께 오니 감회가 새롭게 느껴졌다.

뉴욕 맨하튼 전경, 중심에 있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센트럴 파크. ⓒPixabay
뉴욕 맨하튼 전경, 중심에 있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센트럴 파크. ⓒPixabay

  센트럴 파크는 규모가 너무나 크기 때문에 전체를 짧은 시간에 둘러본다는 건 사실 힘들다. 그래도 센트럴 파크를 둘러볼 수 있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특히 관광객들을 위한 마차나 자전거 투어 등이 있는데, 우리는 자전거 인력거를 타고 돌아보기로 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자전거 인력거에 휠체어를 싣고 우리가족 4명이 타기엔 힘들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어딘가에서 기다리고 아이들과 남편만 타고 갔다 오라고 했다.

  그런데 웬걸~ 자전거 인력거 아저씨가 휠체어를 접어서 자기 뒤에 놓으면 되고, 모두 다 타라는 거다! 나는 반신반의 했지만, 흑인 특유의 시원시원한 말투로 자기가 알아서 한다고 큰소리 쳤다. 남편이 일단 방석을 깔고 나를 앉혀주었다. 그랬더니 그 아저씨는 휠체어를 딱 접어서 자전거와 수레 사이에 안전하게 끼워 놓고 출발했다. 오우~ 아저씨 정말 짱입니다!

정말 짱!인 자전거 인력거 아저씨 덕분에 우리 가족이 함께 투어를 할 수 있었다. ⓒ박혜정
정말 짱!인 자전거 인력거 아저씨 덕분에 우리 가족이 함께 투어를 할 수 있었다. ⓒ박혜정

  덕분에 우리 가족 4명이 센트럴 파크를 함께 돌아볼 수 있었다. 아저씨는 중간 중간 세워서 뭐라고 설명을 많이 해주셨다. 안그래도 다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흑인의 영어는 빠르고 액센트가 달라서 더 알아 듣기 힘들다. 대강 알아듣고 애들에게 설명을 해주며 사진도 찍고 투어를 했다. 그 아저씨는 나도 내려서 사진을 찍으라고 배려해줬다. 하지만 남편에게 일일이 휠체어 빼고 앉혀달라 하기 미안하고 난 웬만큼 가봤던 곳이라 그냥 인력거에 있었다.

  센트럴 파크를 둘러보던 중 2006년 당시 어학원 친구들과 왔던 호수가 나왔다. 그 때 나는 실수로 호수에 휴대폰을 빠뜨려서 당황하고 어쩔 줄 몰라했다. 마침 바로 옆에 있던 친구가 센스있는 기지를 발휘해서 휴대폰이 가라앉기 전에 얼른 건져 주었다. 얼마나 다행이었던지. 풋풋했던 나의 예전 추억이 되살아나서 그 시절이 그립기도 했다.

센트럴 파크에서 군데군데 사진도 찍고, 내가 옛날에 휴대폰을 빠뜨렸던 호수를 보며 추억이 되살아났다. ⓒ박혜정
센트럴 파크에서 군데군데 사진도 찍고, 내가 옛날에 휴대폰을 빠뜨렸던 호수를 보며 추억이 되살아났다. ⓒ박혜정

  인력거 아저씨는 존레논, 마릴린 먼로가 살았다는 고급 아파트도 알려 주었다. 거대한 녹지인 센트럴 파크 주변으로 수많은 높은 고가의 빌딩이 둘러싸인 극명한 대비가 인상적이었다. 게다가 센트럴 파크 주변의 집들은 월세만 해도 우리가 상상하기 힘든 정도라고 했다. 뉴욕, 특히 맨하튼은 정말 자본주의의 상징이 되는 도시로 느껴졌다.

  우리 가족은 1시간 투어 비용만 지불했고, 시간도 훨씬 더 넘었다. 모든게 돈인 미국이기 때문에 추가 비용을 지불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아저씨는 날씨가 추운데 우리가 어디로 갈건지 물었다. 타임스퀘어를 갈거라고 했더니 선뜻 자기가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하아~ 정말 고마웠지만, 추가 비용이나 팁이 걱정되었다. 59번가 쯤인 센트럴 파크에서 49번가부터 시작되는 타임스퀘어는 꽤 먼 거리였기 때문이다.

존레논, 마릴린 먼로가 살았었다는 엄청 고가의 아파트. ⓒ박혜정
존레논, 마릴린 먼로가 살았었다는 엄청 고가의 아파트. ⓒ박혜정

  그런데 세상에~ 타임스퀘어에 도착을 해서 추가 비용이 얼마인지 물었더니 괜찮다고 한다. 정말 미국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인심이었다. 너무 감사해서 소소한 팁이지만 내가 생각했던 팁의 두 배를 드렸다. 정말 덕분에 우리 가족이 함께 여행하며 여러 정보도 많이 듣고, 편안하게 타임스퀘어까지도 왔다. 다시 한번 그 흑인 아저씨께 감사를 드리고 싶다.

  타임스퀘어에서는, 내가 봤던 뮤지컬들 중 라이언킹을 꼭 아이들에게 보여 주고 싶었다. 한국에서 뮤지컬을 많이 보지는 않았지만, 미국에 있을 당시 장애인 할인이 되어서 저렴하게 웬만한 뮤지컬을 거의 다 봤었다. 명성에 걸맞게 브로드웨이 뮤지컬은 정말 무대 스케일이 다르고 영어를 잘 몰라도 감동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에게 브로드웨이 뮤지컬, 라이언킹을 꼭 보여 주고 싶었다.​

언제나 복잡한 타임스퀘어에서 현혜에게 라이언킹 뮤지컬을 보여 주고 싶었으나 VIP석만 남아서, 숙소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박혜정
언제나 복잡한 타임스퀘어에서 현혜에게 라이언킹 뮤지컬을 보여 주고 싶었으나 VIP석만 남아서, 숙소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박혜정

  평일이니까 그냥 가도 라이언킹 뮤지컬을 볼 수 있겠지 생각한게 오산이었다. 언제나 인기가 넘치는 라이언킹은 이미 거의 예매가 끝났고, 아주 비싼 VIP 좌석밖에 없었다. 우리의 여행 경비에서 너무 비싼 VIP 좌석은 엄두가 나지 않아서 할 수 없이 숙소로 돌아왔다.


  다음 날은 드뎌! 자유의 여신 할머니를 만나러 간다~ 자유의 여신상은 미국을 가보지 않은 사람도 대부분 알고 있는 "미국 뉴욕항의 리버티섬에 세워진 거대한 여신상이다. 미국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프랑스에서 기증한 자유의 여신상은 세계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 * 출처: 두산백과 두피디아 ) 

우리가 전세낸 사우스페리로 가는 지하철, 배터리파크에 있던 놀이기구 ⓒ박혜정
우리가 전세낸 사우스페리로 가는 지하철, 배터리파크에 있던 놀이기구 ⓒ박혜정

  자유의 여신 할머니를 만나기 위해서는 배터리 파크에서 출발하는 페리를 타고 갈 수 있다. 30분 간격으로 출발하며 소요 시간은 15분이다. 지하철을 타고 배터리 파크로 가는 길은 사우스 페리가 종착역이라 우리가 지하철을 전세낸 것 같아 아이들은 신이 났다. 배터리 파크에 있는 놀이기구(물고기 모양의 회전 목마를 타고 도는 것)를 한참 타다 보니 페리를 탈 시간이 다 되었다. 이제 자유의 여신상을 만나러 고고고!

  리버티 아일랜드에 가까워질수록 자유의 여신상도 가깝게 보이기 시작했다. 섬에 내려 자유의 여신 할머니 영접~ 관광객 모두가 국룰로 찍는 할머니와 사진 찍기! 함께 나오게 찍는게 생각보다 힘들었다. 우리 하반신은 당연히 짤리고, 할머니 들고 있는 손이 짤리거나 찍는 사람이 거의 바닥에서 찍어야 그나마 나오는 사진이었다.

점점 가까워지는 자유의 여신상, 함께 사진찍기 힘들다. (둘째 사진은 할머니 팔이... 미안~) ⓒ박혜정
점점 가까워지는 자유의 여신상, 함께 사진찍기 힘들다. (둘째 사진은 할머니 팔이... 미안~) ⓒ박혜정

  사우스 페리로 다시 돌아와서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는 흑인들의 길거리 춤, 퍼포먼스 공연이 있었다. 뉴욕 맨하튼을 거닐다 보면, 심심치 않게 흑인들의 길거리 공연이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 잡는다. 흑인들은 리듬감과 체력이 타고 나는 듯, 춤을 추며 대단한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우리도 신기해 하며 한참을 구경했다.

흑인들의 길거리 춤, 퍼포먼스 공연. ⓒ박혜정
흑인들의 길거리 춤, 퍼포먼스 공연. ⓒ박혜정

  뉴욕에서의 마지막 일정은 동생과 함께 우리 가족이 뉴저지에 사는 사촌 언니네 집에 가는 것이다. 사촌 언니는 워싱턴 DC에 사시는 고모네의 딸로 4살 때 미국에 왔고, 회계사인 형부와 결혼해서 아들이 4명이나 있는 다복한 집이다.​

  언니도 부모님의 영향으로 한국말을 알아 듣긴 해도 말은 잘 못한다. 그래도 어릴 때 언니가 한국에 한번 와서 만난 기억이 있어서 나도 반가웠다. 언니의 첫째 아들이 말이 안통하는 우리 애들과 그래도 놀아주고, 아들 4명이 다 의젓하고 잘 컸다. 워싱턴 DC 고모댁에서 그 때 봤다고 어색하지는 않았지만, 말이 통해야 친해질텐데ㅋㅋㅋ 그래도 뭔가 가족이라는 끈끈한 느낌이 들었다.

사촌언니 집에서 과자집도 만들고, 지난 번 고모댁에서 함께 찍은 아이들. ⓒ박혜정
사촌언니 집에서 과자집도 만들고, 지난 번 고모댁에서 함께 찍은 아이들. ⓒ박혜정

  뉴저지에 사는 언니 집에서 하루를 보내고 다음 아침은 숙소 주변, 롱 아일랜드 시티를 이리저리 둘러 보았다. 2박3일, 3박4일, 아니 일주일 아니 37일도 이렇게 짧다니... 거의 30일 가까이 지나고, 이제 멕시코 칸쿤 7박8일 만이 남았다. 어쩜 이리 시간이 빨리 가는지 아쉬울 뿐이다.

뉴욕에서 멕시코 칸쿤으로 이제 출바알~~~!!! ⓒ박혜정
뉴욕에서 멕시코 칸쿤으로 이제 출바알~~~!!! ⓒ박혜정

  시간이 아쉽지만, 우리 아이들도, 남편과 나도 모두 정말 기다리고 고대하던 여행의 마지막, 멕시코 칸쿤으로 떠나는 시간이 왔다. 아끼고 아껴서 했던 여행의 마무리, 멕시코 칸쿤에서는 조금 즐기기로 했다. 그렇다고 호화로운 럭셔리 여행은 아니지만, 다음 편 37일 간의 가족여행 마지막 편, 멕시코 칸쿤 이야기 기대해 주시길...<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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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정 칼럼니스트 글 쓰는 휠체어 여행가, 현혜(필명), 박혜정입니다. 1994년 고등학교 등굣길에 건물에서 간판이 떨어지는 사고로 척수 장애를 입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29년 동안 중증장애인으로 그래도 씩씩하고 당당하게 독립해서 살았습니다. 1998년부터 지금까지 혼자, 가족, 친구들과 우리나라, 해외를 누비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또, 여성 중증 장애를 가지고도 수많은 일을 하며 좌충우돌 씩씩하게 살아온 이야기를 통해 누군가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전)교육공무원으로 재직했고, <시련은 축복이었습니다>를 출간한 베스트셀러 작가, 강연가, 글 쓰는 휠체어 여행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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